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체호지라는 말은 뭔가 장중한 울림이 있지만 내실을 보면 지배층의 자기 보신을 바꿔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P46

처음에는 행복해지기 위해 경제 성장이 필요했겠지만, 이제는 그것을 자기목적화하여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불행해져도 괜찮다는 식으로 생각이 어긋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 P69

원래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을 늦추려 하는 시스템이지, 최적의 대답을 척척 내놓기 위한 틀이 아닙니다. 의사결정이 늦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나라가 망해도 천천히 망합니다. 거꾸로 독재 시스템은 급성장할 수 있는 대신 하룻밤 사이에 망하죠. 말하자면 그렇다는 건데 원리적으로는 어느 쪽이 좋고 나쁜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가 형태로는 어느 쪽이 나을까요? ‘좋은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나쁜 일‘은 천천히 일어나는 시스템이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는 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 P70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도 국민은 자민당과 공명당, 공산당을 선호한 반면 민주당, 모두의 당과 유신당을 싫어했습니다. 신문도 사설을 통해 국민이 이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당내 투쟁으로 의견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다고 논조를 펼쳤지요. 자민당과 공명당, 공산당은 일사불란한 정당입니다. 수장이 모든 일을 결정하고 그의 지시가 아래로 전달됩니다. 말하자면 비민주적 정당이지요. 미디어는 그래야 ‘좋은 정당‘이라고 말하고, 유권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P71

기호화한 인간에게는 폭력을 휘두를 수 있지만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좀처럼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 P78

2011년부터 2012년에 걸쳐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거세게 일었지요. 그런데 어느샌가 ‘역시 바뀌지는 않는다‘는 분위기로 흘렀고, 그로부터 눈을 감은 채 여기까지 쭉 왔습니다. 위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죠.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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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아베 총리부터 아래로는 혐오 발언을 일삼는 극우 성향의 시민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향토에는 조금도 애착이 없으면서 유치한 전쟁 취미로 타 국민을 향한 공격성만을 드러내는 악성 내셔널리스트들이 애국주의의 깃발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 P10

전쟁을 알고 있는 제1세대, 그러니까 전중파戰中派는 패전경험의 본질을 은폐해왔습니다. 확신범처럼 그래 왔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너무나도 비참한 패전이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둘째는 전중파에게는 전쟁에 져서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기분이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 P20

일본은 패전의 경험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미국의 종속국이면서도 주권국가처럼 행동하고 있는 자기기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 P21

패전국 국민은 좀처럼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시작했고, 온갖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며, 끝내 패한 나라의 모습‘을 긍정하는 데에 심리적 저항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셔널리즘이 성립하려면 자국이 벌인 부끄러워해야 할 범죄든 인류사에 자랑할 만한 공헌이든 똑같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국가가 한 모든 일을 ‘내 일처럼‘ 받아들이는 국민만이 ‘깔끔한 내셔널리즘‘을 누릴 수 있습니다. 좋은 것만을 받아들이고 변변찮은 일에 관해서는 모른다는 식으로 반응해서는 제대로 된 내셔널리즘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 P33

"미일동맹밖에 없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은 일본이 종속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외교 관계일 뿐, 주체적으로 선택한 동맹이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외교 관계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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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저럼 보수적인 거대한 공무원 조직에 없던 직제가 생기고 거기에 예산과 사람을 투입하는 일은 결코 그냥 벌어지지 않는다. 낡은 조직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나쁜 방식보다 낯선 방식이 아닐까.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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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 지식인이나 청년 · 학생이 (5·4운동기에 성취감을 추동력으로 하여 자발적 조직을 통해 민중과 결합하던 양상과 달리) 민중의 자생적 항의운동과 결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의 움직임은 톈안먼사건과 같은 커다란 대중운동으로 발전할까 봐 (문화대혁명의 악몽속에) 엄히 금지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톈안먼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비관적 전망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 P328

톈안민사태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작가들의 경험과 기억이 형상화된 중국 현대미술은 역사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억이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해서가 아니라 사건이 당사자와 훗날 사람들에게 어떻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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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거행된 공산당 제11기 3회 중앙위 전체회의(12월 18~22일)는 덩샤오핑체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역사적 회의였다. 공산당은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농업·공업·국방 · 과학기술의 4개 현대화 노선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에서 마오쩌둥의 과오를 부분적으로 인정하였으며,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1978년에서 1981년에 걸쳐 점차 복권시켰다. 바야흐로 개혁·개방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 P281

경제개혁이 진행되면 될수록 국가로부터 고정급을 받는 지식층의 경제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하락하였다. 당이 공식적으로 지식인을 9개 계층 중 세번째로 인정해 지식층의 독자적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소득과 사회적 지위 간의 불균형이 극심했다. 게다가 전통사회의 지식인과 달리 민중의 지지도 받고 있지 못해 그들의 불만은 가중되고 있었다. 그러니 학생에게 학업동기가 부여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가난한 사람은 교수, 바보 같은 사람은 박사"라는 말이 떠돌았다 한다. - P287

톈안먼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두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소수 분자로 민주라는 가치를이 운동의 목표로 삼은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참여 학생에 해당하는데, 확산되는 시장경제에 적응하기 힘들어한 유형이다. - P289

1980년대 문화담론의 핵심은 계몽과 서구의 재발견이었다. 이른바 게몽주의 지식인이 재등장한 셈이다. 1980년대는 5. 4 시대에 이은 ‘새로운 전면적 서구화‘의 시대가 되었다. 그들에게 서구와 근대화는 하나이고 전통 역시 단일한 봉건적 유물이었다. 그때의 쟁점은 ‘현대화‘ 였다. - P292

개혁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비판적 인식은 학생의 인식과 온도차가 생길 수 있다. 학생은 시장을 낡은 체제를 개혁할 수 있는 혁신적 제도라고 보는 반면, 노동자는 1980년대 들어 시장화 과정을 겪었기에 시장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 P323

"(문혁기) 10년의 소란을 겪은 후 사람들이 끊임없는 운동과 투쟁에 대해 극도로 피로감을 느껴 안정과 정상적 생활질서의 회복을 갈망하며 뚜렷한 물질 생활의 개선을 희망하고 있음을" 당시 톈안먼광장의 지도자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6·4 사건이 지난 지 1주일 만에 베이징 주민이 일상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비밀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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