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는 이제 한 물 간 개념인 듯 해 보인다. 모든 국가는 생산성의 위기에 직면한 지 오래다. 이미 1980년대부터 복지 예산의 감축을 시도하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등장했으며, Hayek 등의 학자들은 이 시대를 이끌어갈 절대적 이념을 제시한 것 마냥 신봉 받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는 복지국가에 거대한 위기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 역시 삶의 질의 향상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필요한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이미 거쳐온 복지국가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역시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이 각 국으로 하여금 복지국가를 포기하도록 만든 요인인지를 정확히 분석할 때만이 비로소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양분해 복지국가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곤 한다. 미국을 위시한 반집합주의적 경향과 유럽 쪽의 사민당에 의한 페이비언 사회주의적 경향. 하지만 저자는 유럽을 이렇게 단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같은 유럽이라 하더라도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에서 보여지는 현상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다르다. 같은 북유럽에서도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은 각기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곳에 중점을 둔 복지 제도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스웨덴이 여성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어 많은 여성들이 파트 타임 혹은 풀 타임 직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노르웨이의 정책은 많은 여성들을 가정 내에 머무르게 만든다. 같은 가족 정책이어도 프랑스가 중앙집권적이면서도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는 반면 독일은 그 일관성이 덜하며, 보조적인 부분에 서비스의 영역을 한정하고 있다. 이렇듯, 같은 것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각국의 복지제도는 발전해 왔고, 이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다. 즉, 타국의 제도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우리의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함께, 자생적인 흐름을 수용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이와 함께 작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복지국가에 대한 연구 부문이 아닌가 싶다. 잔여적, 제도적 모델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재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에스핑-엔더슨에 의한 계급주의적 분석까지의 간략한 소개는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 사회학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다. 더불어 각 모델이 가지고 있는 단점에 대한 언급과 최근 들어 이야기 되고 있는 신제도주의적 접근까지를 통해 복지국가를 바라보는 경향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분명 복지국가는 위기에 봉착했다. 다른 부문보다도 복지에 대한 것이 쉽게 문제시 되는 까닭은 다름 아닌 복지의 생산성 측정에 있어서의 문제점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정확한 양과 질에 있어서의 변화 측량이 힘들다는 점, 효과가 직접적, 가시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 속에서 복지는 생산성을 저해하는 주 요인으로 여겨져 삭감될 수 밖에 없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이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효과 측정 척도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생산성 증대 라는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지는 그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도 동시에 행해져야 하지 않나 싶다. 왜 생산성을 증대시켜야만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속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일방적인 채찍의 의미 역시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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