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喪服)을 입고 건(巾)을 뒤집어 쓴 채로 지팡이를 비스듬히 집고는 등을 돌린 채 걸어가는 이 인물은 저승길로 걸어가는 연담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한 화가가 <죽음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사실은 연담 이전에도 없고, 연담 이후에도 없는 오직 연담만이 보여준 그의 뛰어난 개성이다. 그 처연함이란 화면 속에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연담의 허허로운 임종을 엿보게 한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마치 유언을 남기듯 그림으로 그렸다는 소탈한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연담은 연담이로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그는 결코 한낱 환쟁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연담 김명국, 그는 죽음 앞에서 <죽음의 자화상>을 그린 인생의 달인(達人)이었고 그림의 신필이었던 것이다. - P51

김명국은 확실히 인조시대 화가로서 당대의 이단이었고, 기인이었다. 그는 무엇이든 취흥에 따라 그려낼 수 있는 탁월한 솜씨를 갖고 있었으나,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의 절묘한 작품을 보고 상찬해준 사람들이 없었고,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모습은 더욱 없었다. 오직 두 차례 일본에 갔을 때 그 영광을 누렸을 뿐이다.
그는 시류 속에 편안히 안주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낭만적 반항의 표정일지언정 자기 자신을 지켰다. 그 점에 연담의 큰 매력과 미덕이 있다. 바로그 점 때문에 연담은 훗날 17세기 조선시대 화단에서 가장 개성적인 작가로살아남게 되었다. 그것이 김명국의 영광이다. 세상이 바뀌고 반세기도 안되어 숱한 찬사 속에 그는 다시 태어난 셈이다.
결국 그의 삶과 예술은 시절을 잘못 만나 기인이 되고 만 한 신필의 자랑스런 반항의 이야기인 것이다. - P51

윤두서는 당당한 한 선비로서 정확하게 시대정신의 추이를 인식하고서 그것을 학문적으로, 예술적으로 실천한 한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끝내 받아주지 않았다. 그의 지인들은 공재를 가리켜 일국의 재상에 되고도 남을 높은 지식과 도덕의 크기를 갖고 있고, 그의 풍모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넓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관직에 나아가지 못했고 삶에 지친 그는 결국 고향 땅 해남으로 낙향해 불과 48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가 낙향하던 바로 그 해, 45세 때 그런<자화상>은 공재의 그러한 풍모와 고독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공재의 <자화상>은 얼굴만을 그리는 일종의 소조(小照)라 할 수 있는데, 상투 위와 수염 아래쪽은 모두 생략하고 얼굴만 부상시키는 구도가 파격적이고 박진감이 있다. 본래 이 <자화상>은 철선묘(鐵線描)로 풍만한 어깨선을 흐미하게 그려넣은 것이었는데 후대에 보수하는 과정에서 아예 지워져버렸으니 마치 허공에 떠오른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범의 상을 한 준수한 얼굴은 육색(肉色)에 윤기가 역력하며 정면을 응시하는 눈초리가 자못 삼엄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압도해버린다. 그의 눈빛에는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속에서 느꼈던 온갖 고뇌가 서려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그의 인생 역정이 이 작은 화폭에 완벽하게 담겨 있다.
그리하여 한국 회화사상 최초의 자화상인 이 그림은 우리나라 초상화 중최고 걸작으로 손꼽혀 회화로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었다. - P58

그러나 공재가 간접적으로 조선 후기 회화 전체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특히 속화는 그가 개척한 바를 관아재 조영석과 단원 김홍도가 계속 발전시켜 마침내 가장 조선적인 장르로 완성된다. 또 그가 시도한 문인화풍은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 등으로 이어져 마침내 조선적으로 정착되었다. 또 그가 시도한 동국진체(東國眞體)는 백하(白下) 윤순(尹淳)과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에 의해 완성을 보았다. 그런 미술사적 신경지의 선두에 공재 윤두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 P107

실제로 공재 글씨는 고전으로 거슬러올라가 거기에 우리 풍토에 맞는 향색(鄕色)을 가미한 글씨로서, 옥동과 함께 공재가 추구한 동국진체는 결국50년 뒤 그 후배인 백하 윤순과 원교 이광사에서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이점에서도 공재는 선구였던 것이다.

공재 윤두서는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의 후예라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시운을 얻지 못하여 평생 경륜을 펴보지 못한 불우한 선비였다. 그러나공재는 세월을 탓하지 않고 학문과 예술에 힘써 숙종 연간의 문화 기류 속에서 명백히 진보적 입장을 취하며 ‘실득(實得)‘ 있는 학문을 추구하고, 민족주의적인 ‘동국진체‘를 개발하고, 현실주의의 입장을 띤 ‘속화‘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진실로 불운하게도 공재는 학문과 예술이 원숙하게 무르익을4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것은 너무도 안타깝고 아까운 변고 - P111

였다. 그리하여 벗 옥중 이서는 다음과 같은 통곡의 제문을 바쳤다.

슬픈 일이로다. 하늘은 이 세상을 편안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인가? 어찌이다지도 빨리 공을 앗아갔단 말인가? 공의 인후하고 관대한 덕과 공평하고정직한 의지, 영민한 지혜와 폭 넓은 지식,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학문적·예술적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개척한 선구적 과제는 모두 뛰어난 후배들이 그대로 이어받아 학문에서 실학은성호 이익이, 글씨에서 동국진체는 백하 윤순이, 그림에서 속화는 관아재조영석이 마침내 하나의 장르로 완성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영조시대 문예부흥이라고 말하는 것의 모든 기틀은 사실상 숙종시대에 그 밑거름이 만들어진 것이라 말하는데, 공재 윤두서는 바로 그 문화를 일구어낸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공재의 선구적 위업, 그리고 천수를 다하지 못한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성호 이익이 눈물로 쓴 제문은 공재가 누구였는가를 이 세상에 가장 극명하게 증언한 글이었다. - P113

죽은 자는 유감이 없고 산 자는 더욱 힘써야 하는 법. 공은 진실로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생은 또한 일찍이 밖에 나아가서는 공의 풍채를 보며 즐거워하였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의 생각하는 바를 간직하였습니다.
말씀하시는 데는 사물의 이치를 갖추었고, 행동함에는 법도가 있었으니 선비로서 현자(賢者)를 희구하는 분이었습니다.
사람을 대함에 공손함과 관대함이 있어, 어진 이고 어리석은 이고 환영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사람과 잘 사귄 분이었습니다. 일에 임할 때는 민첩하면서도 중용을 지키셨고, 예술에서는 편벽됨이 없었습니다.
오호라! 공이 세상을 떠나니 좋은 벗을 잃은 외로움이 앞서고, 들어보기 힘든 얘기를 들어볼 곳도 없게 되었으며, 그 당당한 풍모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재능은 있었으나 명이 짧음은 하늘의 뜻이거늘 어찌 공이 의도한 바라 하겠 - P113

습니까. 혹 이를 애석하게 여기는 자가 있다면 그는 공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공은 그림 같은 한가한 일과 외도로 나간 재주
에서도 스스로 묘(妙)함을 얻었지만 혹 이것만으로 공을 찬탄하는 것은 공에게 누를 끼치는 것입니다.
오호라! 세상에서 공이 장부(丈夫)라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고? 이것이 더욱 슬플 뿐입니다.

공재 윤두서, 그는 진정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긴 당대의 선구적 지식인이자 예술인이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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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광호 교수는 연담 김명국의 <은사도(隱士圖)>라는 작품의 화제시를면밀히 분석한 결과, 이 그림은 어떤 은일자를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죽음을 그린 "죽음의 자화상"임을 밝혀내었다. 화제를 다시 새겨보면, 연담은 유언을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남겼다는 뜻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만드니 將無能作有
그림으로 모습을 그릴지언정 어찌 무슨 말을 전하랴畫貌宣傳言
세상엔 시인이 많고 많지만世上多騷客
누가 이미 흩어진 혼을 불러주리오誰招已散魂

연담이 이처럼 <죽음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사실은 너무도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나는 이러한 모든 지적과 가르침에 감사하며 책의 3쇄를 출판하기에 앞서 세밀한 교열을 다시 보아 여러 곳의 미세한 오류를 바로 잡았다. 이미책을 구입한 독자들을 위하여 정오표를 만들었으나 전달할 길이 없는 것이 죄스럽기만 하다.
앞으로도 오류가 발견되면 곧바로 수정할 것을 약속드리며 강호제현들의유익한 가르침을 기다리겠다.

2001년 5월 15일
유홍준 - P-1

활달한 필치로 아무 거리낌없이 북북 그어내린 몇 가닥 선으로 달마대사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얼굴을 묘사하는 데서도 담묵(淡墨)의 속필(速筆)로 그의 이국적 풍모와 깊은 정신 세계를 인상 깊게 드러내주고 있다. 그야말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붓이 가는 대로 내맡기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동양화에서 말하는 운필(運筆)의 힘과 선의 함축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실감할 수 있으며, 도대체 그가 이그림을 완성하는 데 과연 몇 분이나 걸렸을까 생각할 정도로 일필휘지의 속도감을 엿보게 된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작품을 가리켜 신품(神品)이라 했고, 그런 화가를 신필이라 했다. 연담 김명국은 조선시대 화가 중에서 신필로 추앙받은첫번째 화가이다. 김명국 이전에도 안견, 강희안, 이상좌, 김지 같은 수많은대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신필이라는 평을 듣지 못했다. 신필이란 천재성과 기존의 격식을 뛰어넘는 기격(奇格)이 뒷받침되어야 붙여지는 칭호이다. 김명국 이후에도 정선, 김홍도 등 기라성 같은 화가들이 줄을 이었지만 이들은 대가(大家)·거장(巨匠)이라는 칭호를 받았어도 신필이라 불리지는 않았다. 오직 후대의 오원 장승업만이 신필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뿐이다. 그러니 김명국은 조선시대 두 명의 신필 중 첫번째 화가인 셈이다. - P15

김명국은 그림의 귀신이다. 그 화법은 앞시대 사람의 자취를 밟으며 따른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주어진 법도 밖으로 뛰쳐나갔으니, 포치(布置)와 화법 어느 것 하나 천기(天機)가 아닌 것이 없었다.
비유컨대 허공으로 하늘나라의 꽃이 날리듯 눈부시고 황홀하여 형상을 잡아내기 힘들고, 바다에서 용이 일어나듯 변화를 헤아리기 어려우며
무궁함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
작으면 작을수록 더욱 오묘하고, 크면 클수록 더욱 기발하여 그림에 살이 있으면서도 뼈가 있고, 형상을 그리면서도 의취(畵意)까지 그려냈다. 그 역량이 이미 웅대한데 스케일 또한 넓으니, 그가 별격의 일가(一家)를 이룬즉, 김명국 앞에도 없고 김명국 뒤에도 없는 오직 김명국 한 사람만이 있을 따름이다.

김명국의 예술적 천재성에 대한 남태응의 이 같은 찬사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와 완암(浣巖) 정내교(鄭來僑, 1681~1757)가 연담을 평한 글에서도 그대로 만나게 된다.) - P16

김명국이 그림 그리는 데 술버릇이 어떻게 작용했느냐는 것은 한낱 재미있는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술이 창작의 촉매제였건 아니였건, 그 취하는 정도에 따라 걸작과 태작이 섞여 나왔다는 것은 자신의 작품 관리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오만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천재성은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기인으로 더 유명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태응은 이것을 꼭 김명국의 작가적 결함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김명국이 한낱 ‘환쟁이‘일 뿐이라는 신분적 제약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그를 두둔했다. 남태응은 「청화사」에서 공재 윤두서를 아주 높게 평가한 다음, 세상 사람들이 공재 윤두서가 연담 김명국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공박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공재의 재주가 연담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담은 천한 신분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아낄 수 없었던 것이다. 남이소매를 끌고 가면 어쩔 수 없이 손에 이끌려 하루에도 수십 폭을 그려야 했으니, 그 득실이 서로 섞이고 잘되고 못 된 것이 나란히 나와 공재처럼 절묘하게된 것만을 단단히 골라낼 수 없었다.
만약 연담으로 하여금 그 처지를 공재와 같은 위치에 두게 했다면 이름을 얻은 그 성대함이나 작품의 귀함이 어찌 공재만 못하겠는가. 그러니 이런 식으로그림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진실로 어린애나 가질 소견인 것이다.
- P24

그러나 김명국의 예술적 천재성에 대한 이러한 찬사나 증언들은 모두 한두 세대 건너 후대인의 저술들이고,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사실은없다. 이 점은 참으로 이상스러운 일이다. 사실 김명국의 예술을 높이 평가한 남태응과 윤두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태어난 숙종 · 영조 때 문인이었으며, 김명국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뜨거운 애정으로 그의 전기를 쓴정내교는 그들보다 또 한 세대 뒤의 문인이었다. 그러니까 김명국의 예술은동시대가 아니라 반세기 뒤에서야 기록되고 재평가받은 셈이다. 동시대인에게는 하나의 기인으로, 또는 미치광이로 생각되었던 그의 개성적인 필치와기발한 행동이 후대 사람들에게는 그 기행(奇行)과 광태(狂態)가 곧 세상이받아주지 않는 천재성의 굴절로 이해되고 평가되었다는 셈이다.
김명국의 전기로 가장 먼저 씌어졌고, 또 이후에 나오는 모든 그에 대한전기의 모본이 된 정내교의 「화사 김명국전」을 보면 이런 얘기로 끝맺고 있다.  - P28

내 나이 15, 16세 되었을 때(1699년 무렵) 어느 지체 있는 집에서 소위 그의제자라고 하는 자를 만나서 연담의 얘기를 대략 들었으며, 또 동네의 늙은이에게서 ‘지옥도‘ 일화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유묵을 보니 넓고 기이하고 탁월하게 빼어나서 그 사람됨을 상상할 수 있었다. - P29

궁실에서는 인조뿐만 아니라 왕자들도 그림을 좋아했다. 봉림대군(효종)이 심양에 끌려가 있을 때 맹영광에게 구천(句踐, ?~B.C.465: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왕)이 회계오나라에게 욕보인 그림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그림 자체보다 그 내용에 더 뜻이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지만, 인평대군은 산수를 잘 그려 이름이 높았고, 그가 한양 낙산 동쪽에 저택을 짓고서 이징에게 단청을 시공하고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게 하여 이징은 수모의 눈물을 흘리며 붓을 잡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인평대군의 남다른 회화 완상 취미를 말해준다. 
사대부의 그림에 대한 취미와 감상 풍조 또한 이전의 어느 시대 못지 않았다. 대신들이 인조의 그림 취미를 공박한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사대부들의 그림에 대한 천기 사상이 얼마나 완고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사대부 중에는 그림에 일가를 이룬 화인이 많았다. 까치와산수를 잘 그린 조속(趙涑)을 비롯하여 포도의 이계호(李繼祜), 매화의 오달제(吳達濟), 소 그림의 김식(金植), 산수의 윤의립(尹毅立), 송민고(宋民古)와 조직(趙稷) 등이 화명을 남긴 이들이다. 특히 선조 · 인조 연간에는 명나라 풍습에 따라 사대부가 어느 한 소재에 특출한 솜씨를 보인다는 이른바 명사(名士) 일기가 문인으로서 하나의 멋이고 교양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 그래서 조속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현종실록』에는 그의 행장을 기록하면서 신하로서의 모습과 함께 "그의 그림이 절묘하여 세상에 많이 전하고있다"는 것을 적어놓고 있다. 
사대부 중에서 김상헌(金尙憲)과 허목(許穆)은 당대의 감식안으로 많은 화평을 남기고 있다. 이들의 회화에 대한 견식은 우리나라 화가뿐만 아니라송나라의 유송년, 명나라의 구영(仇英), 당인(唐寅), 문징명(文徵明) - P31

등의 작품에 찬을 붙일 정도로 넓었다.
게다가 낭선군(郎善君) 이우(李俁, 1637~1693) 같은 대안목의 수장가도 있었다. 그가 소장한 화첩에는 공민왕의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와 안견의<산수도>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20)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화원별집(別集)』의 80여 점은 본래 낭선군의 수장품을 기본으로하여 꾸며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안목이었다.  (이 『화원별집』에는 연담의 그림이 3점 실려 있다. 도판) 참조)
또 도화서 화원 중에서는 이징과 김명국 이외에 선조 때부터 활약한 이신흠, 유성업, 이기룡, 한시각 등이 궁중과 사대부 취미에 맞는 감상화를 잘그려 화명을 남기고 있다.
이렇듯 어느 면으로 봐도 인조시대의 화단은 결코 빈약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예술적 환경 속에서 김명국은 화가로서 활동했던 것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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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새벽에 생각하다』 『지독히 다행한』 『몇차례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무사하였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청마문학상, 만해문예대상 등을수상했다. - P-1

시를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말하지 않은 말, 침묵의 말을 듣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말하지 않은 말을 듣는 능력이 있다. 시의 침묵과 여백과 행간에는 말하지 않은 말, 말이 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말, 말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반죽 상태로 있는 말, 자극을 받으면 깨어날 수 있는 말이 풍부하다. 우리의 내면에도 그런 말들이 있다. 시를 읽으면서 깊이 공감할 때 그 시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시 속의 말과 내 안의 말이 서로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나의 말을 꺼내준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말이 시가 되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60년간 농축된 시인의 삶과 시적 고뇌와 희열이 짧은 시의 침묵과 여백 속에 어떤 모습으로 쟁여져 있을까. 어떻게 그 말들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움직이게 할까.
짧은 시 안으로 들어가 말하지 않은 말을 엿들어보니 왜 이 시선집이 짧은 시들로 묶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문장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얼마나 풍부한지, 읽으면 읽을수록 짧은 시가 어떻게 큰 시가 되는지 체험하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천양희의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시선집은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 같은 경험을 주는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ㅡ김기택 시인, 발문‘에서 - P-1

ㅣ시인의 말


일상에서 일생까지
울음에서 웃음까지
슬픔에서 기쁨까지
머리에서 가슴까지
먼 길 돌아와

자연이
새봄을 펼쳐 보이듯 참으로
한 순간을 눈부시게 하는 것이
짧은 시였으면 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짧은 시에 겹친다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쓰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눈물을 보탠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 P-1

나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은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짧지만 긴 여운을 보내는 것이다

2025년 여름
천양희 - P-1




올라갈 길이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
더 넓은 들 - P-1

뒤편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P-1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일초에 아흔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칠십만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 P-1

머금다


거위눈별 물기 머금으니 비 오겠다
충동벌새 꿀 머금으니 꽃가루 옮기겠다
그늘나비 그늘 머금으니 어두워지겠다
구름비나무 비구름 머금으니 장마 지겠다
청미래덩굴 서리 머금으니 붉은 열매 열겠다

사랑을 머금은 자
이 봄, 몸이 마르겠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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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져, 나름의 삶의 방식-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을 찾도록 선고받은 불행한 동물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진다.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는 그 어떤 생명보다도 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때로 나무나 꽃을 질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에 절망하게 되면, 뿌리를 박고자라 꽃 피고 햇빛 아래서 시드는 식물처럼 완벽한 무의식 속에살고 싶어진다. 대지의 생산 활동에 참가하고 싶어지고, 흘러가는 생명 속에 이름 없는 표현이 되고 싶어진다. 내 존재를 식물의 존재와 맞바꾸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 P120

이상을 품고 역사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 현실에 내가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 중대한 사실이다! 비극적 사실이다. 인간은 자연 질서보다 훨씬 복잡하고 극적인,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 질서 속에 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멀어질수록 존재의 극적 밀도가 약해진다. 인간은 비극과 고통의 독점권을 제멋대로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이란 까다롭고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현상의 경험을 끝까지 밀고 가보았으니까. 깊이 있게 그 경험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만이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들은 아직도 인간이 되기를 지향한다. 그 이끌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의 단계를 겨우 벗어난 사람들이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것은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인간만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한다. 만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매일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 될 것이다. 번갈아가며 온갖 종류의 꽃들, 장미, 가시나무, 잡풀, 가지 - P121

가 뒤틀린 열대 나무, 파도에 떠다니는 해초 아니면 산에서 자라 바람 따라 흔들리는 식물이 되겠다.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나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포식 동물, 철새나 텃새, 숲에 사는 야생 짐승이나 가축이 되고 싶다. 의식이 없는 야생 에너지의 모든 유형을 경험하고 싶다. 자연 영역 전체를 편력하고 싶고, 꾸밈없이 천진난만하게 자연의 과정을 따르고 싶다. 새 둥지, 동굴, 인적 없는 산악지대, 바다, 언덕, 평원 속에서 얼마나 많은 모험을 할 수있을 것인가! 무궁무진한 생명의 형태와 식물의 생동감을 경험하는 우주적 도피는 다시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을 일깨워줄 수 있을 것이다. 동물과 인간은 서로 다르다. 동물은 동물 이외의 것이 될 수 없지만, 인간은 비인간, 다시 말해서 인간 이외의 것이될 수 있다. 거기에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비인간이다. - P122

순간을 온전하게 체험하고 그 매력에 빠져 들어가는 것, 이는시간을 무효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물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느끼는, 영원한 현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시간과 생성, 이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 영원한 현재는 실존이다. 영원한 현재를 경험하면서 실존은 자명해지고 확실해진다. 순간의 연속에서 떨어져 나온 현재는 없음을 벗어나 존재를 생산한다. 순간의 기쁨 그리고 사물의 온전한 있음이 주는 매력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 순간 속에 살 수 있고, 현재를 빈틈없이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사랑은 절대 순간에 도달하게 한다.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은 슬 - P155

픔과 번민으로 방해받게 될 뿐 아니라 시간성을 극복하지 못하게된다. 우리 모두의 적인 시간, 그 시간에 전쟁을 선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 P156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허용되고,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선택한 길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다른 길보다 가치 있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인가 실현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이하나이다. 마치 소리를 지르거나 침묵하는 것이 결국 마찬가지이듯. 모든 것에 정당한 논리가 있을 수 있고, 어떤 논리도 없을수 있다. 모든 것이 현실적이며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며 동시에 비논리적이고, 화려하며 동시에 시시하다. 어떤 것이다른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없으며, 어떤 생각이 다른 생각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왜 당신은 자신의 슬픔을 슬퍼하고, 기쁨을 기 - P206

뻐하는가? 우리의 눈물이 쾌락에서 오든 고통에서 오든 무슨 상관인가? 당신의 불행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혐오하라. 모든것을 뒤섞고, 모든 것을 휘저어라. 바람에 흔들리는 눈송이가 되고, 파도에 흔들리는 꽃이 되라. 저항할 필요가 없을 때 저항하고, 저항해야 할 때 비겁해져라. 누가 알겠는가-당신이 이길는지. 당신이 진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세상에서 얻을 것이나잃을 것이 있겠는가? 얻는 것이 잃는 것이고, 잃는 것이 곧 얻는것이다. 왜 항상 분명한 태도와 명백한 사고, 사리에 맞는 말들만기대하는가? 내게 했던-한 적이 없었던-모든 질문들에 대한대답으로 불을 뿜어내야 한다고 느낀다. - P207

사람은 행복에 근접할수록 그만큼 아름다움에 민감해진다. 아름다움 속에서는 모든 것이 나름의 존재 이유와 균형 그리고 정당성을 갖는다. 아름다운 대상은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나 경치를 바라볼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외에는 다른 상상을 하지 못하고 몰입한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이 있어야 할 그대로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찬란하기만 하고 조화롭기만 하며,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그 매력과 광채를 강조하기만 할 뿐이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행복에 가까이 가도록 한다. 모순된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객관적 관점에 - P211

서만 본다면 아름다움은-이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매력이자 특성인데-하나의 역설을 제시한다. 즉 미적 현상 속에서는 ‘형상를 통하여 절대‘가 구현되고, 유한한 형상을 통하여 무한성이 구현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미적 감흥을 느끼는 사람만이 형상으로 구현된 유한한 표현으로 구체화된 절대성을간파할 수 있다. 미적 이외의 시각에서 유한한 형태로 표현된 절대성이란 ‘언어 형용 차원의 모순‘이다. 그러므로 모든 미적 이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상이 내재되어 있다. 심각한 것은 미적 이상의 기본 전제, 즉 세상이 마땅히 그래야 할 상태에 있다는것이 지극히 간단한 분석에서도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세상은 지금 상태만 제외하고, 어떻게든 다른 모습이 되었어야 했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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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소고


어떤 문제들은 일단 깊이 생각하고 나면 삶 속에서 우리를 격리시키고, 우리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때에는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어진다. 정신적 모험이나 다양한 삶을 향한 막연한 정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 느끼는 유혹들은 감수성이 풍부해서 느끼는 것뿐이다. 거기에는 현기증 나는 존재론적 질문을 해보았던 사람들이 특징적으로 갖고 있는 진지함이라고는 없다. 그것은 흔히 진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표피적인 심각함을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격한 광기로 언제든 자신의 삶을 영원의 맥락 속에서 성찰하는 긴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 P38

역사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순간순간 강렬하게 체험하여 그 흐름 자체가 사라지는 때다. 순전히 형식적인 문제들은 아무리 어려운 것일지라도 끝없이 진지할 필요가 없다. 그 문제들은 우리 존재의 심층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성이 불확실해서 생기는것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유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이란 헛된 사변이 아니라, 생생한 내적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그무엇이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만이 진지할 수 있다. 삶의 안정이 깨어졌기 때문에 생각에 잠기는 사람은, 생각하는 기쁨만으로지성을 가동시키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피와 살의 자취를 품고 있는 사고를 원한다. 공허한 추상적 사고보다는 육체적 격정이나 신경의 파탄에서 오는 성찰을 백배 더 원한다. 피상적인 지적 유희의 시간은 지나갔다는 것, 절망의 외침이 치밀한논리보다 훨씬 더 진실하다는 것, 눈물의 뿌리가 미소보다 더 깊다는 것을 사람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생생한 진실만이 갖고 있는 가치를 왜 우리는 거부하고 있는가?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이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마 - P39

지막 고통이라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죽음의 기분이나 고통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들의 삶은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흘러간다. 삶과 죽음을 별개로 생각하고, 죽음을 삶을 벗어난 현실로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음을 존재에 내재한 숙명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침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크게 착각하고 있는 중대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삶이 죽음의 포로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표면적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본능적 순진무구함이 깊은 번민으로 변하는 순간에 형이상학적 발견이 시작된다.
삶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때 죽음을 의식하게 된다는 사실은 삶에 죽음이 내재한다는 것을 자명하게 보여준다. 죽음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생명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환상에 불과한 것이며, 삶의 저주스러운 측면이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가 알 수 있다.
죽음이 삶에 내재한다면, 죽음에 대한 의식은 왜 우리를 살 수 - P40

없게 만드는가? 평범한 사람의 생활은 죽음을 의식하더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죽음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생명력이 약해지는 것으로 간단히 시작된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에게는 마지막 순간의 고통만 있을 뿐 죽어가는 고통이란 없다. 살면서 떼어놓는 발자국 하나하나는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하여 떼어 놓는 발자국이며, 추억이란 허무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은 형이상학적 감각이 없으므로, 피할 수 없는 죽음 속으로 서서히 진입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삶의 의식에서 벗어나 죽음을 발견하면서 받는 강한 충격은 순진한 믿음, 환희를 향한 충동, 본능적 쾌락, 이 모두를 파괴한다. 죽음에 대한 의식에는 더할 나위없는 피폐함이 있다. 그때에는 삶에 대한 순진한 시적 감흥이나 매력뿐 아니라 목적론적 가설이나 종교적 환상들까지 알맹이 없는 텅 빈 껍질로 드러나게 된다.
삶이 긴 죽음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을 천진난만함의 틀에서 떼어내어 그 무가치함과 무의미함을 폭로하고, 삶 자체의 부조리한 본질로 다가가는 것이다. 죽음이 퍼져나가 나무를 쓰러트리고, 꿈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꽃도 문 - P41

명도 시들게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당신은 눈물과 회한 너머, 모든 형상이나 체계 너머에 도달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목이 졸리고 질식하며 소름끼치는 환각을 겪는, 피가 분출하는 듯한 불가항력으로 나를 둘러싸는 그 무서운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삶의 저주받은 성격도,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내적 혼란도 알지 못한다. 그 우울한 흥분 상태를 통해서만 왜그렇게 간절히 세상의 종말을 바라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천국의 환영에 빠진 우리의 생명력이 비물질로 승화되고 순수성의 영역을 향해 올라가는 빛나는 도취가 결코 아니다. 죽음이 뱀 눈과 같은 마력을 발산하며 등장하는 위험하고파괴적이며 비정상적인 도취이다. 그러한 감각이 현실의 본질을보게 만든다. 삶과 죽음에 대한 환상을 사라지게 한다. 죽음의고통이 삶과 죽음을 뒤섞는다. 사는 것은 죽어가는 고통의 연장이고 죽음을 향한 길이라는 것은 존재의 저주받을 변증법, 즉 파괴로부터 새로운 형태가 잉태된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생명의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은 실제 나아지는 것도 없이 형태와 내용을 파괴하고, 낡은 것을 새것으로 대체하려는 그 무분별한 에 - P42

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상대성을 파헤치려 하지 않고, 생성법칙에 자신을 내맡기고 순간순간의 가능성을 맛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천진난만함이야말로 유일한 구원이다. 그러나 삶을 긴 죽음의 고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제는 하나의 질문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병이 들거나 우울할 때 죽음이 삶에 내재해 있음을 발견한다. 비록 삶에 내재한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있지만, 그것은 그저 우연하게 개인적으로 일어난 것이며,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
병이 철학적 임무를 띠고 있다면, 아마도 삶이 영원하다든가삶에 목적이 있다든가 하는 명제들이 얼마나 허망한 환상인가를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병은 항상 죽음을 의식하게 한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젊은이들은 죽음을 마치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양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단 병으로 충격을 받고 나면 젊은이다운 모든 환상을 잃는다. 진정한 경험이란 오로지 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나머지 경험들은 모 - P43

두 간접적이다. 신체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면 경험은 오직 암시로 이루어지며 상상을 통해서 복잡해진다. 육체적 고통을 받는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진지해질 수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절망과 죽음의 고통에서 나오는 형이상학적 깨달음보다는 천진난만한 사랑이나 즐거운 무의식을 선택할 것이다.
모든 병은 영웅적이다ㅡ정복이 아니라, 잃어버린 삶을 유지하려는 의지로 나타나는 영웅적 저항이다. 병으로 타격을 받은 사람들이나 우울증이 체질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삶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일부 우울증 환자들에게 보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일반 심리학으로 깊이 있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이 활기로 넘치다가도 죽음에 대한 공포, 아니 적어도 죽음으로 제기되는 문제에 부딪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울한 상태의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그 상태에서는 세상과 나 사이에 단절이 깊어지면서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존재에 내재한 죽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는 핵을 둘러싼, 사회가 만들어 놓은 바깥 껍질들을 하나하나 뚫고 들어가는 내면화과정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절정에 이르러 일단 핵 속 - P44

에 들어가고 나면 삶과 죽음이 서로 떨어질 수 없이 공존하는 영역을 만나게 된다.
우울증과 죽음에 대한 의식이 공명하면 평온이나 안정이 영원히 사라진다. 그리고 불안이 끝없이 이어진다.
삶의 구조 자체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의 구성 속에없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죽음을 없음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삶을 삶의 부정이라는 원칙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곧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음은 ‘없음‘이 결국 삶을누르고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없음을 향하는 도정을 현재화한다.
삶ㅡ특히 인간의 삶ㅡ이라는 크나큰 비극의 귀착점은 삶이 영원하다는 믿음이 얼마나 헛된 환상인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영원을 순진하게 믿는 것만이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위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모든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귀결된다. 공포에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본질적 현실 앞에서 나타나는 반응의 여러 양상일 뿐이다. 개인의 불안들은 모 - P45

두 숨겨진 교감에 의해 본질적으로 공포심과 연결되어 있다. 인위적 이성 작용을 통하여 거기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잘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추상적인 구축물을 통하여 신체적 불안을 없앤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제를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불멸의 종교를 추종하게 하는 것도 바로 그 두려움이다. 인간은ㅡ확신이 없을지라도ㅡ 자신이 살고 있고 기여하고 있는 가치의 세계를 구원하려고 고된 노력을 기울인다. 시간적 차원의허무를 극복하고 영원한 보편성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종교적 믿음을 제외한다면, 세상에서 죽음을 피하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추상적인 형식과 범주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주장하는 보편성은 돌이킬 수 없는 소멸 과정 앞에서 환상이 되고 만다. 어떤 이성적 형식이나 범주로도 존재의 근본 구조를 파악할 수 없으며,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상주의나 이성주의가 죽음 앞에 내밀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개념이나 교리도 죽음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거의 - P46

없다. 죽음에 대해 유일하게 적절한 태도라면 침묵하거나 절망을 외치는 것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은 없는 것이고, 일단 죽게 되면 나는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그들은 천천히 죽어가는 고통이라는 그 기이한현상을 잊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죽음을 억지로 구분한다 해서, 죽음을 현실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겠는가? 돌이킬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치밀한 논리나 논증이 무슨 의미가있겠는가? 실존의 문제를 논리의 각도에서 고찰하려는 일체의시도는 실패하게 마련이다. 철학자들은 너무 오만해서 죽음에대한 공포심을 고백하지 않으며, 너무 건방져서 병이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을 성찰하면서평온을 위장한다. 그러나 실상 가장 공포에 질려 있는 것은 그들이다. 철학이란 번민과 괴로움을 위장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죽음의 고통을 의식하고 느낄 때 따르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절 - P47

박한 감정은 우리가 죽음이라는 현상을 결코 사랑이나 호감을 갖고 맞을 수 없게 한다. 거기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섞인 체념밖에없는 것이다. 죽는 방법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떤 규칙도 어떤 테크닉도 없다. 각 개인마다 무한한 신체적 고통과 긴장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 속에 각인된 죽음의 돌이킬 수 없는 성질을경험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 속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죽음의 고통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없음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맞이하는 고통만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 마지막 고통이 존재에 대한 중대한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죽음을 의식하는 느린 고통의 의미를 알려 하지 않고,
최종 순간에 모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은 별로 대단한 것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채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죽음의 고통이 시간 속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은 시간이라는 것이 창조의 조건일 뿐 아니라, 죽는다는 극적 현상의 조건이기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탄생과 죽음, 창조와 파괴에 똑같이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 순환 속에서 양자를 수렴하여 - P48

초월할 어떤 가능성도 보여주지 않는 시간성의 저주와 다시 부딪힌다.
시간의 저주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절박한 감정을 부추기고, 우리의 가장 내밀한 정신적 성향들을 강압적으로 억누른다. 쓰디쓴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믿는 것, 숙명에 복종하는 것, 시간이항상 파괴라는 비극적 과정을 시작하려고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아는 것-자, 이것이 바로 실존의 냉혹한 표현들이다. 그렇다면없음이 구원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어떤 구원이 가능하겠는가? 존재 속에서 거의 불가능한 구원이 어떻게 존재 밖에서 이루어지겠는가?
존재 속에도, 없음 속에도 구원이 없으니, 세상과 그 영원한 법칙은 사라져버리기!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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