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는다는 것이 요즘처럼 혼란스러웠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테러리즘의 기운은 종교적 색채로 가득 무장하고 있다. (물론 테러가 100% 종교로부터 비롯되었노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겉핥기 식으로 훑는다면 이슬람교 대 기독교의 다툼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어느 종교도 폭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실상은 나를 (보수적인 교단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신앙인일 수 없게 만든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왜 다른 종교는 안 되는 건지에 대해 묻게 되고.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임에 틀림없다.

기독교의 보수성은 실로 지독하다. 좀 심한 표현이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건지 미국을 믿는 건지 알 수 없는 행동들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내가 아는 목사님께서는 유신 정권 때 조사를 받았지만 조사하는 측이 자신으로부터 어떠한 반체제적 행위도 발견할 수 없다며 이렇게 훌륭하신 목사님은 처음 봅니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유교 중심적인 사회에 초창기 뿌리를 내리기 위해 숱한 박해를 견뎌 왔을진 모르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는 지배 세력이다. 하지만 지배 세력이라 할지라도 지배 세력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종교의 모습인 듯싶다. 끊임없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하고, 자신이 지닌 것을 외면한 체 지니지 못한 부분을 바라보며 옳지 않다고 외쳐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종교인 것이다.

특히 이는 타 종교를 향한 배타성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단 하나의 신만을 옳다고 여기는 자세 속에서 타 종교는 절대적으로 옳지 못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아 버린다. 그 안에는 사회 문화적인 차이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존재치 않으며, 다른 신을 믿는 이들은 불경하고도 미개한 족속으로 치부되게 된다. 이러한 우월 의식이 존재하기에,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 의식을 지니고 있기에, 종교의 이름으로 타인을 지배할 수 있고, 타 종교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성경의 구절 구절을 분석하는 지루지리한 작업을 통해 기독교가 처음부터 단 하나의 절대자만을 인정하는 종교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야훼는 결코 처음부터 절대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다윗 왕 대에만 해도 사람들은 타 신을 인정했고,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으로서 존재했다. 일신 중심의 종교이긴 했지만 유일신적인 종교는 아니었던. 어쩌면 이는 타 종교와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종교였는지도 모른다.

일신교의 발전 과정은 한 국가의 정치적인 영향력 확대 과정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타 국가에서 믿는 신을 배제하고 자신의 민족이 믿는 신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어찌 보면 타 국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신적인 무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신을 믿고 있는 선택 받은 민족이기에 지금은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는 자신이 믿는 신의 존재를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그 신을 믿는 이의 자의식을 높여 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배제에 근거한 힘의 획득이기에 궁극적으로 타 종교를 용납할 수는 없는, 어쩌면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한 수학자는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67% 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던데, 인간으로서는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곳에서 종교는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종교의 진실성과 가치는 타 종교를 억압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무조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닌, 부조리에 대해 밝히고 소외 당하는 이들과 함께할 때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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