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 위의 세계
리아 헤이거 코헨 지음, 하유진 옮김 / 지호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볼 책의 목록을 20권도 넘은 수첩을 들고 서가를 돌아다니면서 어느 책을 빌려야 될지 고민하던 그 순간까지도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사회인문계열 서가를 휘저으면서 책을 찾던 순간 두꺼운 보드로 치장된 책들 사이에서 다소 허술해보이는 재생지로 이 책의 제목으로 손이 닿았을 때도 큰 느낌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꺼내들어봤을 때에는 호기심이 들었다. 대충 사회과학책들은 몇 쪽만 봐도 무슨 내용이 진행될지 다소 짐작이 가는데 이 책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부분은 소설책의 묘사인 듯하고 어떤 부분은 수필인 듯 하면서도 어느 부분에는 다큐맨트 영화를 묘사한 듯한 모호함이 하나의 책에 섞여있었다. 책 뒤의 옮긴이의 글을 정독해봤지만 모호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도서관 마감시간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다른 빌리고 싶은 여러 책들을 두고 불확실한 이 책을 빌리는 것은 아니라는 이성적인(?) 판단을 무시하고 뭔지 모를 이끌림에 결국 이 책을 빌렸고 빌린 책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되었다.  

   이 책은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 다루지 않고 가격이라는 추상적 가치로 획일화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는 어느덧 진부화된 주제인지라 벌써부터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더욱이 잘 알려진 책들도 허다한 가운데 제목조차 이상하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오른 적이 없는 몇 년된 책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이 책을 만난 이야기를 장확하게 늘어놓을 가치가 있을만큼 멋진 책이다. 이 책의 가치는 저자의 탁월한 사색과 꼼꼼한 조사 그리고 글의 형식을 파괴하고 넘나드는 대담함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그녀의 여행은 어느 카폐에서 유리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신문을 펼쳐보면서 시작된다. 단지 몇 센트의 가격으로만 규정되어지는 이러한 물건들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사물을 만드는 현장으로 날아가 사물을 만드는 이들의 삶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관찰하던 그녀는 사물과의 관계가 가격이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의해서만 재단되는 현대사회를 돌아보면서 다시 카페로 돌아온다. 그러한 시선에는 전투적인 비판이 앞써기보다는 따뜻하면서도 진지한 성찰이 녹아있다. 옮긴이의 설명대로 그녀는 자기 이외의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사물에 대한 철저한 객관화는 우리에게도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농사를 짓던 몇 십년 전만하여도 놋그릇을 매일 지푸라기로 닦거나, 겨울내 김치를 위해 온 가족이 떠들썩하게 모여서 김장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해서 대상과 관계지어진 놋그릇과 김치는 단순히 몇만원이라는 가격으로는 가치지워질 수 없는 뭔가가 물건을 가진 이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제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편리함과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이제는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가치도 얼마에 살 수 있다고 믿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한 세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옮긴이의 제안대로 따듯한 커피 한잔에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면 어떻까? 그러면 가격이라는 기준아래 숨어있던 비밀스러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말했듯이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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