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을 맞춰 야외 노동을 나가면 치타의 중심가에 있는 레스토랑 앞을 지나간다. 주방 하수구에 빵가루가 섞인 상태로 구정물이 얼어 있었다. 그 빵가루를 노리고 대열을 이탈했다가 감시병에게 혼나는 동료 포로들을 보고 겐지는 비참함을 느꼈다. - P122

"내가 살아남은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혼성부대에 들어가 수용소에서 계급 차별이 없었던 것. 또 하나는 수용소의 체제 개선이 빨랐던 것이다. 내가 있던 수용소는 지역 군사령부가 있던 치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개선 속도가 빨랐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떨어져 지방에 있던 수용소는 사망자가 더 많았을 것이다."
겐지는 자기가 살아남은 것은 이런 객관적인 조건이 우연히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판단력이나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든가, 정신력이 있었다든가, 신이 지켜주었다든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시기 죽은 사람에게 특징이나 경향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약했다든가,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했다든가, 그런 것으로 생사가 나뉘지는 않았을 거다. 장교는 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 쪽에 사망자가 많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 P127

시베리아 억류만이 아니라 전쟁 체험 기록은 학도병, 예비사관, 장교 등 학력이나 지위의 혜택을 본 사람이 쓴 것이 많다. 그것들은 귀중한 기록이지만 특정한 시각의 기록이기도 하다. 생활에 여유가 없고 문해 능력 등이 떨어지는 서민은 손수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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