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때 혼자 인도를 여행할 때 남자들이 따라다니며 '결혼했냐' '아이는 있냐' 같은 질문을 해댔다. '없다'고 답하자 곧바로 '그건 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신을 거스른 죄'라는 뜻 같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하늘을 거스른 죄인으로 내세에서도 성불하지 못한다는 뜻일 것이다. 인도에는 대리모 사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그들은 신의 뜻을 따르고 있는 셈일까?
또 하나, 아이 없는 여자가 종종 받는 비난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신기해서 "왜 낳았어?"라고 묻고 다닌 적이 있다. 그중 한번은 이렇게 질문을 해보았다.
"아이를 낳는 이기심과 낳지 않는 이기심 중 어느 쪽이 더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그야 당연히 낳는 쪽이지."
이 말에 친구들은 박장대소했다. 총명한 여성이었다.
아이는 여자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준다. 게다가 대체불가능한 절대적 신뢰를 보낸다. 고지마 게이코 씨가 엄마가 된 경험에 대해 '자신이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준다는 사실에 숙연해졌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그 '절대'를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일본 사회는 모성을 이렇게 치켜세우면서도, 엄마가 된 여자에게 패널티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육아를 즐길 수 없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불행한 엄마 밑에서 성장하는 건 아이에게도 불행한 일이라 단언할 수 있다. 일본의 엄마들이 행복해지면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도 늘어날까? (173-174)
[느리게 마이너노트로] 완독. 마음 가서 다시 읽고 싶은 페이지를 펼쳐서 읽다가 문득. 절대적인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에 있어서. 아이를 낳는 이기심과 낳지 않는 이기심 중 낳는 이기심이 압도적이다 그 말에도 동조. 분신. 아무것도 모르던 철모르던 십대가 되기도 전에 아래 여동생과 소꿉놀이를 했을 때 엄마딸 놀이를 했을 때 기억도. 정확하게는 나를 닮은 자식보다는 나의 분신에 대한 상상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자주 보냈던 걸 떠올리자면. 역시 아이를 낳는 쪽의 이기심이 압도적. 극강의 자기애에서 발현되었다고 봐야 할까. 아이를 낳아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보살핌을 받는 쪽은 이쪽이다. 아이가 제마음대로 혀를 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서부터. 아이와 가능하면 모든 것들을 나누려고 하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놀라운데, 라는 주변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놀라운 건 이쪽인데 그냥 무덤덤한 척 한다.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면 하나 더, 아니 둘 더 이런 식으로 다섯까지 낳았을 지도 모른다. 육아에는 젬병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복작거리며 살 수도 있었을 거 같다. 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아침 산책을 하면서 아들 다섯을 올망졸망 달고 다니는 엄마아빠를 보고는 기함을 할 뻔도 했다. 엄마의 자연유산과 유산을 통들어 그 아이들이 다 태어났더라면 나는 동생이 셋이 아니라 여섯이었다. 며칠 전 엄마와 빙수를 먹으면서 이왕 낳는 거 그냥 다 낳지 그랬어, 라고 했더니 갑자기 동생들 욕심은! 있는 애들이나 잘 챙겨. 라고 한소리 듣고 엄마 말씀이 진리. 사랑하는 내 동생들, 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로군. 더 이상 임신과 출산은 무리인 몸으로 주변에서 여러 이들과 이야기를 할 적마다 하나 더 낳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이라고 말하는 내 주둥이를 보면서 아니 미쳤나, 왜 이러지, 라는 말풍선도 동시에. 아이는 갖고 싶지만 책임지기는 두려워, 라는 어떤 대답을 들으면서 아 그런가, 그럴 수도. 책임을 진다, 그 마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느낀 점 두 가지. 내가 이토록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일 줄이야, 라는 자기비판을 모멸감 속에서 미친듯 해댔고_ 이건 아이와 의사소통을 나누기 전에 주로_ 내가 이토록 대단한 존재일 줄이야, 라는 극강의 자기애에 쪄들어 온몸 자체가 하트 형태로 이글거릴 때도. 모성애로 따지자면 자기 엄마 못지않게 만렙이군, 이게 니 바탕이야, 라는 말도 얼마 전에 듣긴 들었다. 그런 것도 사주에 나타나나, 으흠. 욕망의 결과 사주팔자의 흐름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건가.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아이를 낳건 낳지 않건 가능하면 욕망의 흐름대로 가는 편이 제일 자연스럽긴 하다. 그게 아닐 경우 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라면서 시간을 하염없이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 생각을 깊이 해도 비교적 삶의 성찰이 뛰어나다는 이들의 조언을 아무리 귀가 닳도록 들어봤자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방법은 없다. 그러니까 각자의 길이 존재하는 거겠지. 삶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건 아이를 갖기 전과 갖고난 후. 방금 전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엄마, 만일에 내가 엄마가 딱 꿈꾸는 그런 이상형의 딸이 아니라 무진장 말 안 듣고 엄마 말에 사사건건 토 달고 말썽 엄청 부리는 딸이었더라면 인생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어쨌다 이런 식의 말을 못했을 지도 몰라, 라고 했다. 음 정확한데. 애니웨이 또 인생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건 이혼을 하기 전과 하고난 후. 우리 엄마는 울타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옛날 여성답게 표현했다. 그것도 옳은 말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지 울타리 밖에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건 본인의 몫이고. 그 이후 달라지는 흐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직 진행중이니 그건 뭐다, 라고 확연히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이쯤이라면 아마도 그때쯤일 거다. 직접 뵌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이제까지 만난 이들 중에 안광만으로 아찔했던 이는 선생님이 유일했다. 직접 눈을 마주하면서도 이햐, 놀라운데, 라고 감탄했다. 일본어를 할 줄 몰라 안타까웠던 건 그때가 유일하다. 한국에 관련된 글 중 '한국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디스토피아아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문장.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디스토피아에 삶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군, 부끄럽게도, 라는 생각도 더불어. 노인이 될 준비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나이듦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아무래도 읽고 있는 자료의 팔할이 모두 시니어와 연관이 있는지라 이 책에서도 유독 관심이 가는 글 역시 후반부. 오랜만에 할배들 사이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신문을 펼쳤더니 돌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재이지만 머지 않아 더 끔찍할 결과가 예상되는지라 정부에서도 이래저래 대책을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으흠 한숨을 짧게 내쉬고 머리를 재빨리 굴린다. 정은문고에서 읽고픈 책이 출간되어 메모해놓았다. 지하철에서 옛 애인과 많이 닮은 사람을 만나 흠칫 놀랐다. 노안이 된 눈으로 안경을 콧잔등에 걸치고 저 녀석이 그때 내가 사랑했던 그 녀석인가, 하고 바라보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니었다. 20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도 할배와 할매들 천국이 될 것이다. 20년 후라면 나 역시 할매가 되어있을 테고. 갱년기 증상이 요즘 들어 가열차다. 몇 년 지나면 감쪽같이 다 사라질 테니까 그닥 걱정은 하지 않지만. 2년 전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인생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터라 전혀 관심을 지니고 있지 않았네. 죄스럽군. 죄스러운 마음에 할 수 있는 건 기껏 글을 찾아 읽는 것뿐. 맞아, 사촌오빠가 쉰일곱인데 지난 번 조카 결혼식에서 아니 그새 왜 할배가 되어버렸어? 당황스러워하니 너는 안 늙을 줄 알지? 좀만 기다려, 금방이다, 눈 깜짝할 새, 라고 했다. 그렇다면 눈 깜.짝.할.새 할 일을 후다다닥 해야겠구먼. 곤란하게도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욕망이 드글거리는. 다 이루지 못할 걸 앎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중생은 역시 곤란하군, 중얼거리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