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추인데 40도. 말이 되나. 그럼에도. 어제 달빛요가하고 쓰러질뻔. 동작 자체는 스무스했는데 2시 간단히 끼니 때우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안 먹고 요가한 게 몸에 무리가 갔던듯. 물 계속 마시면서 겨우겨우 하고 집에 돌아와 야심한 시각 퍼먹었다. 굶고 요가하지 말자 다시 한번. 하지만 또 깜박할 수 있습니다. 끝나고난 후에 나의 아저씨 주제가 틀어줬는데 광화문 밤하늘 누워 바라보면서 아니 그러니까 뭐 하러 그런 짓거리를 해서 자살을 하고 잠깐 울컥했다가 자살하지 않고 도망가서 잠깐 살았으면 그래도 좋았을 텐데 했다가 그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을까나 궁금했다가 집채만한 운명의 파도가 자신을 집어삼킬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그럴 때는 신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완전한 스스로를 믿어야 하는가. 노래 끝날 무렵 먹먹해졌다. 야외 요가뿐만 아니라 스트레스가 급밀려와서 어제 과식을 하기도 한 것 같다. 지금 아침밥 지으면서 헤아려보니. 하나씩 노트해가다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겠지.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이미 까닭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으면서 그걸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노트하다보면 알겠지 라고 방어막 치는 게 좀 웃길 따름이다. 방어막을 친다고 해서 그 방어막을 모조리 드러내보이는 것도 어른이 할 짓은 아닌듯 싶다. 어른이 할 짓은 아닌듯 싶다, 라고 써놓고 그냥 어른이로 사는 것도 사는 방법 중의 하나다. 언니는 감기가 더 심해져서 이번에 도저히 못 만나겠다 싶어 여름 끝날 무렵 시원한 가을 바람 불때 하지만 아직은 더울 무렵 보기로 했다. 소소한 것들에 마음 쓰여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 게 참 아가아가하다 싶은데 이것도 지나가고난 후면 아 그랬지 라고 과거형으로 말할 것들이니. 유칼립투스를 아무 생각 없이 베란다에 잠깐 두고 물 주고 외출해서 몇 시간 지나고 오니 잎이 바싹 말라 타들어가고 있었다. 허둥지둥 실내로 데리고 들어왔으나 새까맣게 탄 잎 가장자리를 보니 미안했다. 이렇게 식물과 교감하는 여자가 아닌데 나란 인간, 했다가 아니지, 마음에 들어오는 것들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초록이. 엄마는 소나무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데 양수리에 있는 집 근처 아빠가 심어둔 소나무를 제일 좋아하는듯. 며칠 전에는 절에서 이모들과 외할머니 제사를 간단하게 지냈다고 한다. 삼촌들 그러니까 큰삼촌 아내 아 외숙모는 기독교인인지라 외할머니 돌아가시고난 후에도 난 기독교인인지라 제사 못 지내, 지내고 싶으면 너희들이 지내, 라고 해서 큰이모와 이모들과 엄마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치를 떤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 많아. 그리고 예수님도 착했을 거야. 하고 말해보지만 그들 주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삶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통째로 기독교인들은 예외로 치게 되는. 물론 이런 각자의 케이스들은 많고. 외숙모가 외할머니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해서 외삼촌은 난리가 났고 그럼에도 외숙모는 내 종교가 더 중하다, 제사 지낼 거면 네가 지내라, 대신 나랑 이혼하고, 라고 강경하게 나와 외삼촌은 깨갱 했다는. 멋지구나 자신의 의지를 그렇게 관철시킨다는 것은, 하고 어린 마음에도 대단하게 여겼지만 그런 것과 무관하게 이모들과 엄마에게는 죽일 년, 되겠다. 하여 태어나서 이제까지 나는 외숙모 본 거 대여섯 번 정도 되는듯. 외삼촌은 엄청 자주 만났지만. 외할머니가 나 돌잔치 끝나고 바로 쓰러져서 돌아가셨다고 하니 예순도 채 안될 나이에 급사한 것. 만 55세. 그렇다면 나랑 별로 나이 차이도 나지 않을 때 갑자기 뇌에 있는 핏줄 터져 돌아가신 것. 맙소사. 여기에서 다시 한번 맙소사. 각자 사는 게 바빠 외할머니 제사 지내지 않다가 10년 전부터 절에서 제사 지내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모여서 아주 눈물 바람을 제대로 쏟아부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그 이야기 들려주면서 엄마 또 울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이 손녀딸 재혼 언제 한다고 이야기했어? 하니 눈물 뚝 그치고 응, 이야기 들었어. 해서 푸훕 속으로 웃고 이야기해봐, 했더니 그냥 내버려두래, 내버려두면 알아서 만나서 지지고 볶고 잘 산대, 그러니까 걱정할 거 하나도 없대, 라는 말을 듣고 아니 근데 엄마, 왜 엄마는 내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보살님이 말해야 들어? 이해가 안 가네, 했더니 몰라, 암튼 걱정할 거 하나도 없대, 라고 해서 그렇지, 똥차가 지나가면 벤츠가 오기 마련이지, 말하고나서 연초에 고모댁 갔을 때 사촌오빠가 똥차가 지나가면 더 심한 똥차가 온다더라, 그게 트렌드래, 라고 이야기해서 말똥말똥 곧 환갑 되는 오빠 얼굴 바라보면서 오빠는 내가 더한 똥차 만나서 마음고생 해서 콱 죽어버리면 좋겠어? 했더니 정색하고 왜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해, 그냥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뭐 하러 또 결혼을 해서 그 고생을 또 하냐, 이 말이지! 하고 버럭 해서 오빠 옆에 있는 언니 보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언니도 이혼해요, 그래서 자유롭게 살아요, 오빠는 돈도 많으니까 위자료도 잔뜩 받고, 했더니 언니 난감해서 하하하하 웃고 오빠 얼굴 더 시뻘개졌다.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다. 물론 자유롭게 룰루랄라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오빠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표현의 방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 마음을 그대로 그 입으로 담아 곱게 이야기하면 좋을 것을. 이럴 때 보면 우리 오라버니도 현침살 있나 싶기도 해. 그러니까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하면 꼭 그 이상으로 되갚음을 받는 법이야, 라는 말은 물론 입밖으로 하지 않고 속으로만 했다. 속으로만 하면 상대방이 모를 수 있으니 말할 게 있으면 말하자, 말하고난 후에 싸우면서 서로의 가치관을 아는 것도 상대방을 알아가는 한 방법 아닌가 싶긴 해. 가치관이 맞지 않아 서로가 양보가 되지 않으면 각자 안 보고 살면 그만이다. 내가 죽겠다, 너를 죽일 거다, 이렇게 강하게 뜻을 펼치지 말고. 죽음까지 불사하고 의지를 관철시키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밥 안 먹고 야외요가 했다는 이야기를 동생과 엄마에게 했더니 네가 청춘이냐? 40도가 육박하는 서울 하늘 땅바닥에서 무슨 야외요가냐 죽으려고 용을 쓰냐, 넌 나이 쉰이 되어서 왜 그러고 사는 거냐, 라는 잔소리를 어마무시하게 들었다. 책 왔다. 신났음. 읽던 두 권도 읽어야 하는데 계속 안 읽히네. 체홉이 삶에 대해서 하신 유명한 말씀 우연히 오늘 아침 온라인에서 마주쳤으니. 그러니까 내가 먼저 패대기치면 되는 거다. 쫄지 말고. 여기에서 선하고 악하고는 무관하다. 살아보니까 도덕성 유난스러운 인간들 있고 살아가면서 도덕성이 왜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인간들도 있더라. 또라이만 피하면 인생 땡큐, 라는 말이 왜 있는지는 또라이들 이빠이 만나고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거임.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람들을 못 만나본 것도 아니니까. 내 주변에 다 좋은 이들이라면 내가 또라이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보고 웃음보 터지기도 했다. 또라이들을 만나도 쫄지 말고 더 또라이처럼 굴면 그만이다. 이런 마음으로다가. 요즘 너무 이혼들 많이 하시네. 하지만 참고 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사촌동생이 아내랑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이혼하겠다고 지랄발광을 하다가 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법도 하더라. 물론 동생 아내분 이야기도 들어봐야 아는 거지만. 하여 기준점은 이런 식으로 해서 찾아가는 거 아닌가. 한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쪽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쌍방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아는 거니까. 아니 왜 갑자기 이렇게 이성적으로 말을 하는 거지. 나 같지 않게. 하여 쌍방 이야기를 들어보고난 후에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또 나름 변론할 수 있다면 그 변론도 들어보고난 후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달라질까? 인간은 쉬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전경린이 소설을 오랜만에 냈다고 해서 윙? 하고 놀랐다. 언니가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나 싶어서. 삶의 프레임을 꼭 드넓힐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프레임을 적당하게 잡고서 그 안에서 활개를 치며 사는 것도 나름 삶의 방법이긴 하니까. 전생에 다 내가 저질러놓은 업보 그대로 돌려받는 거라고 생각하면 또 잠깐 마음이 금세 풀리긴 한다. 다시 확 솟구쳐서 저주해버릴까 라는 악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저주가 듣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고 그런 거겠지 내가 무슨 마녀도 아니고 악한 짓 했는데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다가 모조리 용서해버리면 그건 또 어리석은 업보를 하나 더 쌓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드넓게 보자면야 한없이 하늘보다 바다보다 넓은 게 사람 마음이고 속 좁게 굴자면 빈대보다 더 작은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으니까. 여름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온몸이 시뻘겋게 익어서 서울 하늘 아래를 돌아다녀보니까 금세 에어컨 있는 곳 찾아서 헉헉대며 들어가더라. 그러니 여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절반은 거짓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딸아이가 전경린 책 30페이지 읽고 훌쩍거리는 거 보고 있노라니 신기하네. 내가 언니 책 처음 읽고 옴마나 했던 게 십대 후반이었나 이십대 초반이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만 55세에 외할머니가 자식들을 다 키웠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그 여름 쓰러져 숨이 스타카토로 끊어져 가는 와중에도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 싶긴 하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은 외할머니 사진을 꺼내 보았다. 돌잔치에 나를 안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낯선 얼굴을. 뭐 외할머니가 그리 말씀하셨다 하니 마음이 홀가분한 것도 있긴 하지만. 정희진 선생님 강연회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왜 그렇게 점 보러 다니시는 거냐고, 대체, 뭐 이런 식으로 따지는 식으로다가 젊은 여성이 물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더듬거리면서 아 마음이 시끄러워서 마음이 편해질려고 우물쭈물 대답하셨다. 뭐 저런 걸 따지고 들어, 저 가시나는, 하고 눈 흘겨 보았던 기억이 나는군. 덥다. 또 얼음물을 마셔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