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와 덴마크 왕자 햄릿은 저주받은 운명에 좌절했던비극적 영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운명의 신탁(神託)을 받고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길을 떠나지만,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이미 신탁이 실현된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결국 그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테베를 떠나는 것뿐이었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햄릿에게도 현실은 가혹했다. 꿈에 부왕(王)이나타나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가 자신을 독살했다고 알려 주면서 햄릿의 운명은 급격히 비극 속으로 빨려든다. 연인 오필리아의 부친을 신왕(王) 숙부로 오인해 살해하는 바람에 사랑하는 오필리아는 미쳐 죽고 만다. 수많은번민 끝에 숙부를 죽여 복수에는 성공하지만, 어머니와 자신까지 죽게 되는비극이 그가 선택한 운명이었다.
그런데 비극의 질로 따지든 양으로 따지든 정조는 이런 비극의 주인공들에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오이디푸스와 햄릿은 전설상의 인물에 불과하지만 정조는 실존인물이었다. 호메로스는 아들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의 어머니는 목매어 자살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죽을 때까지 테베를통치했다고 전하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비극적 영웅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각색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햄릿도 - P6

셰익스피어의 각색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조에게는 소포클레스도, 셰익스피어도 필요 없었다. 그의 생애가 비극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뒤주에 갇히던 날, 열한 살의 어린세손(世孫)은 할아버지에게 "아비를 살려 주옵소서"라고 빌었으나 냉혹한정치 현실 속에서 어린 손자의 애원은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손자가 있었기에 할아버지는 아들을 죽일 수 있었다. 자신이 없었다면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정조는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깨달았다. 더구나 모친까지도 그 죽음에 관계되어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있었기에 할아버지 영조는 ‘삼종(三宗: 효종 • 현종. 숙종)의 혈맥(血)‘인 아버지 사도세자를 버릴 수 있었으며, 모친 또한마찬가지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음력 윤5월 좁은 뒤주 속에서 여드레 동안이나 신음하던 아버지가 숨을 거둔 순간, 비극은 고스란히 정조의 운명이 되었다. - P7


그러나 정조는 비극적 운명이 자신과 사도세자만의 것이 아니란 사실을깨닫는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피 묻은 적삼이여 피 묻은 적삼이여"라는 ‘금등지사(詞)‘는 할아버지 영조도 저주받은 신탁의 주인공임을 일러 주고 있었다. 아들을 버린 영조가 손자만은 끝내 보호한것이 이를 말해 주었다. 그래서 정조는 햄릿처럼 미친 체하지도 않았고,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지도 않았다. 오이디푸스처럼 왕국 테베를 버리지도않았다. 그는 자신과 왕실에 내려진 저주스런 신탁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다시는 이 왕국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P7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즉위한 정조 앞에는 두 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그가 단 하루도 잊지 않았던 영조 38년(1762) 윤5월 21일,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신음하다 훙서(한 그날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것은대리청정하던 저군(君: 세자)을 죽인 세력들을 향한 복수의 길이었다. 그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이 할아버지 영조였다. 그 길에서는 오이디푸스가 죽인 생부 라이어스나, 햄릿이 숙부로 오인해 죽인 연인 오필리아의 부친 폴로니어스 같은 인물도 만나야 했다. 그리고 복수에 성공했으나 그 자신도 죽고 마는 햄릿의 운명을 따르게 될 수도 있었다. 하긴 햄릿을 빌려 올 필요가 있겠는가. 모친 윤씨를 비명에 잃은 연산군이 그랬고, 모친 장씨를 비명에 잃은 경종이 이미 그랬지 않은가.
정조는 그런 과거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즉위 일성으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자신이 저주받은 운명의 주인공이라는사실을 명백히 밝혔으나, 그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는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며, 현실이 응축된 미래라는 사실을수없이 탐독했던 역사서 속에서 깨달았다. 현실이 과거에 지배받을 때 미래는 불행해짐을 그가 본 역사서들은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런 과거를 가슴에 묻고 또 다른 길, 미래로 나아갔다. 그것은 굴복도 회피도 아니었다. 자신과 왕실, 그리고 조선의 저주받은 운명과 맞서 싸우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미래를 택했다고 하여 어찌 과거가 온전히 잊힐 수 있겠는가. 다른집안도 아닌 왕가, 그것도 손이 귀한 삼종의 혈맥이 뒤주에 갇혀 죽어야 했던 과거가 어찌 잊힐 수 있겠는가. 병석에서 "두통이 많이 있을 때는 등 쪽에 - P8

서도 열기가 많이 올라오니 이는 다 가슴의 화기(氣)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던 가슴속 분노는 소멸될 수 없었다. 그 화기는 햄릿에게 나타났던 부친의 유령보다 훨씬 더 강한 목소리로 과거로 돌아가자고 속삭였지만 정조는 거부했다. 그 길은 증오의 길이자 자신은 물론 선조의 혼이 서린 이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조는 가슴속의 증오와 분노, 화기에 맞서 싸웠다. 가슴속의 갈등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조금의 여유와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세손시절 그는 시강원의 스승인 빈객에게 준 글에서 "나는 천하만사가 모두 하나의 ‘나 게으름)‘자로부터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그렇게그는 단 한순간의 나태도 용납하지 않으며 자신을 다그쳤다. 그렇게 그는정심(正心)을 추구했다.
「대학(大學)』의 정심(正心)은 마음에 노(怒)함이 있으면 얻을 수 없는 수양 단계이기 때문에, 그는 매일같이 정심을 되뇌는 것으로 분노와 증오를 다스려야 했다. 그 과정이 그를 철인(哲人)으로 만들었다. 가슴속의 분노와증오, 그리고 부친의 원수들과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고통을 정심으로 극복했던 것이다. 활을 쏘며 그는 "정심을 하지 못하면 과녁을 맞히지 못한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과녁을 맞힐 때는 정심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학문과 정사와 활쏘기가 모두 하나였다. 그렇게 그는철인
정치가가 되어 갔다.

정조는 미래를 향해 고통스런 걸음을 옮겼다. 그릇된 과거와 단절하는 길이 미래의 길이었다. 대리청정하는 저군을 뒤주에 넣어 죽인 증오의 정치, 신하가 임금을 선택하는 택군(君)의 정치, 노론(論)만이 존재하는 일당 - P9

전제정치는 극복돼야 했다. 또 단절해야 할 커다란 과거는 성리학 신정(神政) 체제였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청나라에 조공 사신을 보내면서도 속으로는 망해 버린 명나라를 섬기는 교리를 제공하는 것이 성리학이었다. 명나라 황제를 임금으로 섬기는 성리학 체제에서 조선은 제후의 나라에 불과했다. 자국 임금을 제후로 만들어 황제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압박하는것으로 노론은 권력을 유지했다. 노론에게 성리학은 배타적 권력을 유지하는 최상의 도구였다. 바로 이런 과거와 단절해야 했다.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도상에서 정조가 만났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순왕후와 노론은 결코 미래로 갈 수 없다며 정조의 발목을 잡았다. 정순왕후와 노론은 정조 이복동생들의 사형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사도세자를죽인 증오의 정치구조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송시열의 후손 송덕상과 그를 추대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홍국영처럼 미래를 가장해 과거를 걷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 P10

그러나 그 길에 어찌 그런 사람들만 있었겠는가. 그 도상에는 정조가 과거를 선택했다면 만날 수 없었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주교를받아들였던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 형제 같은 남인들과 사회의 천시 속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쌓았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같은 서얼들, 그리고 사도세자의 이장(移葬)에 눈물을 흘리던 백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정조는 미래를 향해 걸었다. 그 길의 끝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정조에 의해 발탁된 서얼 출신의 규장각 사검서(四檢書)들이 단번에 조선의 지식계를 평정한 것처럼 조선은 새롭게 바뀌어 갔다. 그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서학(西學)을 받아들이고 북학(北學)을 주장했다. - P10

1800년 6월 28일 유시(酉時: 오후 5~7시). 정조는 창경궁(昌慶宮) 영춘헌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며 시대를 고민하던 비극적 영웅의 죽음만이 아니었다. 완성하지 못한 꿈의 죽음이자 미래를 지향하던 조선의 죽음이었다. 역사의 신이 그에게 10년. 아니 5년만 더 살아 있기를 허락했다면, 그래서 그가 초인적 의지로 구축했던 정치체제가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동시에 조선은 미래에서 과거로, 개방에서 폐쇄로 소통에서 단절로, 사랑에서 증오로 돌아섰다.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랬다. 1800년 6월 28일, 그의 죽음과 함께 조선은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때문에 정조는 오늘 다시 살아나야 한다. 이 시대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지도자를 갈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갈구는 언제나 크지 않았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꾸었던 꿈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열려고 했던 그의 미래가 우리의 내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와 햄릿보다 비극적 운명을 타고났지만 결코 그 운명에 굴종하지 않았던, 끝없는 수양으로완성된 인격을 추구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나라를 새롭게 바꾸려 했던,
그렇게 자신과 역사에 무한한 책임을 지려 했던 한 비극적 영웅의 꿈이 미완인 채로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정월
천고(遷固) 이덕일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5년간 활동하면서 단 5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를 출간해 영국 제도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 쓰인 「맡겨진 소녀는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당시세계에서 가장 큰 상금을 수여하던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뉴욕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된 「이처럼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정치소설 부문)과 케리상(아일랜드 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그해 부커상과 래스본즈 폴리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2년 아일랜드 올해의 여성 문학상,
2023년 올해의 작가상, 2024년 지크프리트 렌츠상과 셰이머스 히니 문학상을 수상한 키건의 작품들은 국제적인 호평을받으며 3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년이 된 작가가 20대 시절에 쓴 이 책은 4개의 문학상을 휩쓸며 아일랜드 문학계에서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옵저버는이 책을 두고 동시대에 영어로 쓰인 소설집 중 가장 훌륭한작품"이라며 극찬했다. - P-1

클레어 키건의 「남극은 1999년에 발표된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으로, 주로 아일랜드의 시골 지역이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길이의 단편 열다섯 편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키건은 이 책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윌리엄 트레버 상을 받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클레어 키건의 개인적인 배경과 관련이 있다. 클레어 키건은아일랜드 위클로의 농장에서 여섯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나열일곱 살에 미국 뉴올리언스로 가서 로욜라 대학에서 정치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웨일스 대학에서 창작 석 - P-1

사 과정을 밟았으며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아일랜드의 시골 지역과 대학 시절을 보낸 미국 남부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극은 첫 번째로 발표된 작품집인 만큼 무척 독특하고 때로 실험적이며 가공되지 않은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처음 발표된 지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말할 것과 말하지 않을 것을 선별하는 키건의 재능은 이후 작품과다르지 않다. 따라서 때로는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키건이 말하는 단편 작품의 매력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키건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단편소설에 끌리는 것은 "드라마의 부재와 강렬함‘ 때문이라고말한 바 있다. 즉, "단편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시작하므로 "드라마는 이미 끝났다. 예를 들어 결혼 생활이 끝나는사건이 있다면 장편 소설은 그 과정을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하지만 단편은 결혼 생활이 끝난 이후의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키건은 드라마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에, 긴장과 상실에 흥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남극은 - P-1

키건이 말하는 단편 소설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집일 것이다.
여러 작품이 실려 있는 만큼 소재와 분위기가 다양하지만 "누군가의 집 앞에 놓여 있는 것보다 뒷마당에 숨겨진 것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고 설명하는 키건의 말처럼 부정살인, 자살, 광기, 강간, 가정 폭력 등 삶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작품이 많다. 그러나 키건은 무척 독창적인 산문으로그러한 소재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진부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키건은 불쑥 떠오른 이미지에서 작품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데, 그래서인지 특히 이작품집은 각 이야기를 읽고 난 뒤 강렬한 장면 하나가 뇌리에 남는다. 한 세기의 마지막 날 밤에 해변 사구를 걸어가는 백발의 여성, 들판에 누워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녀, 온 집을 뒤덮은 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이는 가족, 눈이 잔뜩 쌓인 숲속에서 눈앞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발, 들판을 미친 듯이 달리는 흑인 남성, 소녀의 사진이 둥둥 떠 있는 수프 읽는 사람에 따라 이미지는 달라지겠지만분명 하나같이 독특하고 기묘한 장면이 아닐까.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가 해 지는 걸 보겠다고 충동적으로 관악산에 오른적이 있다. 정상에서 멋진 노을을 보며 갖은 상념을 떨쳐버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려오다보니 사방이 캄캄해서 다시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있는 곳이 등산로의 바위인지마른 계곡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낙엽을 밟는 내 발소리가나를 위협해올 무렵, 두 개의 불빛이 보였다. 하산길에 내가 올라가는 걸 보셨다는 등산객 부부였다. 곧 어두워질 텐데 아무 장비도 없이 혼자 휘적휘적 산에 올라가는 나를 보시고 혹시나 하고 산 중턱에서 기다리셨다고 했다. 좌절한젊은이가 잘못된 선택을 하러 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다시 나타나줘서 고맙다고도 하셨다. 좌절한 게 아니라 그저 경솔한 것일 수도 있는데, 다른 길로 내려갔을 수도 있는데, "머지 않은 장래에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해 있는 일시적인 존재"를 위해 어두운 산속에서 랜턴을 들고 기다려주시다니. - P164

나누어주신 랜턴을 들고 앞서가는 어른들의 발자취를따라 산에서 내려오는 그 저녁은 참으로 따뜻했다.
해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왜 슬픈지 캐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게 마흔세번째인지 마흔네번째인지 추궁하지도 않고, 1943년 프랑스프랑의 환율도 물어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줄 수는 없지만, 해 지는 것을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천문학자가 생각보다 꽤 쓸모가 있다. - P165

우주 랑데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했던 사람은 아마도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방문했던 버즈 올드린일 것이다. 그는 달로 향하는 우주선에 탑승하기 수년전부터 랑데부 기법을 연구했다. 지상에서라면 속력을 높이거나 늦추는 방식으로 다른 물체를 따라잡을 수 있지만, 우주에서는 속력을 바꾸면 궤도의 높낮이도 같이 변하기 때문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달에 착륙했다가 돌아오려면, 달 상공을 맴돌며 기다리던 사령선과 다시만나야만 한다. 달 표면에서 이륙한 뒤에 사령선과의 랑데부에 실패한다면 영영 지구로 돌아올 수 없다. 버즈 올드린의 랑데부 연구는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에 크게 기여했고, 이후의 우주 탐사 임무를 설계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사람들은 그를 ‘랑데부 박사‘라고 부른다. - P170

우주 탐사에서 쓰이는 엄밀한 의미의궤도를 맞추는 랑데부라기보다는 잠시 스쳐지나는 ‘만남‘이었다. 그러나 태양계 탄생 초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이 소행성의 신비로운 사진이 지구상의 누군가에게는 우주의 모든 중력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강력한 힘에 이끌려 우주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우주와의 랑데부는 완전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서점에 갔다가 무심결에 다양한 성운과 은하 사진으로 가득한 과학 잡지를 집어들었다. 그것이 랑데부의 시작이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우주를 담은 사진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 천문학의 세계에 도킹해 있었다.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캐스팅된 배우나 세찬 장맛비에 우산을 빌려주었다가 연인으로 발전한 커플에게도 그런 환상적인 랑데부가 있었을 것이다. 혹여 그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별에서 태어나 우주 먼지로 떠돌던 우리가 이 지구를 만난 건 그야말로 우주적으로 멋진 랑데부였으니까. - P172

우주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당장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대는 일은 드물다.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정부에 우주 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비전을 제시해주는 자문단이 필요하다. 그 조언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이를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그리고 그 실무를 담당하는 수많은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예산 집행 내역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낸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쓰도록 허락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탐사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방법이 있으니까. - P180

초승달은 해를 바짝 뒤쫓느라 초저녁에나 잠시 보였다가이내 지평선 아래로 가버린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달은 차오르고, 뜨고 지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진다. 오후에 반달이보인다면 해와 한참 떨어진 동남쪽이다. 오른손 방향으로볼록한 상현달이다. 보름이면 서쪽으로 해가 질 무렵에야동쪽에 달이 떠오른다. 보름달은 해가 없는 동안 내내 밤을지키다 해 뜰 무렵 서쪽으로 진다.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은매일 대략 50분씩 늦어진다. 보름에서 며칠이 지나 이제 왼쪽만 볼록한 하현달은 한밤중에야 잠깐 떴다가 낮에 진다. 오전에 서쪽에 뜬 반달이 하현달이다. 며칠이 더 지나 그믐달 무렵이 되면, 새벽녘에야 달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고는 곧 해가 올라오니 낮 동안 보이지 않는다. 초승달은 많은사람들이 볼 수 있고 상현달과 보름달도 꽤나 사랑받는다.
그러나 밤하늘에 하현달이 보이는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그믐달은 밤을 꼴딱 샌 사람들,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태양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보는 그런 달이다.
일제 강점기의 작가 나도향은 「조선 문단」이라는 문예지에 발표한 「그믐달」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달을 노래한다. - P186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에 정든 임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
내가 한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 P1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 잡지 에피에 실린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인터뷰‘를 읽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인터뷰한다는 걸까, 우주인 이소연을 한국 최초로 인터뷰한다는 걸까 궁금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우주인은 한 사람뿐이다. 유일무이한 ‘우주인 이소연‘ 앞에 ‘한국 최초‘가 붙는 것은, 외동딸을 두고 ‘우리집 장녀‘라고 부르는 것처럼 어색했다. 앞으로 우주 공간에 나가는 한국인은 더 많아질 테니까. 언젠가 우리 인류는더 먼 우주로 나아갈 테니까. 흥부네와 같은 자녀계획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외동딸이 미래의 장녀일 수 있으니 ‘한국최초 우주인 이소연‘이 어불성설은 아니다. - P97

인터뷰 제목만큼이나 본문도 쉽사리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우주 비행 십년 만에 우주 체류 당시의 일기를 공개한다는 편집자의 소개글을 읽고 그것부터 보려고 책장을 팔락팔락 넘겼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B6보다 작은 아담한 판형의 잡지이기는 해도 서른 쪽이 훌쩍 넘는 상당한 분량의 인터뷰였다. 일기를 스캔해서 실은 게 아니라 본문에 직접 활자로 옮긴 건가 하며 첫 장부터 다시 한번 넘겨보다가그 일기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잡지에 실린 삽화라고 여기고 무심히 넘겼던 그림이 열흘간의 우주 비행 동안 쓴 일기였다.
알아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포켓 사이즈 다이어리의 위클리 페이지 두 장이었으니까.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보였다. 왼쪽에는 좋은 글귀와 삽화가 들어 있고, 오른쪽 페이지가 일주일에 해당하는 일곱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다이어리‘라고 부르는제품이 맞지만, 그 안에 적힌 것은 일기라기보다는 메모에불과했다. 발사 당일의 기록을 제외하면 많아야 서너 가지, 그날의 할 일이나 짤막한 소감이 몇 단어로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 몇 줄짜리 메모가 ‘우주 일기‘의 전부였고, 그 소박한 다이어리는 그의 우주 비행에 ‘초과로‘ 허락된 개인 물품이었다. 우주인 이소연에게는 너무 큰 일기장이었다. 그에 - P98

게 주어진 자유시간으로는 위클리 다이어리의 좁은 칸도 다채울 수 없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이소연은 원래 예비 우주인이었다. 한국 최초로 우주를
비행할 사람으로 결정된 사람은 체격도 좋고 퍽 용맹해 보여서 나중에 우주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도 될 법한 남자, 고산이었다.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과 직장을 다닌 수재에다 아마추어 복싱선수였을 정도로 체력도 좋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우주인으로 선발되었다. 그 옆에 여성 후보가 함께하는 것은 국민들 보시기에 참 좋았다. 우주인 선발 과정이 남녀차별 없이 공정했고, 그것이 달라진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비행을 앞두고 갑자기 우주인이 바뀔 때까지는.
우주인이 사용할 물품은 이미 화물로 보내진 뒤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가져갈 수 있는 개인 물품 허용량은 미처 다싣지 못한 실험 장비와, 우주인 프로젝트 도중에 명칭이 바뀐 주관 부처의 로고 패치와 스티커 등등으로 꽉꽉 채워졌다. 그 바람에 우주정거장에 머무는 동안 이소연은 고산이미리 보내두었던, 체격도 성별도 다른 사람의 옷을 입어야했다. 물품 목록을 작성하던 러시아 측 담당자가 이 사실을알고 안타까웠는지 ‘이 안에 담으면 무조건 실어주겠다‘며슬쩍 건네주었다는 지퍼백 하나. 그 안에 급히 담은 다이어 - P99

리를 십여 년 뒤의 내가 보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소연을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선발된 우주인이 갑자기 교체된 것도 당황스러운데다가, 여성 우주인이 앞으로 나서게 되는 것을 고까워하는 시선이 더해졌다. 여성 우주인이 남성 우주인 옆에 후보로 있다가 역사적인 발사의•순간에 손뼉 치며 환호해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보기좋은 그림이었다. 고산이 이소연으로 교체된 사건은, 남자의 자리를 여자가 대신한다는 충격으로 퍼져나갔다. 이소연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주정거장에서의 실험을 수행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전문가라는 점은 쉽게 무시되었다. 많은 사람이 놓쳤지만, 우주인 프로젝트의 명목상 목적은 우주정거장에서의 과학 실험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 실험을 수행할 사람이 마침 학계에서 과학 하던 사람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이 행운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지구에서보다 얼굴이 붓는다. 다리 쪽으로 피를 잡아당겨주는 중력이 없는데도 심장은 지구에서의 제 역할을 다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성 우주인의 잔뜩 부은 얼굴을 두고 외모를 비하하는 댓글이 기사마다 달렸다. 이소연은 잠잘 시간도 아껴가며 열여덟 가지의 실험을 수행 - P100

해냈고,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실험을 두고는 몇 날을 고민했다. 러시아 측에서 실험이 너무 많으니 줄이라고 요청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런 일을 새내기 우주인이완수해낸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목소리 높여 칭찬해주지 않았다.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올 때, 귀환 모듈의 결함으로 죽을 뻔했던 일이 한국 우주인의 영웅담으로 두고두고 인구에회자되는 일도 없었다. 이소연이 탄 귀환 캡슐은 궤도를 이탈했고,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통신조차 끊어진 채, 거의수직으로 카자흐스탄의 평원에 메다꽂혔다. 예상 지점에서수백 킬로미터나 벗어난 곳에 불시착했다. 당황한 그곳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귀환캡슐에서 탈출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수 시간 동안 동료와 의지해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극적인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로 지겹도록 재생산되는 대신누구도 넘겨보지 않은 책장처럼 홀로 바래갈 뿐이었다.
우주 비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소연은 수백차례의 대중강연과 인터뷰를 하며 애초 계약했던 의무기간의 갑절 되는 동안 우주인으로서의 소임을 수행했다. 그러나 우주인 프로젝트는 일회성 사업이었고, 앞으로도 우주인 이소연이 할 만한 일은 11일간의 비행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우주에서 돌아온 후 4년간 그랬듯이. 그렇다고 몇년 만에 다시 DNA를 다루는 공학박사 이소연의 길로 돌아 - P101

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나가는 분야다. 수년간 손놓았던 사람이 다시 그 급류 속으로 들어가 안전하게 물살을 타는 일이 어디 쉬울까. 우주인 이소연이 할수 있을 후속 프로젝트가 마련될 길은 요원해 보였다. 고민끝에 휴직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자 이번에는 ‘먹튀‘라는비난이 쏟아졌다. 그곳에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했을 때도, 휴직 기간이 만료되고 마침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했을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공립‘과학고등학교를 나와 ‘국립‘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한 경력까지 문제가 되었다. ‘그 여자‘를 고등학교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국가 세금으로 키워준 것이 괘씸하단다. 강연료를 챙기면서출장비까지 받았으니 구상권이라도 청구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그래야 할까?
규정 위반으로 우주 비행에 참여하지 못한 고산도 연구원과의 의무계약기간을 마친 뒤 미국에 갔다. 역시 우주인으로서의 정체성과는 별 접점이 없는 분야로 유학길을 떠났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지금은 3D프린터를 만드는 회사의 대표로 있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에 사람들은 격려와응원을 보낸다. 그의 도전 정신과 마침내 성취해내는 모습에 칭찬을 보낸다. 우주인 프로젝트에 들어갔다는 260억이니 300억이니 하는 ‘혈세‘를 뱉어내라던가, ‘우주 개척의 가 - P102

치와 비전을 스스로 확고한 신념으로 만들어 제2, 제3의 우주인이 배출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라‘는 요구는 하지않는다. ‘국가 차원의 후속 지원이 없다는 이유로 뱀 허물벗듯 우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던졌다‘는 비난은 오롯이이소연의 차지였다.
2007년 이소연과 고산을 함께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아직 둘 중 누가 ‘소유즈‘에 탑승할지 결정되지 않은 시점의 기사였다. 당시 미혼의 박사과정생이던 이소연에게 기자는 ‘골드미스‘라는 단어를 꺼냈다. 우주에서는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는데, 여성이니 피부 문제에 신경쓰이겠다고 했다. 우주에서 생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하느냐고도 물었다. 우주가 상당히 춥다더라는 기자의 우려 섞인 질문에는 고산의 대답만이 기사에 실렸다. - P103

남초사회에서 자리잡은 여성 과학자는 언제나 호기심과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떤 성향이실까, 연구 스타일은 어떨까, 강의는 어떻게 하실까, 요즘은 주로 뭘 연구하실까. 그런 게 궁금했다. 그런데 내게돌아온 대답은 "글쎄요. 애가 아프다고 학교 안 오실 때도있고 그래요"였다. 내가 보기에는 정년을 앞두고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자신의 대학원생들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멋진 교수님인데, 고작 그런 시선이라니. 그것도 아직 젊은대학원생의 시야가 그렇게 구태의연하다니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부모 중 하나가 가사와 양육을 도맡거나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조부모 등 친척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아이 하나 키워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사회. 그래, 현실이 그렇다고 백번인정한다. 그게 현실이지만, 그게 여자들의 ‘문제‘로 인식되는 건 슬프다. 직장에서는 그토록 프로페셔널해야 한다면서, 가정에서의 의무는 가벼이 보는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여성들이 남성 위주의 문화에 적응해나가듯이, ‘직장맘‘들이 "애는?"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잘하려고 노력하듯이, 그들도 여성들, ‘직장맘‘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해보면 좋겠다. - P108

이소연 박사는 한동안 대중 앞에 나서지 않다가 아주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 최초의, 그리고 한국 최고의우주인인 그를 한껏 응원한다. 우리는 우주인 이소연이 지상 훈련에서, 우주 실전에서, 그리고 우주에 다녀온 뒤에 겪은 모든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가 무슨 실험을 했는지 하나라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신비롭고 놀라운 우주 이야기부터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과학정책 이야기까지, 오직 이소연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 그 교훈을 얻으려고우리는 그를 우주정거장으로 보냈던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직업을 바꿨다는 이유로 그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싶어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세금을 ‘먹튀‘하려는 자다. - P1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즐기라니. 내가 아무리 작은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았다고는 해도, 늦게까지 집에도 못 들어가고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즐기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그가 건넨 인사는 아주 적절했다. 그는 이 연구원에서 오래 일해온 게 틀림없다. 적어도 신입 직원은 아닐 것이다. 내가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보면,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이직했지만 내 생활 패턴에는별다른 변화가 없다. 전부터 공동연구하던 팀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연구실의 경위도 좌표가 바뀌었을 뿐, 같은 사람들과 같은 목표를 좇고 있다. 그러고 보니 대학원생 시절에도 이런 종류의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교내 천문대 입구좁은 공간에 앉아 계시던 경비원께서는 출입하는 이들에게 늘상 인사를 해주셨고, 천문대로 올라오는 비탈길에 쌓이는봄의 벚꽃잎과 가을의 낙엽과 겨울의 눈을 쓸어주셨다. 경비원을 보안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바람이 분 뒤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런 인사를 이직 후 다시 하게 되었다. - P74

또다른 중요한 일은 교육이다. 내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내가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연구 윤리니 직장 내 성희롱이니 보안이니 실험실 안전이니 하는 다양한 주제의 교육이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직장 다니고 월급 받는 것은얼마나 큰 축복인가 생각하며 묵묵히 교육에 참석한다.
나의 고용 상태는 내가 참여할 연구 과제가 있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여러 연구자가 공동참여하는 큰 과제일 때도있고, 내가 연구 책임자이자 유일한 참여 연구원인 1인 과제일 때도 있다. 과제 기간은 몇 개월짜리에서 십여 년까지다양하지만 대개 3~5년 정도다. 과제가 끝나면 계약직 연구원인 나의 고용 기간도 끝난다는 뜻이므로, 과제가 끝나 - P75

기 전에 미리미리 다음 과제 혹은 다음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 과제 제안서나 자기소개서, 연구 계획서를 쓰고, 그간의연구 실적을 모아서 양식에 맞게 입력하고 증빙 자료를 만드는 일, 졸업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새로 발급받는 일은아주 지겹지만 ‘먹고사니즘‘과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좌우할 수 있는 신성한 작업이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과학 공부는 아니지만 과학자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해야 하는 부수적인 일들, 중요도는 낮지만 마감을 넘겨서는 안 되는 종류의 일들을 좀 해치웠나 싶으면 이번에는 손님이 찾아온다. 우연히 근처에 볼일이 있어 온 김에 들렀다며 선후배들이 깜짝 방문하기도 하고, 행성과학을 전공하고싶다는 학부생이 진로 고민을 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같은팀에 있는 대학원생이 하소연을 하러 오면 열심히 들어주고맞장구쳐준다. 내가 괴로울 때 그들이 그렇게 해주었듯이, 곪아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약해지려는 마음을 서로 달래주는 품앗이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상담도 잦다. 또래 중에 일찍 결혼한 편이기도 하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아이를낳고 키우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서다. 평소 왕래가 잦지 않던 동료가 어느 날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조심스레 불러 세운다면, 기혼자 혹은 부모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물으려는 참이다. 이 또한 누군가의 인생에 관한 신성한 논의다. - P76

그 모든 일은 일과 시간 중에 일어난다. 중요도는 낮지만마감 시간 내에 마쳐야 했던 일이 다 끝나고 방문객들도 돌아가고 나면, 그제야 연구 주제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된다. 전화도 오지 않고,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발길도 조용해진다. 공부에 빠져들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원생들은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머물러 있는경우가 많다. 나도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다 버스가 끊긴 길을 걷고 또 걸어 집에 들어간적도, 아예 조금 더 기다렸다 새벽 첫차를 탄 적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돌봐야 할 자식들이 있으니 정해진 시간이 되면 퇴근해야만 한다. 이제 막 집중을 좀 해보려는데 집에 갈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손놓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정말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시각이 되기 직전에야 닥치는 대로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들고 뛰쳐나간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다. 왜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서는지,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 P77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또다른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머리로는 안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있던 시간의 대부분은 내가 방금 한 일과 조금 전에 한 일과 한참 전에 한 일을 의심하는데 썼으니 몸으로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내게 ‘과학자‘라는 이름표를 달아 연구실 밖으로 나오게하자마자 어설픈 확신의 말을 의심도 없이 내뱉다니.
방송을 보니 다행히 내 인터뷰는 정말 짧게 나왔다. 유성에 대해서 나름대로 설명한 부분도, 백 퍼센트 운운한 부분도 모두 편집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내 분량이 끝나는 걸보고 나니 갑자기 소화가 잘되는 것 같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밥을 잔뜩 먹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쿡 웃으며 자조했다. ‘백 퍼센트라고? 웃기시네. 멀쩡한 과학자가 되려면 난아직 멀었구나."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