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슈마리 > 쉽게 만나는 최신 경제학의 세계


경제학,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여기저기 경제학 강의를 다니다보면, 가끔 황당한 질문을 받게 될 때가 있다.

"미시경제학은 왜 들으려 하나요?"

"주식 투자에 도움이 될까 해서..."

"미시경제학은 주식 투자하고는 상관이 없는데요"

"그럼, 경제학은 뭐에 쓸모가 있나요..."

사실, 쓸모가 없다는 대답이 솔직한 것일지 모르나, 경제학으로 밥을 먹고 사는 터라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 대개, 경제의 원리를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고, 감각을 키우는데 필요하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가끔, 경제학 교과서이나 대중서를 대할 때면 지나칠만큼 트렌디하게 흘러가는 경영학 관련 서적들과 크게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커리큘럼의 규범이 확실하고 립서비스와 진배없는 사기가 아닌 진정한 학문이라서 그렇다, 라는 항변이 가능하겠지만 '자연'이 아닌 '사회'의 과학이고 보면 그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소비하는 대중이 외면하고 소비층이 얇아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제학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쉽게 썼다는 수십종의 경제학 풀이서들도 이러한 경향에서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시중에 나가보면, 원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딱딱하고 비싼 교과서를 빼고서도, "알기 쉬운"이라는 꼭지를 단 경제학 대중서는 많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이러한 책들 중에서 제대로 건질만한 책은 극히 드물다. "알기 쉬운"이라는 간판을 내건 이 책들은 경제원론의 표준적인 주제나 쳬계를 따르되, 수식과 그래프만 없애고 몇 가지 잘 알려진 사례를 그럴듯하게 재포장해 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복적으로 다뤄지는 기본기 이외에, 그리고 경제학 전공자를 위한 전문 교과서 이외에,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보다 그럴듯한 포장과 알맹이를 지닌 경제학 대중서는 매우 드물다는 말이다.

산업조직으로 풀어낸 경제학의 묘미

런 면에서 보면, 이토 모토시게의 [비즈니스 경제학]은 그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매우 대담한 시도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토 모토시게는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일본의 학자로서 전방위적인 관심과 더불어 대중적인 글쓰기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비즈니스"라는 대중적인 골자를 빼놓고 보면, 이 책은 이른바 '산업조직'에 관한 책에 가깝다. 경제학 원론이나 개론을 가르칠 때 산업조직에 관한 부분에서 김이 빠져버리기 일쑤다. 일단, 이론적인 기반이 되는 완전경쟁 시장을 다루고 그 대척점에 선 완전 독점을 다룬다. 그렇다면, 현실은 그 사이 어딘가 일텐데, 기업간의 현실적인 경쟁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과점 시장은 분석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피해간다. 은근 슬쩍 넘어간다고 쳐도, 뒷 맛이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

현대 경제학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세련화된 산업조직을 원론 차원에서 수용하지 못하다는 이유는 복잡하다는 것이다. 기초적인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엎친데 덮칠 필요는 없다는 것. 또한, 과점 시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게임 이론이라는 또하나의 분석 도구가 필요한데 이것 역시 원론이나 개론 수준에서 가르치고 배우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모토시게는 고고할 수 있는 학자임에도 이런 부담스러움을 기꺼히 감수하면서, 속세의 때까지 적당히 묻히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책의 전반부는 산업조직론의 기본 테마인 가격 차별의 논리, 주인-대리인 문제, 그리고 게임이론을 통한 경쟁전략과 같은 최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이미 산업조직론에서는 잘 알려진 주제들이지만, 이를 대중적으로 포장해 잘 먹기 좋게 조리해두었다는 점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이렇게 산업조직론의 대강을 훑은 후에 후반부에는 좀 더 다양한 주제가 펼쳐진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 전략 개념을 차용해 경영학의 논의를 끌어들이는가 하면, 정보화로 인해 초래되는 경제의 변화를 논하고 저자 자신의 전공 분야인 국제경제와 비즈니스까지 풀어나가고 있다. 전반부에 비해 공력이 떨어지는 맛이 없지는 않지만, 다양한 주제를 쉽게 전달핟나는 애초의 취지에는 여전히 충실하다.

토착 경제학을 위한 노력

내용을 떠나서 이 책에서 가장 높이 살만한 부분은 경제학의 이론이 말하는 현실을 꼼꼼히 찾아내려 한 모토시게의 노력이다. 요시노야의 규동 판매 전략이라든가 세븐 일레븐의 점포 확대 방식 등을 논한 부분 등 책 곳곳에 등장하는 일본 기업들의 실제 사례는 경제학의 토착화를 시도하는 저자의 지향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우리의 교과서들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면 그럴듯한 토착적인 사례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경제신문 기사를 맹맹한 수준에서 이리저리 모아놓은 것이 대부분이고 본다면, 적절한 예를 찾아 이론과 맞춰나가려는 우리 학자들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 아닐까 싶다. 고고함을 버리고 속세로 뛰어든 모토시게를 우리의 학문 풍통에서 만나고 싶은 생각 역시 간절해진다. 이왕이면 값비싼 하드커버 양장을 한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교과서 말고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드러운 대중서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아쉬운 점 몇 가지  

경제학에 흥미를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다음의 두가지는 아쉽게 느껴진다.

첫째, 산업조직론의 이론체계를 지닌 앞부분이 보다 탄탄한 이론의 구성과 치밀한 사례의 소개로 전개됨에 반해 다양한 주제가 섞여 있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아무래도 맥이 풀리는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정보통신 혁명을 다루는 부분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특히, 배리안(H. Varian)과 샤피로(R. Shapiro)가 쓴 명저 [Information Rules]와 같은 뛰어난 참고도서가 존재하는데도 그 내용들이 책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은 점은 꽤나 의아하다. 앞서 장들이 해당 분야의 주요 교과서들을 참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

둘째, 책의 번역과 관련된 문제. 번역의 전반적인 수준은 무난하나, 세부적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들이 간혹 드러난다. 크게 두 가지만 지적하겠다.

우선, 일본 책을 번역할 때 미국 저자들의 이름이 어떻게 표기되어야 하는지 종종 의아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번역서에서는 서구권 저자들의 인명 표기에 가타카나 표기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현재 이에 대한 번역업계의 규정이나 관행이 어떤 것인지 필자로서는 아는 바가 없다). 어쨌든 폴 밀그롬(Paul Milgrom)이 "미르그롬"이라고 적혀 있는 부분은 꽤나 거슬렸다.(하지만, 마이클 포터 같은 경우에는 그냥 "포터"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역자의 실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음으로 원저자인 모토시게의 착각이라고 생각되지만, 게임이론 관련 부분의 참고서가 된 딕시(Dixit)와 네일버프(Nalebuff)의 책은 [전략의 게임 Games of Strategy]가 아니라 [전략적 사고 Thinking Strategically]이다. [전략의 게임]은 딕시와 수전 스키스(Susan Skeath)가 쓴 다른 게임이론 관련 서적의 제목이다. 미루어 짐작하자면, 원저자가 혼동했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출판될 때 책 제목이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일 듯 하다(번역문에는 영어 원제 앞에 "전략적 사고란 무엇인가"라고 표기되어 있어 전자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 보인다). 하지만, 번역이 또하나의 창작이라는 적극적인 취지에서는 이러한 부분 정도는 미리 잡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