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사람들은 보통 음악, 미술, 무용, 시에서 사례를 가져온다. 산문을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없다. 산문이 이야기의 주제일 때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마치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같다. 어떤 문제에 대해 만족스럽고 우아한 해법을 찾아냈다는 의미의 아름다움, 생각과 관련된 지적인 아름다움. 그러나 운문에서든 산문에서든 언어는 물감이나 돌멩이와 똑같이 물리적인 요소다. 음악에서 목소리와 귀, 춤에서 몸의 역할과 같다. - P295
나는 비평가들이 언어를 무시하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문자 그대로 언어를 말한다. 언어가 내는 소리, 문장의 박자와 속도, 언어가 스스로 확립하고서 오히려 통제를 받는 리듬 구조, 교과서 내용을 요약해놓은 참고서 같은 것에 의존하는교수법은 문학 연구를 장난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야기의 미학적인 가치를 무시한 채 그 이야기가 표현하는 생각, 즉 의미‘만 다룬다면 문학이 급격히 빈곤해진다. 지도와 풍경은 다르다. - P295
독서는 공연이다. 담요 속에 숨어 손전등으로 책을 읽는아이든,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 여자들, 서재 책상에서 책을읽는 남자든 독자는 모두 자신이 읽는 작품을 공연한다. 그것은 조용한 공연이다. 독자는 언어의 소리와 문장의 박자를 내면의 귀로만 듣는다. 소리가 나지 않는 드럼을 두드리는 조용한 드러머들이다. 놀라운 극장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공연이다. 조용한 독자는 어떤 리듬을 들을까? 산문 작가는 어떤리듬을 따라갈까?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인 『포인츠 홀』을쓸 때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일기에서 그녀가 PH로 지칭한 이 작품은 출판되면서 ‘막간‘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 P296
머릿속에서 울리면서 사람을 구불구불 공처럼 접어버리는 것이 책의 리듬이다. 사람은 몹시 피곤해진다. PH (마지막 장)의 리듬에 너무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나머지 나는 문장을 말할 때마다 그리듬을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 리듬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회고록을 쓰려고작성한 메모를 읽으면서 나는 그 리듬을 깨뜨렸다. 메모의 리듬이 훨씬 더 자유롭고 느슨하다. 그 리듬으로 이틀동안 글을 쓰고 나니 완전히 생기를 되찾았다. 그래서 내일 다시 PH로 돌아간다. 이건 좀 심오한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 『일기』, 1940년 11월 17일자) - P297
이 일기를 쓰며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던 때로부터 14년권 골프는 내가 이 책의 맨 앞에 인용하고 제목을 지을 때도사용한 글을 썼다. 거기서 울프는 산문의 리듬과 "마음속에서깨어지고 구르"는 물결에 대해 말한다. 또한 이야기의 리듬에관한 자신의 말을 가리켜 가벼운 어조로 ‘심오하다‘는 말도한다. 이야기의 리듬을 지나가듯이 언급한 두 글에서 모두 울프는 자신이 뭔가 큰 것을 붙잡았음을 알았던 것 같다. 그것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1926년에 쓴 편지에서 울프는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세상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상상하다 보면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난다"고 썼다(편지 1618), 장소와 상황이 먼저 있고, 인물들이 플롯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려주 - P297
는 데서 중요한 것은 박자를 찾는 것이다. 무용수가 춤이 되듯이 그 리듬이 되는 것이다. 독서도 같은 과정이다. 다만 훨씬 더 편안해서 피곤하지않을 뿐이다. 리듬을 일일이 찾아내려 애쓰지 않고 그냥 리듬을 따라가며 거기에 휩쓸리면 되기 때문이다. 춤이 나를 춤추게 하면 된다. - P298
가 말하는 리듬은 무엇인가? 산문은 명확히 드러나는 규칙적인 박자나 반복되는 운율을 공들여 회피한다. 그렇자면 깊숙이 생략되어 있는 강세 패턴이 존재하는가? 아니면문장들 사이의 문장 안에서, 구문과 연결과 문단 안에서 리듬이 발생하는가? 산문에서 구두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인가? (시에서는 행이 구두점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구두점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니면 산문의 리듬은 훨씬 더 긴 구절들과 큼직큼직한 구조, 이야기 속테마의 반복과 사건의 발생, 플롯 및 장의 연결과 대위법 속에도 확립되어 있는가? - P298
물론 기다림은 글쓰기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오리건 해안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소설 허니스」를 쓸 때는 많은 기다림이 필요했다. 몇 주, 몇 달의 기다림. 나는 네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20세기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서로 겹치는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있었다. 나는 선심을 베풀듯이 과거를 바라보지 않기로, 그들의 목소리를 일반적이고 입심 좋고 예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식으로 죽은 자의 목소리를 빼앗아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네 여성 각자가 자신의 마음속 중심으로부터 진실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해야 했다. 설사 그녀도 나도 진실이 무엇인지모른다 해도, 또한 각각의 목소리는 그 사람 특유의 운율로말해야 했다. 그러나 그 리듬에는 다른 목소리들의 리듬 또한포함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공감하며, 진실한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 P304
그때는 나를 태워줄 용이 없었다. 바닷가를 걷거나 조용한 집 안에 앉아 내 상상 속 부드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진실하게, 언어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박자와리듬을 포착하려 애쓰면서 나는 자꾸 머뭇거렸다. 바보가 된것 같았다. - P304
나는 소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게 소설은 교향곡만큼 아름답고, 바다만큼 아름답다. 밀려왔다 밀려가며 깨어지고 구르는 파도처럼 완전하고, 진실하고, 생생하고, 크고,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심오하고, 거슬리고, 영혼을 넓혀준다. - P305
말보다 문자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은 문자를아는 사람들 머리에 완전히 박혀 있다. 그 원인이 없지는 않다.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 문자를 모르는 사람은 엄청나게 불리하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우리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사람이 기본적으로 문자를 알아야만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 P314
문자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를 비교해보면, 문자가 있는 사회는 문자가 없는 사회와는 다른 힘을 지닌 것 같다. 문자가 없는 문화와 달리, 문자가 있는 문화는 내구성이 강하다. 그리고 문자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더 현명하지는 않다. 문자는 사람을 선하거나 똑똑하거나 현명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문자가 있는 사회는 어떤 면에서 문자가 없는 사회보다 우월하지만, 문자를 아는 사람이 말로만 의사소통하는 사람에 비해 우월하지는 않다. - P314
문자를 아는 사람이 이처럼 엄청난 힘을 문자로부터 부여받기 때문에, 그들은 문자를 모르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도 문자를 아는 사제들과 귀족들이 문자를모르는 사람들을 지배했다. 여자가 글을 배울 수 없던 시절에는 문자를 아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지배했다. 글을 아는 사업가는 글을 모르는 빈민가 사람들을 지배한다. 영어를 아는 기업은 글을 모르거나 영어를 모르는 직원을 지배한다. 힘이 권리를 만든다면, 구술문화는 틀렸다. - P315
시각은 통합적이지 않고 분석적이다. 눈은 사물을 분간하고 싶어 한다. 대상을 선별한다. 시각은 활동적이며 외향적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물을 보고, 시선의 초점을 맞춘다. 시야가 깨끗하기만 하다면 사물을 분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시각적 이상은 선명함이다. 안경을 쓰면 큰 만족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시각은 양이다. 청각은 통합적이다. 머리의 양편에 있는 귀는 소리의 방향을 상당히 잘 알아낸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해 소리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머리와 달리, 귀는 근본적으로 어디선가날아오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어느 한 지점에만 초점을 맞추지도 못하고, 소리를 선별해서 들으려면 열심히 애를 써야 한다. 귀는 듣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귀에는 덮개가 없기 때문이다. 청각이 닫히는 건 잠잘 때뿐이다. - P325
목소리는 주위에 구를 만들고, 거기에는 듣는 사람이 모두 포함된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제한된 자리를 차지하는 친밀한 구역이다. 창조는 행동이다. 행동에는 에너지가 든다. 소리는 역동적이다. 말도 역동적이다. 이것은 행동이다. 행동하는 것은 힘을 쥐는 것, 힘을 갖는 것, 강해지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상호 의사소통은 강력한 행동이다. 말하는 사람 각자의 힘이 듣는 사람의 엔트레인먼트에 의해 증폭되고 증강된다. 공동체의 힘은 말의 상호 엔 - P328
트레인먼트에 의해 증폭되고 증강된다. 그래서 말은 마법이 된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름에도힘이 있다. 말은 사건이므로, 이런저런 행동을 하고 변화를일으킨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모두 변화시킨다.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증폭시킨다. 이해 또는 감정을 주고받으며 증폭시킨다. - P329
구술 공연은 인간의 말 중에서 특별한 종류다. 구술문화에서 이 공연은 문자문화의 독서와 같다. 독서가 구술보다 우월하지도 않고, 구술이 독서보다 우월하지도 않다. 이 두 행동은 서로 다르며,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극심히 다르다. 조용한 독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개인적인 활동이다. 그 활동을 하는 동안 독자는 신체적, 물리적으로 주변 사람과 분리된다. 구술 공연은 강력한 유대를맺어주는 힘을 발휘한다. 이 활동이 이루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유대감을 느낀다. 50문자문화에서 구술 공연은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활동으로 간주된다.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낭송하거나 배우가 연기를 할 때만 구술이 책을 조용히 읽을 때와 비견되는 문학적 힘을 지닌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 P329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을하고 사람들이 그 말을 듣는 구역도 있을 수 있다. 형식을 따른 그 웅변을 영상과 테이프에 담아 그날의 그행사가 메아리치게 하거나, 그림자에 가려지게 하거나, 기억으로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 그날의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사건 자체는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다. 흐르는강물은 절대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구술공연은 재현할 수 없다. 별도로 마련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시간, 의식의 시간, 또는 신성한 시간 주기적 시간은 맥박, 신체 주기, 달 주기, 계절, 연례행사, 반복되는 시간, 음악적 시간, 춤추는 시간, 리듬 시간이다. 한 사건이 두 번 일어나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주기적 시간의 요체다. 올봄은 지난봄과 다르지만 봄은 언제나똑같이 되돌아온다. 매년 같은 시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 의식도 마찬가지다. 한 이야기를 한 번씩 들려줄 때마다 그것이 새로운 사건이 된다. - P331
내 생각에는 상상력이야말로 인류가 소유한 가장 유용한 도구인 것 같다. 다른 손가락들과 반대 방향으로 구부러지는 엄지손가락의 유용성도 상대가 안 된다. 나는 엄지손가락없이 사는 삶은 상상할 수 있어도, 상상력이 없는 삶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말에 동의하는 목소리들이 들리는 듯하다. "맞아요. 맞아요! 창의적인 상상력이 업무 처리에 얼마나 엄청난 도움이 되는데요! 창의성이 귀중하니까, 우리는 거기에 걸맞은 보상을 줘요!" 시장에서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실용적인 전략에적용되어 이윤 폭을 늘려주는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능력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 축소가 워낙 오랫동안 지속된 탓에 이제는 창의적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깎아내리기가 힘들정도다. 이제 나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본가와 학자가 마음껏 유린하게 내버려둔다. 하지만 그들에게 상상력까지 넘겨줄 수는 없다. - P341
따라서 우리는 상상력의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상상력을 갖고 있다. 태어날때부터 몸, 지능,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이아이가 인간이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하며, 아이는 이것들의 사용법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교육과 훈련은유아 시절에 시작되어 평생 계속 이어져야 한다. 어린 인간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몸과 정신의 기초적인 재주들과 마찬가지로 상상력도 반드시 연습할 필요가 있다. 성장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유능함을 위해서, 즐거움을 위해서, 정신이살아 있는 한 연습도 계속 필요하다. - P342
아이가 제가 속한 종족의 핵심적인 문학을 듣고 배울 때, 만약 문자문화권에 태어난 아이라면 핵심적인 문학을 읽고이해하는 법을 배울 때, 상상력을 단련하는 데 필요한 연습이아주 많이 이루어진다. 문학만큼 훌륭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없다. 심지어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말로 살아가는 생물이다. 지능과 상상력 모두 말이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음악, 춤, 시각예술, 모든 종류의 공예,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발전과안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어떤 기술이나 재주는 일단 배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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