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37
윌리엄 제랄드 골딩 지음, 유혜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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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이 소설을 소설로 처음 접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쯤이었던가, 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을 어머니와 함께 본 것이 이 소설과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엔 원작이 소설이라는 것도 모르고 봤었는데, 아주 오래 전에 봤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터라 그 영화를 보며 느꼈던 두려움이나 당혹감 같은 느낌들이 아직도 떠오를 정도로 기억 속에 깊숙히 남아 있다. 그러다가 최근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곧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약 십수 명의 소년들이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추락한다. 그들은 모여서 그들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른들의 사회처럼 질서를 지닌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랄프가 주운 소라는 사회 속의 질서와 규칙의 상징이다. 그들은 소라를 우러러보듯이 회의 때 소라를 손에 든 소년을 우러러보았고, 소라를 가장 긴 시간 가지고 있는 랄프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그들 사회 속의 또 하나의 지도자, 즉 사냥 부대의 대장인 잭은 계속해서 랄프와 의견 충돌을 겪는다. 잭의 사냥부대는 처음에는 실패하지만 이윽고 자력으로 멧돼지를 잡는 데 성공하게 된다. 망설임은 한 번 뿐이었다. 그들은 사냥이라는 유혈유희에 점점 중독되어 봉화를 내버려두고 사냥에 열중하는 본말전도적인 상황을 초래한다. 잭의 사냥부대로 인해 랄프의 질서는 흔들리고, 랄프는 질서를 재정립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랄프의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한계를 맞아 알게 모르게 랄프에 대한 의심이 모두의 마음 속에서 고개를 드는 바로 그 때, 랄프와 잭의 대립은 극에 달하고 결국 소년들은 두 패로 갈라지게 된다. 잭의 야만적인 힘에 매료된, 혹은 사냥의 산물인 고기에 이끌린 몇몇 소년들이 잭을 따라 떠나고, 아직도 질서를 중시하는 이들은 랄프의 곁에 남는다.

그리고 곧이어 일어난 첫 번째의 살인... 피에 미쳐 야만적인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던 소년들은 그들의 원 속으로 들어온 것이 자신들의 동료인지 짐승인지 판단할 생각도 않고- 아니, 동료임을 알면서도 그를 짐승으로 간주하며 그저 광기에 씌어 그 누군가를 사냥한 것이다. 아직 가치관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소년들이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의 잔혹성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지, 그리고 일단 얼굴을 가지고 밖으로 드러난 잔혹성은 얼마나 철저해지는지가 이 첫번째 살인을 통해 더할 나위 없이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소라가 질서와 규칙의 상징이었다면, 잭의 무리들이 뒤집어쓴 가면은 야만성과 잔혹성의 상징이다. 그 가면 속에 있는 것은 분명 방금 전까지는 사회의 질서를 따르던 소년이었으나, 가면을 쓰는 순간 마치 모든 사회적인 예속에서 일시에 벗어나 버린 것처럼 온갖 잔인한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한편, 질서를 중시하며 사회를 이루고 있던 소년들도 그들의 야만적인 놀이에 이끌려 함께 춤을 추려 하지만, 야만인들이 잔혹하게 저지른 살인에 놀라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살인을 막지는 못한다. 그들은 야만인들을 말리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도망친다. 물론 그처럼 그들의 사냥을 섣불리 막으려 하다가는 오히려 자신까지 사냥당할 상황에서 그것을 막지 못하고 도망친 것은 무턱대고 욕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소년들의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명이 야만에 대항하지 못하고, 무력 앞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몸을 사렸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사회에서 사회적 규범과 질서는 무의미해졌으며 이제 힘만이 유일한 질서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소라의 시대는 가고 가면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무력 앞에서 의미를 잃는 문명과 무력의 무법성 및 절대성을 충격에 가까운 대비를 통해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모인 소년들은 일부러 그 축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빙빙 둘러 말하며, 사이먼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한다. 우린 아무것도 못 본 거야, 그들이 춤을 추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난 거야, 하며 애써 상기하지 않으려 하고 못 본 체하는 데서 소년다운 심리와 발상이 드러난다. 어린아이들은 사회적 질서와 통념에 어긋나는 짓을 해서 어른에게 야단을 맞을 것이 두려워지면 그 일을 잊어버리려 하거나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쉽게 도피하고 합리화해 버린다. 사회는 어린이들에게는 관대하니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어린 소년들이 살인을 목도했을 때의 충격, 그리고 그 살인을 저지른 것이 어른도, 짐승도, 공인된 악인 따위도 아닌 바로 얼마 전까지 함께 생활하던 같은 또래의 소년들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가 그들로 하여금 사실을 인정하지 않게 했던 것이다. 그런 소년들의 심리가 마치 내가 직접 겪은 듯이 느껴져 와 나는 섬뜩함을 견딜 수 없었다.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건설하려 했던 이상적인 사회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명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용기를 짜내어 안경을 돌려받으러 갔던 새끼돼지는 첫 번째의 살인 이후로 이제는 한층 더 냉정하게, 겁없이 살인을 할 수 있게 된 야만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아름다웠던 소라도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문명 사회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두 명의 소년이 결국 힘 앞에 무릎을 꿇었고, 단 한 명 문명인으로 남은 랄프는 야만인들에게 사냥을 당한다. 그리고 야만인들에게 ?기던 랄프는 사이먼이 몽롱한 의식 속에서 보았던 그 '파리대왕'을 보게 된다.

'파리대왕'은 그들이 생활하는 도중에 일어난 모든 추악한 것의 집합체이다. 나뭇가지에 꽂힌 멧돼지의 머리는 잭의 사냥부대가 이미 먹을 것을 위해서만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 그 자체를 즐기게 된 후에 신이 나서 잡아 죽인 멧돼지의 머리를 잘라낸 것이다. 유희로서의 사냥의 결과로 희생된 멧돼지의 머리를 이번에는 파리떼가 새까맣게 에워싸고 탐욕스럽게 배를 채운다.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간 후, 백골만 남은 멧돼지의 머리는 그러나 오히려 웃음을 띄고 있다. 그것은 분명 소년들을 향한 비웃음이리라. 보아라, 너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보아라, 지금도 얼마나 망가져 가고 있는지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보아라. 너희의 사회는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 아직 어린아이임을 핑계삼아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너희의 사회를 이렇게 잘못되게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희들이다. 보아라, 지금 너희의 꼴을 좀 보아라... 그렇게 악마처럼 속삭이며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 멧돼지의 머리가 꽂혀 있던 나뭇가지를 빼어든 랄프는 나뭇가지의 양쪽 끝이 모두 뾰족하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살인을 부추기는 사냥도구, 그것을 일단 손에 든 랄프는 어쩌면 살인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상처입히고 죽인 후에 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변명해도 어쨌든 살인은 살인일 뿐이다.

책의 결말은 내가 기억하는 영화의 결말과 달랐다. 영화를 하도 오래 전에 봐서 내 어렴풋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결말에서는 랄프 하나만이 구원을 받았던 것 같다. 봉화를 보고 구조하러 왔던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야만인들의 사냥을 목격하고 그들을 정말로 섬에 살던 야만인들로 여기고 퇴치하여 랄프만을 구한다는 결말. 영화의 결말이 정말로 그랬는지 자신있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죽 그렇게 생각해 왔던 나는 책의 결말이 어쩐지 못마땅했다. 그들은 벌을 받아 마땅한데, 구원받을 자격은 이미 없는데. 그렇지만 그들이 구조를 받았다 해서 다시 예전의 그 자랑스런 영국 국민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섬에서의 기억은 그들이 되찾게 될 양심 속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평생 그들을 괴롭히겠지.

작가 윌리엄 골딩은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문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지향, 극한 상황에서 눈을 뜨는 인간의 본성, 상황의 변화에 따른 문명과 무력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기껏해야 열 대여섯 된 어린 소년들이 갖가지 사건을 겪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끼는지, 그 심리묘사가 무척이나 탁월하다. 책을 읽어가며 과연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달까. 한번쯤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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