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향사라서 오히려 말로 꺼내기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냄새를 아주 좋아한다. 그 냄새를 악기 삼아 연주하는 작곡가가 된 것 같아 즐겁기 때문이다. - P83

꽃도 패션처럼 유행을 탄다. 미모사 또한 그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네이션처럼 한물간 꽃이 된 것이다. 1950~1960년대에 파리 부르주아들의 집을 장식했던 카네이션은 ‘묘지에 놓는 꽃‘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인기가 급격히 식었다. - P86

수선화 추출물은 아주 소량이어도 짙은 자연의 향을 풍긴다. 꽃향기뿐만 아니라 푸르른 초원에 같이 자라던 풀들의 씁쓸한 향도 난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향을 맡으면 암소 떼의 냄새도 풍기는 것 같다. 향기 하나에도 지형처럼 여러 특징이 있다. - P95

장미라는 테마를 생각하면서 나는 책상 위 종이를 쓱 훑어보았다. 종이에는 원료의 이름과 배합이 적혀 있다.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낸 배합 공식이었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의욕이 너무 지나칠 때는 잠시 그 일을 멈추고, 열정이 적당히 식은 다음에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곡가처럼 새로운 멜로디를 창조하려면 감정을 어느 정도 가라앉혀야 하는 것이다. - P110

199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에 장미를 태워 우주로 보냈다. 장미가 지구에서 풍기는 향기와 우주 공간에서 풍기는 향기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기 위해서다. 확인을 해야만 안심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려는 실험인 셈이다. "장미는 장미다." 미국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시구절이다. 장미는 고도 57만 4,000킬로미터 상공에 있어도 여전히 장미 향을 풍겼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