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사에서의 결혼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香草)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풍경 깊숙이,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내린 슈누아의 시커먼 덩치가 보일락 말락 하더니 이윽고 확고하고 육중한 속도로 털고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가서 웅크려 엎드린다. 벌써 바닷가로 가슴을 열고 있는 마을을 지나 우리는 도착한다. 노랗고 푸른 세계로 들어가면 알제리의 여름의 대지가 향기 자욱하고 매콤한 숨결로 우리를 맞이한다. 도처에 장밋빛 부겐빌레아 꽃이 빌라들의 담 너머로 피어오른다. 뜰 안에는 아직 희미한 붉은빛 - P-1
의 부용화가 꽃잎을 열고 크림처럼 두툼한 차향(茶香) 장미와 길고푸른 붓꽃의 섬세한 꽃잎이 흐드러진다. 돌은 모두 뜨겁게 단다. 미나리아재비꽃빛 버스에서 우리가 내릴 즈음 푸줏간 고기장수들은빨간 자동차를 타고 와서 아침 행상을 돌고 요란한 나팔을 불며 마을 사람들을 부른다. 항구의 왼쪽으로는 마른 돌계단이 유향나무와 금작화들 사이의 폐허로 인도한다. 길은 조그만 등대 앞을 지나서 들의 한복판으로 빠져 들어간다. 벌써부터 그 등대 밑에서는 보라, 노랑, 빨강꽃들 자욱한 살진 식물들이, 요란한 입맞춤 소리를 내면서 바다가 핥아대는 첫번째 바위들 쪽으로 내려 뻗으면서 자란다. 부드러운 바람 속, 얼굴의 한쪽 뺨만을 데워주는 햇빛을 받으며 서서 우리는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주름살 하나 없는 바다를, 그 바다의 빛나는 치열(齒列)이 짓는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폐허의 왕국 속으로아주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관객이 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 P-1
몇 걸음을 옮기면 압생트가 목구멍을 할퀸다. 그것들의 회색빛솜털이 끝간 데 없이 폐허를 뒤덮고 있다. 압생트의 정수(精髓)가 열기 속에서 발효하고 땅에서부터 태양까지 하늘도 취하여 휘청거리게 할 알코올이 이 세상 온누리에 걸쳐 피어오른다. 우리는 사랑과 욕정을 만나기 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우리는 교훈을 찾는 것도 아니요, 위대해지는 데 필요하다는 그 어떤 쓰디쓴 철학을구하는 것도 아니다. 태양과 입맞춤과 야성의 향기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굳이 이곳에 혼자 있으려고 애쓰지않는다. 나는 흔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이곳에 찾아오 - P-1
곤 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랑의 얼굴이 지어 보이는 맑은 미소를 읽어보곤 했다. 여기에 오면 나는 질서나 절도 따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해버린다. 나를 온통 휩싸는 것은 자연과 바다의 저 위대한 무분별의 사랑이다.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는 다시금 돌들이 되어, 인간의 손길로 닦여진 저 반드러운 손패를 이제는 다버리고 자연 속으로 되돌아와 있다. 탕녀(蕩女)인 딸들의 귀향을 위하여 대자연은 꽃들을 아낌없이 피워놓았다. 고대(古代) 광장의 포석들 사이로 향일성(向日性) 식물은 붉고 흰 머리통을 쳐들어 올리고, 붉은 제라늄들은 옛적엔 가옥이요 사원이요 공공 광장이던 자리에 그들의 붉은 피를 쏟아 붓는다. 많은 지식을 쌓아 어떤 이들은신에 이르게 되듯이 기나긴 세월의 풍상으로 이 폐허는 어머니의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에야 마침내 과거가 폐허를 떠나버렸으니, 무너지게 마련인 사물의 중심으로 폐허를 다시 인도해주는 저 심원한 힘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마음 쓸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 P-1
압생트들을 뭉개어 비비며, 폐허를 껴안고 애무하며, 나의 숨결을 세계의 저 소용돌이치는 입김과 맞추어보려고 애쓰며 보낸 시간이 얼마인가! 야생의 향기와 졸음을 몰고 오는 풀벌레들의 연주 속에 파묻혀서 나는 열기로 숨막힐 듯한 저 하늘의 지탱하기 어려운 장엄함에 두 눈과 가슴을 활짝 연다. 본연의 자기가 되는 것, 자신의 심오한 척도를 되찾는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슈누아 언덕의 저 단단한 등줄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가슴은 어떤 이상한 확신으로 차분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나는 숨 - P-1
쉬는 방법을 배우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신을 완성해가는 것이었다. 저 사원에 오르면 원주들이 태양의 운행을 가늠해주고, 그곳에서는마을이 온통 그 희고 발그레한 벽들과 초록빛 베란다들과 함께 굽어보이므로 내가 언덕을 하나씩 하나씩 기어오를 때마다 새로운 보상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는 것이었다. 동쪽 언덕 위에 있는 대성당 역시 그러하였다. 성당에는 이제 오직 벽들만 남아 있을 뿐 그성당 주위에는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땅속에서 파내놓은 석관棺)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간신히 보일락 말락 밖으로 파내져 있는 것이어서 여전히 한 모서리는 땅속에 묻혀있다. 옛날엔 그 석관들에 죽은 자들의 시체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지금은 샐비어와 향꽃무우가 그 속에서 자란다. 생트 살자 대성당은 기독교의 사원이었다. 그러나 빈틈으로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들에게 전해오는 것은 소나무와 시프레가 무성한 언덕들, 혹은 약 20미터에 걸쳐 그 하얀 강아지들을 뒹굴게 하고 있는 바다 이세계의 음악뿐이다. 생트 살자를 떠받들고 있는 언덕은 그 등성이가편편해서 옛 사원의 돌기둥들 사이로 바람은 더욱 드넓게 분다. 아침 햇살 아래 위대한 행복이 누리 속에서 균형을 잡는다. 구태여 신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딱한 사람들이다. 여기서는신들이 잠자리가 되고 하루 해의 흐름 속에서 그 눈금 노릇을 한다. "여기에 붉은 것이, 푸른 것이, 초록빛 나는 것이 있구나. 이것은 바다, 산, 꽃들이구나."라고 나는 쓰고 읽는다. 코밑에다 유향나무 열매들을 으스러뜨려 문지르는 것이 이토록 좋다고 말하면 될 것을구태여 디오니소스에 대하여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땅 위에 살 - P-1
며 이 사물들을 본 사람은 행복하여라." 라는 이 해묵은 찬가를 노래한 것은 데메테르 신이었던가? 그런 신 따위는 나중에 자유스럽게생각하리라 본다는 것. 이 땅 위에서 본다는 것, 아 이 교훈을 어찌잊겠는가? 엘레우시스의 성제(聖)에 있어서도 오직 바라보는 것이면 그만이었다. 여기서조차도 나는 이 세계에 흡족할 만큼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전라의 몸이 되어 아직 대지의정수로 향기가 배어 있는 몸을 풍덩 바닷물에 던져 땅의 정기를 바다에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토록 오래 전부터 땅과 바다가 입술과입술을 마주하고 열망하던 포옹을 나의 피부 위에서 맺어주어야 한다. 물속에 들어오면 돌연한 전율, 차디차고 캄캄한 끈끈이의 용솟음, 그리고 귀가 먹먹해지는 속으로 빠져든다. 콧물이 흐르고 입 안은 쓰디쓰다 ㅡ수영을 하면 바닷물 밖으로 물이 번질거리는 두팔이 솟아나와 햇빛 속에 금빛으로 물들고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며다시 수면을 친다. 나의 몸 위에 물이 재빨리 미끄러지며 내 두 다리는 물결을 수선스럽게 소유한다ㅡ그리고 문득 아득해진다. 기슭에 나오면 모래 위에 처박히듯 쓰러져 세계의 한 발치로 버림받은 바 되어 살과 뼈의 무거움 속으로 되돌아온다. 햇빛에 어리둥절해진 채 가뭇가뭇 내 두 팔에 눈을 던지면 물이 미끄러지면서 드러나는 물기 걷힌 살갗 위에 금빛의 솜털과 소금가루.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낄 것 없이 사랑할 권리. 이 세상에는 사랑이란 단한 가지뿐이다. 여자의 몸을 껴안는다는 것, 그것은 또한 하늘에서바다로 내려오는 신기한 기쁨의 빛을 자신의 몸에 껴안는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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