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걸을 수 있는 부상병은 부축하고, 그럴 수 없는부상병은 어린아이 안 품에 안거나 자기 목에 팔을 두르게 하고 업어서 옮겼다. 또는 부상 정도에 따라 둘이나 셋, 혹은 넷이서 들것을 대신해 부상병의 어깨와 다리를 나눠 들고 옮겼다. 또한 구급 들것이 모자랐기 때문에 소총 몇 자루를 배낭끈으로 연결해 들것을 급조하는 등온갖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다. 포탄이 파헤쳐놓은 들판 곳곳에서, 집과 함께 머리를 숙인 채 신중하게 무릎으로 기어가는 들것병들의가슴 뭉클한 영웅적인 모습이 보였다.
모리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엄청나게 큰 밀알을 옮기는근면한 개미처럼 다리가 부러진 육중한 중사를 업은 깡마르고 허약한소년 들것병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 포탄 하나가 폭발해서 두병사를 모두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연기가 걷히고 보니, 땅바닥에 등을대고 누워 있는 중사는 새로운 부상 없이 멀쩡했지만, 소년 들것병은옆구리가 터진 채 쓰러져 있었다. 다른 들것병, 다른 개미가 달려와서동료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중사를 자기 등에 업고 구급마차로옮겨갔다.

- P345

그가 무슨 말인가 하고 있을 때, 포탄이 터져 그의 오른팔이 날아가고 왼쪽옆구리가 갈라졌다. 그는 대포 위로 쓰러졌고, 행복의 침대인 양 거기서 머리를 적에게로 돌린 채, 분노에 찼으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죽었다. 찢어진 제복 틈으로 빠져나온 편지 한 장이 그의 손가락에 꼭쥐여 있었는데, 그 위로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아직 목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중위가 명령을 내렸다.
견인차 이동!"
그때 탄약 마차 하나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연결고리가 땅에 떨어진 대포 한 문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다른 탄약 마차의 말들을 데려와야 했다. 마침내 기마 운반병들이 유턴을 해서 네문의 대포에 연결고리를 걸었다. 그들은 즉시 전속력으로 달렸고, 1킬로미터 떨어진 가렌숲의 나무 뒤에 이르러서야 발을 멈췄다.
모리스는 그 모든 것을 목격했다. 그는 공포로 몸을 떨면서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불쌍한 오노레! 불쌍한 오노레!"
슬픔이 굶주림으로 위가 뒤틀리는 고통을 배가시키는 듯했다.  - P361

모리스의 눈에 들어왔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앙리에트였다. 모리스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앙리에트였는데, 그녀는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다.
"바제유에서 저들이 그이를 총살했어.…… 나도 그 자리에 시신이라도 찾고 싶은데,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긴 해……….
그녀는 프로이센군도, 바이스라는 이름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히 모두가 상황을 이해했다. 모리스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위로했다.
"아, 불쌍한 누나!"
두시경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앙리에트는 발랑의 어느 집 부엌에서식탁에 머리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울음을 그쳤다. 연약하고 조용한 여인의 내면에서 영웅적인 용기가 솟구쳐올랐다.
그녀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자신을 무장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오직 남편의 시신을 수습해 묻어주는일만 생각했다. 애초의 계획은 바제유로 다시 가는 것이었다. 모두가절대 불가능하다고 만류했다. 그래서 그녀는 함께 가서 시신을 수습해줄 누군가를 찾으려 했다. 그녀의 뇌리에 르센 정련공장 부공장장이었던 사촌오빠가 떠올랐다. 당시 정련공장 사무원으로 일했던 남편을 무척 좋아했던 사촌오빠는 요청을 외면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이 년전 아내가 유산을 상속받은 덕분에 은퇴하고 풍 드 지본 맞은편에 있는 아름다운 저택 ‘에르미타주‘로 이사했는데, 스당에서 가까운 그 저택은 노대가 층을 이루고 있었다. 군중의 발에 밟혀 죽을 수도 있는위험 속에서 온갖 장애물을 뚫고 그녀가 가려 하는 곳이 바로 그 에르미타주였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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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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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에 다닐 때, 엄마는 일 년간 코피를 흘리셨고 일 년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파하셔서 이마에 흰 수건을 동여매고 지내셨다. 막막하고 참혹했던 어린 관찰자이자 보호자였던 내가 떠올랐다. 아픈 엄마를 지켜보는 일은 곧 나의 미래를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엄마의 부재는 누구에게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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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 동안 어머니가 이곳 병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실제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껏해야 어머니가 하는 일은 식당에서 식사나 하고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는 일이 고작일 것이다. 나는 장차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 하여간죄책감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건 생명이 멈추어버린 것과다를 바가 없었다. 나의 삶이 고통과 죄책감으로 소멸되는이치와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곧 ‘나‘임을 실감한다. 

- P57

나는 어머니의 노쇠한 모습, 전과는아주 달라져버린 참혹한 얼굴을 무심코 쳐다볼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서 이미 타성에 젖어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가던 그 끔찍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사람처럼 자꾸만 집을 되돌아보았다. (가을이면 사방으로 가로수가 즐비했던 안시에 살았을 당시 그 집 정원에는 거북 한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 거북은 쇠창살 문에 달라붙어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있었다. 나중에야 생각난 것은 어머니가 떠날때 찾았던 것이 바로 이 거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나서어머니가 쓴 글이 이것이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 P90

어머니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사랑받고 인기를 누리고 싶어서그림책과 사탕들을 나누어주길 좋아했다. 그 후론 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게다가내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는 방법이 아닐까??
- P112

1986년

2월 2일 

일요일어머니의 현재 생활을 이야기하고픈 소망을 가지게 된후로는, 어머니를 문병하고 난 후 지금까지 항상 써오던 일기를 계속해서 쓸 수가 없었다. 아마도 더 이상 글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수많은 사연들, 즉 어머니의 과거 속에 내가 존재해 있었고 그때문에 더욱 이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P135

4월 7일 월요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 - P145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예측조차도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제 어머니에게 가져다드린 개나리는 아직도 잼을 담았던 병 속에 꽂힌 채 탁자 위에 있었다. ‘숲속의 과일 이라는 네모난 판자 모양의 초콜릿을 가져다드렸더니 어머니는판 한 줄을 모두 먹었다.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오데코롱 화장수를 뿌려드렸다. 그게 끝이었다. 어머니는 오직 생명력일뿐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움켜잡고 일어서기위해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곤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가엾은 작은 인형 같았다.  - P146

이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어머니가 한 말들을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다.
아니 기억나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자, 모두들자리 잡고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대략 이런 말을 했던 것같다.
- P147

내가 이 고통에서 곧 벗어날 수 있게 될까?
일거수일투족을 옮길 때마다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들이 오른다. 어쩌면 난 이렇게 나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기록하여 진술함으로써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끌어내어 고갈시켜버리고 지쳐버린 고통이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와 함께 고통을 상쇄시켜가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전에 적어놓았던 메모들을 다시 읽어내려갈 수가 없다.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끔찍한 것은 어머니가 피폐하기 시작한 때부터 최근 이 년 반 동안의 기록이다. 이 기간 동안 어머니는 나와가까워졌고 그러고 나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다시 어린애가 되었지만 성장하지는 않았다. 자꾸만 어머니에게 음식을먹여드리고 손톱을 잘라드리고 머리 손질을 해드려야 할 것만 같은데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지난 부활절 일요일, 깨끗하고 부드럽던 어머니의 머릿결, 그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 P148

4월 28일 월요일

오늘 아침, 계산서에 적힌 막힌 물이라는 말을 읽으면서내가 예닐곱 살 적에 이 말을 꽉 막힌 놈이라고 부르곤 했던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부르던 어머니의 별명이었다. 눈물이흘러내린다.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 P164

오로지 ‘이분은 내 어머니이시다‘ 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망각하며 지냈던 순간들이었다. 어머니는 더이상 오래전 내 삶의 저편에서부터 이제까지 내가 알아왔던 여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참담한모습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당신 본래의 목소리와 몸짓, 웃음을 발견할 때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의 어머니임을 실감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 일기를 양로원에서의 장기체류에 관한 객관적 증언으로 읽지 말 것이며 하물며 어떤 고발로도읽지 말고 (간병인 대부분이 정성스런 헌신을 보여주었다)오로지 고통의 잔재로서 읽어주길 바란다.
- P170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어머니가 글로 마지막 문장이다.
치매에 걸리기 전 본래 모습의 어머니를 꿈에서 자주다. 어머니는 마음속에 살아 있지만 실제론 죽었다. 나는잠에서 깰 때마다 잠시 동안 어머니가 죽었으면서도 동시에 이중 형상으로 실제로 살아 있음을 확신한다. 마치 죽올의 강을 두 번 건넌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처럼,

1996년 3월 아니 에르노 - P171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고 단장해주는이 기쁨이여! 내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와 한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 사람이 어머니의 목과 다리를 쓰다듬고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살아 있다는 건 어루만지는 손길을받는다는 것, 즉 접촉을 한다는 것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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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월

어머니는 극도로 쇠약해져서 무기력하고 굳은 표정을 지은 채 거실 의자에 앉아 있다. 입은 벌리지 않았지만 멀리서보면 마치 벌어진 것 같다.
어머니는 ‘도대체 찾을 수가 없구나"라고 말한다. (자신의 화장도구 세트와 조끼, 그 밖의 모든 것을 찾고 있다.) 그녀는 물건들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 P9

1984년

1월

어머니는 항상 자신의 방과 내 작업실을 혼동한다. 작업실 문을 열었다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슬며시도로 닫는다. 이내 걸쇠가 올라가고 문 잠기는 것이 보인다.
마치 방안에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 P13

고속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일요일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머니의 옆 사람은 한 손을 팬티 속에 집어넣은 채 누워 자고 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선 참혹한 모습이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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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국왕은 아침부터 조용히 전쟁터를 바라보며 결정적 시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아마도 세 시간이 흘렀다. 오직 결정적시기가 문제였다. 톱니바퀴는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고, 분쇄기가 덜컹거리며 온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전쟁터가점점 좁혀졌고, 검정개미떼가 물밀듯 쇄도하며 스당을 포위했다. 도시의 유리창이 반짝였고, 왼쪽 카신 교외 부근에서 가옥이 불타고 있었다. 그 너머로, 동슈리와 카리냥 쪽 인적 없는 들판에는 눈부시게 작열하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즉 정오의 불타는 태양 아래 뫼즈강의 많은 물, 짙은 녹음을 뽐내는 나무들, 광활하게 펼쳐진 기름진 땅, 풀이무성하게 자란 푸른 초원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프로이센 국왕에게 필요한 것은 명료한 정보였다.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그는 자기가 부리는 말들의 동향을 확실히 파악하고자 했다. 그의 오른쪽에서 대포 소리에 놀란 제비들이 푸드덕 날아올라 이리저리맴을 돌더니, 하늘 높이 솟구쳐 남쪽으로 사라졌다.
- P316

앙리에트는 그녀를 찾는 죽어가는 두 눈, 단말마적 임종의 고통, 시체를 흔드는 발길질까지, 모든 것을 보았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손을 가만히, 노여움에 차서 이로 깨물었다. 바이에른 병사가 끔찍한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는 그녀를 넘어뜨렸고, 때려죽일 기세였다. 둘의 얼굴이 닿을 듯 가까웠다. 피 묻은 붉은 턱수염과 머리칼, 광기로 뒤집힌 그 병사의 크고 푸른 눈을 그녀는 결코 잊지않을 것이었다.
잠시 후, 앙리에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선명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서 빨리 남편 곁으로 가서, 남편을 집으로 데려가 밤새워지키고 싶은 한 가지 욕망밖에 없었다. 하지만 악몽을 꾸는 듯, 남편에게로 한 걸음 뗄 때마다 온갖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또다시 격렬한 일제사격이 터졌고, 바제유를 점령한 독일군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프랑스 해병대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전투가 너무도 치열하게 전개되었기에, 그녀는 왼쪽 골목으로, 공포에 질린 주민들 틈으로 몸을피했다. 그러나 그 전투는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스스로포기한 진지들을 되찾기는 이미 가망이 없는 듯했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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