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사는 것만큼 큰 호사가 없다. 아무리 좋은 것, 맛있는 것, 예쁜 것을 가지게 되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다면 그 삶은 재미없고 지루할 것이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없다면 다른 조건이 모두 충족되더라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야 나는 "내가 상상하기에 천국은 도서관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이해한다. 손만 뻗으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닿을 수 있는 그런 곳이야말로 진짜 천국일 것이다.


책을 산다는 것은 결국, 이야기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내가 책을 보태지 않아도 이미 책이 쌓여 있고 쉼없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책을 사다 늘리는 것은 결국 '이야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 다름 아니다. 책을 사고, 읽고, 밤을 지새워 읽어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사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내 마음에 드는 이야기, 내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 내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만한 그런 좋은 이야기들을,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게 될 이야기들을 찾아 헤매는 과정일 것이다. 책뿐만 아니라 어느 시점부터는 영화나 드라마의 DVD도 사 모으게 되었는데, 영화의 경우 내가 보지 않은 영화의 DVD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 번 보고 마음에 든 영화의 DVD를 사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만 봐도, 마음에 든 이야기들을 소유하고 싶어서 사는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거의 항상 책을 샀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적어도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추가 마일리지를 받을 정도의 금액을 채워 주문하곤 했다. 멤버십이 최고 등급을 찍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그나마도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정도이지,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그 등급을 쭉 유지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결국 나는, 내게 있어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부터, 이야기를 소유하고 싶다는 내 욕구를 인식하기 전부터도 이야기를 계속 모아 왔다는 것이 된다. 그런 내 무의식은 내가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뿐, 오래 전부터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니까, 혹은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는 책을 항상 읽어야 하는 전공이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이야기 그 자체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내 독서 성향이 문학작품 쪽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 역시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숭배자로서 나는 늘, 어떻게 되었건 간에,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모름지기 그 플롯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재미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에코의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무릎을 치며, 결국 내가 지금까지 가장 사랑했던 작가들은 이 원칙에 가장 충실했던 작가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나는 아직도, 언제나, 앞으로도 끝없이, 훌륭한 플롯을 가진 멋진 이야기를 찾아 헤매며 그런 이야기들을 소유하는 데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일부러 그리 다짐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언제나 이 말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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