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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김유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리뷰] 세상을 버리기로 한날 밤(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담출판사,2013)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기회를 잃지 마, 네가 결정하는 곳이 바로 네 세상의 경계란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SF형식을 빌어서 설명하고 있는 책, <세상을 버리기로 한날 밤>은 바르셀로나 출생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그리고 작가이기도 한 '알베르토 에스피노사'의 첫 번째 소설입니다.
책의 줄거리가 책 뒷편에 잘 요약되어 있지만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주인공 마르코스는 절망감 속에서 삶의 변화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덜기 위해 영원한 잠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약을 수령하고 이를 투여하기로 한 그 날 외계인이 나타났다는 보도가 터져나오고 급기야는 외계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마르코스는 생각지 못한 '새로움'을 접하게 되는데....."
약간의 네타와 섞어서 책의 줄거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세상을 버리기로 한날 밤>에 등장하는 초능력, 외계인으로 의심되어지는 '낯선자'(그의 정체를 알 수 없기에 언론은 그를 외계인으로 국가는 '낯선 자'라고 부릅니다.), 잠을 자지 않게 해주는 약,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행 등의 SF요소들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SF요소들이라면 전생, 삶과 죽음, 생의 기억들과 전승과 소실, 사랑과 이별 등의 요소는 이 책을 '색다른 SF소설'로 만들어주는 철학적인 요소들이라고 보여집니다.
"약을 맞으면 잠을 자지 않게 되고 자네 몸의 움직임도 원래 상태로 천천히 회복될 걸세,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그렇게 될 거라고 자네가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라네, 인생에서 모든 것이 다 그렇겠지만 무엇보다도 자네 머리가 먼저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지."(52)
"눈앞에 있는 문손잡이를 돌려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낯선 자를 만나보려고 하자 초능력이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132)
"우리는 죽으면 다른 별로 가게 돼요.... 죽을 때마다 당신은 좀 더 즐겁고 유쾌한 곳으로 향하게 돼요. 당신의 이전 삶과 관련이 있는게 아니라, 당신이완성해야 하는 집단과 관련이 있는 것예요."(252-263)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우리는 한목소리로 질문했다. 소년은 그 질문이 엄청난 실수이고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271)
친숙한 세계관(배경만으로는 시대를 갸늠하기 어려운 미래와 과거 그리고 현재가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조금은 어색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엉켜있다 풀어지는 스토리라인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책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 즉 절망으로 인해 이탈한 삶이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는 치유의 여정이라는 코드는 최근 유행하는 힐링 메시지와 복고적인 '사랑'에 닿아있기에 낯설음만이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원치 않는 이별, 바라지 않았던 능력들, 삶의 다양한 문제로 이뤄진 수많은 벽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현실의 삶 속의 짐을 어떻게 덜어내고 어떻게 안고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한다고 합니다. 책 속의 이야기를 빌려서 말하자면 작가가 말하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지금 '문손잡이를 돌려야'겠지요. 이 책이 여러분에게 삶의 비밀을 알려주지는 못하더라도 삶의 도움을 제공해주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당신이 지금 많은 생애들 중 하나, 그중 아래에 있는 힘들고 어려운 단계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마음이 한층 평안해지고 엄청난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