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사막이라곤 없다. 섬들도 없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아쉽다는 느낌은 있다. 세계를 알려면 때로는 딴 데로 고개를 돌리기도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더 잘 봉사하려면 잠시 그들과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힘을 얻는 데 필요한 고독은 정신이 집중되고 용기가 가늠되는 긴 호흡은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 남은 것은 대도시들뿐이다. 다만 거기에도 또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유럽이 우리에게 내놓는 도시들은 너무나 과거의 소음으로 차 있다. 훈련된 귀라면 거기서 날개소리를, 생명들의 고동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 거기서는 여러 세기의 혁명들의, 영광의 현기증이 느껴진다. 거기서는 서양이 아우성 속에서 단련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을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래도 조용하지가 않다.
파리는 가슴에는 사막이기가 일쑤이지만, 어떤 때에는 페르 라셰즈 언덕 꼭대기에서 혁명의 바람이 불어 그 사막을 느닷없이 깃발들과 패배한 위대함들로 가득 채운다. 스페인의 어떤 도시들이나 - P-1

피렌체나 프라하도 마찬가지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만 없어도조용할 것이다. 한데 가끔 잘차흐 강 위에는 지옥에 빠지는 돈 후안의 오만스러운 아우성이 흐른다. 빈은 더 조용해 보여, 도시들 중에서는 아가씨다. 그곳의 돌들은 3세기를 넘지 않았고 그곳의 젊음은우울을 모른다. 그러나 빈은 역사의 교차로에 있다. 그 둘레에서는제국(帝國)들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고 있다. 하늘이 피로 뒤덮이는 어떤 저녁이면, 링의 기념 건물들 위에 돌로 새긴 말들이 날아오를 듯이 보인다. 모든 것이 권세와 역사를 말하는 이 덧없는 한순간 속에서 기병대의 밀어닥치는 말발굽 아래 오스만 제국이 요란스레 무너지는 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다. 여기도 그래서 아무래도조용하지가 않다.
물론 사람들이 유럽의 도시로 찾으러 오는 것은 바로 이 속이 꽉들어찬 고독이다. 적어도 제가 할 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그들은 거기서 제 동아리를 골라잡아 취하거나 버릴 수가 있다. 얼마나숱한 사람들이 자기 호텔 방과 생 루이 섬의 해묵은 돌들 사이를 오가는 일에 가담했던가!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고독으로 파멸한 것도 사실이다. 전자들로 말하자면 어쨌든 거기서 성장해나갈이유들을, 저를 내세울 이유들을 발견했었다. 그들은 외로우면서도외롭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와 아름다움의 세기들이 지나간 숱한삶들의 극성맞은 증거가, 센 강을 끼고 그들을 따라오며 전통과정복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해주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젊음이 그들을 부추겨 이러한 동아리를 부르게 했던 것이다. 그 동아리가 성가실 때가 시대가 온다. "우리 둘이서!" 파리라는 도시의 거창한 공격 - P-1

이 앞에서 라스티냐크는 외친다. 둘, 그렇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 너무 많다.
사막 자체도 어떤 뜻을 갖게 되었으니 거기에 시(詩)라는 벅찬 짐이 지워진 것이다. 세상의 온갖 고뇌를 위해서라면 사막은 안성맞춤이라고 널리 인정된 곳이다. 어떤 순간에 마음이 구하는 것은 그와는 반대로 바로 시가 없는 곳들이다. 명상을 해야만 했던 데카르트는 자기 나름의 사막을 택한다. 당시 상업이 가장 번성하던 도시를 말이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고독과, 우리의 남성다운 시편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위대한 시편을 쓸 기회를 찾아낸다. "첫째는 내가명백히 그렇다고 인정한 것밖에는 결코 아무것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었다."라는 그 나름의 시편을 말이다. 이보다 야심은 덜해도 그에 못지않은 노스탤지어는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은 3세기 전부터 미술관들로 뒤덮이게 되었다. 시를 피해돌의 평화를 다시 찾아내려면 딴 사막들, 영혼도 의지할 곳도 없는딴 곳들이 있어야 한다. 오랑은 그런 곳의 하나다. - P-1

오랑은 단단한 하늘로 뒤덮인 둥그렇고 누런 큰 담이다. 처음에는 미궁 속을 헤매며 아리아드네의 신호인 양 바다를 찾는다. 그러나 억압적인 황갈색 거리에서 뺑뺑 돌게 되며 끝내는 미노타우로스가 오랑 시민들을 먹어치운다. 그것은 권태다. 오래 전부터 오랑시민들은 헤매지 않게 되고 말았다. 잡아먹히기로 승낙한 것이다.
오랑에 와보지 않고서는 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유난히 먼지 많은 이 도시에서는 조약돌이 왕이다. 상인들이 종이를 눌러두기 위해서, 아니 그냥 장식만을 위해서도 진열창에 돌을 진열할 만큼 조약돌을 좋아들 한다. 길을 따라 조약돌 더미를 쌓는데, 1년이지나도 여전히 그냥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아마 눈요기를 위해서일 것이다. 딴 데서는 식물에서 시(詩)를 끌어내는 것이, 여기선 돌의 얼굴을 지니게 된다. 이 상업도시에서 마주칠 수 있는 백 그루남짓한 나무들을 이들은 정성들여 먼지로 뒤덮어놓았다. 가지에서매운 먼지 냄새를 떨어뜨리는 것이 바로 이 화석이 된 듯한 식물들이다. 알제에서는 아랍인들의 묘지가 누구나 다 아는 바의 정다움을 지니고 있다. 오랑에서의 그것은 라스-엘-아인 골짜기 위, 이번에는 바다를 앞에 두고 푸른 하늘에 잇대어진, 해가 눈부신 불을 질러대는 백악질이 푸석푸석한 자갈밭이다. 이 대지의 해골 한복판에는주홍빛 제라늄이 이따금 제 싱싱한 생명과 피를 풍경에 쏟아 붓는 - P-1

다. 도시 전체가 돌로 된 모암 속에 엉겨 있다. 플랑퇴르 지역에서보면 도시를 껴안고 있는 절벽들이 하도 두꺼워, 풍경이 광물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인 것으로 변해버릴 정도다. 인간은 거기서 추방된다. 그토록이나 육중한 아름다움은 딴 세계에서 오는 것 같아 보인다.
만일 사막이란 하늘만이 왕인 혼 없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때 오랑은 제 예언자들을 기다리게 된다. 도시 위와 그 온 둘레에서 아프리카의 사나운 자연은 아닌게 아니라 이 도시의 타오르는 마력들로 장식되어 있다. 도시는 사람들이 씌워놓은 거북한 장식을 깨어버리고, 하나하나의 집 사이며 온 지붕들 위에서 사나운고함을 지른다. 산타크뤼즈 산허리에서 길을 하나 잡아올라가면맨 먼저 나타나는 것은 오랑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갖가지 색깔의 입방체들이다. 그러나 조금 더 올라가면 고원을 둘러싼 울퉁불퉁한 절벽들이 벌써 붉은 짐승들처럼 바닷속에 웅크린다. 좀더 올라가면 해와 바람의 큰 회오리바람이 바위투성이 풍경의 네 구석에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무질서한 도시를 뒤덮고 휘몰아쳐 뒤섞어버린다. 여기서 서로 맞서는 것은 인간의 엄청난 무질서와 늘 변함없는 바다의 항구성(恒性)이다. 생명의 기막힌 향기가 산허리에 난길쪽으로 솟아오르기 위해서는 이것으로 족하다. - P-1

알제의 부드러움은 오히려 이탈리아적이다. 오랑의 잔혹한알근 광채에는 스페인적인 그 무엇이 있다. 륌멜 협곡 저 위의암석 위에 올라앉은 콩스탕틴은 톨레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추억과 예술작품과 탁월한 유적들이 넘칠 만큼 가득하다. 그러나 톨레도를 위해서는 그레코도 있었고 바레스도 있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도시들은 그와는 반대로 과거가 없다. 따라서그것들에는 안도감도 흐뭇한 감동도 없다. 권태의 시간, 다시 말해서 낮잠의 시간이면, 그곳의 슬픔은 가차없으며 우수마저도 끼어들틈이 없다. 아침 나절의 햇빛이나 밤의 자연이 내려주는 호사함 속에서 기쁨은 반대로 감미로운 데가 없다. 이 도시들은 깊은 반성을위해서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으나 정열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제공한다. 그들은 예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섬세한 취향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바레스나 그를 닮은 사람들이그곳에 가면 가루가 되어 부서져버릴 것이다. - P-1

그 땅이 가장 많이 닮은 고장은 스페인이다. 그러나 전통이 없는스페인은 그저 아름다운 사막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다가 그곳에서태어나는 바람에 거기서 살게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영원히 사막속으로 들어가서 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들의 부류란 어편한 가지 부류뿐이다. 그 사막에서 태어난 터이므로 어쨌건 나는방문객 같은 입장에서 그 고장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자신이 몹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하여 그녀의 여러 가지 매력들을 이것저것 다 손으로 꼽아서 열거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냥 송두리째 다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그녀가 뾰루퉁해질 때면 흔히 짓는 표정이라든가 혹은 고개를 젓는 모습 같은 한두 가지 가슴 뭉클한 면을 지적할 수는 있을것이다. 나는 바로 그런 식으로 알제리와 오랜 관계를 맺어왔다. 그관계는 아마도 끝날 날이 없을 터이고 그런 관계 때문에 나는 이고•장에 대하여 아주 명철하게 이야기할 입장이 못 된다. 그저 성의를다한 끝에, 이를테면 좀 추상적인 방식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면의 어떤 디테일을 분간해낼 수는 있을것이다. 내가 여기서 알제리에 대하여 한번 해보려는 것은 바로 학교다니는 학생과도 같은 그런 식의 연습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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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장 그르니에에게


산다는 것은 물론 표현한다는 것과는 어느 정도 
반대되는것이다. 토스카나파(派)의 대 화가들에 의하면 산다는 것은 침묵과 불꽃과 부동(不) 속에서,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증언하는것을 의미한다.
그 거장들의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들이 우리가 피렌체나 피사의길거리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우리 주위에 있는 삶들의 참다운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줄도 모르게 되었다는 것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동시대 사람들을 잘 바라보지도않게 되었다. 오로지 그들에게서 우리의 처신에 필요한 방향과 규칙만을 찾는 데 급급한 탓이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 그 자체보다는가장 천박한 시(詩)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오토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경우, 그들은 한 인간의 감성 따위란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심정쯤이야 안 가 - P-1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삶에 대한 사랑이 그 구심점으로 삼는 단순하고도 영원한 큰 감정들, 증오, 사랑, 눈물, 그리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라나면서 그의 운명의 얼굴을 다듬는다ㅡ지오티노가 그린 매장도(埋葬圖) 속에서 볼 수 있는 저 이를 깨물고 있는 마리아의 고통과 같이 말이다. 토스카나에 있는 여러 성당들의 거대한 마에스타 그림들 속에는 물론 한결같이 비슷비슷한모습으로 복사된 수많은 천사들의 얼굴이 보이지만 말이 없으면서도 정념에 찬 그들 얼굴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면 어떤 고독을 읽을수 있게 된다.
과연 그 속에 담긴 의도는 눈요기감이요, 에피소드요, 뉘앙스요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동임에 틀림없다. 시적(詩的)이 되어보자는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오직 화가들만이 우리의 굶주림을 달래줄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떤 미묘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화가들은 곧 육체의 소설가가 된다는 특전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라고 하는 멋지고도 덧없는 재료를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라는 것은 언제나 몸짓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 화가들은 어떤 미소나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부끄러움, 후회나 기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뼈가 튀어나오고 들어간 모습과 끓는 피의 얼굴을 그린다. 영원한 선(線)들 속에 딱 고정되어버린 그 얼굴들로부터 화가들은 정신의 저주를 영원히 추방해버린 것이다. 희망이라는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육체는 희망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니까 말이다. 육체가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피의 고동소리뿐, 육체만 - P-1

이 아는 영원은 무심(無心)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그림 <태형(苔刑)>이 그렇다. 이제 금방 깨끗이 청소한듯한 뜰 안에서 매맞고 있는 그리스도나 사지의 근육이 무지스러운 형리는 다 같이 그 자태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오불관언의 표정을 엿보게 해준다. 그 까닭은 그 태형에 계속된 뒷장면이나 순간이 삭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의 교훈은 화폭의 틀 안에서 정지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날에 대하여 아무런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 감동을 느껴야 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저 돈담무심한 태도, 희망을 품지 않는 인간의 저 위대함, 저 영원한 현재, 분별 있는 신학자들이 지옥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지옥은 또한 고통하는 육체이기도 하다. 토스카나의 화가들이관심을 두는 것은 그 육체이지 운명이 아니다. 예언적인 회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희망을 가져야 할 까닭을 얻으려고 찾아가야 할 곳은 미술관이 아니다.
사실 영혼의 불멸은 많은 건전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의 관심거리다. 그러나 그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에게 주어진유일한 진실인 육체의 진수를 모두 다 향유해보기도 전에 육체를거부하기 때문이다. 육체는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기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그들은 육체가 제시하는 단 하나의 해답이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답이란 반드시 썩어 없어지게 마련인 하나의 진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쓴맛과 고귀함을 동시에 지닌 진실인데 그들에겐 그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진실보다는 시를 더 좋아한다. 시는 영혼에 - P-1

속하는 것이니까. 내가 지금 말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곧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오직 보다 높은 의미의 시만을 진실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는 것도 이해했을 것이다. 저 찬란한 아름다움과 빛을 통하여, 어떤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하고있는 어느 땅 위에 던져진 인간이 명징한 정신으로 외치는 항거의 목소리인 양 토스카나의 풍경들 한가운데에 치마부에에서 프란체스카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화가들이 불붙여 쳐들었던 검은 불꽃같이 높은 의미의 시 말이다.
무심과 무감동으로만 일관하다 보면 하나의 얼굴이 어느 풍경의 광물적인 위대함과 일치를 이루게 되는 일도 있다. 스페인의 어떤농부들이 그들 땅에 자라는 올리브나무를 닮게 되듯이, 영혼이 나타나 보이는 그 하잘것없는 그림자 따위는 자취도 없는 지오토 그림 속의 얼굴들이 마침내 토스카나가 아낌없이 보여주는 단 하나의교훈을 통하여 토스카나 그 자체와 한덩어리를 이루게 된다. 감동따위가 아니라 정념의 수련, 금욕과 쾌락의 혼합, 인간과 대지가 다같이 가난과 사랑의 중간 지점쯤에서 서로를 규정하게 하는 대지와인간에 공통된 어떤 울림 이것이 바로 그 교훈이다. 사람이 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늘이 피렌체 들판의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을 엄청나고 말없는 슬픔으로 뒤덮어가기 시작하는 어떤 저녁, 나는 이 진실이 자명한 것임을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고장의 슬픔은 아름다움에 대한 한갓 주석(註釋)만은 결코 아니다. 저녁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속에서 무엇인가의 응어리가 풀려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슬픔의 - P-1

얼굴을 가진 이것이 그래도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임을 오늘 내가어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이탈리아는 그가 낳은 인간들에 의하여 뚜렷이 보여주었던 진실을 그의 풍경을 통해서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행복이란 항상 분에 넘친 것이므로 행복이 앞에 있는데도 모르고 놓쳐버리기 쉽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의 우아함은돌연히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은아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이탈리아는 첫눈에 송두리째 드러내는 듯한 어떤 경험을 점차로 심화시켜가도록 종용하는 나라이다. 그 까닭은 이 나라가 저의 진실을 보다 더 잘 감추기 위하여 우선시를 흐드러지게 구경시켜주기 때문이다. 이곳이 보여주는 첫 요술은 망각의 의식(儀式)들이다. 가령 모나코의 유도화들, 꽃과 생선 냄새로 가득 찬 제노바, 그리고 리구리아 해안에 내리는 푸른 빛 저녁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곳을 지나고 나면 드디어 피사, 피사와 함께 리비에라 해안의 다소 속물적인 매력이 제거된 이탈리아가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은 여전히 좀 손쉬운 이탈리아이긴 하지만 잠시 동안 그 관능적인 우아함을 즐겨서 나쁠 것이야 없지 않겠는가? 나로말하면, 이곳에 묵는 동안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으니 (할인하여 산 기차표 때문에 ‘내 마음대로 선택한 도시에서 일정 기간 동안 체류할 의무가 있는지라 쫓기듯이 허둥지둥 떠나야 하는 여행자의 기분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이 첫날 저녁에 나에게는 사랑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참을성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 피곤과 배고픔을안고 피사에 들어오니 역 앞 광장에서는 귀를 찢는 듯한 열 개의 확 - P-1

성기들이 거의 모두 젊은 사람들뿐인 군중들을 향하여 사랑 노래를 쏟아 붓는다. 나는 벌써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겠다. 이 약동하는 생명감 뒤에 오는 것은 저 기묘한 순간일 것이다. 카페들이 문을 닫고 돌연 침묵이 다시 찾아들 때면 나는 짧고 어두운 골목길들을 지나 시내 중심가로 가리라. 꺼멓고 금빛이 감도는 아르노강, 노란 빛, 초록빛의 기념물들, 인적이 없는 도시ㅡ밤 열시의 피사를 침묵과 물과 돌의 이상한 무대장치로 둔갑시켜놓는 이 돌연하고 교묘한 요술을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 ‘그때는 이같은 어느밤이었지, 제시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무대 위에서 바야흐로 제신들이 셰익스피어의 연인들의 목소리로 출현하는데…… 꿈이 우리들에게 다가올 때는 꿈에게 마음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으러 오는 보다 내밀한 노래, 나는 벌써부터 이 이탈리아의 밤 속에서 그 노래의 첫번째 화음을 감지한다. 내일, 오직내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들판은 아침 빛 속에서 둥그렇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나는 여기 제신들 가운데 섞인 어느 신이 되어 ‘사랑으로 달뜬 발걸음으로‘ 달아나는 제시카앞에서 나의 목소리를 로렌조의 목소리에 한데 섞어 불러본다. 그러나 제시카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랑의 충동은 제시카 이상의 것이다. 그렇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로렌조는 제시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자기가 사랑할 수 있게 허락해준 제시카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이런 저녁에 베로나를 잊어버린 채 베네치아의 연인들을 생각한단 말인가? 그것은 또한 사랑때문에 죽는 것보다 더 헛된 일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 - P-1

은 오히려 사는 것이리라. 살아 있는 로렌조는 비록 장미꽃나무와함께라 하더라도 땅속에 묻힌 로미오보다 훨씬 낫다. 그러할진대어찌 이 살아 있는 사랑의 축제 속에서 춤추지 않을 수 있으랴-그리고 나중에라도 찾아가 구경할 시간이 언제나 있을숱한 기념물들 한가운데에 있는 피아자 델 두오모의 짧게 깎은 잔디밭에서 하오의 낮잠을 자고 물이 약간 미지근하기는 해도 몹시 부드러운 분수에서 물을 마시며, 우뚝한 콧날에 자랑스러운 입술을 한 저 웃고있던 여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러 가지 않을 수 있으랴. 다만 이같은 입문(門)은 더욱 드높은 계시에의 예비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것은 디오니소스의 제관(祭官)들을 에레우시스로 인도해가는 찬란한 행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우선 기쁨 속에서 비로소 그의 교훈들을 준비한다. 극도의 도취상태에 이르면 육체는의식이 명료해지면서 검은 피를 그 상징으로 하는 신성한 신비와 영적 교제를 맺게 된다. 처음 만난 이 이탈리아의 정열 속에서 길어낸 자기 망각은 바야흐로 우리들을 희망이라는 굴레에서 끌어내고 우리들의 역사로부터 건져내주는 저 교훈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이 유일하게 기대했던 행복에, 우리를 열광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멸망하게 마련인 유일한 행복에 매달리듯이 우리 역시 육체와 순간이라는 이중의 진실, 저 아름다움의 스펙터클에 매달리지 않을수 없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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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무들마다 가득히 새들이 깃들였다. 대지는 어둠 속으로잠겨들기 전에 천천히 숨을 내쉰다. 잠시 후 첫번째 별이 뜨면 밤의장막이 이 세계의 무대 위로 내릴 것이다. 대낮의 찬란하던 제신神)은 그들 날마다의 죽음으로 되돌아가리라. 그러나 또 다른 신들이 찾아올 것이다. 더 많은 어둠을 위하여 그네들 황폐한 얼굴들이그 사이에 대지의 심장 속에서 태어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모래 위에 끊임없이 와서 부서지는 파도가 황금빛꽃가루들이 넘실대는 저 공간을 건너 나에게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바다, 들판, 침묵, 이 땅의 향기, 이 모든 향기로운 생명으로 내 전신이 가득 차고 나는 이 세계의 벌써 금빛으로 익은 과일을 깨물며, 그 달고도 강렬한 과즙이 내 입술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미칠 듯한 감동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도, 이 세계도 아니다. 다만 세계로부터 나에게로 사랑이 태어나 이어지게하는 저 화합과 침묵이 중요할 따름이다. 나는 그 사랑을 오직 나혼자서만 누리려고 탐할 만큼 약하지는 않았다. 태양과 바다로부터태어나서 그의 단순성 속에서 위대함을 찾아낼 줄 아는 저 활력에차고 멋을 아는 한 종족, 바닷가에 우뚝 서서 그네들 하늘의 눈부신미소에 공모의 미소를 던져 보내고 있는 그 종족 전체와 사랑을 나누려는 의식과 그것을 사랑으로 삼는 자부심이 내게 있으므로 - P-1

세상에는 정신 그 자체를 부정하는 하나의 진리가 태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정신이 사멸하는 곳이 있다. 내가 제밀라에 갔을 때 그곳에는 바람과 태양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또 다른얘기다. 우선 말해두어야 할 것인즉 그곳에는 무겁고 틈새 하나 없는 거대한 침묵이 어떤 저울의 균형과도 같은 그 무엇이 지배하고 있더라는 사실이다. 새들의 비명, 구멍이 세 개 뚫린 피리의 고즈넉한 소리, 염소들이 바스락거리며 발을 옮겨놓는 소리, 하늘에서울려오는 어렴풋한 소음, 그 하나하나가 다 그 장소의 침묵과 황폐함을 만들어내는 소리들이었다. 이따금씩 무언가 메마르게 탁 부딪는 소리,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는데 그것은 바로 돌들 사이에 가만히 엎드려 있던 어떤 새 한 마리가 문득 날아오르는 기척이었다. 밟아가는 길 하나하나, 허물어진 집터들 가운데로 난 오솔길들, 번쩍거리는 돌기둥 밑에 포석으로 덮인 대로(大), 언덕배기 위 개선문과 사원 사이에 있는 거대한 고대 광장, 이 모두가 제밀라를 사방으 - P-1

로 경계 짓고 있는 협곡들로 인도한다. 이러고 보면 제밀라는 끝없는 하늘 아래 숨김없이 뒤집어 펴 보이는 트럼프의 패나 다름없다.
하루 해가 점차로 흘러가고 산들이 보라색으로 변하면서 더 커진것같이 보임에 따라 우리는 그곳에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면서돌들과 침묵의 얼굴과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제밀라의 언덕에는•바람이 분다. 바람과 태양이 분간할 수 없도록 하나로 뒤엉키고 그로 인하여 폐허와 빛이 한데 뒤섞이는 그 엄청난 혼잡 속에서 무엇•인가가 다듬어져가지고는 인간에게 사멸한 도시의 고독과 침묵과더불어 인간의 정체를 측정할 수 있는 절도를 부여한다. - P-1

제밀라에 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곳은 그저 지나가다가발길을 멈추거나 거쳐 가는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다른 어느 곳으로 인도해주지 아니하며 어느 고장을 향하여 트여 있지도 않다. 그곳은 다만 갔다가 되돌아오게 마련인 곳이다. 그 사멸한 도시는 길고 꼬불꼬불한 어떤 길의 끝에 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제밀라가 곧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에 그 길은 더욱 멀게 여겨진다 마침내 드높은 산들 사이에 푹 파묻힌 빛바랜 어느 언덕배기에 마치 백골들의 숲과도 같은 누르스름한 그 잔해가 솟아나 보이게되면 제밀라는 오로지 단 하나 우리를 세계의 고동치는 심장부로인도해줄 수 있는 저 사랑과 인내의 교훈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을•핀다. 거기 몇 그루 나무들과 마른 풀잎 가운데서 제밀라는 천박한 찬미와 눈요깃거리만 찾는 호기심, 혹은 희망의 유희와 맞서서 저의 모든 산들과 저의 모든 돌들로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
저 삭막한 찬란함 속에서 우리는 진종일 헤매고 다녔다. 하오의 - P-1

초장에는 거의 느껴질까 말까 하던 바람이 점차로 시간이 감에 따라 거세어지면서 풍경을 온통 가득 채워가고 있는 듯했다. 바람은멀리 동쪽으로 난 산들 사이의 협곡으로부터 일어나서 지평선 깊숙한 곳에서 달려와가지고는 돌들과 햇빛 한가운데에 폭포처럼 쏟아졌다가 솟구치는 것이었다. 쉴 사이도 없이 바람은 폐허 전체를 가르며 힘차게 불고 돌과 흙의 원곡(圓) 속에서 핑핑 도는가 하면비바람에 얽은 돌무더기를 뒤덮고 돌기둥 하나하나를 그 숨결로 휩싸 안다가 하늘을 향하여 활짝 열린 광장 위에 와서 끊임없는 비명소리를 내면서 퍼지는 것이었다. 내 몸은 돛대처럼 바람에 우지끈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위의 환경에 시달려 얼굴은 초췌해지고 눈은 불타는 듯하며 입술은 덜덜 떨리며 살가죽은 바싹말라 내 것 같지도 않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전에는 나는 바로 이살가죽에서 세계가 써놓은 필적을 판독하곤 했었다. 세계는 저의 여름 숨결로 살가죽을 데워주거나 된서리의 모진 이빨로 깨물면서거기에다가 저의 다사로운 애정이나 분노의 표시를 해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바람에 휘둘리고 한 시간이 넘도록 시달린 채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정신이 얼떨떨해지다 보니 나는 그만 내 몸이 그리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게되었다. 물살에 씻겨 반드러워진 조약돌처럼 나는 영혼 깊숙이에까지 바람에 씻겨 윤이 나도록 닳아버렸다. 나는 나를 허공에 떠 있게만드는 그 힘을 처음에는 약간, 나중에는 더 많이 닮아갔다. 마침내내 피의 고동과 도처에 존재하는 자연의 심장의 엄청나고 요란한고동소리를 분간할 수 없게 되면서 나는 바로 그 힘 자체가 되는 것 - P-1

이었다. 바람은 나를 에워싸고 있는 저 열화 같은 전라의 이미지에 따라 나를 다듬어가고 있었다. 덧없이 지나가며 나를 포옹하는 바이었다. 바람은 나를 에워싸고 있는 저 열화 같은 전라의 이미지에람은 숱한 돌들 중의 어느 돌이 되어버린 듯한 나에게 여름 하늘 속에서 있는 하나의 돌기둥이나 한 그루 올리브나무의 고독을 옮겨주고 있었다.
이 치열한 햇빛과 바람의 목욕은 나의 모든 생명력을 다 소진시켜갔다. 내 속에는 겨우 저 스쳐 지나가는 날개소리, 저 신음소리를 내는 생명, 정신의 처 가냘픈 반항뿐. 곧 세상의 사방에 흩어지고기억도 흐려지고 나 자신도 망각해버린 채 나는 곧 저 바람이 된다. 바람 속에서 나는 저 돌기둥이며 저 아치며 만지면 따뜻한 저 포석이며 황량한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빛바랜 산들이다. 나는 한 번도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거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내가세계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이토록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다. 나는 현존한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놀라운 느낌을 갖게하는 것은 내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마치 종신징역을 받은 사람처럼 ㅡ이리하여 그에게는 모든 것이오직 현재일 뿐인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일 역시 다른 모든 날들과 마찬가지일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현존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더 이상 아무것도 미래에 대하여 기대할 것이란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만약 영혼의 상태를 나타내는 풍경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천박한 풍경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고장 전체에 걸쳐서, 나의 것이아니라 이 고장 자체의 것인 그 무엇, 우리들에게 공통된 죽음의 맛 - P-1

과도 같은 그 무엇을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낀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돌기둥들 사이에는 불안한 분위기가 마치 상처받은 새들처럼 대기 속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의 자리에 들어앉는 저 삭막한 명(明) 불안감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서싹튼다. 그러나 고요함이 그 살아 있는 가슴을 덮어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지혜의 전부다. 하룻날이 흘러가고 하늘에서 내리는잿가루에 덮여서 소리와 빛이 숨을 죽여감에 따라 나 스스로에게버림받은 나는 나의 내부에서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저 은근한힘들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을 느꼈다.
포기와는 아무런 공통성이 없는 거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서 미래라든가 더 잘 되고 싶다든가출세라든가 하는 말들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마음의진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내가 이 세상의 모든 ‘훗날에‘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것은 나의 눈앞에 있는 현재의 풍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죽음 다음에는 또다른 삶이 온다고 믿는 것이 내게는 즐겁지 않다. 내게 죽음이란 닫혀버린 문(門)과도 같은 것이다. 죽음이란 그저 내딛어야 할 한 발짝 발걸음이 아니라 끔찍하고 추악한 모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들이 내게 제안하는 것은 기껏 다 인간에게서 그의 생명 자체의 무게를 덜어주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제밀라의 하늘 높이 커다란 새들이 무겁게 나는 것을 눈앞에 보고 있노라면 내가 요구하고내가 얻어내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생명의 어떤 무게라는 것을 알수 있다. 이 수동적인 정열 속에 송두리째 자신을 맡길 것.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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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사에서의 결혼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香草)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풍경 깊숙이,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내린 슈누아의 시커먼 덩치가 보일락 말락 하더니 이윽고 확고하고 육중한 속도로 털고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가서 웅크려 엎드린다.
벌써 바닷가로 가슴을 열고 있는 마을을 지나 우리는 도착한다. 노랗고 푸른 세계로 들어가면 알제리의 여름의 대지가 향기 자욱하고 매콤한 숨결로 우리를 맞이한다. 도처에 장밋빛 부겐빌레아 꽃이 빌라들의 담 너머로 피어오른다. 뜰 안에는 아직 희미한 붉은빛 - P-1

의 부용화가 꽃잎을 열고 크림처럼 두툼한 차향(茶香) 장미와 길고푸른 붓꽃의 섬세한 꽃잎이 흐드러진다. 돌은 모두 뜨겁게 단다. 미나리아재비꽃빛 버스에서 우리가 내릴 즈음 푸줏간 고기장수들은빨간 자동차를 타고 와서 아침 행상을 돌고 요란한 나팔을 불며 마을 사람들을 부른다.
항구의 왼쪽으로는 마른 돌계단이 유향나무와 금작화들 사이의 폐허로 인도한다. 길은 조그만 등대 앞을 지나서 들의 한복판으로 빠져 들어간다. 벌써부터 그 등대 밑에서는 보라, 노랑, 빨강꽃들 자욱한 살진 식물들이, 요란한 입맞춤 소리를 내면서 바다가 핥아대는 첫번째 바위들 쪽으로 내려 뻗으면서 자란다. 부드러운 바람 속,
얼굴의 한쪽 뺨만을 데워주는 햇빛을 받으며 서서 우리는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주름살 하나 없는 바다를, 그 바다의 빛나는 치열(齒列)이 짓는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폐허의 왕국 속으로아주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관객이 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 P-1

몇 걸음을 옮기면 압생트가 목구멍을 할퀸다. 그것들의 회색빛솜털이 끝간 데 없이 폐허를 뒤덮고 있다. 압생트의 정수(精髓)가 열기 속에서 발효하고 땅에서부터 태양까지 하늘도 취하여 휘청거리게 할 알코올이 이 세상 온누리에 걸쳐 피어오른다. 우리는 사랑과 욕정을 만나기 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우리는 교훈을 찾는 것도 아니요, 위대해지는 데 필요하다는 그 어떤 쓰디쓴 철학을구하는 것도 아니다. 태양과 입맞춤과 야성의 향기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굳이 이곳에 혼자 있으려고 애쓰지않는다. 나는 흔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이곳에 찾아오 - P-1

곤 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랑의 얼굴이 지어 보이는 맑은 미소를 읽어보곤 했다. 여기에 오면 나는 질서나 절도 따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해버린다. 나를 온통 휩싸는 것은 자연과 바다의 저 위대한 무분별의 사랑이다.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는 다시금 돌들이 되어, 인간의 손길로 닦여진 저 반드러운 손패를 이제는 다버리고 자연 속으로 되돌아와 있다. 탕녀(蕩女)인 딸들의 귀향을 위하여 대자연은 꽃들을 아낌없이 피워놓았다. 고대(古代) 광장의 포석들 사이로 향일성(向日性) 식물은 붉고 흰 머리통을 쳐들어 올리고, 붉은 제라늄들은 옛적엔 가옥이요 사원이요 공공 광장이던 자리에 그들의 붉은 피를 쏟아 붓는다. 많은 지식을 쌓아 어떤 이들은신에 이르게 되듯이 기나긴 세월의 풍상으로 이 폐허는 어머니의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에야 마침내 과거가 폐허를 떠나버렸으니, 무너지게 마련인 사물의 중심으로 폐허를 다시 인도해주는 저 심원한 힘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마음 쓸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 P-1

압생트들을 뭉개어 비비며, 폐허를 껴안고 애무하며, 나의 숨결을 세계의 저 소용돌이치는 입김과 맞추어보려고 애쓰며 보낸 시간이 얼마인가! 야생의 향기와 졸음을 몰고 오는 풀벌레들의 연주 속에 파묻혀서 나는 열기로 숨막힐 듯한 저 하늘의 지탱하기 어려운 장엄함에 두 눈과 가슴을 활짝 연다. 본연의 자기가 되는 것, 자신의 심오한 척도를 되찾는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슈누아 언덕의 저 단단한 등줄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가슴은 어떤 이상한 확신으로 차분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나는 숨 - P-1

쉬는 방법을 배우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신을 완성해가는 것이었다. 저 사원에 오르면 원주들이 태양의 운행을 가늠해주고, 그곳에서는마을이 온통 그 희고 발그레한 벽들과 초록빛 베란다들과 함께 굽어보이므로 내가 언덕을 하나씩 하나씩 기어오를 때마다 새로운 보상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는 것이었다. 동쪽 언덕 위에 있는 대성당 역시 그러하였다. 성당에는 이제 오직 벽들만 남아 있을 뿐 그성당 주위에는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땅속에서 파내놓은 석관棺)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간신히 보일락 말락 밖으로 파내져 있는 것이어서 여전히 한 모서리는 땅속에 묻혀있다. 옛날엔 그 석관들에 죽은 자들의 시체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지금은 샐비어와 향꽃무우가 그 속에서 자란다. 생트 살자 대성당은 기독교의 사원이었다. 그러나 빈틈으로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들에게 전해오는 것은 소나무와 시프레가 무성한 언덕들, 혹은 약 20미터에 걸쳐 그 하얀 강아지들을 뒹굴게 하고 있는 바다 이세계의 음악뿐이다. 생트 살자를 떠받들고 있는 언덕은 그 등성이가편편해서 옛 사원의 돌기둥들 사이로 바람은 더욱 드넓게 분다. 아침 햇살 아래 위대한 행복이 누리 속에서 균형을 잡는다.
구태여 신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딱한 사람들이다. 여기서는신들이 잠자리가 되고 하루 해의 흐름 속에서 그 눈금 노릇을 한다.
"여기에 붉은 것이, 푸른 것이, 초록빛 나는 것이 있구나. 이것은 바다, 산, 꽃들이구나."라고 나는 쓰고 읽는다. 코밑에다 유향나무 열매들을 으스러뜨려 문지르는 것이 이토록 좋다고 말하면 될 것을구태여 디오니소스에 대하여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땅 위에 살 - P-1

며 이 사물들을 본 사람은 행복하여라." 라는 이 해묵은 찬가를 노래한 것은 데메테르 신이었던가? 그런 신 따위는 나중에 자유스럽게생각하리라 본다는 것. 이 땅 위에서 본다는 것, 아 이 교훈을 어찌잊겠는가? 엘레우시스의 성제(聖)에 있어서도 오직 바라보는 것이면 그만이었다. 여기서조차도 나는 이 세계에 흡족할 만큼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전라의 몸이 되어 아직 대지의정수로 향기가 배어 있는 몸을 풍덩 바닷물에 던져 땅의 정기를 바다에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토록 오래 전부터 땅과 바다가 입술과입술을 마주하고 열망하던 포옹을 나의 피부 위에서 맺어주어야 한다. 물속에 들어오면 돌연한 전율, 차디차고 캄캄한 끈끈이의 용솟음, 그리고 귀가 먹먹해지는 속으로 빠져든다. 콧물이 흐르고 입 안은 쓰디쓰다 ㅡ수영을 하면 바닷물 밖으로 물이 번질거리는 두팔이 솟아나와 햇빛 속에 금빛으로 물들고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며다시 수면을 친다. 나의 몸 위에 물이 재빨리 미끄러지며 내 두 다리는 물결을 수선스럽게 소유한다ㅡ그리고 문득 아득해진다.
기슭에 나오면 모래 위에 처박히듯 쓰러져 세계의 한 발치로 버림받은 바 되어 살과 뼈의 무거움 속으로 되돌아온다. 햇빛에 어리둥절해진 채 가뭇가뭇 내 두 팔에 눈을 던지면 물이 미끄러지면서 드러나는 물기 걷힌 살갗 위에 금빛의 솜털과 소금가루.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낄 것 없이 사랑할 권리. 이 세상에는 사랑이란 단한 가지뿐이다. 여자의 몸을 껴안는다는 것, 그것은 또한 하늘에서바다로 내려오는 신기한 기쁨의 빛을 자신의 몸에 껴안는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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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이 어두운 방에서 ㅡ갑자기 낯설어진 한 도시의 소음을 들으며ㅡ이 돌연한 잠 깨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모든 것이 내게는 낯설다. 모든 것이, 내게 낯익은 존재 하나 없이. 이 상처를 아물게 해줄 곳 하나 없이.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이 몸짓, 이 미소는 무엇과 어울리는 것인가?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ㅡ다른 곳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세계는 내 마음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하는 알지 못할 풍경에 불과하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방인.


이방인, 내게 모든 것이 낯설다는 것을 고백할 것.
모든 것이 분명해진 지금, 기다릴 것, 그리고 아무것도 에누리하지 말 것. 적어도 침묵과 창조를 완전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할 것. 그 밖의 것은 모두, 그 밖의 것은 모두, 어떤 일이 생기건 상관없다. 《작가수첩 1), 232쪽) - P-1

알베르 카뮈의 세계는 삶의 기쁨과 죽음의 전망, 빛과 가난, 왕국과 적지(謫地), 긍정과 부정 등 ‘안과 겉‘의 양면이 언제나 맞물려 공존하는 세계다. 그는 그 어느 쪽도 은폐하거나 제외하거나 부정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부터 삶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어둡고 비극적인 또 다른 면을 뚜렷하게 의식했다. 삶의 종점인 희망 없는 죽음은 그로 하여금 세상만사의 무의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방인》은 바로 이 허무감의 표현인 동시에 이 허무감 앞에서의 반항을 말해준다.
"우리들 각자는 최대한의 삶과 경험을 쌓아가지만 결국 그 경험의 무용함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느끼고 만다. 무용함의 감정이야말로 그 경험의 가장 심오한 표현인 것이다." 20대 초반이었던 1934~1935년 겨울에 이미 카뮈는 친구 막스 폴 푸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렇다고 해서 비관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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