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는 주로 ‘특별 영주자‘를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1945년 일본의 패전, 즉 조선의 해방 전부터 일본에 거주했던 사람과 그 후손들이다. 광복 이후에 밀항으로 일본에 건너온 사람들도 일부 포함되지만, 중요한 것은 분단 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현재 자이니치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적‘인 사람도 있다. 조선적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적이라고 착각한다. 조선적의 조선은 분단 전의 조선이다. 엄밀히 말하면 국적이 아니다. 무국적자다. 이는 내가 <아사히신문> 기자였을 때 법무성에 직접 확인한 내용이다.
법무성은 조선적의 조선은 나라가 아니라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 P158

조선적 자이니치는 한국의 정권에 따라 한국에 입국 가능 여부가 갈릴 때도 있다. 대부분 그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지만, 유명인은 주목받을 때가 있다. 2015년 자이니치 김석범 작가가 입국을 거부당했을 때는 양국에서 화제가 됐다. 김석범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화산도》로 알려져 있다. 2015년은 《화산도》 한국어 번역판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에 출석하려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입국을 막았다. 김석범 작가는 남북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 P159

자이니치가 일본에 있게 된 원인은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이다. 2023년 시점으로 한국적/조선적 특별 영주자는 27만 7,707명, 그중 조선적은 2만 4,305명이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많지만 그건 통계상 알 수 없다. 1945년 해방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 출신자는 약 200만 명이었고 그 후 일본에 남은 사람이 약 70만 명이다. 이것이 자이니치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 P160

서양 사람이 일본에 거주한다고 해서 동조 압력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자이니치는 겉으로는 일본인과 거의 구별하기 힘들다.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배 시절 동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중 하나가 일본식 성명을 강요하는 창씨개명이다. - P161

한국 관련 강의를 하는 대학 교수들도 학생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교수에게 고백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요즘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한국이 젊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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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극장판 1편이 생각난다. 아마 이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거겠지..

2004년 4월에 이라크에서 일본인 5명이 무장 세력의 인질로 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5명은 자원봉사 활동가와 저널리스트였다. 무장 세력은 자위대가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는 거부했다. 다행히 이라크의 종교 지도자가 무장 세력을 설득해서 무사히 풀려났는데, 그들이 일본으로 돌아오자 위험한 지역에 가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국가(일본)에 폐를 끼쳤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인질이 된 5명의 집에는 비난의 전화와 편지가 쇄도했다. 나나 내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것도 아닌데 국가에 폐를 끼쳤다고 화가 나는 감정은 나는 잘 모르겠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오히려 비난이 쏟아지는 여론이 끔찍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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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도 일본과는 다른 기준에서 동조 압력이 있는것 같다. 나이대에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면 뒤떨어진 것처럼 보는 시선이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아야 한다거나, 아파트에 거주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압력은 일본에서는 없는 것들이다.
일본에서는 노인이 머리를 화려한 색깔로 염색하거나, 젊은이나 입을 법한 옷을 걸쳐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지방에 살든 도쿄에 살든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지방에 살고 싶어도 일자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도권에 사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 일본은 동조 압력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것 같다. - P150

‘자숙‘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의 동조 압력을 상징하는 말 같다. 한국에서는 유명인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활동을 삼가는 행위를 가리킬 때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스스로 행동을 자제할 때 쓴다. 감염병이 돌 때 외출을 자제하는 것도 자숙이다.(중략) 그러면서 ‘자숙 경찰‘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경찰이 아닌 일반 시민이 나서서 자숙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등의 지나친 자숙 경찰의 행동들이 화제가 됐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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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도》에 등장하는 "사무라이에게 있어서 비겁한 행동이나 부정행위만큼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라는 관념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가치관과 연결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일본군의 극단적 자기희생은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P110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전쟁을 벌인 일본의 무모함이 어디서 왔나 생각해 보면, 실제로 정신이 물질보다 우월하다고 믿은 것도 원인 중 하나인 것 같다. 초강대국 미국을 물질적인 힘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 일본 상층부도 알 만한 사람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청일 전쟁(1894~1895)과 러일 전쟁 (1904~1905)에서 연달아 승리한 것이독이 됐다. 국민들은 일본은 지지 않는다는 환상을 갖게 됐다. 이번 전쟁도 신이 지켜 줄 것이라는 신앙에 가까운 환상 말이다. 그러나 가미카제는 불지 않았다. - P112

그런데 일본인이 원래 근면 성실했던 것은 아니다. 1800년대 후반 일본을 방문한 서양 사람들은 일본인의 ‘게으름‘을 지적했다. "일본의 노동자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게으르다", "이 나라에서는 빨리 진행되는 일이 없다", "일본인의 ‘곧‘은 지금부터 크리스마스까지라는 뜻이다" 등 시간 개념이 없는 일본인에 대한 글들이 많다. 메이지시대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시간 개념이 생긴 것이다. - P124

요즘은 니노미야의 동상을 철거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를 살펴봤더니 "아이가 일하는 모습이 교육에 안 좋다"는 의견이 있어서라고 한다. "책을 보면서 걷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으면 안 된다고 교육하는데, 니노미야의 동상을 보면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아주 현대적인 이유다. 한마디로 이제 니노미야의 근면 성실은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에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 P128

나도 오사카에서 대학생 때부터 자주 갔던 단골 술집이 있었는데, 코로나19 시기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기 며칠 전에 갔더니 단골들이 "몇십 년 다녔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냐"고 아쉬워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기가 없어지면 이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술집이 하나의 커뮤니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뭔가 한 시대가 끝난 것 같은 쓸쓸함을 느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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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방은 한국의 지방보다 독립적이다. 한국은 중앙 집권 체제가 구축된 지 오래지만, 일본이 중앙 집권 체제가 마련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다. 게다가 나라가 길고, 크게 4개 섬으로 나뉘어 있어 국내 이동이 쉽지 않아 수도 도쿄의 영향력은 한국의 서울만큼 크지 않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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