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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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함에 있어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 그중 어떤 책은 단지 어떤 저자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손이 가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이덕일이라는 저자는 그런 존재다.

철저한 고증에 기반을 하면서도 단순한 사실을 나열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정리하지만, 그 관점이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침이 없으면서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역사가이기 때문이다.

올해 중순 우연히 서점에서 존재를 안 뒤 이번에 완파한 이번 책도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선 저자는 말한다. 리더는 단순히 개인적인 성실함이나 검소함보다 그가 처한 조직의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근본적 변화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검소했지만 노론독재와 양반중심의 시대적 악습를 변화하는데는 주저했던 영조나 나름대로의 애민정신에도 훈구세력 처단과 사림세력의 육성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인지하지 못한 연산군 등이 그러한 예이다.

어떤 조직의 리더는 단순히 착하다는 식의 개인적 성품만으로는 안된다. 차라리 부도덕한 리더는 용서가 되지만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처리하지 못하는 리더는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무능함은 연산군처럼 그러한 시대적 과오를 인지할 능력이 없는 지적인 무능일 수도 있고,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능력만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이 곳에 나온 왕들 중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본 왕은 태종이다. 그는 그 시대 직면한 조선왕조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 형제, 가신, 부인, 처가, 사돈 등을 모두 정리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이는 얼핏 보면 자신의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정치적 보복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처단한 이들이 다들 한때 자신과 함께 하던 기득권이라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가장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세조와의 비교를 통해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세조는 자신의 왕위 집권과 유지를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지만, 자신과 함께 했던 가신들을 공신이라는 특권층으로 만들어 철처히 보호했다. 이는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이들도 왕권강화를 위해 과감히 처단한 태종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 결과 태종은 조선이라는 왕조를 반석에 올려놓으면서 세종이라는 성군을 낳았지만, 세조는 훈구세력이라는 사회의 악을 만들면서 이후 갈등과 불안의 원흉이 되었다. 이후 왕권이 취약하고 정통성없었던 것이나 훈구세력 이후 대안세력인 사림이 명분에만 집착하게 하면서 외세의 침략에 무방비로 당하게 된 것도 근본을 보면 자신과 그 측근들의 사익에 몰두한 세조의 공(?)이다.

또한 이 책은 명확하고 합리적인 후계자 양성의 중요성도 지적한다. 엄격하면서도 실제적인 수업과 실제 양위를 통해 성군이 되도록 이끈 태종은 그런 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반면 선조는 가장 최악의 사례다.

선조는 선위를 자신의 정치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악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서른이 넘고 임진왜란이라는 국란 극복의 명분도 있는 광해군를 끊임없이 위협하면서 사회불안요인을 만들었다. 자신의 왕권강화수단으로 후계구도를 이용하는 그의 용렬함은 이후 광해군의 폐위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도 후계자 양성이라는 측면에선 나쁜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도덕적 불안과 소론의 탄압수단으로 양위소동을 벌이면서 만 네살짜리 사도세자를 석고대죄에 만들더니, 예순여섯이 넘은 나이에 재혼에 집착하면서 외척이 발호하게 하고, 경쟁의 수단으로 자신의 자식인 사도세자를 죽였다.

그나마 막판에 노론 당론을 거부하고 세존의 즉위를 이끌어내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사도세자 문제가 정조의 사망 이후까지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반대파와의 공존이다. 사람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내편이 잘 되기를 바라고 나와 다른 이들을 안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경우가 심해져 상대방을 제거하고 자신만 성과를 독점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다. 특히 리더가 그 중심을 잡지 못할 경우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광해군 시대 여당인 대북은 소수당이라는 현실을 상대당의 축출로 자신들의 권력독점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는 광해군의 폐위와 대북의 소멸이었다.

대북이 소수당이라 실패했다고 한다면 다수당인 노론이 정권을 장악한 영조 시대를 보면 된다. 영조와 노론은 집권기간 내내 사회불안으로 작용한 경종 추대세력이 노론 독주 현실에 대한 불만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연루자를 모두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식으로만 대응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신과 사회 전체의 공멸이었다.

이후 조선왕조의 폐망과 오늘날 당파싸움만 인식하는 조선 양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주된 책임은 조선 후기 권력을 독점한 한 노론이다.

사실 이 책은 과거의 애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과 미래를 예기하고 있다. 서문 제목인 "역사는 현재학이자 미래학이다"에서도 드러나듯이 역사를 통해 오늘날 시대정신과 발전방향을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단순히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의 리더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또한 리더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이들에게도 삶의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http://blog.naver.com/hardark/50100379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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