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요세푸스의 심지뽑기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선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원이 직선>임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는 대중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한 정치가였다. 그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을 대중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였다.

81년 생소한 엘리아스 카네티가 노벨상을 받았고, 82년 그의 저서를 구입하였다. 제목은 <군중과 권력>이었다. 군중과 권력은 항상 파시즘을 연상시킨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선동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선동에 의해 군중들은 일사분란하게 외치거나 행동한다.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찍은 <의지의 승리>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가? 1934년 나치당의 뉴렌베르크 전당대회를 찰영한 이 영화는 엄청난 시각적 효과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거대한 공간에 질서정연하게 꽉 들어찬 대중들, 그리고 그 사이에 넓게 난 일직선의 공간,  여기를 단 세 사람의 인물이 행진한다. 그 압도적인 화면은 대중과 권력의 속성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에 대한 일사분란한 복종의 정신과 범접할 수 없는 신격화가 화면에 담겨있는 것이다.

이 책은 파시즘에 대한 보고서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대중이란 어찌보면 너무나 단순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집합체인 대중은 욕구를 분출하기를 원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인간적 평등을 갈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타인의 간격에 틈이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좁혀지는 밀집을 사랑하며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이 움직일 방향이 문제인 것이다. 대중은 어찌보면 레밍과 같은 존재일수도 있다. 선두 주자의 안내로 정해진 한 방향으로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단순성을 우리는 중국의 60년대 문화혁명에서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이성은 감성에 의해 소멸되는 하찮은 것일 뿐이다.

군중을 움직이는 권력의 속성은 폭력이다. 이 폭력은 물리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다. 폭력을 수반한 권력은 언제나 속도를 중요시한다. 징기스칸은 늑대의 후손이었고, 파라오는 매였으며 로마황제는 독수리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에게 가장 성가신 존재는 신속함을 방해하는 세력인 것이다. 왜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에서 야당이 탄압을 받아왔는가는 이 속성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의 또 다른 속성은 질문이다. 질문의 긍국적인 목표는 분해이다. 한 인간을 또는 한 집단을 철저히 분해하므로서 그 자체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가장 핵심은 비밀이다. 먹이를 사냥하는 사자를 보라. 그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은폐시킨다. 그러므로서 상대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언제,어디서,어떻게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대에 대한 공포감. 비밀은 두려움과 연결되는 코드이다.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라는 책에서 "죽음은 결코 승리일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권력의 박해 속에서 수용소에 갖힌 사람 가운데 생존자만이 증언할 수 있다는 생존자들의 외침은 생존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선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권력은 자신의 약점과 치부를 감추기 위해 모든 증인을 압살하려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는 그 시대의 증언자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권력은 대중을 이용해 권력을 얻었지만 살아남은 생존자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심판자가 한 명일지라도 유효한 것이다. 바로 이점을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은 두려워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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