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우리는 너무 떨어져 살아서 만날 때마다 방을 잡았다.
그 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파티를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기면 한 사람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
그 방 창문을 나는 한 번쯤 올려다보았다.



2023년 9월
김소연

사라지는 일에 하는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힘찬 삶의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상기해내면서.

파멸하고
추락하는 것에
실패하기.
물러서기.

자신의 역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인간에게 또 다른 방식의 영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사람은 생각한다.

그 사람은
벼랑 끝에서
황금빛 테두리에 갇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그 사람은 올무를 손에 들고 서 있다.

그 올무를 손에 들려준
또 다른 올무를 든 사람들과 마주 서서
우정을 나눈다.

거기에 깃든 온기와 온화를
나는 매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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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는 법, 상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재주를 배워야 한다. 이런 재주를 보여줄 안내인이 필요하다. 이런 것을 배우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우리 삶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간은 항상 가장 훌륭하게 사는 법과 서로를 도와 계획을 실행하는 법을 상상하기 위해 집단에 합류한다. 인간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가 살아야하는 삶,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서로 협력하여 배우고 가르치며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계속 나아가게 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 P344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기계로 재생목소리와 영상, 상업과 정치적 이윤을 겨냥한 말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이 시대에는 강력하고 유혹적인 미디어를 동원해서 대중을 멋대로 주무르고 통제하려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에게 혼자 힘으로 길을 찾아내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사실 누구나 혼자서는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분별력과 자유가 있는 삶을 상상한 사람을 찾아내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귀를 기울여야 한다.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공간, 시간, 침묵을 차지하는 공동체행동이다.
읽기는 듣기의 수단이다.
읽기는 듣기나 보기만큼 수동적이지 않다. 능동적인 행동이다.  - P345

물론 전통적인 의미의 ‘책‘이 아닐 수는 있다. 펄프로 만든 종이 위에 잉크로 글자를 찍은 형태가 아니라, 손바닥 위의 화면 속에서 깜박거리는 글자일 수 있다. 앞뒤도 안 맞고상업적인 내용, 포르노와 마약과 허튼소리가 가득한 케케묵은 내용이라 해도, 전자출판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수단을 제공해준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내용이다. 그 내용을 나누는것이다. 글을 읽어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문자문화가 중요한 것은 문학이야말로 작업 지시기때문이다. 문학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침서다. 우리가 방문중인 땅, 즉 인생이라는 나라에서 길을 찾는 데 가장 유용한 안내인이다. - P347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성 우월적인 주장과 제도를 떠받치며 남자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말에 드러나게 복종한다. 남자가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자연스러운사실 또는 종교적 교리로 옹호한다.
지위가 낮은 남자들 (젊은 남자와 가난한 남자)은 자기를낮은 지위에 묶어두는 체제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다. 지배자나 종교의 힘을 지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치러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사들은 대부분 그사회가 열등하게 취급하는 남자들이었다.
"속박의 사슬 외에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사슬에 입을 맞추는 편을 선호한다. - P353

권력을 쥔 사람은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무기로주장하고, 더 좋은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그 자리를 계속 지킬 능력이 더 뛰어나다. 이것만으로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가?
확실히 남자가 여자에 비해 약간 더 크고 더 근육질이라는 사실(그러나 지구력은 조금 떨어진다)만으로는 체구와 근육이큰 역할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젠더 불평등이 항상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다.
우리 생각처럼 인간이 정말로 불의와 불평등을 싫어한다면, 과거의 대제국과 고도의 문명이 과연 단 15분 동안이라도 존재할 수 있었을까?
우리 주장처럼 우리 미국인들이 불의와 불평등을 강력히 싫어한다면, 이 나라에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이 존재할까?
ojo Lie우리는 반란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반란의 정신을 요구하지만, 특권층은 잘못된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P355

폭력이 있어도 없어도 사회는 변한다. 재창조가 가능하다. 건설도 가능하다. 망치, 못, 톱외에 우리가 지닌 건설도구가 무엇인가? 교육, 생각하는 법 배우기, 학습 능력?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집을 짓기 위해 반드시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도구가 있는가?
우리가 현재의 지식을 바탕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면 현재의 지식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 유색인, 여자, 빈민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
지금껏 배운 백인과 남자와 권력자의 지식을 모두 머리에서몰아내야 하는가? 성직자와 남성우월주의뿐만 아니라, 과학과 민주주의도 내다 버려야 하는가? 다른 도구는 하나도 없이맨손으로 새로운 사회를 세우려고 애쓰는 신세가 될까? 로드의 은유는 풍요롭고 위험하다. 그것이 제기하는 의문들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 P359

우리가 정의를 상상할 능력이 없다면, 우리 자신의 불의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자유를 상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정의와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
고 상상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에게 정의와 자유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 P363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러분은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믿고, 독자를 믿어야 합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야기도 독자도 존재하지않으므로, 여러분이 믿어야 할 것은 여러분 자신뿐입니다. 그리고 작가로서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되는 방법은글쓰기뿐입니다. 글쓰기에 여러분을 바치십시오. 글을 쓰고있는 상태에, 글을 이미 쓴 상태에 글을 쓰려고 준비하는 것에, 글을 쓰려고 계획하는 것에 읽기에, 쓰기에, 자신의 일을연습하는 것에 자신의 일을 배우는 것에 여러분을 바치십시오. 그러다 보면 뭔가를 알게 되고, 여러분은 자신이 뭔가를알게 됐음을 깨닫습니다. - P367

작가로서 자신을 믿는 것은 모든 종류의 믿음과 거의 똑같습니다. 예를 들면, 배관공이나 교사나 기수의 믿음이그렇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을 믿을 자격을 얻고, 열심히 일하면서 천천히 믿음을 쌓아 올립니다. 때로는, 특히 처음 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거짓으로 믿음이 있는 척합니다. 마치 그 일을 잘 아는 것처럼 구는 겁니다. 어쩌면 거짓을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축복받은 것처럼 굴다 보면 정말로 축복을 받을 때가 있죠. 그것도 자신을 믿는 일의 일부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방법이 배관공보다 작가에게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 P368

작품의 계획, 주제, 속도, 방향을 알고 지킨다는 의미에서 신중하고 의식적인 통제는 계획 단계(글을 쓰기전)와 수첫 번째 초고 완성 이후)에서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이귀중합니다. 글을 실제로 쓰는 동안에는 의식적이고 지적인통제를 느슨하게 풀어두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글의 의도를 고집스럽게 계속 의식하다 보면 그것이 글을 쓰는 과정에 간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작가가 이야기의 방해꾼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말만큼 신비로운 일이 아닙니다. 고도의 기술이필요한 일, 즉 진정한 기술과 예술은 모두 경험을 통해, 매체에 대한 완벽한 숙지를 통해 대부분의 과정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완성됩니다. 매체가 조각가의 돌이든, 고수의 북이든, 무용수의 몸이든, 작가가 다루는 말의 소리와 의미와 문장의 리듬과 구문이든 모두 똑같죠. 무용수는 자신의 왼발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작가는 쉼표가 어디에 필요한지 압니다.  - P370

제가 마치 기쁜 소식을 알려주겠다는 듯이, 작가들에게별것 없으니 그냥 머리를 쓰려고 애쓰지 말고 우뇌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말을 뱉어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좋겠습니다. 저는 저의 예술과 기술, 경험, 열심히 생각하는과정, 정성들여 글을 쓰는 과정을 엄청나게 존중합니다. 이것들에 경외심을 품고 있어요. 저는 하원의원보다 쉼표 하나를 훨씬 더 존경합니다. 쉼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심리 치료나 자기표현 같은 좋은 주제를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글쓰기에 대해 하는 말일 리가 없습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는 법, 수줍음을 극복하는 법, 감정적인 정체를 돌파하는 법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 P371

무용수가 되고 싶다면 발을 사용하는 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쉼표를 찍을 장소를 알아내야 합니다. 그 밖의 모든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자, 제가 이야기를 하나 쓰고 싶어 한다고 칩시다(개인적으로 이건 제게 당연하다고 할 만한 일입니다. 저는 항상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니까요. 이야기를 쓰는 대신 하고 싶은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 먼저 저는 영어를 쓰는 법을 배우고, 이야기를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주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바로 이야기 쓰는 법을 배우는방법입니다. - P372

사치스러운 환경을 일의 전제 조건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작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이미 버지니아울프가 말했습니다.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과 자기만의 방. 이 둘 중 어느 것또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 자신의 몫입니다.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을 어떻게 손에넣을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생계를 해결하는 돈은 십중구글쓰기가 아니라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 나올 겁니다.
방이 더러워지는 것도 작가 자신에게 달린 일입니다. 방문을언제 얼마나 오래 닫을지 결정하는 사람도 작가 본인입니다.
써야 할 글이 있다면, 자신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어야합니다. 상냥한 배우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합니다.
넉넉한 지원금, 우연히 찾아온 진전,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있는 시간도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일이므로, 작가가 자신의 상황에 맞춰 글을 써야 합니다. - P375

저는 아무런 의문도 없이 열정을 하얗게 불태우며 이야기를 쓸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연습을 통해 실력을 갈고 닦았다면,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감을 잡고 있다면. 이야기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저는 기꺼이 그대로 돌아서서 원고를 몇 번이나 살펴볼 겁니다. 단어 하나하나,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살피며 시험하고 또 시험할 겁니다. 이야기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까지 이야기 전체가 올바른방향으로 나아갈 때까지.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단계에서 다른 사람들, 즉 동료나전문 편집자의 비판적인 의견을 구하는 것이 가장 유용합니다. 글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작가를 응원하며 들려주는 비판적 - P376

인 의견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글을 발표하지 않은 사람도, 경험 많은 전문 작가도 자신감과 비판적인눈을 기르는 데 워크숍이 유용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믿을 만한 편집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진주입니다. 독자를 신뢰하는 법과 어떤 독자를 믿어야 하는지 알아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주 커다란 한 걸음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끝내 이걸음을 내딛지 못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곧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저는 이야기를 믿어야만 이야기의 방향을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다 쓴 다음에는 자신을 믿어야만제가 어디서 길을 벗어났는지, 모든 것을 어떻게 온전히 한방향으로 되돌릴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 P377

예술은 인간 공동체를 확립하고 확인하는 데 강력한 기능을 발휘합니다. 말로 하는 것이든 글로 쓴 것이든 이야기는온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의 위치를 더 많이 이해할수 있게 해주죠. 이런 쓰임새는 예술 작품에 처음부터 존재하며, 그것이 있어야 작품이 완전해집니다. 그러나 제한된 목표, 의식적인 목표, 객관적인 목표는 모두 그 완전성을 가리거나 흉하게 변형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의 재주와 경험이 충분한 것 같지 않아도(실제로 언제나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반드시 저의 재능을 믿어야 합니다. 따라서 제가 쓰는 이야기를 믿고, 그 쓰임새나 의미나아름다움이 제가 계획한 모든 것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P379

예를 들어, 『전쟁과 평화』를 읽어보자(아직 『전쟁과 평화』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왜 꾸물거리고 있는가?). 모든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이 작품에서가끔 톨스토이 백작의 목소리가 불쑥 치고 들어온다. 그는 역사에 대해, 위인에 대해, 러시아의 영혼에 대해, 그 밖의 여러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를 우리에게 일러준다. 강연으로 들을 때보다 이렇게 이야기에서 무의식적으로 흡수할 때, 그의 의견이 훨씬 더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
톨스토이는 자신감이 아주 대단한 작가였고, 그럴 자격도 있었다. 그의 작품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은 대부분 등장인물에 대한 그의 완전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들은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을 모두 해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열렬한 신념 때문에 오히려 그 신념을 작품에 구현하는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다소 잃어버린 듯하다. 모든 소설 중 가장 위대한이 작품에서 지루하고 설득력 없는 부분에서는 모두 이런 신뢰 부족이 드러난다. - P379

이야기는 이야기꾼과 청중, 작가와 독자 사이의 협업입니다. 픽션은 환상일 뿐만 아니라, 공모이기도 합니다.
독자가 없으면 이야기도 없습니다. 아무리 잘 쓴 작품도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으면 이야기로서 존재하지 못합니다. 작가 못지않게 독자도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작가는 이 사실을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아마 화가 나기 때문이겠죠.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대중적인 시각에서 통제와 동의의 문제로 보입니다. 작가는 독자의 흥미와 감정을 강제하고통제하고 조종하는 주인입니다. 이 가설을 좋아하는 작가가아주 많습니다. - P380

게으른 독자는 대가의 솜씨를 지닌 작가를 원합니다. 모든 일을 작가가 알아서 하고, 자기는 텔레비전을 보듯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걸 그냥 보기만 하겠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기꺼이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려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입니다. 표지의 선전 문구는그 책이 지닌 위압적이고 공격적인 힘을 강조할 때가 많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출 수 없다. 가슴이 덜컹한다. 머릿속을 태운다,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이게 뭐죠? 전기 충격 고문입니까? - P380

지금까지의 설명은 모두 접근 단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단계죠. 이제 어떤 독자(제 손녀에서부터 모든 후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 중에서 고르면 됩니다)를 염두에 둘 것인지 흐릿하게든 또렷하게든 알게 되었으니 저는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이 집필단계에서 청중을 의식하는 것은 때로 더할 나위 없이 치명적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어느 한 지점에서 막혀 자꾸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며 끝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어깨 너머에서 글을 들여다보며 "그 문장 첫머리를 ‘The‘로시작하는 게 좋은 방법입니까?"라는 말이나 해대는 상상 속 - P384

비평가들이 가득한 방은 안 됩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내면의대한 검열관 또는 외부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것(내 대리인이나 편집자가 무슨 말을 할까?)은 이야기의 앞길을 가로막는바위 사태와 같습니다. 집필단계에서 저는 작품이 스스로 길을 찾아낼 거라 믿고 작품을 도우며 전적으로 작품 그 자체에집중해야 합니다. 작품의 목표나 잠재적인 독자에 대해서는거의 또는 전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BAP그러나 세 번째 단계인 퇴고에 이르면 상황이 다시 반전됩니다.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읽을 것이라는 인식, 예상되는독자의 종류에 대한 인식이 몹시 중요해집니다. - P385

퇴고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명확성-강한 인상- 속도 - 힘 - 아름다움…… 모두 이 이야기를 머리와 마음으로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퇴고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걷어내, 독자가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쉼표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그냥 얼추 맞는 단어가아니라 딱 맞는 단어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조리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함의가 중요한 겁니다.
그 밖에도 이야기를 읽기 쉽게 만들어주고 살아나게 해주는모든 요소가 중요합니다. 퇴고할 때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과자신의 판단력이 잠재적인 독자의 영민한 머리에 맞춰 작동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배우자, 친구, 워크숍 동료, 교사, 편집자, 대리인 등주변의 구체적인 독자들도 믿어야 합니다.  - P385

글에 등장시키는 인물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내든 아니면 자신이 아는 사람의 면모를 빌려 오든, 픽션 작가는 이 인물이 일단 소설 속 인물이 되면 자기만의 생명을 얻는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한다. 때로는 이 인물이 작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작가조차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나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쓰는 작품 속 사람들은 내게 가까운 사람인 동시에신비로운 존재다. 친척이나 친구나 적과 비슷하다. 그들은 내머릿속에 살면서 내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창조했으나, 그들의 동기를 고민하고 그들의 운명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내 것과는 다른 자기만의 현실을얻는다. 그들이 그렇게 할수록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점점더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그 인물들은 내 - P387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할 때와똑같이 그들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들을 이용하고 조종하려 들면 안 된다. 그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도 아니고메가폰도 아니다.
그러나 집필이란 특수한 상황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내가 한발 물러나, 내 인물들이 이야기에 딱 맞는 말과 행동을 할 것이라고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 이야기를 계획할 때와 퇴고할 때는 인물들과 어느 정도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싫어하는 인물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그들을 곁눈질로 비스듬히 바라보며, 다소 차갑게 그들의 동기를 조사하고, 그들의 말을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 그들이 나의 빌어먹을 자아를 대변하는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때까지. - P388

만약 내가 내 소설 속 인물들을 무엇보다도 나의 자아 이미지, 자기애 또는 자기혐오, 나의 욕구, 의견 등을 충족시키는 데 이용한다면, 그들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없고진실도 말할 수 없다. 이야기 자체는 욕구와 의견을 드러내보여주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들은 인물이 아니라 꼭두각시가 되어버릴 것이다.
작가로서 나는 내가 바로 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의식해야 한다. 나는 곧 그들이고,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  - P388

자기 인식에는 맑은 머리가 필요하다. 이런 또렷함은 강인한 정신으로 얻을 수 있고, 강인한 정신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얻을 수 있다. 어쨌든 노력을 기울여 얻어야 한다. 작가는이야기를 향해 투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아는 불투명하다. 이야기의 공간을 채워 정직함을 차단하고,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말을 날조한다.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픽션도 창조자가 창조물과 자신의 차이를 사랑하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그 공간이 없다면일관된 진실성도,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존중도 있을 수 없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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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사람들은 보통 음악, 미술, 무용, 시에서 사례를 가져온다. 산문을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없다.
산문이 이야기의 주제일 때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마치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같다. 어떤 문제에 대해 만족스럽고 우아한 해법을 찾아냈다는 의미의 아름다움, 생각과 관련된 지적인 아름다움.
그러나 운문에서든 산문에서든 언어는 물감이나 돌멩이와 똑같이 물리적인 요소다. 음악에서 목소리와 귀, 춤에서 몸의 역할과 같다.
- P295

나는 비평가들이 언어를 무시하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문자 그대로 언어를 말한다. 언어가 내는 소리, 문장의 박자와 속도, 언어가 스스로 확립하고서 오히려 통제를 받는 리듬 구조,
교과서 내용을 요약해놓은 참고서 같은 것에 의존하는교수법은 문학 연구를 장난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야기의 미학적인 가치를 무시한 채 그 이야기가 표현하는 생각, 즉 의미‘만 다룬다면 문학이 급격히 빈곤해진다. 지도와 풍경은 다르다.  - P295

독서는 공연이다. 담요 속에 숨어 손전등으로 책을 읽는아이든,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 여자들, 서재 책상에서 책을읽는 남자든 독자는 모두 자신이 읽는 작품을 공연한다. 그것은 조용한 공연이다. 독자는 언어의 소리와 문장의 박자를 내면의 귀로만 듣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 드럼을 두드리는 조용한 드러머들이다. 놀라운 극장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공연이다.
조용한 독자는 어떤 리듬을 들을까? 산문 작가는 어떤리듬을 따라갈까?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인 『포인츠 홀』을쓸 때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일기에서 그녀가 PH로 지칭한 이 작품은 출판되면서 ‘막간‘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 P296

머릿속에서 울리면서 사람을 구불구불 공처럼 접어버리는 것이 책의 리듬이다. 사람은 몹시 피곤해진다.
PH (마지막 장)의 리듬에 너무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나머지 나는 문장을 말할 때마다 그리듬을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 리듬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회고록을 쓰려고작성한 메모를 읽으면서 나는 그 리듬을 깨뜨렸다. 메모의 리듬이 훨씬 더 자유롭고 느슨하다. 그 리듬으로 이틀동안 글을 쓰고 나니 완전히 생기를 되찾았다. 그래서 내일 다시 PH로 돌아간다. 이건 좀 심오한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 『일기』, 1940년 11월 17일자) - P297

이 일기를 쓰며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던 때로부터 14년권 골프는 내가 이 책의 맨 앞에 인용하고 제목을 지을 때도사용한 글을 썼다. 거기서 울프는 산문의 리듬과 "마음속에서깨어지고 구르"는 물결에 대해 말한다. 또한 이야기의 리듬에관한 자신의 말을 가리켜 가벼운 어조로 ‘심오하다‘는 말도한다. 이야기의 리듬을 지나가듯이 언급한 두 글에서 모두 울프는 자신이 뭔가 큰 것을 붙잡았음을 알았던 것 같다. 그것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1926년에 쓴 편지에서 울프는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세상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상상하다 보면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난다"고 썼다(편지 1618), 장소와 상황이 먼저 있고,
인물들이 플롯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려주 - P297

는 데서 중요한 것은 박자를 찾는 것이다. 무용수가 춤이 되듯이 그 리듬이 되는 것이다.
독서도 같은 과정이다. 다만 훨씬 더 편안해서 피곤하지않을 뿐이다. 리듬을 일일이 찾아내려 애쓰지 않고 그냥 리듬을 따라가며 거기에 휩쓸리면 되기 때문이다. 춤이 나를 춤추게 하면 된다. - P298

가 말하는 리듬은 무엇인가? 산문은 명확히 드러나는 규칙적인 박자나 반복되는 운율을 공들여 회피한다. 그렇자면 깊숙이 생략되어 있는 강세 패턴이 존재하는가? 아니면문장들 사이의 문장 안에서, 구문과 연결과 문단 안에서 리듬이 발생하는가? 산문에서 구두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인가? (시에서는 행이 구두점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구두점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니면 산문의 리듬은 훨씬 더 긴 구절들과 큼직큼직한 구조, 이야기 속테마의 반복과 사건의 발생, 플롯 및 장의 연결과 대위법 속에도 확립되어 있는가? - P298

물론 기다림은 글쓰기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리건 해안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소설 허니스」를 쓸 때는 많은 기다림이 필요했다. 몇 주,
몇 달의 기다림. 나는 네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20세기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서로 겹치는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있었다. 나는 선심을 베풀듯이 과거를 바라보지 않기로, 그들의 목소리를 일반적이고 입심 좋고 예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식으로 죽은 자의 목소리를 빼앗아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네 여성 각자가 자신의 마음속 중심으로부터 진실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해야 했다. 설사 그녀도 나도 진실이 무엇인지모른다 해도, 또한 각각의 목소리는 그 사람 특유의 운율로말해야 했다. 그러나 그 리듬에는 다른 목소리들의 리듬 또한포함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공감하며, 진실한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 P304

그때는 나를 태워줄 용이 없었다. 바닷가를 걷거나 조용한 집 안에 앉아 내 상상 속 부드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진실하게, 언어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박자와리듬을 포착하려 애쓰면서 나는 자꾸 머뭇거렸다. 바보가 된것 같았다.
- P304

나는 소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게 소설은 교향곡만큼 아름답고, 바다만큼 아름답다. 밀려왔다 밀려가며 깨어지고 구르는 파도처럼 완전하고, 진실하고, 생생하고, 크고,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심오하고, 거슬리고, 영혼을 넓혀준다. - P305

말보다 문자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은 문자를아는 사람들 머리에 완전히 박혀 있다. 그 원인이 없지는 않다.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 문자를 모르는 사람은 엄청나게 불리하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우리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사람이 기본적으로 문자를 알아야만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 P314

문자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를 비교해보면, 문자가 있는 사회는 문자가 없는 사회와는 다른 힘을 지닌 것 같다. 문자가 없는 문화와 달리, 문자가 있는 문화는 내구성이 강하다.
그리고 문자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더 현명하지는 않다. 문자는 사람을 선하거나 똑똑하거나 현명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문자가 있는 사회는 어떤 면에서 문자가 없는 사회보다 우월하지만, 문자를 아는 사람이 말로만 의사소통하는 사람에 비해 우월하지는 않다. - P314

문자를 아는 사람이 이처럼 엄청난 힘을 문자로부터 부여받기 때문에, 그들은 문자를 모르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도 문자를 아는 사제들과 귀족들이 문자를모르는 사람들을 지배했다. 여자가 글을 배울 수 없던 시절에는 문자를 아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지배했다. 글을 아는 사업가는 글을 모르는 빈민가 사람들을 지배한다. 영어를 아는 기업은 글을 모르거나 영어를 모르는 직원을 지배한다. 힘이 권리를 만든다면, 구술문화는 틀렸다. - P315

시각은 통합적이지 않고 분석적이다. 눈은 사물을 분간하고 싶어 한다. 대상을 선별한다. 시각은 활동적이며 외향적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물을 보고, 시선의 초점을 맞춘다. 시야가 깨끗하기만 하다면 사물을 분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시각적 이상은 선명함이다. 안경을 쓰면 큰 만족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시각은 양이다.
청각은 통합적이다. 머리의 양편에 있는 귀는 소리의 방향을 상당히 잘 알아낸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해 소리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머리와 달리, 귀는 근본적으로 어디선가날아오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어느 한 지점에만 초점을 맞추지도 못하고, 소리를 선별해서 들으려면 열심히 애를 써야 한다. 귀는 듣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귀에는 덮개가 없기 때문이다. 청각이 닫히는 건 잠잘 때뿐이다.  - P325

목소리는 주위에 구를 만들고, 거기에는 듣는 사람이 모두 포함된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제한된 자리를 차지하는 친밀한 구역이다.
창조는 행동이다. 행동에는 에너지가 든다.
소리는 역동적이다. 말도 역동적이다. 이것은 행동이다.
행동하는 것은 힘을 쥐는 것, 힘을 갖는 것, 강해지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상호 의사소통은 강력한 행동이다. 말하는 사람 각자의 힘이 듣는 사람의 엔트레인먼트에 의해 증폭되고 증강된다. 공동체의 힘은 말의 상호 엔 - P328

트레인먼트에 의해 증폭되고 증강된다.
그래서 말은 마법이 된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름에도힘이 있다. 말은 사건이므로, 이런저런 행동을 하고 변화를일으킨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모두 변화시킨다.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증폭시킨다. 이해 또는 감정을 주고받으며 증폭시킨다. - P329

구술 공연은 인간의 말 중에서 특별한 종류다. 구술문화에서 이 공연은 문자문화의 독서와 같다.
독서가 구술보다 우월하지도 않고, 구술이 독서보다 우월하지도 않다. 이 두 행동은 서로 다르며,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극심히 다르다. 조용한 독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개인적인 활동이다. 그 활동을 하는 동안 독자는 신체적, 물리적으로 주변 사람과 분리된다. 구술 공연은 강력한 유대를맺어주는 힘을 발휘한다. 이 활동이 이루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유대감을 느낀다.
50문자문화에서 구술 공연은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활동으로 간주된다.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낭송하거나 배우가 연기를 할 때만 구술이 책을 조용히 읽을 때와 비견되는 문학적 힘을 지닌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 P329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을하고 사람들이 그 말을 듣는 구역도 있을 수 있다.
형식을 따른 그 웅변을 영상과 테이프에 담아 그날의 그행사가 메아리치게 하거나, 그림자에 가려지게 하거나, 기억으로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 그날의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사건 자체는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다.
흐르는강물은 절대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구술공연은 재현할 수 없다.
별도로 마련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시간, 의식의 시간, 또는 신성한 시간 주기적 시간은 맥박, 신체 주기, 달 주기, 계절, 연례행사, 반복되는 시간, 음악적 시간, 춤추는 시간, 리듬 시간이다. 한 사건이 두 번 일어나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주기적 시간의 요체다. 올봄은 지난봄과 다르지만 봄은 언제나똑같이 되돌아온다. 매년 같은 시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 의식도 마찬가지다. 한 이야기를 한 번씩 들려줄 때마다 그것이 새로운 사건이 된다. - P331

내 생각에는 상상력이야말로 인류가 소유한 가장 유용한 도구인 것 같다. 다른 손가락들과 반대 방향으로 구부러지는 엄지손가락의 유용성도 상대가 안 된다. 나는 엄지손가락없이 사는 삶은 상상할 수 있어도, 상상력이 없는 삶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말에 동의하는 목소리들이 들리는 듯하다. "맞아요.
맞아요! 창의적인 상상력이 업무 처리에 얼마나 엄청난 도움이 되는데요! 창의성이 귀중하니까, 우리는 거기에 걸맞은 보상을 줘요!" 시장에서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실용적인 전략에적용되어 이윤 폭을 늘려주는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능력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 축소가 워낙 오랫동안 지속된 탓에 이제는 창의적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깎아내리기가 힘들정도다. 이제 나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본가와 학자가 마음껏 유린하게 내버려둔다. 하지만 그들에게 상상력까지 넘겨줄 수는 없다. - P341

따라서 우리는 상상력의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상상력을 갖고 있다. 태어날때부터 몸, 지능,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이아이가 인간이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하며, 아이는 이것들의 사용법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교육과 훈련은유아 시절에 시작되어 평생 계속 이어져야 한다. 어린 인간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몸과 정신의 기초적인 재주들과 마찬가지로 상상력도 반드시 연습할 필요가 있다. 성장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유능함을 위해서, 즐거움을 위해서, 정신이살아 있는 한 연습도 계속 필요하다. - P342

아이가 제가 속한 종족의 핵심적인 문학을 듣고 배울 때, 만약 문자문화권에 태어난 아이라면 핵심적인 문학을 읽고이해하는 법을 배울 때, 상상력을 단련하는 데 필요한 연습이아주 많이 이루어진다.
문학만큼 훌륭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없다. 심지어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말로 살아가는 생물이다.
지능과 상상력 모두 말이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음악, 춤, 시각예술, 모든 종류의 공예,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발전과안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어떤 기술이나 재주는 일단 배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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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파리에 와서 1~2년간 나를 둘러싼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꼈다. 시간이 멈췄기에 나는 노화를 멈췄다. 당시 나는 사회적으로 10대 수준도 안되는 언어능력과 생활능력을 가진, 몸만 어른인 존재였으니까. 언어를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적 성숙이 지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육체의 노화가 멈추는 느낌은 예상 밖이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깨달음, 발견으로 채워지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저항하던 정신의 세포가 하나하나 낯선 향기에무장해제되고, 깨어나며, 왕성하게 새로움에 반응했다. - P14

거리에서 종종 마주친다. 삶의 작은 반경에 다만 자기 삶을부려놓고, 오직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의 얼굴, 사람의 얼굴은 얼마나 적나라하게 그 속에 삶을 함축하고있는지. 그것은 축복이기도 때론 형벌이기도 하다. 나이든 아시아 여성들, 그들의 현재는 고스란히 나의 미래다. 유독 그들에게서 방어적인 눈빛을 많이 본다. 그들은 인생에서 여러 번선택의 기로에 섰고, 나를 확장하는 대신 내가 선 땅을 단단히구축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눈은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쌓아 올린 둑 안에서 세상을 경계하며바라보는 눈이다. 그들에겐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항해를 멈추고 닫힌 세계에서 맴도는 슬픔이 배어나온다. - P17

항해의 목적은 안전하게 돌아오는 데 있지 않다. 항해의 목적은 더 멀리 항해하는 것에 있다. 육체의 생명이 다하는 날, 바로그날 나의 정신도 성장을 멈추기를 바란다. 내정신이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음에도 육체가 꾸역꾸역 삶을 영위하는 민망한사건이 가급적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함께 손잡고 오래오래 월담하고 월담하기를. - P18

사람들이 서로의 스펙을 묻고, 진열하고, 서열화하는 것은, 사람 볼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해가기 때문이다. 사람 눈빛과 낯및 보면 대충 알고, 몇 번 말 붙여보면 더 또렷이 느낀다. 글쓰는 것, 사람 대하는 것을 보면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물론이러한 직관을 가지려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내 엄마가 자신이 키운 자식이 성장하여 데려온 남자를뜯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자신의 삶에대한 믿음이 있으니, 그 결과물인 자식의 선택에 대해서도 조건없는 신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을 점수화하고 서열속에 집어넣어 보아야만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직관을 상실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 P20

프랑스 책들을 사 보면, 책날개에 저자의 얼굴은커녕 이름말고는 소개 한 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껏 독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출판사가 있다면, 저자가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들의 목록을 알려주는 정도. 이 프랑스식 불친절은 책에 대한존중이며, 결국 독자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어떤 편견이나선입관도 없이 책과 직접 대면하라는 주문이다. 유명인사의 추천사 한 줄 없어도 망설임 없이 책장을 열고 저자의 목소리와단도직입으로 만나라 청하는 것이다.
그 누구든 어제까지의 삶이 축적한 알몸의 주인으로 만날 수있는 세상. 그런 사치, 맘껏 누리고 싶다. - P21

난 ‘계급‘을 지극히 기계적인 마르크스의 피조물이라고 비웃어왔지만, 그 피조물에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이 땅에는 역사를 맹렬하게 직시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급과 흐릿하고 매캐한 세상에서 안개가 걷히는 걸 절대 바라지 않는 눈 부릅뜨고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는 계급이 있다. 그와 나는 결코 만나질 수 없는 계급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고, 1980년대 대학이라는 용광로속에서 잠시 사고처럼 부딪히고 이끌렸을 뿐이다. 역사 앞에 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 거짓이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이 고단한 시대의 패배자는 속죄의 길을 찾지 못하여 계속 비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나는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 - P26

유일한 승천 길이었던 사법고시도 당장 안전하게 목구멍에 들어갈 양식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닿을 수 없는 사치였음을작가는 알고 있었다. 가난이 사악한 것은 꿈 자체를 지우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뿐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자식들의 꿈까지 지워버렸고, 그로 인해 부부는 서로에게 악을 써대며 살았다. 그기쁜 날, 발목에 매달려 있던 쇠사슬이 일순간 사라진 날, 성동일은 덩실덩실 춤추기보다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그가명예퇴직을 당하고 온 날의 표정과도 비슷했다. 살얼음판 위를 걷던 사람이 비로소 땅 위를 걷기 시작했을 때, 그 평범한 삶에 도달한 감격은 호들갑으로 표현될 수 없었다. 감히 바랄 수도 없어 보였던 평범함을 기적처럼 얻었을 때 기쁘기보다 비장해진다는 걸, 배우는 잘 표현했다 - P36

질투하지 않는 인간관계,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풍성하게해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쌍문동 골목에서 피어나는 톡톡한 ‘정‘의 본류는 세 엄마 간의 돈독한 우정이었다. 그들의 우정은 아이들에게로, 그리고 가장 난이도 높은 지대인남편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질투는 결단코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그것은 만인이 만인을 향한 경쟁을 통해 단 하나뿐인 줄에일렬종대로 서서 우열을 거둬야 한다고 믿는 이데올로기에서작동되는 자본주의에 의해 학습된 어리석은 태도일 뿐이다.
만인에게는 만인의 길이 있으며, 우린 그 길들을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허락해야 한다. 싸움은 그 다양한 길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과 해야 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 중국의 모쒀족 등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로 인간의 본성이 침해되는 참사를 겪지 않은 인류는 경쟁과 질투를 모르고 살았다. 그들에게인생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라, 자연을누리고 이웃과 어울려 서로를 경배하고 축복하는 향연이었고 축제였다. - P39

프랑스사회에서 성대한 결혼식은 에너지 넘치는 몇몇 사람들이 벌이는 공동체를 위한 서비스로 여겨질 만큼 드문 일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결혼식은 구청에 가 구청장과 증인 앞에서 선언하고 서명하는 것일 뿐이며, 이마저도 생략하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인지 이 결혼식은 내게 낯설고 그만큼아름다웠다. 아직도 이런 것을 정성 들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욱이 그들이 쏟은 정성은 오로지 서로를 향한 애틋한애정만을 동기로 삼은 듯했다. 하객 중엔 파트너를 향해 진한애정표현을 하는 커플들이 많았다. 신랑 신부가 방사한 에로스의 분가루가 모두의 머리 위에 소복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리라.
결혼식이야말로 한 커플의 낭만적 사랑을 결박하는 가장 찬란한 슬픔의 세리모니라는 나의 오래된 확신은 결혼과 사랑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이들 앞에서 전복되고 말았다. - P45

갈비뼈를 내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리하고 멀리 달아날것.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지막결정적인 지점에선 묵묵히 바라만 볼 것. 자식이 맞이해야 할고난과 역경을 부모가 대신 맞아주지 말 것. 남의 인생을 결코대신 살아주려고 애쓰지 말 것. 남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는 자결국 상대의 자존을 빼앗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P71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영혼의 문이 닫히기 전에 세상과사물을 영혼으로 보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먼 자들의 세상에 갇히고 말 터이다. 영혼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의 첫 단계는 타인의 자리에 서서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것이라고 인디언들은 말한다. 어쩜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모른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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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의 시작은 첫 단어이고, 리듬은 시간의 음계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리듬은 선형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각각의 사건이 줄 하나에 간격을 두고 구슬처럼 꿰어져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 줄이 둥근 원으로 변하면 구슬 목걸이가 된다. 만약 사건이 하나뿐이라면, 거기에 표시된간격은 항상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원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1년 간격으로 생일이라는 사건이 반복되는......
간격이 같으면 규칙적인 리듬이 만들어진다. 간격이 불규칙할수록 사건들이 비슷해야만 리듬의 식별이 가능해진다.
리듬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이고 신체적인 것이다. 드럼을 때리는 스틱, 발을 구르는 무용수, 리듬은 영적인 것이다.
드러머가 느끼는 황홀경, 무용수가 느끼는 즐거움. - P123

글쓰기의 리듬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는 세상의 학자들 사이를 방황했다. 시계, 심장, 끼니와 끼니 사이의간격, 밤과 낮의 변화, 글쓰기가 어떻게, 왜 리듬을 갖게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기계적 리듬, 생물학적인 리듬, 사회적인 리듬, 우주적인 리듬을 생각했다. 신체적 리듬과 사회적 규칙성의 상호작용을 생각했다. 리듬과 질서, 리듬과 혼돈의관계를 생각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몸이 만들어내는 박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 P123

리듬은 박동이다. 생명도 그렇다. 상대가 아직 살아 있는지 알고 싶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맥박을 찾아본다. 맥박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의를 집중한다. 고른 리듬과 불규칙한 리듬에 심장박동은 자주 바뀐다. 오랫동안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박동과 박동 사이의 간격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박동을간격 사이의 경계선으로 생각해본다. 박동과 간격은 도형과배경이 쉽게 혼동되는 그림에서처럼 역전될 수 있다.
걷기는 아름다운 박자다. 그냥 걷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땅을 두드리는 박자를 좋아한다. 강세가 강한 방식이다. 그것도 좋지만, 걷기도 기분 좋다. 미묘하게 계속 바뀌는 걷기의 꾸준한 리듬을 의식하면서 그냥 걷는 것.
태극권식 걷기의 리듬은 흥미롭다. 나는 이 걷기를 다음 - P124

과 같이 배웠다. 맨발로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들숨에 한발을 들어 앞으로 내밀고, 날숨에 발을 내려놓는다. 다른 쪽발이 자연스레 들리겠지만, 그 발을 완전히 들어 앞으로 내밀려면 들숨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발이 날숨 때 부드럽게바닥에 닿는다. 이번에는 처음 움직였던 발이 들숨을 기다리며 준비를 갖춘다…… 이런 식으로 걸으면 그리 멀리까지 갈수 없다. 처음 이 걸음을 시도했을 때 나는 많이 넘어졌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발 전체를 단번에 가볍게 바닥에 내려놓는방법이 도움이 된다. 발꿈치부터 먼저 바닥에 대는 방식이 아니다. 또한 발이 바닥에 닿는 느낌, 바닥이발에 닿는 느낌을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강세가 아주 약한 걷기다. 일종의 명상이기도 하다. 이 걸음을 걸을 때는 걷기 외에 다른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이라는 단어는 흔히 ‘생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내가 알기로 이 단어는 생각하지 않기를 뜻한다. 이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어쨌든 내가아는 모든 명상 방법은 신체의 리듬과 기타 리듬을 즉시 인식하게 해준다. - P125

다시 말해서 운문에서는 간격이 짧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산문에서는 간격이 길다.
강세가 없는 음절 다섯 개 이상을 연달아서 말하면,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릴 가능성이 크다. 애당초 그런 것이 바로중얼거림이다. 이것이 아SYLLables in a ROW. 여기서는 강세 사이의 음절이 네개다. SYLLables in an unexPECted ROW. 여기서는 여섯 개인데, 이걸 소리 내서 읽다 보면 정말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중간에 약한 강세를 넣어 박자를 줄 때가 많다.
아마도 ‘unexpected‘의 ‘un‘이 그 지점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말하기가 더 쉬워진다.
글을 읽을 때도 말을 할 때도 우리는 강세가 상당히 자주나오기를 바란다. 긴 간격에는 저항감이 느껴진다. 중얼거리는 것이 정말로 싫기 때문이다. - P127

현대 시에서 행은 다루기 힘든 주제다. 시를 소리 내어읽을 때는 행이 끝날 때에도 전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인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행은 시의 패턴, 리듬의 일부다. 자유시를 읽을 때 행이 어디서 끝나는지 목소리로 아주 어렴풋하게라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시를 듣는 사람은 행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행은 그저 인쇄를 위한 편의에 지나지 않는다. 운을 맞춘 정형시에는 규칙성이 있어서 듣는 사람에게 행이 끝나는 지점을 신호해줄 수도있지만, 그래도 시를 읽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지원을해줘야 한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는 대사에서 자연스럽게이어지는 목소리의 흐름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오보격 박자사이에서 계속 타협을 해야 한다. 만약 셰익스피어 배우가 자연스러운 어조를 위해 행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시를 산문처럼 읽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 P133

허구든 사실이든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나서 ‘진짜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언행에 대한 단순한 서술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언행이라는 소재를 취사선택하고 재배치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디 피에로 씨의 말 "기억은 상상이다"가 바로 이런 뜻이지 싶다.
(내 소설 『어둠의 왼손』에서겐리아이가 "진실은 상상의 문제"임을 고향 행성에서 배웠다고 말했을 때도 같은 뜻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겐리는 물론 실존 인물이 아니다.)그렇다면 논픽션에 창작을 섞는 데 찬성하는 사람들의주장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픽션에 창작한 내용의 배열, 조작, 해석이 필요하듯이, 창작 논픽션에는실제 사건의 배열, 조작, 해석이 필요하다. 단편소설은 창작물이고, 회고록은 재창작물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무시해도될 만큼 사소하다. - P225

어쩌면 작가들이 현재 약속의 내용을 고쳐 쓰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어쩌면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손쓸 수없을 만큼 전前포스트모던적이어서 독자들은 픽션 속의 사실적인 정보를 받아들일 때처럼 논픽션 속의 거짓 데이터도 점점 차분히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워낙 많이 쏟아지는 탓에 아주 무감각해진 우리는 유사 사실도 그럭저럭 사실과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무감각 때문에 모든 종류의 과장(광고,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 정치적인 ‘비밀 정보,‘ 애국적이고 도전적인 선언 등등) 또한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내용이 믿을 만한지 아니면 그런 글들이 우리를 조종하려고드는지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읽는다는 뜻이다. - P233

‘창의력‘의 의미가 무엇이든, 데이터와 기억의 위조에 이단어를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의도적인 위조든 ‘불가피한 위조는 상관없다.
사실을 관찰하고, 조직하고, 서술하고, 해석하는 작가의능력에서 훌륭한 논픽션이 나온다. 이 능력은 전적으로 상상력에 기대고 있지만, 이때의 상상력은 창작이 아니라 관찰한것을 서로 연결해서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미학적인 편의, 자신의 희망사항, 영적인 위안, 정신적치유, 복수, 이득 등 여러 이유로 사실을 ‘창조‘해 작품에 집어넣는 논픽션 작가들은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중이다. - P234

예전에 문학상은 기본적으로 문학적인 행사였다. 퓰리처 같은 상은 확실히 책의 판매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만이그 상의 가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판사가 회계 부서에 점령당한 뒤로, 문학상의 경제적 측면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요즘은 문학상이 명성, 돈, 서점 진열대 전시 기간과 관련해서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 문학상만 그럴 뿐이다. 뉴스로 보도될 가치를 인정받고 성공을 보장해주는 상이 있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상은 그렇지 않다. 수상작이 확실히 헤드라인을장식하는 상과 무시당하는 상은 거의 임의적으로 결정되는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아무런 의문 없이 습관을 따른다.  - P236

부커상은 확실히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PEN 웨스턴 스테이츠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하다.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은 최종 후보작들이 질적으로 똑같이 우수할 때가 아주 많아서 그중 한 편을 수상작으로 고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임의적인 결정이라는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작품들의 성격과 의도가 워낙 다양해서 그중 한 편을 수상작으로 고르는 것이 기본적으로 임의적인 결정이라는 말에도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한 편의 수상작을 고르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의무이므로, 그들은 그렇게 한다. 그러면 출판사가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고, 서점들이 아첨을 떨고, 도서관들은 서가를 그 책으로 채운다. 그 와중에 최종 후보에 올랐던 다른 책들은 잊힌다. - P237

경쟁을 통해 우승자 한 명을 고르는 방식은 문학이 아니라스포츠 경기에 적합한 것 같다. ‘대형‘ 문학상들이 점점 지나치게 문단을 지배하는 현상은 유해하고, 이런 시스템은 필면적으로 친분, 지연, 특정 젠더, 거물을 편파적으로 우선하는 분위기를 고착시킨다.
나는 이 중에서 특히 특정 젠더를 편애하는 분위기가 질색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열렬히 부정하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혹시 내가 아무것도 아닌일로 진저리를 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37

그것은 성애적인 매혹이 아니라 신체적인 매혹이다. 신체적이고, 사회적이고, 윤리적이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신경에거슬린다.
그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신경에 거슬린다는 사실을 나의 사회가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회는그것이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다. 여자의 발은 원래 패션과 관습을 위해, 에로티시즘을 위해, 결혼 가능성을위해, 돈을 위해 고통받고 일그러지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맞습니다. 물론이죠, 문제없어요, 라고 말한다. 오로지 내 안에 있는 어떤 것만이, 옛날 젊었을 때 신었던 황당한 신발 때문에 비틀어진 내 발가락 속의 작은 신경만이, 발등의 근육만이, 발꿈치의 인대만이, 내 몸의 그 모든 조각들만이 아냐 아냐 아냐아냐라고 말한다. 그건 괜찮지 않다고,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 P268

나의 외모는 나라는 사람의 일부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몸이 어떤 모양인지,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무엇이 내게 어울리는지 알고 싶다. 몸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사람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 유리병 안에 둥둥 떠 있는 뇌 같은 꼴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몸과 분리되어 정신만 둥둥떠다니는 존재가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몸 ‘속‘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이 몸 자체다. 허리가 있든 없든.
하지만 내 몸이 지난 세월 놀랍고 짜릿하고 걱정스럽고실망스러운 갖가지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나라는 사람. - P278

그 사람을 찾아내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깊게꿰뚫어 보아야 한다.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까지도내게 기억이 있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는다. - P279

젊음과 건강함이라는 아름다움의 이상이 있다. 이 이상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항상 진실이다. 영화배우나 광고 모델로 대표되는 아름다움의 이상도 있다. 아름다움의 게임이 내세우는 이 이상은 항상 경우에 따라 규칙을 바꾼다. 그리고언제나 진실이 아닌 부분이 섞여 있다. 이보다 더 정의하기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이 아름다움은 몸과 정신이 만나 서로를 정의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아름다움에 무슨 규칙이 있기는 한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중 하나는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종교가 믿음의 규약 중 하나로 약속하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인이 된 소중한 사람들을 나중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꾸는 꿈을 천국으로 지칭했을 뿐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천국에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 P279

내 어머니는 여든세 살 때 암으로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 비장이 너무 비대해져서 겉으로도 드러날 정도였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모습이 그것인가? 가끔은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 모습에는 확실히 진실이 담기 있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진실이 담긴 모습이 흐릿하게 가려진다. 그 모습은 50년 동안 내 머릿속에 쌓인 어머니의 기억 중 하나일 뿐이다. 시간적으로는 가장 마지막 기억이다.
그 뒤에는, 그 너머에는 더 깊고 복잡하고 항상 변화하는 이미지가 있다. 상상, 풍문, 사진, 기억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콜로라도의 산악지대에 살던 작은 빨간 머리 아이, 슬픈 얼굴을 한 섬세한 대학생, 상냥한 미소를 짓는 젊은 엄마, 눈부시게 똑똑한 여자, 비할 데 없이 유혹적인 사람, 진지한 예술가, 뛰어난 요리사....… 어머니가 요람을 흔드는 모습. 잡초를 뽑는모습, 글을 쓰는 모습, 웃는 모습이 보인다. 주근깨가 난 우아 - P280

한 팔에 찬 터키석 팔찌가 보인다. 한순간 이 모든 모습이 한꺼번에 보인다. 어떤 거울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 세월을 건너뛰어 번쩍 빛을 내는 영혼이 언뜻 보인다. 아름답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바로 이것을 보고 그림으로 그리는것이 분명하다.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 속의 지치고 늙은 얼굴들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이 분명하다. 그 얼굴들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깊이가 담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브라이언 랭커의 사진 앨범 ‘나는 세상을 꿈꾼다』에 실린 주름진 얼굴들은 고생해가며 나이를 먹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 세월 동안 자신의 영혼을 다듬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항상 몸으로만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 P281

위대한 무용수들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이 뛰어오를 때 우리 영혼도 그들과 함께뛰어오른다. 공중을 날며 우리는 자유롭다. 시인들도 이런 춤을 알고 있다. 예이츠의 입을 빌려보자.


오 밤나무여, 커다란 뿌리의 꽃나무여,
너는 이파리인가, 꽃인가, 줄기인가?
오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몸, 오 반짝이는 시선
춤과 춤꾼을 어찌 구분해서 볼 수 있을까?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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