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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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최신작. 지난 여름방학에 한국에 갔을 때 코엘료의 신작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연금술사'와 '11분'을 읽고 매우 감명을 받았던 나는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동기가 이 책을 샀다고 해서 중국에 와서 곧 빌려서 읽어 보았다.

책 속에서, 작가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한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를 직업으로 하는, 그러나 이름만 작가일 뿐 사실 한 일이라고는 노래 가사를 쓴 것밖에 없는, 그렇지만 그 일로 평생을 써도 좋을 만큼 많은 돈을 벌어 그 생활에 안주해 버린 한 작가와 그의 세 번째 아내 에스테르의 결혼 생활, 십 년의 결혼 생활 끝에 그녀가 일방적으로 고한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고 그런 그녀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작가는 그녀의 아내가 사라져 버리기 전에 같이 있었다던 미하일이라는 청년을 만나 그 청년의 도움을 받아 그녀가 그렇게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그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 가게 되고 그와 함께 있었을 때 그녀의 눈동자 속에 내비치던 불행과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그를 변화시켰다. 현실에 안주하려 하던 그로 하여금 길고 힘든 여행길에 오르게 함으로써 그가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만들었고, 그렇게 그를 이름뿐이 아닌 진짜 작가로 만들었다. 그것은 그저 작가가 되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그가 지금까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그의 일생에 주어진 단 하나의 사명을 그가 깨닫고 그 사명에 임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녀 덕분에 그는 작가가 되었고, 자신이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있어 '자히르'가 되었다.
'자히르'란, 지금 책 속의 설명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이고, 그로 하여금 참 자아와 인생 속에서의 진정한 사명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물건, 혹은 사람을 뜻한다. 그만큼 그녀는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녀는 점점 불행해져 갔고, 그에게 불행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와 자신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그 문제를 그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종군기자가 되어 전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종군기자로서 전쟁터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자신이 정말 살아 있다고 느끼고, 그 극한 상황에서만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며칠을 씻지도 못하고, 군용 식량으로 허기를 면하고, 하루에 세 시간밖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에 잠을 깨며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곳에서, 그녀는 그곳에서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극한상황에서 인간은 비로소 진실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언제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책 속에서 그는 언뜻 보면 각각 다른 형태의, 그러나 근원은 같은 에너지에서 출발한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은 그의 소설 중에서 이렇게 허황되게 들리는 사랑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마치 생활은 풍족하고 신변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사람이 특이한 것을 찾고 싶어하는 사치스러운 소리 정도로 들렸다. 물론, 아마도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녀의 말이 맞다고 해도, 반드시 그렇게 죽음에 직면하면서까지 진정한 사랑 따위를 찾아야 하는 걸까? 그 상황에서 보여지는 사랑 때문에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느낀들, 그 다음 순간에 내가 날아온 총알을 맞고 죽어 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걸까?
어째서 그녀는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 나서는 것일까? 그녀처럼 극한상황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평안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고 그 속에서도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많은 시간을 살아 오지 않았고, 삶에 권태를 느낀 적도 아직 없으며, 진정한 불행을 느낀 적도 없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어쨌든 이 책 속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11분'만큼의, 어쩌면 그 이상의 감동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여려 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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