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찾아보니 휠체어에 대해선 일본이 시설과 인식 면에서 모두 선진국다웠다. 우리의 열악한 환경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관대한 시선과는 대조적으로 유모차에 대해선 우리 사회보다도 훨씬 냉랭한 것으로 각종 조사에서 나타났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2013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6개국의 유모차 이용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혼잡할 때 유모차를 접지 않고 타는 승객이 있으면 불쾌하다‘는 대답이 한국은 8%인 데 비해, 일본은42%에 달했다. ‘유모차 승하차 시 주변 승객의 양보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엄마의 비율도 한국은 53%였지만 일본은 13%에 그쳤다. - P214

‘유모차 = 민폐‘라는 일본인의 인식을 볼 수 있는 조사가 있다. 일본민영철도협회는 해마다 ‘전철 내 민폐 행위‘ 순위를 홈페이지에 발표한다. 이런 순위를 집계한다는 것 자체로 일본인들이 얼마나 민폐에 민감한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유모차 접지 않고 승차하기‘는 당당히 7위에 올라 있다. 8위의 쓰레기 방치, 10위인 음주 후 승차하기보다도 높다. 경멸과 혐오의 느낌마저 난다. 실제 일본 엄마들은 유모차를 탄 아이와 자신을 죄인 취급한다고 호소한다. - P215

전철 내 민폐 행동에 대한 일본인의 평가 기준을 분석했더니, 일본인들은 공간 침해 행위가 가장 질이 나쁘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유모차 승차‘ 역시 새치기와 ‘쩍벌남‘ 문 주변에 쭈그려 앉기와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악질‘로 말이다. 한 칼럼니스트는 "일본 사회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는 것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엄격한 사회"라고 진단한다. - P216

민폐는 자의적 개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선악을 판단하는 절대적 도덕 기준처럼 쓰일 때가 적지 않다. 일본인들이 남을 공격할 때 자신들의 정의를 주장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민폐‘를 사용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특히 자신은 규칙을 엄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상대방에게 ‘악인‘의 낙인을 마구 찍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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