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리처드 바크 지음, 이은희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애벌레가 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 것을 스승은 나비라고 부른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말이다.
작가는 이렇게 책 속에서 시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를 얘기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그 좋은 예이다. 도널드의 그 말에 "그래, 그렇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야."라고 리처드 - 나는 이 '리처드'가 작가 리처드 바크를 대변하고 있는 인물임을 확신한다 - 는 대답한다. 그렇지만 곧이어 흡혈귀의 사념체와 대면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흡혈귀의 부탁을 거절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흡혈귀는 리처드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것이다. 이 때 도널드는 리처드가 사회적 통념에 묶여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그래,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라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을 강조하여, 상식적으로 봐서는 전혀 남에게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할 수도 있다는 통념의 예외를 제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우리의 인생도 모두 환상이고, '나'란 존재는 실체가 아닌 관념체이며 무한한 빛 '이즈'의 아들들이다"라고 메시아, 즉 스승인 도널드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환상인 인생 속에서, 세계 속에서 리처드가 만난 환상 속의 스승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환상일 뿐이며 나 자신도 실체가 아니라고 역설하는 도널드의 말에 나는 매우 당황했다. 이 세계도, 인생도 모두 환상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이렇게 옥신각신 아둥바둥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 그의 '메시아 입문서'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소원이 생기면 그 소원을 이룰 힘도 갖게 되리라. 그러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하리라.' 혹 그는,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환상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현실이 된다. 그러나 이상을 현실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역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책을 읽은 당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숙제를 해결해내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코 허무주의는 아닌 것이다.

일본 애니메애션 '카우보이 비밥'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죽음은 늘 곁에 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순간 죽음은 빛보다도 빨리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 않으면 죽음은 그저 조용히 곁에서 우리를 바라볼 뿐이다." 이 말처럼, 도널드는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금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을 뿐,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느냐는 리처드의 물음에 "난 극적인 것을 좋아하거든"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그는 죽음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군중들의 무지에 지친 도널드는 메시아를 파업하고 여행을 다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가 된 리처드를 만나, 메시아로서 그를 졸업시키고 이 세계의 40억 인구와 같은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리처드를 새로운 세계에서 혼자만의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 주고는 빛 속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너희들이 이 세계에서 살아 있는 한 행복할 것을 명령한다."라고 메시아는 말한다. 행복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소망이고 궁극적 목표이면서도, 그 모든 이들이 손에 넣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이들이 도널드나 리처드처럼 메시아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자기만의 인생을 최선을 다해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사명을 다한 후 죽는다면, 언젠가 빛 속으로 돌아가는 그 날,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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