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의 창조자는 반신반인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실수투성이인 인간들이다. 강박증과 손상된인격을 가진

-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듣고 있다.

-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오래전에 나 자신이 관습적인 비평 같은 것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았다. 내가 떠올린 것을 일깨웠던 은유와 직유는 음악 속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점점부족함을 느꼈다. 더욱이, 가장 간단한 직유마저도 허구의 기미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은유는 한 편의 이야기와장면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장면들은 하나의 곡 혹은 음악가의 특별한 성격에 대한 기록이 되기를 의도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읽게 될 내용은 허구인 동시에 상상적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9

유화는 브리튼 전투나 트라팔가 해전을 묘사할 때마저도 기이하게 고요함을 남긴다. 반면에 사진은 빛뿐만이 아니라 소리까지도 느끼게 한다. 좋은 사진은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들리는 것마저 갖고 있다. 사진은 훌륭할수록 그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최고의 재즈 사진은 사진 속 주인공이 내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버드랜드 무대에 선 쳇 베이커를 찍은 캐럴 리프Carol Reiff의 사진에서 우리는 작은 무대의 프레임 안에 담긴 연주자의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에 깔리는 잡담 소리, 유리잔을 부딪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비슷하게 힌턴의 사진에서는 벤이 신문을 넘기는 소리와피 위가 다리를 꼬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옷 소리를 듣는다.
만약 우리에게 사진을 해독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우리의상상을 계속 펼치거나 사진이 실제로 들려주고 있는 소리를더 이상 들을 수 없을까? 혹은 심지어 최고의 사진이 보여 주고 있는 한순간을 넘어서, 그것이 그전부터 말해 왔거나 지금막 말하려던 점도 보거나 듣지 못하게 되는 걸까? - P14

길 양쪽 들판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들판은 아주 평평해서만약 당신이 차고에 서 있다면 자동차 불빛이 지평선 위의별처럼 보일 것이다. 그 불빛은 한 시간가량 당신을 향해 달려오다가 빨간 미등尾을 보이며 동쪽으로 유령처럼 사라진다. 나지막이 들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빼면 소음은 없었다. 어둠은 너무도 한결같아서 불빛에 흔들리고 있는 뻣뻣한밀밭을 전조등이 큰 날로 획 베어 가듯 스치며 지나갈 때운전자는 비로소 자신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동차는 빛의 경로를 밝히며 길 한쪽의 어둠을 제설기처럼 밀고 나간다. 생각이 스르르 무뎌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끼자 그는 자신을 깨우기 위해 억지로 눈을 깜박이고 다리한쪽을 문질렀다. 그는 일정하게 시속 50마일(시속 80킬로미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차창밖 풍경은 너무도 광활하고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 듯 느껴졌다. 달을 향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우주선처럼・・・・・・  - P19

- 어디 가서 곧 아침 드실 수 있도록 차 세울게요.
- 곧?
- 한 200마일쯤 가서요.
듀크는 웃었다. 그들은 시간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마일로 셌는데, 오줌 한 번 누고 다음에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차를 세울 때까지 종종 지나가게 되는 100마일(약 160킬로미터)을 큰 단위의 거리로 삼고 있었다. 200마일이면 첫 배고픔이밀려오고 뭘 먹으려고 다음에 정차할 때까지의 거리였다. 심지어 50 마일쯤에 한 장소를 만나더라도 그들은 그냥 지나쳐서 달렸다. 정차는 너무도 바라는 일이었지만 멈춰 봤자 원하는 만큼 될 리 없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차를 멈추는 건 한없이 연기되었다.
- 도착하면 깨워 줘.
좌석 끝과 문틈에 그의 모자를 베개 삼아 구겨 넣으면서듀크가 말했다. - P22

어디에서인가부터 들려오는 긴장 때문이었다. 그가 색소폰을 한쪽으로 기울여 솔로로 깊게 빠질 때면, 색소폰이 수직으로부터 점점 더 기울어져 나중에는 마치 플루트처럼 수평으로 들렸다. 사람들은 그가 악기를 들고 있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악기가 점점 더 가벼워져 그로부터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러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는 악기를 잡아 내리려고 하지않았다. - P26

재즈란 한 사람의 독자적인 소리를 만드는 일에 관련한다. 누군가와 다른 길을 발견하고 그다음 날 밤에는 결코 전날 밤과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 것이 재즈다. 반면 군대란 모든사람을 동일하게, 구분할 수 없게, 유사한 모습으로, 비슷한생각으로, 모든 것은 그날과 그다음 날에도 같게 남게 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게 만들기를 원한다. 모든 것은 올바른 각도와 날 선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레스터의 침대 시트는 그의사물함의 금속 앵글처럼 단단히 접혀 있었다. 그들은 병사들의 머리를 나무 블록을 자르듯이 깎아 완전한 사각형을 만들려고 했다. 심지어 군복은 신체를 개조해 사각형 인간을 만들려는 듯 디자인되었다. 곡선과 부드러움이란 없었고 색깔과고요함도 없었다. 2주라는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자신을 갑자기 발견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 P29

하지만 강력한 당신, 바로 군대는 그들을 꺾어 버린다. 그러나 약함, 그것은 군대가 마주할 때 무력해지는 존재다. 왜냐면 그것은 힘에 의존한 대립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나약함을 상대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상대에게 고통이 될 뿐이다. 그리고 영은 그 고통에 휩싸여있었다. - P35

그는 이야기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작은 법정은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뻣뻣한 자세의 청중이었지만 그들은 그의 모든 말에 귀를기울였다. 마치 솔로연주처럼 그것은 한 편의 이야기여야 했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노래여야 했다. 그가 말하는 것에 사람들이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면 그의 말은 더욱 느려지고 조용해지고 뜸을 들이다가 문장 중간에서 멈춰 섰다. 그의목소리가 부르는 노래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설득했다. 갑자기 청중의 집중은 유리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얼음통에서 달그락거리며 얼음을 퍼내는 소리,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이야기 소리가 들릴 것처럼 영에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 P49

죽음은 더 이상 변방에 있지 않았다. 그가 종종 침대에서창가로 걸어오는 구간에서, 그가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못하는 그 순간에도 떠다니고 있는 무엇이었다. 가끔 자신이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기를 꼬집는 사람처럼영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기 위해 맥박을 느끼려고 했다. 보통 그는 자신의 맥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손목에서도, 가슴에서도, 목에서도. 더 귀를 기울일 때면 먼 곳에서 열리고 있는 장례식의 낮은 북소리 혹은 지하에 묻힌 누군가가눅눅한 땅바닥을 두드리는 것 같은 둔중하고 느린 고동 소리가 들렸다. - P54

밴드 멤버 중에 누군가가 솔로를 연주할 때면 그는 일어나서춤을 추었다. 조용하게 발장단을 맞추고 손가락을 튕기다가무릎과 팔꿈치를 들어 올려 돌리고, 머리를 흔들고, 팔을 편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늘 금세 넘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 지점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일부러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휘청거리며 피아노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가 춤을 출때면 웃었는데 그것은 센 술을 처음 맛본 곰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그에게 가장 적절한 반응이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도 재미있었으며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뱉는 말은 대부분 농담이었다. 그의 춤은일종의 지휘였으며 음악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방식이었다. 그는 곡의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그 음악은 자신의 일부였으며 그것을 내면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목재를 드릴로 파고드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작업해 들어갔다.  - P69

멍크의 음악을 정확히 듣기 위해서는 그를 봐야 한다. 그의밴드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편성이 어떻든 간에 그의 몸이다. 실제로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악기였으며 피아노는 그가 원하는 비율과 양으로 그의 몸이 뿜어내는 소리의 수단일 뿐이다. 몸만 빼놓고 모든 것을지운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상상할 수있다. 그의 발은 하이해트hi-hat‘를 계속 움직이고 있으며 양팔은 서로 엇갈리며 움직인다. 그는 육체의 음악의 모든 여백을 채워 넣고 있다. 그를 보지 않으면 그 여백은 빈 공간처럼들리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심지어 피아노 독주도 사중주처럼 꽉 찬 소리를 얻는다. 눈은 귀가 놓친 것을 듣는다. - P70

재즈에는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이라는 환상이 존재하고, 멍크는 마치 이전에 피아노를 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연주했다. 발꿈치를 이용해 모든 각도에서 건반을 내려치고 마치카드 한 묶음을 다루듯이 건반을 훑어버리거나, 만지기에는건반이 너무 뜨겁다는 듯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그의 손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처럼 건반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클래식 피아노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는 잘못된 연주다. 모든 것은 예상과는 달리 구부러지고 비스듬한 모양이었다. 그가 만약 베토벤을 연주했다면 악보를 정확하게 지키면서도건반을 치는 방식, 손가락이 건반에 닿는 각도를 불안정하게함으로써 그 곡이 스윙하게 만들고 곡의 내부를 뒤집어 멍크 - P71

연주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곡이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멍크는 제한된 연주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것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기교가 그에게 제약이 되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 누구도 멍크의 작품을 그가 연주하듯이 치지못했으며 (피아노를 정석으로 연주하면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한온갖 것들이 그의 작품에 존재한다), 그만큼 그는 누구보다도기교적이었다. 공평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할 줄 몰랐으니까.
그는 마치 방금 전에 친 음에 놀랐다는 듯이 모든 음을연주했다. 마치 건반 위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모든 음은 오류를 수정하는 것 같았고, 그 타건 역시 차례대로 수정되어야할 오류가 되어 곡은 결코 의도했던 방식으로 끝나지 않을 듯보였다.  - P72

그의 손가락은 늘 자기자신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것은 멍크의 독특한 논리였다. 다시말해 누군가가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음을 연주하면 그 곡은처음 예상과는 뒤바뀐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곡의 핵심에서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뒤집혀 잘못 짚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일은 꼼지락거리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과 같았으며, 그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 P73

멍크의 음악이 늘 스스로 무너질 듯 들리는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것같이 보이는 다리의 모습은 흥분을 안겨 준다.
그의 음악을 그저 기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발하다는 말로는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기발하다는 것은 낮은 판돈이다. 하지만 멍크는 높은 판돈을 건다. 그의 음악은 위험을 감수했으며 기발하다는 것에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색다른 점을 느낄 때 기발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멍크의 음악보다 기발한 것은 보기드물다. 멍크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자기 요구와 논리로 만들어 놓은 원칙의 수준에 올려놓았다. - P74

사물들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 하루를 지내는 문법과 사건들을 이어 주는 구문론은 몸땅 무너져 있었다. 단어와 행동 사이의 관계를 잊어버려 문을통해 들어가는 일 같은 간단한 것조차도 알지 못해 아파트의방들은 미로가 되었다. 그는 사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기억하지 못해, 사물과 그 기능이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방에 들어갈 때는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다.  - P78

마지못해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그는 넓게 트인 강물의 줄기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보기 위해 허드슨강을 따라 걸었다. 허기진 바람이 담배 연기를 냉큼 집어삼켰다. 멍크는 델리를, 또한 그녀를 위해 쓰고 있으며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개인적인 피아노 작품을 떠올렸다. 쓰기 시작하면 그 곡은 곧 마무리 될 것이다 그는 아무런 즉흥 연주도 없이 무반주로, 쓴그대로 이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는 빌리가 변하는 것을원치 않았고 그녀를 위한 이 곡도 바뀌지 않기를 원했다. 강건너편을 바라보자 황갈색 석양이 튜브에서 짜낸 물감처럼강과 하늘이 맞닿은 선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몇 분 동안 하늘은 빛이 사라질때까지 어두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 P84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은 스스로가 참을 만한 절망이 반복되는일상의 일부분, 일상 속에 녹아든 모든 시간의 압축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후회할 수도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 그때 모든 남자가 오직 바라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설사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라도 자신을 떠올리는 누군가의 존재입니다. 한 여인이 눅눅하게 젖어 내려가는 도시를 느끼면서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라디오의 음악을 들을 때 그녀는 노란빛으로 물든 창문 너머에 존재하는 삶들을 바라보며 상상합니다. 싱크대 앞에 선 한남자를, 텔레비전 앞에 모인 한 가족을, 커튼을 치는 연인을,
라디오에서 나오는 같은 곡을 들으며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말이죠. - P98

그가 느끼고, 만지고 본 모든 것에 관해 오케스트라로 쓴 일대기였다. 그는 소리의 작가였으며 그가 작업 중-인 것은 거대한 음악적 소설이었다. 그것은 늘 보태져야 할것이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에 관한, 그 곡을 연주하고 있는 밴드의 동료들에 관한 것이었다…………비는 잠시 잦아들다가 곧이어 전보다도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앞창으로 내다보는 것은 폭포수를 통해바깥을 보는 것과 같았다. 바람은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해리는 운전대를 꽉 잡으면서듀크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태풍이 그의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하면서. - P101

사진이란 시간의 최면에 빠진 이미지야. 그 이미지가 최면에서 깨어나 되살아나길 기다린다는 것은 자네와 방에 앉아서 자네가 최면에서 깨어나 움직이고 말하기를 기다리는것과 같지. 마치 자네가 있는 곳에서 여기저기에 알아보고 자네와 함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
버드, 버드……? 내 말 그리고 자네 말 모두를 내가 하길원한다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아마도 듣고만 있는 자네를 보면서 난 뭔가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자네 삶의 고통과 <망각Oblivion>, <통곡Wail>, <환각Hallucination>, <약간 미친Un Poco Loco>과 같은 곡의 활기찬 음악적 낙관주의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 난 자네가 연주한 모든 곡이 자네 삶에 관한 고통스러운 소설로부터 뜯어낸 한 페이지였으면 해. 난 <유리 장벽>이 우울 속에서 걷다Walking in the Blue」의 자네 판본이었으면 하거든. 물론 이 곡은피아노 소품 형태로 얼어붙은 교향곡처럼 들리지만 말이야. - P106

파리에서 자네는 반쯤 빈 클럽에서 연주했고 때로는 딴 데가 있는 사람처럼 연주했어. 심지어 연주할 때 자네는 등을다쳐서 이전과는 같은 반사 신경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운동선수처럼 행동했지. 늘 손가락을 건반에 닿게 하려고 애써야 하는 상황을 의식하면서 말이야. 너무 많은 집중은 기교에는 도움을 주지만 재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위해서 남겨놔야 하는 것에는 적절하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말이야. - P123

당신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완벽하게 진심 어린 순간을 느끼며 마음이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할때, 그와 악수를 나누며 그를 쳐다봤을 때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솟구쳐 양쪽 볼에는 달팽이가 지나간 듯한 눈물 자국이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열차가 서서히 출발할 때 당신은 그에게 다시 손을 흔들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그를 보았을 것이다. 때론냅킨, 손수건, 테이블 덮개 역할을 하는 양복 한 벌을 입고서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는 거구의 술 취한 남자를. - P138

그는 외로움을 마치 악기 케이스처럼 짊어지고 다녔다. 외로움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팬들과의 대화도 끝나면 우연히 그 곁을 지나던 사람들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바에 앉아 모두가 떠난 시간까지 홀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 열쇠를 찾고, 조용한 자물쇠 구멍 주변을 헤매며 긁다가, 결국 문을 열고 그가 떠나던 때와 똑같은상태로 머물러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소파 위에 색소폰 케이스를 던져 놓았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그는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가 커피를끓일 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음료를 만들 때 거품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싶은 순간을 늘 만났다.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작가의 소설을 다 읽을 수 없기에 ‘젊은 작가상 작품집‘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고 매년 읽게 된다. 새롭게 만나거나 다시 되돌아보는 작가들의 고군분투와 치열함을 응원하고 싶고, 축복하고 싶어진다. 한 편 한 편으로 소설의 세계가 확장 되어가는 것이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 두 시. 내 앞의 길은 텅 비어 있었고, 하늘은 검지만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아기가 자신을 창조하고 안식처가 되어주었으며 이제부터는 자신을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해줄 몸에서 고픈 배를 채우려 젖을 빠는 모습을 떠올렸고,
아기를 위한 기도를 읊조렸고, 변화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우주에게 속삭였다. 이 아기가 가득 채워지게 해달라고.

[욕구들] 마지막 페이지

내 어머니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기겁했을 테지만,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고,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심지어 어머니가 나를 좋아하고 기특해하고 가깝게 느끼는 것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지만, 생애의 많은 부분을 나는 우리 사이에 몇 가지 배선이 초기부터 어긋났고 중추적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유지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닌 채 살아왔다. 어머니와 나의 언니 오빠 사이에는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나는 체질적으로도 기질적으로도 아버지와 더 비슷했고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와 더 잘 맞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내가 매우 결정적인 측면에서 어머니의 원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나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이얼마나 확실한지 혹은 안정적인지 결코 확신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어머니의 대화에는 언니와 어머니의 대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껄끄러움이 있었고, 우리 둘 사이에는 서로 진정으로 잘 맞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듯 약간이지만 조심스러워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수년간 나는 어머니와함께 있을 때면 내향적이고 화가 나 있고 어두운, 마치 질풍노도를 겪는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 P328

분노는 식별하기가 쉽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이를 악물게되고 피가 뜨거워진다. 화를 내고 침을 뱉고 싶어진다. 나는여러 해 동안 어머니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근원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 사이의 거리가 나를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씁쓸한 분노로 가득 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하게 된것, 혹은 다가가게 된 것이 있다. 프로비던스에서 만난 그 8월오후 같은 날들을 돌이켜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들춰본 적도없었던 그것은 그 분노 아래 깊이 흐르고 있던 슬픔이었고, 너무나 격렬해서 평범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는 연결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소리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울부짖음으로, 더없이 길고 더없이 외로운 곡소리로 나왔을 것이다. - P329

유년기의 그 상실들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허기는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 상실과 허기에는 혼란이 거부가, 혹은 상처가 얼마나 섞여 있었을까?
그리고 그 후 자아의 고갱이는 얼마나 결핍되고, 얼마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얼마나 슬픔과 자기혐오로 가득한 상태가 되었을까? 본질적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정도에 관한 답이며, 또한 강박적으로 훔치는 이와 자기를 베는 이와 억지로 토하는 이, 그리고 그보다 덜 극단적인 방식이지만 역시나 자신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차이 역시 정도의 차이다. - P334

재닛과 캐슬린은 표현 수단은 다르지만 표현하는 감정은 동일하다. 그것은 감정들이 자신을 너무 가득 채우고 있다는 느낌,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절실히필요하고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감정이 너무 크다는 느낌, 그러므로 그 느낌들을 방출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애초에 그런느낌을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을 벌하려는 강박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말할 것도 없이 분노가 있다. 당신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너무나많은 필요를 느끼게 했으면서 그 필요를 채워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엇이었든 필요를 느꼈던 자신에 대한 분노. 그러나 그 분노 아래에는 가장 강력한 슬픔도 자리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아이의 슬픔,  - P335

알리는 것. 물론 이것이 굶기의 목표이며, 너무나 조심스레감춰져 있어서 자기 자신조차 모를 수 있는 숨겨진 의제다. 자해하는 이는 자기 존재의 중심에 있는 고통을 눈에 보이게 만들기 위해 칼로 긋는다. 거식증 환자는 자신의 허기와 취약성을 분명히 보이게 만들기 위해 굶는다. 극단적인 이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고, 이게 내가 느끼는 것이고,
이게 내가 필요한 걸 얻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그들은가장 핵심적인 인간의 갈망에, 그러니까 인정받고 알려지고자하는 욕망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서 또한 당신이 어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 서라운드 입체음향으로 목소리를 부여한다. 또한 그 갈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뿌리를 내리는 슬픔에도. - P338

다른 사람들이 믿음직하게 그 필요를 충족해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허기는 참을 수 있는 것이 되고 분노와 막막함은 견디기 쉬워질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은 안전하다고, 당신이 알려져 있다고, 혹은 최소한 알려질 수 있다고 느낀다. 반대로 만약 그런초기의 조율과 안심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러한 안전함과 인정의 감각을 내면화하지 못했다면, 허기는 더욱 까다로운 문제가 되고, 분노와 막막함은 표면에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가고, 슬픔의 바다는 더 넓고 깊어진다. - P339

무언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허기가 우리를 압도할 때, 허기가 언어의 체계화 역량을 초과할 때다. 언어가 제 역할을 하지못할 때 우리는 다시 몸에 의지하게 되고, 우리가 느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몸의 행동과 강박과 충동을 허락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여자는 손으로 초코바 하나를 감싸 쥔다. 자기 팔의 여린 피부에서 피를 뽑아낸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상징으로재편성된 사물과 신체 부위와 음식의 세계들이 세계들이우리 문화에서 여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할당된 세계들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속에는 여성의 슬픔의 언어 전체가 감춰져 있다. 이 언어가 평범한 언어를 대신하고, 평범한 언어에대한 절망을 드러낸다.  - P339

철학자 헤겔은 욕망을 결여, 부재로 상정했다. 라캉 역시 이관념을 한층 더 전개하여, 욕망을 이전에 유쾌한 것 혹은 만족스러운 것으로 경험했으나 이후 상실하고 만 무엇에 대한 갈망으로 묘사했다. 두 사람 다 불완전함, 빠져 있는 무엇, 초기에 발생하고 이후 결코 회복되지 않은 어떤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이 욕망의 본질적 부분이라 믿었다. 그 ‘무엇‘이 묻혀버린 기억이든, 아니면 한때 경험했으나 이제는 놓쳐버린 사랑이든 인정이든 안전함이든, 아니면 그런 경험에 대한 결코 충족된 적 없는 소망이든 간에 그것은 우리를 계속 쫓아다니며괴롭히고, 우리 정신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고, 영원히 순환하는 허기의 회로를 만든다.  - P340

하지만 균형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여자들에게는 유난히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는 1999년에 완전한 여성』을 출간한 뒤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프로그램 <더 커넥션>과 한 인터뷰에서자신이 점점 더 자주 목격하게 된 어떤 광경을 묘사했다. 그것은 울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리던 눈물,
화장실에서 나오던 어떤 여자의 울어서 빨갛게 된 눈, 영화관에서 클리넥스 티슈를 한 움큼 쥐고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던여자 우는 것은 언제나 사적인 일이며, 실컷 우는 것은 남몰래 하는 일이지만, 그리어는 우는 행위의 배후에 있는 슬픔이개인적 현상일 뿐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고 보았고, 그것은수십 년에 걸친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여전히 여자 - P341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느냐고물을 때면 나는 매우 축약적이고 반어적인 답변을 내밀었다.
"아, 여자들과 식욕에 관한 책이에요. 알잖아요. 뭐, 불안, 죄책감, 자기혐오, 소외, 슬픔, 그런 얘기요." 이 대답은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사람들을 질리게 하고, 이어질 질문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 같았다는 점에서는 (나는 프로젝트 진행 중에 내 작업에 관해 말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지나자 그런 대답을 반복하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무엇보다저 말이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더 어둡고 냉소적으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욕구-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만족시키는 일 -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엄청나게 고군분투하며, - P347

욕구가 고통스러운 감정의 조류를 헤쳐나가야 하는 장거리 수영인 것은 맞지만, 만약 내가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다른 조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면, 즉 어느 정도 희망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 주제를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내가 욕구라는 주제에 관해 보인 그 모든 어두운아이러니와, 한 여자가 만족을 향해 묵묵히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동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걸림돌에 관한 나의 그 모든확신에도 불구하고, 내 책상 위에는 작은 희망의 토템들도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종잇조각, 인터뷰 원고, 자료 폴더, 컴퓨터 파일 들이, 고통의 조류를 거슬러 헤엄쳐 마침내 반대편 해안에 도착한 여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과 그들이 해안 기슭에지은 새로운 욕망의 제단들이. - P348

또한 힘겹게 이뤄낸 변화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희망에 이르는 과정이 갑작스럽거나 극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며, 자아의 - 새로워지고 향상되고 마침내 충만되는 수리가 우리가원하는 만큼, 혹은 소비주의 문화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암시하는 만큼 깔끔하게 성취되거나 온전하게 실현되는 일은 결코 없다. 희망은 의지와 끈기와 믿음에 관한 것이고, 대개 감지하기도 어려울 만큼 너무나 점진적인 개인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에 관한 것이며, 사람이 일상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고군분투, 그 진부하고 혹독한 영광에 관한 것이다.  - P349

흑백논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는 식욕 관련 강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워야 하는 방법이다. 초점을내면으로 (혹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천국 쪽으로) 돌리고, 자아를고요하게 만들고, 허기에 단순히 반응하기보다 허기의 진짜근원을 파악하는 법을 배울 것. 그과정에서 더 영양가 높은것으로, 그러니까 관계는 아름다움이는 신이든, 당신이 채움을어떻게 정의하든, 무엇이든 당신을 채워주는 것으로 그 공허의 일부를 채우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 P352

우리가 원하는 것, 중요함이라고 표시된 선반에 들어 있는것은 물론 연결이고 사랑이다. 인간 허기의 가장 깊은 근원에이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억제의 상자들을 조각조각 박살 낼 수 있는도구는, 공허함을 산산조각 내고 그 밑에 묻혀 있는 희망을 드러낼 수 있는 커다란 망치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사랑-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안고 안기고자 하는 사랑받아야 하는입장에서 당신이 한 경험이 훼손되었거나 불완전했더라도 사랑을 주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허기에 항상 붙어 있는 상수이며, 거식증 환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을 잇는 연결고리이고, 음식을, 섹스를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노력 뒤에 자리한 필요와 간절함의 끊임없는 박동이다. 우리는 이 광막한 느낌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묻혀 있던 갈망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일종의 영적 갈망의 한 형태로 볼수도 있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해는 이해에 그칠 뿐이다.  - P357

그때의 나는 모든 집착에 따라붙는 전형적인 착각, 즉 욕망의 대상을 문제가 아닌 해결책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체중과 먹는 일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는 따라서 해결될 것이며 평화로운 상태를 찾게 될 것이고 엄밀히 말해 내가 음식을 먹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먹어도되는 자유는 느끼게 될 거라는 착각.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게 딱 맞는 남자가 나를 사랑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평화를 찾게 될 거라는 착각. 내가 세련되고 성숙하고 침착하게 보일 수 있다면, 그러면 나는 세련되고 성숙하고 침착한 사람이 될 거라는 착각. 내 인생을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형태와 형식에 끼워 맞출 수 있다면, 그러면 나도 정상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문제들은 해결될 거라는 착각. 이런 착각의 잡탕에다음주까지 더하니 명료한 정신과 변화의 가능성은 모두최소한도로 줄어들었고, 내가 얻은 건 망상의 회전목마, 끝없이 맴도는 서글픈 악순환의 세월이었다. - P361

작은 걸음마들은 아무리 자신 없어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고요점을 벗어난 것처럼 보여도, 변화로는 아니라도 최소한 정보로는 이끌어준다. 걸음마를 내딛는 것은 고통스럽다. 멀쩡한한 끼를 다 먹으면 당신이 얼룩처럼, 암소처럼 무가치하고 역겹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당신에게는 들여다볼 무언가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검토해야 할 감정들이 남겨진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러면 집에 혼자 앉아 갈망과 공포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 불편한 감정을 참아낼 수 있다는 것, 그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배우게 된다. - P363

내 생각에 열쇠는 통찰보다는 기꺼이 해보겠다는 마음과 더깊은 관계가 있고, 통찰은 기꺼이 하려는 마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쓸모가 없다. 내 식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면 나는 아흔 살이 되어서도 상담치료를 받고 있었을 것이고, 그때까지도 가족과 과거에 관해 한탄조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족시켜야 할 필요와 인정받아야 할 저 필요, 이 작은 상처와 저작은 실망, 누구, 무엇, 어디, 언제, 왜, 왜 나야.
기꺼이 할 마음-기꺼이 실험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끌을 집어 들고 바위와 저항을 쪼아나가는 일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는 상당히 공허할 수 있으며, 그런 서사에는 행위가 없고 갈등도 별로 없으며극도로 희미하게 남은 플롯의 윤곽만 있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은 통찰의 맷돌에 넣고 돌릴 곡물이다.  - P364

당신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고저 서사의 빈틈을 채우거나 서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은 막막함에 대한 해독제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믿음의 낟알이다. 당신은 아기처럼 작은 한 걸음을 떼고, 또 한 걸음을 옮긴다. 이 작은 벼랑에서 뛰어내리고 저 작은 벼랑에서 뛰어내린다. 그 일을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하면 그러는 사이 어디쯤에선가 자신이 공허함과 절망의 순간들을 지나 살아남을 수 있음을, 고통을 기쁨으로 상쇄할 수 있음을, 공포 대신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하기시작한다. 이 믿음을 영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아니든, 갓 생겨나기 시작한 이 믿음을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든 호의적인 우주나 어떤 더 높은 힘이나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든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믿음이란 당신이 힘든 밤들을 견디게 도와주고 좋은 밤들을 음미하게 도와주는 신비로운 감정의 저수지를 의미한다. 이것이 있으면허기가 나를 죽이지 않으리라는 걸, 나에게 필요한 도움과 영양을 실제로 내가 찾아낼 수 있다는 걸, 내가 괜찮으리라는 걸마음속에서부터 믿을 수 있다.
- P365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 - P370

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아주 잠깐의 순간들이. - P371

진통은 다섯 차례 왔고 그때마다 언니는 열심히 힘을 주었으며 산과 의사의 격려가-그거예요, 잘하고 있어요ㅡ쏟아졌고 그러자 경이롭게도 작은 사람이, 추상에서 갑자기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된 특별한 존재가 나타났다. 나는언니의 왼쪽 무릎 옆에 서서 언니가 내 손바닥을 밀며 힘을줄 수 있도록 언니의 왼발을 잡고 있었다. 마지막 진통과 밀어내기를 하는 동안 나는 아래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 몇 초사이에 작고 둥근 아기 머리통의 곡선이 나타났고, 그런 다음갑자기 어깨가 나타났고, 그런 다음 아주 작은 몸 전체가 아직도 태아 자세로 말린 채 작디작은 주먹을 작디작은 가슴에 꼭 - P375

붙인 채 나타났다. 한 명의 인간이, 겨우 몇 초 더 탯줄로 엄마와 붙어 있다가 이내 탯줄이 잘리며 분리되고 스스로 숨을 쉬게 되자 입을 열어 최초의 숨 가쁜 흐느낌을 뱉어냈다.
나중에 나는 친구들에게 이 경험을 두고 숨 막히게 감격적인 기적과 드라마 <엑스파일>의 한 에피소드를 섞어놓은 것같았다고 묘사했다. 글자 그대로 그렇게 밀어내는 일과 그렇게 피를 보는 일, 그리고 분홍빛이 돌기 전까지는 섬뜩한 회색빛을 띠던 아기의 피부에는 거의 원초적으로 영화적인 뭔가가있었다. 자연 세계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사는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일은 대부분 공포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고, 실제 분만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나는 마치 영화를볼 때처럼 내가 그 장면에 속해 있지 않은 듯한 어떤 분리의감각을 느꼈고, 온몸을 때리는 충격과 함께 일순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생각도 스쳤다.  - P376

그러나 바로 다음 몇 초야말로 내가 정말로 기억하고 싶은순간이다. 탄생이란 정말로 자연의 가장 특별한 위업이기 때문이고, 내가 여성의 몸에 대해 그때만큼 깊은 존경심이나 경외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창조하는 몸. 생명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그 생명을 자신의 생명줄과 수액으로 - P376

된 망으로 품고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하고, 이어서 세상으로내보내 인간의 삶 자체를 생성하는 데 필요한 정교한 지식과기가 막힌 능력을 갖추고 있는 여자의 몸. 나의 언니가 대단한집중력과 우아함으로 이 존재를 세상에 내어놓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자궁을 벗어난 최초의 순간의 아기 - 작지만완벽한 모양을 갖춘 귀와 손톱과 발가락, 그 완벽하게 복제된존재를 지켜보는 일.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 새로운 생명의약동하는 힘과 잠재력을 느끼고, 인류 자체의 잠재력을, 세상에 나가 암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100미터 달리기 신기록을 세우거나 아니면 한 인간으로서 기쁨과 슬픔과 내밀한 고군분투의 삶을 살아갈 잠재력을 느끼는 일. 우리 각자가 수많은 타인들의 삶에 닿아 그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 그리고 이 기적이 모두 한 여자의 몸 안에서 시작되어 한 여자의 몸에서 솟아나는일이라는, 숨 막히게 감동적인 사실. - P377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욕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 의식과 기쁨을 품고 자기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여자의 능력은 진보의 표지인 동시에 진보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얼마나 허기져 있는가? 얼마나채워져 있는가?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가? 집으로 향하는 동안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의 몸으로 방금 새로운 생명을 낳았고 이제 그 생명을 먹이고 어를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쌍둥이 언니에 관해, 모든 여자들과 그들의 몸에 관해, 우리 중얼마나 많은 이들이 몸을 축복이나 선물이 아니라 적이자 수치의 장소로 여기고 있는지에 관해,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문득 자신의 엉덩이와 허벅지와 가슴을 느끼고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절망과 질색하는 마음에 관해, 그 몸들이 과소평가되고 망각되고 무시되고 가장 잔인한 멸시의 원천이 되고마는 경악스러운 가능성의 강도에 관해.
- P3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럴라인 냅Caroline Knapp, 1959~2002

우리 시대 여성의 내면을 치열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한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1959년 저명한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이자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보스턴 비즈니스 저널> <보스턴 피닉스> <살롱>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흔들었던 욕구, 의존, 강박 등을 정직하게 드러낸 글쓰기로 많은 독자들과 평단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2년 4월, 마흔둘이라는 이른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은 뒤 오랜 연인이었던 사진작가 마크 모렐리와 결혼했으며 그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년 가까이 시달린 알코올의존증을 고백한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반려견에 대한 깊은 애착에 대해 성찰한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생전 칼럼을 묶은 유고 에세이《명랑한 은둔자》 등의 책을 남겼다. 《욕구들》은 저자가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에 대해 유려하게 써나간 생애 마지막 책으로, 암 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탈고했으며 그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그가 써온 글 가운데서도 특별히 밀도 높은성찰의 시선이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더없이 깊은 인상을남겼다.


캐럴라인 냅Caroline Knapp지적이고 유려한 회고록 성격의 에세이를 쓴 작가.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1981년 브라운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살면서 몇몇 끔찍한 중독에 빠진 경험이 있는데, 삶의 압박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술로, 그런 자기 자신을 호되게 통제하고 싶을 땐 음식을 거부했다. 이런 자신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솔직하게, 우아하게, 또렷하게 고백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Drinking》은 알코올 중독의 삶을, 《욕구들Appetites》은다이어트 강박증과 섭식장애에 관한 기록이다. 《개와 나Pack of Two》는 개를 향한 지나친 애착을 다룬다. 자신을 직시하며 그 감정과 생각의 결을 낱낱이 드러내는 글쓰기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2002년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캐럴라인 냅은 이 책 《명랑한 은둔자》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했고,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받아들이면서 결국 삶의 명랑을 깨달은 저자로부터, 우리는 만난적 없지만 오래 이어온 듯한 우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재능이다.

흔히 말하듯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럼에도 아주 결정적인 면에서 나는 페미니즘의 배를 완전히 놓쳤고, 내 생각에 페미니즘의 여정에서 진정으로 변화를 일으킨 국민들로 여겨지는 거대한 변화들을 놓쳤다. 이런 생각은 2세대 페미니즘 전성기에대한 낭만적 가정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내가 1978년이아니라 1968년에 대학생이 되었다면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며, 나 자신과 다른 여자들에 대해 더 급진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나의 개인적 의식과 정치적 의식이더욱 정교하게 엮였을 것이라는, 어쩌면 순진할 수도 있는 믿음을 항상 품고 있었다. 어쨌든 2세대 페미니즘은 여러 측면에서 욕구에 관한 자유, 취할 자유ㅡ성적 자유, 법적 자유, 경제적 자유, 남자들만큼 저돌적으로 야심을 펼치고 권리를 주장할 자유, 온갖 다양한 형태의 허기를 가질 자유와 그 허기를 충족할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었으니 말이다.  - P242

나는 시대정신에 잘 휩쓸리는 부류인데, 아마 그런 특징이 이 낭만적인 생각의 바탕이 된 것 같다. 만약 내가 사랑의 여름에 스물한 살이었다면, 나는 우드스톡에 가고 헤이트애시베리로 이사하고 행진하고 시위하면서 나 자신, 내 몸, 내 욕구에 대해 더건강한 관점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나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실재하는 외부의 적들, ‘기득권층‘, 가부장제, 베트남전쟁에 맞 - P242

서 싸우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저 질문들은 페미니즘이 어디까지도달했는지, 여성의 허기와 관련해 페미니즘 운동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유를 향한 투쟁이 우리 세대 여자들에게 욕구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고 바꾸지 못했는지에 관한질문이다. 내가 페미니즘의 전형적인 상속인이라는 것, 2세대페미니즘 행동주의가 수많은 방식의 가능성들에 대한 나의 의식을 형성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모든 종류의 허기들을 충족할 수 있는 지적 수단과 실질적 수단 모두를 제공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미니즘이 지닌 변화의 잠재력은 어째선지 내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페미니즘의 집단적이고 급진적힘은 끝내 내게 몸에 밴 감각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프로비던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동안 나는 특히 여성 문제에끌렸다. 차별과 낙태, 여성이 당하는 폭력에 관한 글을 썼다.
여성의 건강, 언론에 나타나는 성차별, 문화적 이미지에 관해 - P243

서도 썼다. 심지어 나는 식사장애가 있는 (다른) 여자들에 관한 글도 썼다. 그런데 사적인 영역에서는 조용히 굶으며 나를
‘반쯤 죽음으로 몰고 갔다. 바로 이런 것이다. 지적인 신념은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뿌리는 없다는 것. 페미니즘의힘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몸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 - P244

나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핵심을 놓쳤다는 이런 느낌을 주로 다른 이들과의 차이에서 알아차렸다. 친구들 중 나보다10~15세 연상인 여자들, 특히 대학 시절과 초기 성인기를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대규모 활동가 공동체가 있는 도시에서 보낸 이들은 거의 몸의 세포까지 페미니즘의 신념들을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바로 이렇게 극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내적인 변화가 혁명적 변화의정수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내게는 너무나 부럽게 느껴지는 육체적 느낌이 배어 있다.  - P244

문화가 우리 삶에 그토록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유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그와 같은 정보 공백 속으로, 섹스가무엇인지 혹은 어떤 것일 수 있는지에 관한 솔직한 논의의 부재가 남겨놓은 구멍 속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새어나온 메시지들이 스며들면서 우리에게 점점 더 명료하게 보이고들리게 되었다. 바로 그때 문화는 어조와 초점을 대대적으로바꿀 태세를 하고 있었고, 유난히 시각적이고 강렬한 종류의소비주의가 부상하고 있었으며, 쏜살같은 시각적 해일이 덩치를 불려가고 있었으니, 우리는 바로 그런 것들을 붙잡고 매달 - P249

린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이해해보겠다고 황급히 광고와 영화와 텔레비전에 나온 이미지들을 흡수했는데, 이 이미지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적 무력함에 대한 시각적 선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미성숙한 육체와 초연한 눈빛을 지닌 젊은 여자들, 가장 상품화된 방식과 가장 유체 이탈적인 방식으로, 극도로 성적인 존재로만 그려진 여자들,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고, 그러면 남자아이들은 우리의 신체 부위들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미모와 가슴 크기를 은밀히 측정하고, 우리의 순위를 매겼다.  - P250

내가 고등학생이 될 즈음 만개한 성혁명이 나를 포함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제공한 도구 상자는 속이 절반쯤 비어 있었던 것 같다. 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그에 부합하는 ‘성적인 존재‘라는 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의식은 별로 없는 상태. 방문은 열렸지만 방안의 조명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 이는 ‘함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식의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던 성혁명과, 운동의 방향이 생식의 자유와 성적 건강이라는 더욱 구체적인 영역으로 기울어 있던 여성운동 사이의 (실제로 상당한) 차이에서 온 부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 P256

우리가 선택되는 대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음식이나 옷에 대한 욕구를 이야기할 때처럼 우리의 성적욕구들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할 수 있도록 양육되었다면, 신체 부위나 가슴의 모양이나 허벅지 사이즈 같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적인 몸 자체를, 그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만져질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검토하고 이해하도록 격려받았다면 우리의 느낌은 어땠을까? 이런 종류의 사고 틀은 당시 우리 의식 안에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 중 다수에게 30대나 40대 ㅡ 한 여자의 인생에서 행위 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오랜 세월의 분투 끝에 마침내 뼛속에 자리잡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계속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 P257

그 시절에 페미니즘 성정치 이론을 내가 접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집단의식 속에서 남자들의 몸이 여자들의 몸을 가려왔던 길고도 깊은 역사가 있었음을, 수십 년 동안 성적 ‘정상 상태‘에 관한 문화적 정의와의학적 정의 모두 전적으로 남성의 성기능, 남성의 욕구, 남성의 체질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음을 판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P258

나의 몸에 대해 처음부터 두려움과 단절감을 느꼈던 나는거식증이 지닌 이런 측면을 매우 환영했고, 거식증이 주는 차가운 금속 같은 무성성의 감각을 필요로 하며 부추겼던 것 같다. 거식증을 앓던 몇 년 동안 나는 달리기를 했다. 3~5킬로미터씩 달리는 일에는 마치 강제 행진처럼 의무적이고 징벌적인 느낌이 있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운동화 끈을 묶고서동부 프로비던스 거리들을 달리기 시작해 나를 밀고 나아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의지의 시험이었고, 온몸은 긴장한 채 달리기에 저항했으며, 성냥 같은 두 다리는 너무나도 멈추고 싶어했다. 내가 달리던 동네는 사랑스러운 곳이었지만 고요했고 - P267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많았으며 우아한 빅토리아풍 건물들이줄지어 서 있었다-나는 그런 점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풍경에서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두 발과 빼빼 마른 허벅지에 주의를 집중하고 펌프질하듯 다리를 옮기고 옮기고 또옮기며 칼로리만을 생각했다. 1.5킬로미터면 100칼로리를 태웠으니 요거트 반 통 분량이야, 3킬로미터니 200, 점심 식사에맞먹는 칼로리군. 내 몸은 기계였다. 아니 적어도 나는 내 몸이 기계이길 원했다. 꼼꼼하게 검토하고 손볼 수 있으며, 인풋과 아웃풋을 측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몸이 느끼는 고통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쾌락을 느낄 몸의 능력은 내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리비도는 살과 함께 사라졌고, 관능성은 머나먼 옛 기억이자 다른 사람들이나 경험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오직 머릿속에서만 살았다. - P268

조정이 아주 천천히 그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했다. 돌이켜볼 때 조정이 그토록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 자신의 몸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관계를 맺은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조정이 나를 바꿨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팔은 강하고 유능한 팔로 발달해갔다. 앞팔은 굳건해지고 근육질이 되어갔고, 위팔은 탄탄해지더니 정교한 근육의 골들이 만들어졌고, 어깨가 둥글고 강해졌다. 조정은 사실 다리의 스포츠라 여겨지지만-노를 젓는 힘은 대부분 허벅지와 엉덩이의 큰 근육들에서 나온다-  - P268

소비주의의 요란한 소음이 한창 울리는 가운데, 페미니즘은 메아리 비슷한 무엇, 저 멀리 다른 세대의 시계에서 들리는째깍 소리 같은 것이 되었다. 내가 보스턴으로 이사한 무렵에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혁명의 광채를 잃었고, 그 대신 극단주의, 유머감각 결여, 사납고 드센 남자 증오 등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속성들만을 연상시키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고, 몇몇 영역에서는 아직까지도 계속 그런 시선을 받고 있다. - P280

그 시절 나는 분명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불렀지만 그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다소 반사적인 반응이었고, 이제는중요성이 사라진 것 같다는, 다 지난 옛날 일 같다는 스멀스멀한 느낌이 꽤 뚜렷이 기억난다. 이는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무관심과 환멸에 밀려난 정치적 행동주의 전반에 다 해당하는 일이었지만, 페미니즘 전선에 특히 더 들어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뿐 아니라 페미니즘의 성공 자체도 운동의 절박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 세대 여자들은 더이상 전투를 위해 무장하지 않았고, 전방에 나서야 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스포츠를 하러 운동장에 들어가거나 대학에 들어가거나 취업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서 힘겹게 밀고 나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임대료와 공과금을 지불했고, 필요할 때는 낙태를 했으며, 우리가 궁극의자유라고 느끼던 자유, 다시 말해 역사에 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우리의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자유, 그 권리가 얼마나 힘겹게 얻어낸 것이며 얼마나 - P281

최근에야 얻어낸 것인지 잊어도 되는 자유, 1960년대 방식의페미니즘은 다소 따분하고 너무 극적이라는 듯 하품을 하고어깨를 으쓱하며 돌아보는 자유를 누렸다. 의식화 단체? 질경파티? 참나.
나는 이것이 매우 강력한 조합이자 또한 매우 강력한 상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외현화하는 소비주의 사고방식-구매하라, 쇼핑하라, 지출하라-의 폭발적 확산과 페미니즘의 가시성과 추동력 감소가 어쩌다 발을 맞추어 진행된 것이다. 그로인해 거짓 약속이 공기를 한층 더 무겁게 했고, 욕망의 정의들이 가장 바로잡기 어려운 방식들로 왜곡되었다. 또한 시각까지 왜곡되었다. 페미니즘에 낀 짙은 망각의 안개에 가려, 권리와 전인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씁쓸한 사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시기를 회상하면굶기가 만들어주던 구조와 통제감을 포기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안정감을 뿌리 깊이 뒤흔들었는지 떠오른다. 내 몸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일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 P282

2세대 페미니즘은 아주 짧은 기간이나마 그 패러다임을 폭파했다. 2세대 페미니즘은 여자들에게 욕망의 온전한 어휘들을, 욕망이라는 주제에 대한 여자들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언어-편협한 견해 대신 폭넓은 견해를 물질적 비전 대신 사회적 비전을, ‘립스틱‘이나 ‘바닥 광택제‘ 대신 ‘권리‘와 ‘권한‘ 같은 단어를 제공했으며, 그 생각을 널리 알릴 확성기를 제공했다. 1980년대에 자취를 감춘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언어가 지닌 힘, 그 언어를 형성한 여성의 분노와 초점이 지닌결합력, 그리고 그 힘이 만들어낸 두터운 공동체 의식과 자매애 말이다. - P284

가짜 신들에게 매달리던 희망을 바른 길로 이끌고, 초점을다시 자신의 마음으로 돌리고, 자신의 개인적 고통을 더 큰 맥락에서 보는 법을 배우고, 몸과 정신을 연결하게 되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이런 것이 혁명적 작업의 본질이며, 그 일에는언제나 프레임을 다시 짤 수 있는 언어의 잠재력이, 통찰을 촉진하고 사실들을 재배열하며 낡은 패러다임을 무너뜨릴 언어의 능력이 필요하다.  - P307

그 일을 위해서는 소비주의에, 여전히 남성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엄격하게 구축된 기업문화와 정치 문화에,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까지 깊이 새겨진가정들에 정면으로 충돌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 비전은 좀처럼 포착되지 않아 잘 논의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글래머>나 <레드북>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전일 수있으며, 외현화하는 문화의 요란한 소음 때문에 분별해내기가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비전은 분명히 만들어진다.
비록 그 비전이 넓은 사회적 의미에서는 정치적이지 않을 수있지만, 무엇이 효과 있고 무엇이 적합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의하는 일에서, 즉 개인적 정치에서는 분명 변화를 일으킨다. 어느 교회 지하실에 모여 허기와 포만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던 한 무리의 여자들, 굶기를 재정의한 패션모델, 상담 - P310

실에 앉아 감각성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닦아가는 심리 치료사와 내담자, 홀로 강물 위에서 스컬을 하며 강함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한 사람. 공적인 전쟁터들이 오늘날에는 사적인 전쟁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두 전투에 적용되는 역학은 대체로 동일하다. 무엇이든 당신을 몸과, 자신과, 다른 여자들과 연결하는 것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수 있다. 무엇이든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빈 곳을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 P311

그러나 음식이 있기 전에 먼저 눈물이 있다. 체중의 수치가 그힘을 잃으려면 우리는 먼저 그만큼 강력하고 오래된 무언가를느껴야 한다.
나는 거식증을 놓아보내고 애도하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아주 뚜렷이 기억한다. 그것은 거식증이 주던 예측 가능하지만헛된 안전함의 상실 때문에 우는 것이며, 이는 사실 자기 자신, 바로 그런 안전함을 필요로 하며 굶는 것 외에는 안전함을확보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끼는 불쌍하고 겁먹은 자신 때문에 우는 것이다. 내게 그 일은 상담치료중에 일어났던 것같은데, 구체적인 기억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 애도에 대한 감각기억은 남아 있다. 굶기를 그만두고 초창기에 - P315

느끼던 광란이 서서히 조용하고 집요한 슬픔으로,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허함으로, 마치 어떤 무거움이 만물의 모서리로 기어들어와 꿈쩍 않고 버티고 있는 것처럼 쇼핑으로도술로도 어떤 집착으로도 몰아낼 수 없는 허함으로 바뀌어가던몇 년에 대한 감각기억이. - P316

울었다. 그날 오후에는 울지 않았다. 시간은 늪처럼 흘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일분일 분을 힘겹게헤치고나가, 평소와 똑같은 무감각한 집중력으로 사과와 치즈조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이 기억이 그 서글프고 금욕적인 존재에 대한 애달픈 비통함으로, 그리고 너무도 어리둥절한 상실감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그 강철 같은 방어벽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끈기로 버텨내는 능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분명 무서웠지만, 그와 함께 기이한 슬픔도 느꼈다. 마치 굶기를뒤로하고 떠난다는 것이 어떤 씁쓸하지만 필수적인 위안에,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깊디깊게 신뢰할 수 있었던 자기 보호의한 방법에 작별 인사를 고하는 일인 것처럼.
치료사가 물었다. 거식증이 당신을 무엇으로부터 보호했던건가요?
그것으로부터죠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건 바로 그 허함, 바로 그 절망과 실망의 강도, 바로 그 눈물, 항상 가까스로 흘리지 않고 버텨냈고 부인했고 굶음으로써 쫓아버렸던 그 눈물,
한마디로 슬픔이었다. - P318

슬픔은 통찰에 완강히 저항한다. 나는 불안과 죄책감과 자기혐오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 퍼즐을 완성할 수 있고, 어디까지가 문화이며 어디까지가 몸과 자아로부터의 소외인지 깔끔한 선을 그어 구분할 수 있으며, 내 거식증의 역사를 이루는각각의 조각들에 대한 근원을 이런 순간과 저런 순간으로, 이런 교훈과 저런 메시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도 있다. 이모든 것의 저변에 슬픔이 흐르고 있다. 슬픔은 대지처럼 깊이자리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게 떠도는 듯하고, 욕구의 문제를끌어당겨 거기에 강렬하고 독특한 빛을 비추는 아주 신비로운힘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모든 개별적 갈망은 그 이글거리는 빛을 받으면 흐릿해져 구별할 수도 없게 된다. 거식증은나를 이런 슬픔의 감정에서 보호해주지 못했고, 거식증에서회복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 P319

"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소멸하지 않는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그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일에는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추구와 갈망의 조건인 허기의 경험과, 일시적 만족을 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추구와 새로운 갈망에 밀려나고 마는 채워짐의 경험 사이에 감도는 긴장을 처음부터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 P320

프로이트는 인간의 ‘죽음의 본능‘에 관해 썼다. 이 말은 실제로 삶을 끝내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들어 있음 직한 그 초기의 마취 상태와도 같은 지극한 행복의상태를, 원함과 존재함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완전한 평온함과 안도감의 상태를 되찾고 싶어하는 갈망과 더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그 상태로돌아가기도 하지만-음악이나 리듬이나 일이나 섹스에 완전히 몰입할 때, 마약을 하거나 술을 마실 때, 기도에 완전히 몰입할 때, 혹은 둥글게 만 몸을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딱 붙이고 반쯤은 잠들고 반쯤은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 있을 때 우리는 그 상태에 들어간다-더 영구적인 상태로서는 이미 상실된 상태이며, 단지 그 상태에 대한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섞이고 바래고 희석된 채로 우리의 영혼 속에 접혀 들어가 있을 뿐이고, 그마저 언젠가는 그저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것으로, 속삭임처럼 희미한 아픔으로, 무엇인가가 실로 빠져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만 남게 된다.
- P3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와 다른 대안적 존재 방식을 나는 배우지 못했고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 넣지 못했다. 자라는 동안 나는 어머니가 저녁상 차리기를 거부하거나, 빨래를 해놓지 않거나, 귀찮다고 장을 봐오지 않거나, 나머지 우리는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이 그러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것은 책임감과 이타성의 그림이자 만족이 영원히 연기되는 그림이고, 내게는 이 그림이 거의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이 그림은 자신만의 크고 정력적인 욕구를 지닌 여자는 어떠어떠한모습일 것이라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열정과 독립적인 욕망을 지닌 여자, ‘먹이다‘라는 말의모든 의미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먹이는 것만큼 자신에게도 충실하고 한결같이 먹이는 여자는 거기 없다. 어린 시절 나는 확실히 그런 여자를 한 명도 알지 못했고, 상상해보려고 했다 해도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36

리사는 크게 생각하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한 두단계 더 끌어올리는 것. 혹은 다섯 단계나 열 단계 더 끌어올리는 것. 매우 성공한 프로듀서로서, 작은 성공 이상의 것을이루는 것.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내 생각엔 내가 대대적인 규모의 기여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말을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리사는 이 질문을 붙들고 한동안 고심했다. 젠더와 제약에관한 다수의 전형적 주제들을 모두 아우른 고민이었을 것이다. 리사는 평생 흡수해온 여성성에 관한 메시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살아오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튀면 안 된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그 왜,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다는 식의 이야기 있잖아요." 리사는 가족의 기대에관해, 자신이 한 선택들이 이미 무너뜨려버린 몇 가지 규칙들(리사네 집안에서는 여자들에게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섹스는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며, 여성의 야망은 교직 같은 ‘고귀한‘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 P138

이 이야기는 꽤 전형적인 젠더 이야기로, 여성성에 대한 명령들이 여성의 욕망을 어떻게 마비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사례 연구로 읽을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리사의 묘사가 특히큰 공감의 반향을 일으키는데, 그 이야기는 어린 시절 리사의부녀 관계에 너무나 자주 특징적으로 나타났던 특유의 거리감과 그 거리감이 가져온 결과들을 통렬하게 증언한다. 리사의아버지는 딸의 호기심 많은 성격을 칭찬했고 리사가 똑똑하고사랑스럽다고 여겼지만, 리사의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겨준 느낌은 항상 "여자들은 어째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는 리사와 대화를 나누었다기보다 리사에게 일방적으로 말했고, 아버지에 대한 리사 자신의 동일시는 언제나 좌절당하는 것 같고 뭔가 좀 불완전한 느낌, 마치 리사가 아버지에게서 보고 자신도 몹시 갖고싶어했던 자질들을 자신은 좀처럼 흡수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139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데, 한편으로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욕구들도 그렇게 고분고분 물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여성성에 대한 전통적 명령들 중 너무나 많은 것들이도전받고 논쟁의 장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언제나그 명령들을 시험할 수 있고, 실제로 시험하고 있다. 성인이되었고, 교육을 받았으며, 변화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그 명령들을 집어 들어 밝은 빛에 비춰보고, 성차별적이며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저 옆으로 던져버린다. 리사도 그런 이들 중 하나로, 여자들도 남자들과 모든 면에서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확고히 믿고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여자들처럼 리사 역시 그 믿음에 도달하기까지 힘겨운 길을분노에 찬 길을 거쳐왔다. 외모로 평가당할 때 혹은 남자가 생각해주는 척하며 얕잡아볼 때, 똑같은 일을 하고도 더 적은 보수를 받을 때, 감히 자기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성질 나쁜여자‘ 취급을 받을 때 여자들이 느끼는 분노를 느꼈고,  - P140

바로 이것이 욕구가 힘겨워도 해내야 하는 일들이자, 완강한 제약들과 변치 않는 금기들,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성차별의 변종들에 맞서 매일 치르는 전투이며, 그 일들은 말할 것도없이 버겁고 힘들다. 여자가 자신의 힘과 유능함을 편안하게느낄 때까지, 더이상 자신의 성취에 대해 사과하지 않게 될때까지, 성취를 우연한 일이었다고, 행운이나 타이밍이나 상황의산물이었다고 해명해 넘기려는 본능에 저항하기까지, 자신의성취가 사기 같다는 느낌을 떨쳐낼 때까지, 자신의 성취를 진심으로 내면화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또 자신의성적 욕구에 대해 주인 의식과 행위 주체성을 느낄 때까지, 자신에게는 욕망의 대상이 될 권리뿐 아니라 욕망할 권리도 있다고, 성적 쾌락에 내포된 모든 이기성과 통제의 어려움에 대한 위협까지 포함하여 성적 쾌락을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느낄 때까지도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 P141

그런데 해결하는 데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것, 더욱 미묘하고 어리둥절한 방식으로 내내 우리를 들볶고갉아먹는 것은 더욱 깊이 느껴지는 뒤숭숭한 마음, 때로는 유기처럼, 때로는 배신처럼 느껴지는 모호한 마음의 소요다. 내생각에 이 마음은 어머니의 영토,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한 앎이 자신에 대한 앎과 뒤얽히는 융합과 애착의 장에서 솟아난다. 우리가 그토록 되기를 갈망하는 ‘다른 존재‘ - - P141

그 감각은, 내가 정확히 이해한 거라면, 죄책감이며 죄책감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종류의 죄책감이다. 규정된 경로에서멀어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엄마에게서 멀어지는 한 걸음이며,
모든 성공 하나하나가 따끔한 모욕일 수 있고 모든 욕구에는 배신의 가능성이 배어 있다. 그것은 미묘하고 절박한 느낌으로, 여자가 식욕에 대한 비교적 실질적인 규칙을 어길 때 (다이어트를그만두거나, 마지막 남은 폭찹 한 조각까지 먹을 때 경험하는 평범한 종류의 죄책감보다 더 깊고, 상당히 더 비통하다. - P143

여자들에게 어렸을 때 성별에 관해 어떤 것을 배웠는지,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의식을 형성하는 데 어머니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볼때 듣게 되는 대답은 어머니의 억제된 욕망에 관한 단면적인 이야기나, 부드럽고 자기희생적인 엄마와 자주적이고 강한 아빠로 대비되는 성격 특성 구분만은 아니다. 그밖에도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세세하게)가치의 구분들에 관한 이야기, 좌절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 힘과 가치에 관한 최초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음의 갈등에 시달리던 어머니들,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들, 욕실의 규모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던 어머니들, 유능함의 감각이 주방이나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이나 화장대 앞에서만 나타나던 어머니들, 자신의 허기나 야망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나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어머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들도 듣게 된다.  - P144

이것들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이미지들이며, 여성의 가치와힘 혹은 그것들의 결여에 관해 서서히 축적되는 데이터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어머니는 가장 자애로운 우주의 중심이며,
무한한 힘을 지닌 존재처럼 보인다. 깊이 마음을 연결할 아버지상이 없는 상태에서, 허기와 추구의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존재이며, 또한 여자아이가 필연적으로 유사시에 의지할 수 있는 존재, 아이 자신의 자아의 핵심을 형성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만약 여자아이가 사실은 이 인물이 집안에서 (아버지, 손위 형제자매, 더 큰 범위의 가족들에게 잔소리꾼 혹은 허울만 좋은 하녀 혹은 무력한 하인 정도로 인식되고 있음을 차츰 깨닫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P145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는 강하고 존경받으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예외에 해당하며, 저밖나머지 세상에서는 여자들이 자기 어머니만큼 강한 존재들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력과 억압과 가난이 전 세계에서 살고 있는 여자들의 변함없는 부분으로 남아 있으며, 진정한 성 평등은 여전히 고질적으로 머나먼 꿈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벌어질까? - P145

모든 세대는 바로 앞 세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허기에 대한 모든 딸의 경험은 어느 정도는 허기에 대한 어머니의 경험에 의해 형태가 잡힌다. 어머니가 가졌거나 갖지 못한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 P147

했는지, 그에 비해 딸 자신은 어느 만큼을 원하는지 혹은 원하는 걸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지. 자신과 타인간의 이런 비교, 이런 이미지들이 모인 데이터 저장소,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거나 가치가 폄하되었거나 피로에 지친 어머니들에 대한 이런 기억들, 여자들은 권한도 힘도 야망도 섹시함도 덜하고 더넓은 세상에서 지원도 인정도 덜 받는 존재들로 표현되는 이현실. 바로 이런 것들이 여자들의 욕구 문제를 그토록 복잡한것으로 만들고, 배배 꼬여 풀리지 않는 단단한 매듭으로 만든다. 페미니스트인 어머니든 페미니스트가 아닌 어머니든, 가치가 폄하된 어머니든 번아웃된 어머니든, 어머니의 선택과 좌절, 온갖 한계와 제약은 딸에게 허기의 전형인 동시에 차이와저항의 잠재적 근원이 되며, 이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상황을더욱 혼탁하게 만들 수 있고, 여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동일시와 동질성의 감정들을 위험하게 느껴지게 하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또한 그것은 허기를 분노와 짝지어버릴 수도 있다.  - P148

자신이 어머니와 반대쪽에 있음을 깨닫는 것은 은밀하고도필연적인 고통이 될 수 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몇 명의여자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달리는 이미지 혹은 지도 없이 항해하는 이미지를 환기시켰고, 독립적인 행로를 기록해간다는홍분감이 피할 수 없는 탈동일시의 감각으로 훼손되는 느낌을전해주었다. 당신은 계속 나아가고, 당신의 어머니는 뒤에 남겨진 채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혹은 어떻게 거기 도달할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당신은 변화에 대한 무서움과 죄책감과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동시에 어머니가 방향도 알려주지 않은 채 당신이 떠나도록 내버려둔 것에 대해, 아니 애초에떠나게 허용한 것 자체에 대해 격한 분노를 느낀다.
- P150

킴 처닌은 『허기진 자아』에서 여자는 딸로서 자신의 인생이반드시 자기 어머니의 인생을 반영하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지적한다. 어머니가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무력했거나, - P150

어머니나 아내 역할 외의 모든 정체성을 박탈당했거나, 스트레스나 좌절감으로 피폐해졌다면, 딸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내릴 선택들을 고려할 때 견딜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한다.
어머니에 대한 의리와 "새로운 여성 존재가 되고자 하는 전념의 양극단 사이에서 괴로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처닌은 이렇게 썼다. "성년이 되고 세상으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딸은 [어머니의] 부러움과 질시를 불러일으킬 위험에 처하는데.
그보다 더 나쁘고 더 고통스럽고 생각하기도 심란한 점은 이제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어머니 자신의 실패와 결핍을 상기시키는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닌은 이 딜레마가 식사장애에서 핵심적이며, 여자가 자신의 몸에 가하는 그공격은 "어머니에 맞선 쓰디쓴 전쟁"을 은폐한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이자 표현할 수 없는 감춰진 분노다." - P151

죄책감은 동기를 불어넣는 강력한 요인이자 음흉한 요인이다. 죄책감은 불안처럼 끊임없이 날카롭게 윙윙 울려대진 않는다. 대신에 압박하고 무겁게 내리누르고 속삭이며, 기이하고우회적인 방식으로 불쑥 솟아나고, 거의 항상 배상을 요구한다. 나는 이 죄책감이 그날 주방에서도 기괴하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거라고, 나의 몸은 배신이라 여겨진것에 대한 대가로, 뼈에 새긴 속죄로 제시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를떠날 거예요. 하지만 난 굶주릴 거고, 아플 거예요, 그리 멀리 가지는못할 거예요. - P152

욕구를 마음껏 충족하는 걸 어려워하게 된 것은 어머니를 달래려는 행동을 그만두면서부터였다. 일에서 더 많은 존경과 인정을 받을수록, 집에서는 자신에게서 호사를 박탈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야망에 대해다른 영역에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일에서 갖게 된 힘을 개인 생활에서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맞교환한 것이다. 직업적 정체성과 목표가 분명해질수록 돈에 대한 두려움은 더커졌다. 자신의 재정 문제를 책임지는 것, 그럼으로써 그와 연관되는 성인으로서 자기 삶을 책임지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일처럼 말이다. 리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어머니의 간섭에서 더욱더 자유로워질수록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더많이 느꼈던 것 같다.  - P154

정신의학자 루이즈 캐플런은 이런 종류의 흥정을 "원천징수방안"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여자들이 품을 수 있는 감각, 갈망과 추구는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일이며 그것을 마음껏추구하고 누리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속삭임처럼 어렴풋하고 거의 무의식적인 그런 감각에 대한 한 가지 반응이다.
캐플런은 이렇게 썼다. "여자는 항상 시달리고 있다. 사업에서많은 돈을 벌든, 의사로서 성공하든, 전시회를 열 수백 점의그림을 준비하는, 미생물학을 강의하든 아무튼 시달린다. 이런강력하고 주체적인 활동들을 하면서 신들을 달래기 위한 일을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여자는 엄청난 의식적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 이 노예가 자신의 영혼을 주인에게 바침으로써대가를 치른다면, 다음 청구서가 나올 때까지는 자신의 금지된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노예에게 금지된 직업 중 하나는 섹슈얼리티이며, 또 하나는 지적 야망이다."  - P157

딸이 어머니에게서 멀어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아무리 신중하게 내디뎌도 혹은 아무리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도 모두가 달콤씁쓸하며, 거의 감지되지 않는 방식으로 고통스러울 수있다. 그리고 처한 상황은 다양해도 이는 아주 많은 여자들에게 해당하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가족과 직업 사이에서 반으로 쪼개질 것 같은 여자들, 아이들보다 경력을 더 중요한 것으로 선택한 여자들, 자신의 갈망과 가족의 갈망, 친구들의 갈망과 동료들의 갈망까지 서로 경쟁하는 여러 갈망들 사이에서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여자들, 어쩌면 열 명 혹은 열다섯 명의 갈망이 포함되어 있을 필요의 뭉치에서 자신의 갈망을 조심조심 분리해내려고 애쓰고 있는 여자들.  - P159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뒤의 우리는 그것이 메리 혼자만의 일은 아닐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욕구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개인적 회계 - 얼마나 취할 것인지, 갈망과 제약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만족에 대해 글자 그대로든 비유적인 의미로든 대가를 얼마나 치를 것인지에 관한 내면의 수식-는 또한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산법, 배우자든 자녀는 동료든 어머니든, 제2의 당사자에 견주어 측정하고 저울질하는 방정식이 될수도 있다. 메리 올리비에는 그 딜레마를 완벽하게 포착했다.
"당신이 자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누군가를굶길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 P163

이 시대에 번성하는 젊음 숭배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고, 경험도 없고 주름살도 없는 순진한 이들에게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모욕적이며 실소를 자아내는 일인지도 알고 있으며,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두 개의 숫자, 5와 0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50이란 늙었다는 걸 의미했고,
정체성과 아름다움의 연결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그것은 활기와 성적 매력의 영역에서, 자신이 그 옛 남자 친구와함께 존재했던 그 장소에서 퇴출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축 늘어짐과 고장과 상실이라는 뭔가 다른 영역으로 던져지는 것을의미했다. - P172

나아가 섹슈얼리티에 전혀 섹시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엮어버리는 이미지들의 늪에 깊이 잠겨 있다면, 그리고 자기 주변에서 접하는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에 관한 수많은외적 정의들이 자신의 신체적 경험과 완전히는 아니라도 거의무관하다면, 어떻게 성감을 느끼는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느끼는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 P181

완전한 취약성은 무서운것이지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며, 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뼛속 깊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반대가 참이라고 주장하는 진술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 그 공포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으로 인지하기가 어려워지고, 그 공포를 포용하기는 더 어려워지며, 그 공포에 관해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또한 그 모순은 섹시해 보이는 것과 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사이의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선들을 정리하는 일도 더 어렵게 만든다. 현대적 의미에서 섹시해 보이는 노출되고, 순종적이며, 공격에 취약하고, 심지어 폭행당하는것은 무력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은 대체로욕구를 자극하기보다 잠재운다. - P182

정말 기가 막힌 것은 이 관념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 그 메시지가 쉴 새 없이 타격을 가해온다는 점이며, 그래서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기는 너무 쉽고 내면화하지 않기는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미모나 패션 분야에 대해서는 꽤 느긋한 사람이고, 별로 압박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 미적인 쾌감과 멋 부리는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기 수용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나자신의 몸과 맺고 있는 관계-내가 육체적 유지 및 관리를 위해 매일 반사적으로 수행하는 일들, 드럭스토어 진열대를 재빨리 훑는 내 눈의 움직임 - 깊이 생각해볼 때면, 때때로거기서 작동하고 있는 경계의 명령을,  - P185

오늘날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의 몸을 다룬 글들을 읽다보면, 여자의 자기상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 기입이라는 개념이 자주 거론되는 걸 보게 된다. 기업의 관점에 따르면 문화는 몸에 기록되고 부호화된다. 뚱뚱하고 날씬하고 깎여나가고 장식되고 굶고 포식하는 여자의 몸은 일종의 텍스트이며,
이 텍스트를 제대로 분석하기만 하면 문화가 여자들을 어떻게보는지, 여자들이 무엇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지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P197

나는 이 이미지가 어느 정도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거식증을 앓는 이는 욕구의 억제에 관한 걸어 다니는 선언문이며, 폭식증을 앓는 이는 한 여자의 허기가, 또 그 허기를부인하려는 강박이 얼마나 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다. 성형수술에 관한 통계는 그보다 더욱 명백한 진술이다! 1999년에 북미의 여성 14만 명이 유방확대수술을 받았는데, 이는 1992년에 비해 413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 P197

그런 독해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내게는 기입이라는 은유가 다소 고정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여자들은 모두 똑같은 백지들이고, 그들과는 별개인 제3의 존재, 그러니까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외적인 그것이 종이 위에 뭔가를 쓴다는 말 같다.  - P198

내게는 이것이 자기상의 핵심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즉자부심 또는 수치심, 사랑 또는 미움으로 인해 자기상이 형성되고 왜곡되며 부호화되는 방식을 더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여자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순전히 사회와 매디슨 애비뉴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너무 쉽다. 또 사실 그렇게돌려버리고 싶은 유혹도 크다.  - P197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가정에서 사소한 차이점들을 발견했고,
그들은 몸과 더 느긋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신호들을 포착했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 친구의 등을 문질러 잠을 깨웠는데, 그건 내게 너무나 놀랍고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정하게 촉각적인 일이었다.  - P202

한 친구의 부모님이 거실에서 1940년대 스윙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뱅글뱅글 돌리더니 가까이 당겨 안았고, 어머니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큰 소리로 웃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그것도 외국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몸을 중심으로 한 유희의 감각을 느껴본 적도 없었고, 몸이 (건드리고 달래고 안심시키고 흥분시킬 수 있는) 특별한 힘을지니고 있다는 것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감지한 것들은그와는 정반대되는 감각들이었다. 요컨대 육체적 문제들에 관한 한 ‘묻지마‘ ‘말하지 마‘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당혹스러움, 내 부모님의 불행에는 섹스와 관련된 요소가 있는것 같다는 여러 해 동안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 의심, 그리고 그와 관련해 육체는 기쁨이 아니라 말썽을 유발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희미하지만 무시하기 어려웠던 생각이었다. - P203

자부심은 육체 혐오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미끌미끌해서 붙잡기 어려운 감정이다. 자부심이 존재의고갱이에 예리하게 새겨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부심을 항상 유지하기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자부심은그렇게 늘 유지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게중심을 잡으려 허둥대는 것 같은 불확실함의 느낌을남긴다.  - P205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 내게는 본능적인 수준에서 느껴지는 행위 주체성과 온전성의 감각이, 만약 영혼 속에 존재한다면 몸으로도 마땅히 표현될 그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다. 몸, 그것도 나의 몸은 내가신뢰하고 알고 소중히 여기는 무엇이 아니었고, 바로 그런 신뢰와 앎과 소중함의 감각들이 내 존재의 핵심에서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기만 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감각이 나에게 온전히 기입되어 있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 P209

레슬리는 그러한 선택의 문제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그 주인을 처음부터 다시 창조하고 그 주인이 생각하는 정체성의개념을 바꾸었으며, 나는 마른 몸이 되고 싶어라는 말을 훨씬 더광범위하고 훨씬 덜 예속적인 말로,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이 되고 싶어, 저울과 칼로리 계산 너머의 삶을 갖고 싶어, 나는 내 존엄과가치와 힘의 감각이 내 체중과 무관하게 존재하기를 원해라는 말로바꾸었다.
그렇다고 레슬리가 꼭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레슬리의 확신이 얼마나 깊이 자리한 것인지, 그 확신이어느 정도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육체와 심리의 의학적 문제에 관해서는 더욱 자신이 없다.  - P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