미일동맹은 [따로 떨어진 양자 동맹이 아닌] ‘한미·미일 양 동맹‘이라는 안전보장 시스템 내 하나의 기능이라고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안전보장 시스템의 배경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필자가 ‘극동 1905년 체제‘라고 부르는 지역 질서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전통적 패권국인 중국이 약체화 혹은 자제적이 됐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과 일본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한반도(적어도 그 남부)와 대만이 힘의 뒷받침에 의해 같은 진영에 묶이게 된 지역 질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질서는 1905년 미국·영국·러시아의 국제적인 승인을 얻으며 처음 만들어졌다(단, 필자에게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1945년 일본 제국이 붕괴한 뒤에도 ‘극동 1905년 체제‘는 지속됐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패전 이후]이 체제를 힘으로 뒷받침하게 된 것은 ‘한미·미일 양 동맹‘이라는 안전보장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동아시아 내] 안전보장 환경의 악화에 따라 한미일 안전보장 협력이 강화된 것은 전략적·지정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 P7

중국은 ‘극동 1905년 체제‘와 같은 지역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 지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지역의 모든 당사국이 합의할 수 있는 지역 질서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라 현재 상황을 평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외교뿐 아니라 억지력 구축이 불가결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P10

포츠담 선언이 누구 이름으로 발표됐는지에 대해 왜 신경을 쓰게 됐는가 하면, 이 회담의 참가자와 서명자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츠담 회담에 참가한 연합군 정상이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시험에 나온다면,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영국 총리와 회담 중에 그와 교체된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 후임 총리, 그리고 소련의 최고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 Joseph Stalin 이라고 답해야 한다. 이렇게 쓴다면, 동그라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포츠담 선언이 누구 이름으로 발표됐느냐라는 문제에는 트루먼, 처칠(애틀리가 아니다)에 더해 중국(당시는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라고 답해야 한다. 심지어 장제스는 포츠담에 오지 않았는데도, 트루먼 대통령이 그의 동의를 얻어 대신 서명했다. - P12

이런 일본 쪽의 희망이나 사정에 기초한 생각을 이 책에선 ‘일본적 시점‘이라 부르겠다. 일본적 시점이 생겨나는 데엔 주로 두 가지 배경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일국평화주의‘이다. 일국평화주의라는 것은 일본과 일본 바깥 사이에 선을 그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일본의 책임과 관여는 전자(즉, 일본 내부)에 한정해야 한다고 보는 전후 일본 특유의 안전보장 관념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전쟁에 말려들지 않으면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필요최소한론‘이라고 부르는 헌법 해석이다. 잘 알려진 대로 헌법 9조는 일본은 ‘전력‘을 갖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전제 위에서 일본이 자위대와 같은 ‘실력‘을 갖기 위해선 자위대가 ‘전력‘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여기서 자위대는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의 실력"일 뿐 ‘전력‘이 아니기 때문에, [자위대를 유지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 아니라는 공식적인 [헌법] 해석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필요최소한론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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