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는 자신은 물론 국민당과 국민에게도 전쟁이 몇 주 혹은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비토록 했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들은 여전히 중국 북부와 상하이에서의 사변‘이 활활 타오르다가 결단만 내리면 꺼뜨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장제스가 상하이를 전쟁터로 만든 목적은 두 개의 전역이 하나의 전쟁에 속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상하이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중략)
그러나 상하이에서 싸우는 것은 국내와 국제 어느 쪽이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상하이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이제는 전쟁이 국가 전체의 싸움이 되었다. 그 전까지 만주의 문제는 중국의 주권과는 별개로 여겨졌고 구호만 요란할 뿐 행동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베이핑 주변의 중국 북부조차 상하이가 있는 창장 삼각지의 인구 밀집지대에서 본다면 와닿지 않는 곳이었다. 일본 또한 중국이 단일 국가가 아니라 여러 권력의 이합집산임을 강조할 요량으로 분쟁을 ‘북지나 사변‘이라고 불렀다. 이제 장제스는 중국 북부가 공격받는다면 남쪽이 앙갚음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중국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했다. 장제스는 전쟁을 상하이로 불러들여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제스가 가장 바라는 일은 전쟁에서 외국의 협력을 얻는 것이었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희망을 적었다. "모든 나라가 일본에 분노하고 미국과 영국이 나서도록 압박할 것이다. "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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