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학생들은 시진핑이 평생 국가주석을 할지도 모르는 체제에서 성인이 된 첫 번째 세대였다. - P20

중국에는 여러 종류의 거절이 존재한다. 가장 단순한 것은 금전적인 거절이다. 비즈니스 세계의 거절은 직설적이고 단호하다. 학교의 거절도 직설적일 수 있다. 시험 위주의 중국 학원 문화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만약 거절의 이유가 정치적이거나 혹은 외국인과 관련되어 있다면 아무 응답이 없을 수도 있다. 아무도 무슨 결정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는 사실상 문제도 해결책도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마치 애초부터 신청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P31

거리감과 친밀감의 이러한 조합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게서 특히 두드러졌다. 푸링 주민들은 늘 이 두 인물에 대해 이야기했고, 지난주에 했던 대화를 떠올리듯 무심코 이들의 말을 인용했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새로운 땅에 살면서 현지인이 숭배하는 신들을 알게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새로운 유형의 신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임기 초기에 부패에 대한 엄격한 단속을 시작했고, 내 예전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이가 여기에 호응했다.(중략)
시진핑을 찬양하면서도 시진핑 개인의 특성은 언급하지 않는다. 예전 같은 친밀감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대신 이제는 다들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이것이 성격과 외모가 매력의 중심이었던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시진핑을 구별 짓는 점 중 하나였다. - P33

교사로서 새로 맞이한 삶에서 도시는 더 커졌고 캠퍼스도 커졌다. 심지어 학생들도 커졌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부모 세대보다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여섯 배나 높았다. 대학은 상상할 수도 없던 규모로 확장 또는 재건되었고 1인당 GDP는 개혁개방 초기에 비해 65배나 증가했다. 10억 농민의 4분의 1 이상이 도시민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대학의 옆 건물에서 강의를 했고 대학은 여전히 구식 공산주의 집회를 열었다. 기념일의 숫자가 점점 더 커진다는 사실은 그저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함없이 그대로인가를 분명히 보여줄 뿐이었다. (중략) 나처럼 오랜만에 돌아온 교사에게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한 나라가 이토록 커다란 사회와 경제와 교육의 변화를 겪고도 정치는 정체되거나 퇴보할 수 있을까?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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