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다른 대안적 존재 방식을 나는 배우지 못했고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 넣지 못했다. 자라는 동안 나는 어머니가 저녁상 차리기를 거부하거나, 빨래를 해놓지 않거나, 귀찮다고 장을 봐오지 않거나, 나머지 우리는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이 그러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것은 책임감과 이타성의 그림이자 만족이 영원히 연기되는 그림이고, 내게는 이 그림이 거의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이 그림은 자신만의 크고 정력적인 욕구를 지닌 여자는 어떠어떠한모습일 것이라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열정과 독립적인 욕망을 지닌 여자, ‘먹이다‘라는 말의모든 의미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먹이는 것만큼 자신에게도 충실하고 한결같이 먹이는 여자는 거기 없다. 어린 시절 나는 확실히 그런 여자를 한 명도 알지 못했고, 상상해보려고 했다 해도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36
리사는 크게 생각하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한 두단계 더 끌어올리는 것. 혹은 다섯 단계나 열 단계 더 끌어올리는 것. 매우 성공한 프로듀서로서, 작은 성공 이상의 것을이루는 것.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내 생각엔 내가 대대적인 규모의 기여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말을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리사는 이 질문을 붙들고 한동안 고심했다. 젠더와 제약에관한 다수의 전형적 주제들을 모두 아우른 고민이었을 것이다. 리사는 평생 흡수해온 여성성에 관한 메시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살아오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튀면 안 된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그 왜,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다는 식의 이야기 있잖아요." 리사는 가족의 기대에관해, 자신이 한 선택들이 이미 무너뜨려버린 몇 가지 규칙들(리사네 집안에서는 여자들에게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섹스는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며, 여성의 야망은 교직 같은 ‘고귀한‘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 P138
이 이야기는 꽤 전형적인 젠더 이야기로, 여성성에 대한 명령들이 여성의 욕망을 어떻게 마비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사례 연구로 읽을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리사의 묘사가 특히큰 공감의 반향을 일으키는데, 그 이야기는 어린 시절 리사의부녀 관계에 너무나 자주 특징적으로 나타났던 특유의 거리감과 그 거리감이 가져온 결과들을 통렬하게 증언한다. 리사의아버지는 딸의 호기심 많은 성격을 칭찬했고 리사가 똑똑하고사랑스럽다고 여겼지만, 리사의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겨준 느낌은 항상 "여자들은 어째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는 리사와 대화를 나누었다기보다 리사에게 일방적으로 말했고, 아버지에 대한 리사 자신의 동일시는 언제나 좌절당하는 것 같고 뭔가 좀 불완전한 느낌, 마치 리사가 아버지에게서 보고 자신도 몹시 갖고싶어했던 자질들을 자신은 좀처럼 흡수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139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데, 한편으로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욕구들도 그렇게 고분고분 물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여성성에 대한 전통적 명령들 중 너무나 많은 것들이도전받고 논쟁의 장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언제나그 명령들을 시험할 수 있고, 실제로 시험하고 있다. 성인이되었고, 교육을 받았으며, 변화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그 명령들을 집어 들어 밝은 빛에 비춰보고, 성차별적이며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저 옆으로 던져버린다. 리사도 그런 이들 중 하나로, 여자들도 남자들과 모든 면에서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확고히 믿고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여자들처럼 리사 역시 그 믿음에 도달하기까지 힘겨운 길을분노에 찬 길을 거쳐왔다. 외모로 평가당할 때 혹은 남자가 생각해주는 척하며 얕잡아볼 때, 똑같은 일을 하고도 더 적은 보수를 받을 때, 감히 자기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성질 나쁜여자‘ 취급을 받을 때 여자들이 느끼는 분노를 느꼈고, - P140
바로 이것이 욕구가 힘겨워도 해내야 하는 일들이자, 완강한 제약들과 변치 않는 금기들,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성차별의 변종들에 맞서 매일 치르는 전투이며, 그 일들은 말할 것도없이 버겁고 힘들다. 여자가 자신의 힘과 유능함을 편안하게느낄 때까지, 더이상 자신의 성취에 대해 사과하지 않게 될때까지, 성취를 우연한 일이었다고, 행운이나 타이밍이나 상황의산물이었다고 해명해 넘기려는 본능에 저항하기까지, 자신의성취가 사기 같다는 느낌을 떨쳐낼 때까지, 자신의 성취를 진심으로 내면화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또 자신의성적 욕구에 대해 주인 의식과 행위 주체성을 느낄 때까지, 자신에게는 욕망의 대상이 될 권리뿐 아니라 욕망할 권리도 있다고, 성적 쾌락에 내포된 모든 이기성과 통제의 어려움에 대한 위협까지 포함하여 성적 쾌락을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느낄 때까지도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 P141
그런데 해결하는 데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것, 더욱 미묘하고 어리둥절한 방식으로 내내 우리를 들볶고갉아먹는 것은 더욱 깊이 느껴지는 뒤숭숭한 마음, 때로는 유기처럼, 때로는 배신처럼 느껴지는 모호한 마음의 소요다. 내생각에 이 마음은 어머니의 영토,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한 앎이 자신에 대한 앎과 뒤얽히는 융합과 애착의 장에서 솟아난다. 우리가 그토록 되기를 갈망하는 ‘다른 존재‘ - - P141
그 감각은, 내가 정확히 이해한 거라면, 죄책감이며 죄책감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종류의 죄책감이다. 규정된 경로에서멀어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엄마에게서 멀어지는 한 걸음이며, 모든 성공 하나하나가 따끔한 모욕일 수 있고 모든 욕구에는 배신의 가능성이 배어 있다. 그것은 미묘하고 절박한 느낌으로, 여자가 식욕에 대한 비교적 실질적인 규칙을 어길 때 (다이어트를그만두거나, 마지막 남은 폭찹 한 조각까지 먹을 때 경험하는 평범한 종류의 죄책감보다 더 깊고, 상당히 더 비통하다. - P143
여자들에게 어렸을 때 성별에 관해 어떤 것을 배웠는지,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의식을 형성하는 데 어머니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볼때 듣게 되는 대답은 어머니의 억제된 욕망에 관한 단면적인 이야기나, 부드럽고 자기희생적인 엄마와 자주적이고 강한 아빠로 대비되는 성격 특성 구분만은 아니다. 그밖에도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세세하게)가치의 구분들에 관한 이야기, 좌절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 힘과 가치에 관한 최초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음의 갈등에 시달리던 어머니들,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들, 욕실의 규모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던 어머니들, 유능함의 감각이 주방이나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이나 화장대 앞에서만 나타나던 어머니들, 자신의 허기나 야망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나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어머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들도 듣게 된다. - P144
이것들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이미지들이며, 여성의 가치와힘 혹은 그것들의 결여에 관해 서서히 축적되는 데이터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어머니는 가장 자애로운 우주의 중심이며, 무한한 힘을 지닌 존재처럼 보인다. 깊이 마음을 연결할 아버지상이 없는 상태에서, 허기와 추구의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존재이며, 또한 여자아이가 필연적으로 유사시에 의지할 수 있는 존재, 아이 자신의 자아의 핵심을 형성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만약 여자아이가 사실은 이 인물이 집안에서 (아버지, 손위 형제자매, 더 큰 범위의 가족들에게 잔소리꾼 혹은 허울만 좋은 하녀 혹은 무력한 하인 정도로 인식되고 있음을 차츰 깨닫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P145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는 강하고 존경받으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예외에 해당하며, 저밖나머지 세상에서는 여자들이 자기 어머니만큼 강한 존재들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력과 억압과 가난이 전 세계에서 살고 있는 여자들의 변함없는 부분으로 남아 있으며, 진정한 성 평등은 여전히 고질적으로 머나먼 꿈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벌어질까? - P145
모든 세대는 바로 앞 세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허기에 대한 모든 딸의 경험은 어느 정도는 허기에 대한 어머니의 경험에 의해 형태가 잡힌다. 어머니가 가졌거나 갖지 못한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 P147
했는지, 그에 비해 딸 자신은 어느 만큼을 원하는지 혹은 원하는 걸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지. 자신과 타인간의 이런 비교, 이런 이미지들이 모인 데이터 저장소,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거나 가치가 폄하되었거나 피로에 지친 어머니들에 대한 이런 기억들, 여자들은 권한도 힘도 야망도 섹시함도 덜하고 더넓은 세상에서 지원도 인정도 덜 받는 존재들로 표현되는 이현실. 바로 이런 것들이 여자들의 욕구 문제를 그토록 복잡한것으로 만들고, 배배 꼬여 풀리지 않는 단단한 매듭으로 만든다. 페미니스트인 어머니든 페미니스트가 아닌 어머니든, 가치가 폄하된 어머니든 번아웃된 어머니든, 어머니의 선택과 좌절, 온갖 한계와 제약은 딸에게 허기의 전형인 동시에 차이와저항의 잠재적 근원이 되며, 이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상황을더욱 혼탁하게 만들 수 있고, 여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동일시와 동질성의 감정들을 위험하게 느껴지게 하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또한 그것은 허기를 분노와 짝지어버릴 수도 있다. - P148
자신이 어머니와 반대쪽에 있음을 깨닫는 것은 은밀하고도필연적인 고통이 될 수 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몇 명의여자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달리는 이미지 혹은 지도 없이 항해하는 이미지를 환기시켰고, 독립적인 행로를 기록해간다는홍분감이 피할 수 없는 탈동일시의 감각으로 훼손되는 느낌을전해주었다. 당신은 계속 나아가고, 당신의 어머니는 뒤에 남겨진 채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혹은 어떻게 거기 도달할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당신은 변화에 대한 무서움과 죄책감과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동시에 어머니가 방향도 알려주지 않은 채 당신이 떠나도록 내버려둔 것에 대해, 아니 애초에떠나게 허용한 것 자체에 대해 격한 분노를 느낀다. - P150
킴 처닌은 『허기진 자아』에서 여자는 딸로서 자신의 인생이반드시 자기 어머니의 인생을 반영하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지적한다. 어머니가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무력했거나, - P150
어머니나 아내 역할 외의 모든 정체성을 박탈당했거나, 스트레스나 좌절감으로 피폐해졌다면, 딸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내릴 선택들을 고려할 때 견딜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한다. 어머니에 대한 의리와 "새로운 여성 존재가 되고자 하는 전념의 양극단 사이에서 괴로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처닌은 이렇게 썼다. "성년이 되고 세상으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딸은 [어머니의] 부러움과 질시를 불러일으킬 위험에 처하는데. 그보다 더 나쁘고 더 고통스럽고 생각하기도 심란한 점은 이제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어머니 자신의 실패와 결핍을 상기시키는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닌은 이 딜레마가 식사장애에서 핵심적이며, 여자가 자신의 몸에 가하는 그공격은 "어머니에 맞선 쓰디쓴 전쟁"을 은폐한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이자 표현할 수 없는 감춰진 분노다." - P151
죄책감은 동기를 불어넣는 강력한 요인이자 음흉한 요인이다. 죄책감은 불안처럼 끊임없이 날카롭게 윙윙 울려대진 않는다. 대신에 압박하고 무겁게 내리누르고 속삭이며, 기이하고우회적인 방식으로 불쑥 솟아나고, 거의 항상 배상을 요구한다. 나는 이 죄책감이 그날 주방에서도 기괴하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거라고, 나의 몸은 배신이라 여겨진것에 대한 대가로, 뼈에 새긴 속죄로 제시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를떠날 거예요. 하지만 난 굶주릴 거고, 아플 거예요, 그리 멀리 가지는못할 거예요. - P152
욕구를 마음껏 충족하는 걸 어려워하게 된 것은 어머니를 달래려는 행동을 그만두면서부터였다. 일에서 더 많은 존경과 인정을 받을수록, 집에서는 자신에게서 호사를 박탈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야망에 대해다른 영역에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일에서 갖게 된 힘을 개인 생활에서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맞교환한 것이다. 직업적 정체성과 목표가 분명해질수록 돈에 대한 두려움은 더커졌다. 자신의 재정 문제를 책임지는 것, 그럼으로써 그와 연관되는 성인으로서 자기 삶을 책임지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일처럼 말이다. 리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어머니의 간섭에서 더욱더 자유로워질수록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더많이 느꼈던 것 같다. - P154
정신의학자 루이즈 캐플런은 이런 종류의 흥정을 "원천징수방안"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여자들이 품을 수 있는 감각, 갈망과 추구는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일이며 그것을 마음껏추구하고 누리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속삭임처럼 어렴풋하고 거의 무의식적인 그런 감각에 대한 한 가지 반응이다. 캐플런은 이렇게 썼다. "여자는 항상 시달리고 있다. 사업에서많은 돈을 벌든, 의사로서 성공하든, 전시회를 열 수백 점의그림을 준비하는, 미생물학을 강의하든 아무튼 시달린다. 이런강력하고 주체적인 활동들을 하면서 신들을 달래기 위한 일을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여자는 엄청난 의식적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 이 노예가 자신의 영혼을 주인에게 바침으로써대가를 치른다면, 다음 청구서가 나올 때까지는 자신의 금지된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노예에게 금지된 직업 중 하나는 섹슈얼리티이며, 또 하나는 지적 야망이다." - P157
딸이 어머니에게서 멀어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아무리 신중하게 내디뎌도 혹은 아무리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도 모두가 달콤씁쓸하며, 거의 감지되지 않는 방식으로 고통스러울 수있다. 그리고 처한 상황은 다양해도 이는 아주 많은 여자들에게 해당하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가족과 직업 사이에서 반으로 쪼개질 것 같은 여자들, 아이들보다 경력을 더 중요한 것으로 선택한 여자들, 자신의 갈망과 가족의 갈망, 친구들의 갈망과 동료들의 갈망까지 서로 경쟁하는 여러 갈망들 사이에서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여자들, 어쩌면 열 명 혹은 열다섯 명의 갈망이 포함되어 있을 필요의 뭉치에서 자신의 갈망을 조심조심 분리해내려고 애쓰고 있는 여자들. - P159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뒤의 우리는 그것이 메리 혼자만의 일은 아닐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욕구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개인적 회계 - 얼마나 취할 것인지, 갈망과 제약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만족에 대해 글자 그대로든 비유적인 의미로든 대가를 얼마나 치를 것인지에 관한 내면의 수식-는 또한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산법, 배우자든 자녀는 동료든 어머니든, 제2의 당사자에 견주어 측정하고 저울질하는 방정식이 될수도 있다. 메리 올리비에는 그 딜레마를 완벽하게 포착했다. "당신이 자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누군가를굶길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 P163
이 시대에 번성하는 젊음 숭배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고, 경험도 없고 주름살도 없는 순진한 이들에게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모욕적이며 실소를 자아내는 일인지도 알고 있으며,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두 개의 숫자, 5와 0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50이란 늙었다는 걸 의미했고, 정체성과 아름다움의 연결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그것은 활기와 성적 매력의 영역에서, 자신이 그 옛 남자 친구와함께 존재했던 그 장소에서 퇴출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축 늘어짐과 고장과 상실이라는 뭔가 다른 영역으로 던져지는 것을의미했다. - P172
나아가 섹슈얼리티에 전혀 섹시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엮어버리는 이미지들의 늪에 깊이 잠겨 있다면, 그리고 자기 주변에서 접하는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에 관한 수많은외적 정의들이 자신의 신체적 경험과 완전히는 아니라도 거의무관하다면, 어떻게 성감을 느끼는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느끼는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 P181
완전한 취약성은 무서운것이지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며, 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뼛속 깊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반대가 참이라고 주장하는 진술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 그 공포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으로 인지하기가 어려워지고, 그 공포를 포용하기는 더 어려워지며, 그 공포에 관해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또한 그 모순은 섹시해 보이는 것과 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사이의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선들을 정리하는 일도 더 어렵게 만든다. 현대적 의미에서 섹시해 보이는 노출되고, 순종적이며, 공격에 취약하고, 심지어 폭행당하는것은 무력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은 대체로욕구를 자극하기보다 잠재운다. - P182
정말 기가 막힌 것은 이 관념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 그 메시지가 쉴 새 없이 타격을 가해온다는 점이며, 그래서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기는 너무 쉽고 내면화하지 않기는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미모나 패션 분야에 대해서는 꽤 느긋한 사람이고, 별로 압박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 미적인 쾌감과 멋 부리는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기 수용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나자신의 몸과 맺고 있는 관계-내가 육체적 유지 및 관리를 위해 매일 반사적으로 수행하는 일들, 드럭스토어 진열대를 재빨리 훑는 내 눈의 움직임 - 깊이 생각해볼 때면, 때때로거기서 작동하고 있는 경계의 명령을, - P185
오늘날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의 몸을 다룬 글들을 읽다보면, 여자의 자기상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 기입이라는 개념이 자주 거론되는 걸 보게 된다. 기업의 관점에 따르면 문화는 몸에 기록되고 부호화된다. 뚱뚱하고 날씬하고 깎여나가고 장식되고 굶고 포식하는 여자의 몸은 일종의 텍스트이며, 이 텍스트를 제대로 분석하기만 하면 문화가 여자들을 어떻게보는지, 여자들이 무엇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지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P197
나는 이 이미지가 어느 정도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거식증을 앓는 이는 욕구의 억제에 관한 걸어 다니는 선언문이며, 폭식증을 앓는 이는 한 여자의 허기가, 또 그 허기를부인하려는 강박이 얼마나 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다. 성형수술에 관한 통계는 그보다 더욱 명백한 진술이다! 1999년에 북미의 여성 14만 명이 유방확대수술을 받았는데, 이는 1992년에 비해 413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 P197
그런 독해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내게는 기입이라는 은유가 다소 고정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여자들은 모두 똑같은 백지들이고, 그들과는 별개인 제3의 존재, 그러니까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외적인 그것이 종이 위에 뭔가를 쓴다는 말 같다. - P198
내게는 이것이 자기상의 핵심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즉자부심 또는 수치심, 사랑 또는 미움으로 인해 자기상이 형성되고 왜곡되며 부호화되는 방식을 더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여자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순전히 사회와 매디슨 애비뉴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너무 쉽다. 또 사실 그렇게돌려버리고 싶은 유혹도 크다. - P197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가정에서 사소한 차이점들을 발견했고, 그들은 몸과 더 느긋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신호들을 포착했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 친구의 등을 문질러 잠을 깨웠는데, 그건 내게 너무나 놀랍고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정하게 촉각적인 일이었다. - P202
한 친구의 부모님이 거실에서 1940년대 스윙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뱅글뱅글 돌리더니 가까이 당겨 안았고, 어머니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큰 소리로 웃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그것도 외국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몸을 중심으로 한 유희의 감각을 느껴본 적도 없었고, 몸이 (건드리고 달래고 안심시키고 흥분시킬 수 있는) 특별한 힘을지니고 있다는 것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감지한 것들은그와는 정반대되는 감각들이었다. 요컨대 육체적 문제들에 관한 한 ‘묻지마‘ ‘말하지 마‘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당혹스러움, 내 부모님의 불행에는 섹스와 관련된 요소가 있는것 같다는 여러 해 동안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 의심, 그리고 그와 관련해 육체는 기쁨이 아니라 말썽을 유발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희미하지만 무시하기 어려웠던 생각이었다. - P203
자부심은 육체 혐오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미끌미끌해서 붙잡기 어려운 감정이다. 자부심이 존재의고갱이에 예리하게 새겨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부심을 항상 유지하기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이다. 또한 자부심은그렇게 늘 유지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게중심을 잡으려 허둥대는 것 같은 불확실함의 느낌을남긴다. - P205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 내게는 본능적인 수준에서 느껴지는 행위 주체성과 온전성의 감각이, 만약 영혼 속에 존재한다면 몸으로도 마땅히 표현될 그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다. 몸, 그것도 나의 몸은 내가신뢰하고 알고 소중히 여기는 무엇이 아니었고, 바로 그런 신뢰와 앎과 소중함의 감각들이 내 존재의 핵심에서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기만 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감각이 나에게 온전히 기입되어 있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 P209
레슬리는 그러한 선택의 문제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그 주인을 처음부터 다시 창조하고 그 주인이 생각하는 정체성의개념을 바꾸었으며, 나는 마른 몸이 되고 싶어라는 말을 훨씬 더광범위하고 훨씬 덜 예속적인 말로,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이 되고 싶어, 저울과 칼로리 계산 너머의 삶을 갖고 싶어, 나는 내 존엄과가치와 힘의 감각이 내 체중과 무관하게 존재하기를 원해라는 말로바꾸었다. 그렇다고 레슬리가 꼭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레슬리의 확신이 얼마나 깊이 자리한 것인지, 그 확신이어느 정도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육체와 심리의 의학적 문제에 관해서는 더욱 자신이 없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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