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더불어 공산주의식 용어에 따르면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수많은 학생과 교사, 교수, 과학자, 작가 등이 새로운 정권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증명해야 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라는 부름에 화답해서 외국에서 돌아온 해외 동포들도 그들과 합류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세뇌 교육에 참석하여 새로운 정통파적 신념을 배우고 공인된 팸플릿과 신문, 교재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얼마 뒤 자술서를 써야 했으며 <속내를 털어놓음으로써> 과거를 깨끗이 청산해야 했다. 그들은 새로운 중국에 봉사하고자 하는 새로운 국민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재교육하도록 요구받았다. - P276
한쪽에서 진행되는 선전과 다른 한쪽에서 벌어지는 혁명의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괴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육체적 학대를 목격한 뒤로 마음속에서 불신이 꿈틀거렸지만 애써 외면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급 투쟁이라는 단어를 계속 되뇌이면서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다. 비판 대회와 조직적인 약탈의 비열한 측면을 외면하기 위해서 마음속에 모두를 위한 풍족한 공산주의의 비전을 떠올려야 했다. 그들은 자신이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 P280
새로운 정권 밑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면 적극적인 공범이 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한 선택이 기회주의의 발로이든 아니면 이상주의나 순전한 실용주의의 발로이든 상관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기꺼이 그 같은 선택을 했다. - P281
우닝쿤은 대학원 동료이자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리충다오에게 왜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중국을 도우려 하지 않는지 물었다. 친구는 무언가 아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은 세뇌당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 P284
한편 장아이링은 애국심을 자극하려는 새로운 정권의 미사여구를 처음부터 아예 믿지 않은 소수의 몇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재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했던 그녀는 1952년에 가명을 이용해서 몰래 국경을 넘어 홍콩으로 들어갔다. - P287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침묵할 자유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믿음과 충성심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 P290
후펑의 글에 따르면 공산당은 <문학의 목을 조이려고 한다. 문학이 현실을 벗어나길 원하며 작가들이 거짓을 말하길 원한다>. - P292
산터우에서는 1953년 5월 거대한 모닥불이 3일에 걸쳐 <봉건주의 과거의 흔적>을 보여 주는 서적 30만 권을 집어삼켰다. 문단 감시를 맡은 당 간부들의 열정이 너무 과해서 그들 손에 닿는 모든 책이, 심지어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책들까지 재생 종이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 인정했듯이 시도 때도 없이 수정된 탓에 블랙리스트 자체가 혼란을 초래했다. 그 결과 베이징에서는 공산당에 의해 국부(國父)로 칭송되던 쑨원의 저서들까지 선반에서 사라졌으며 1954년에는 프랑스인을 위한 베이징 여행 안내서들이 1톤 가까이 파지로 재활용되었다. - P297
당을 위해 일하던 작가들이 내놓은 소수의 작품이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최소 수준의 작품 활동에 그쳤다. 공산주의자들 편에 선 라오서, 딩링, 마오둔 같은 좌파 작가들은 더 이상 해방 전에 그들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저항 문학을 내놓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 P2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