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이성형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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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행문이라는 형식이 좋은 작품이 되려면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의미있는 역사적 유물이나 장소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 곳이 진귀한 자연환경이나 괴이한 모습이라도 그 것을 둘러싼 사람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작가의 이해수준이 높다면 그 작품은 훌륭한 지역보고서이며 철학책이 될 수 있다. 마치 혜초의 왕오천춘국전이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처럼.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훌륭한 기행문이라고 생각한다. 올초 우연히 아는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을 볼 때부터 국내에 몇 안되는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라는 내력과 작가가 직접 쓴 서문에서 느껴지는 느낌만으로 괜찮을 것같다고 생각해서 읽어야 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서 읽어보니 역시 대단한 책이었다. 책 중간중간에 나온 멋진 사진들만으로도 충분한 눈요기거리가 되지만 책 내용속에 묻어나는 문화순혈주의나 서구 중심적 가치관들에 대한 비판은 깊이 생각할 만하다. 또한 그러한 비판을 무게잡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기행문이라는 경쾌한 형식으로 이끌어가는 작가의 필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각 나라들의 특성들을 의미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이다. 우리시대에 공산주의가 살아남은 몇 안되는 하지만 경직되지 않은 잡종문화의 개방성과 혁명의 열기가 아직 살아있는 쿠바, 수백년전 스페인의 침략으로 인한 정신적 패배감과 대중주의적 정치속에서 고민하는 하지만 희망과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페루,  삐노체뜨 군사독재의 후유증을 '기억과 용서'라는 단계로 극복하지 못한 체 갈등하는 천의 모습을 가진 칠레, 멕시코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침탈의 역사를 극복하는 또한 다양한 아즈텍 문화와 혁명기 벽화가 인상적인 멕시코. 어쩌면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는지.

 불연듯 라틴의 음악을 듣고 라틴박물관에 가고 아니 가방을 싸고 아바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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