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운동의 역사에서 ‘자립‘ 또는 ‘자활‘은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당했던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의존의 그물망을 함께 새로 짜는 실천이었다. 재산, 소득, 인맥, 학력, 기술 등 의존할 만한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부실한 사람들이 나눔을 통해, 외부자원과의 연결을 통해 상호의존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자금과 경험이 부족하고,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지향도 달랐던 까닭에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지만, 참여자들은 협동의 즐거움, 노동에 대한 자부심, 숙명처럼 여겼던 가난을 함께 헤쳐나간 보람을 기억했다. - P93

과거의 생산공동체운동이나 다양한 협동조합에서와 달리, 자활사업 참여자는 처음부터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호명된다. 병원 진단서, 진료기록부 사본, 소견서를 통한 의학적 평가와 국민연금공단의 활동 능력 평가를 거쳐 ‘조건부 수급자‘로 범주화되면, 그에게 남은 선택의 자유란 수급을 유지하기 위해 이 범주에 요구되는 기능을 수행할지, 수급을 포기할지 둘 중 하나뿐이다. - P96

시작부터, 자활은 주민들에게 겹겹이 덧씌워진 가난의 상처를 치유하고 당당한 인간으로서 존립하기 위한 대안이라기보다, "놀고먹는" 사람들을 작업장으로 내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등장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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