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그때처럼



내가 입고 싶은 저 비단옷은 어느 록 가수가 입었던 가죽옷과 비슷해
감옥과 감옥 사이를 돌며 북과 기타를 울리며
노래하던 록 가수는 아마도 내 고향 비단 시장에 오면
비슷한 공연을 하면서 울지도 몰라

비단이 얼마나 많은 폭력 속에서 지어낸 피륙인지
누에는 알고 있을 거야
이제는 자연에서 혼자 사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저누에들은
어떻게 저 폭력을 참아내었을까
그래서 비단은 저렇게 곱게 차곡차곡 지층처럼 시장한가운데
누워 있는 걸까

난 한때 시인들이 록 가수였으면 했어
어쩔 수 없잖아 시인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월 스트리트, 증권 판매상이 그 일을 하니? - P-1

어미를 죽인 자
아이를 죽인 자
현금을 강탈한 자
강간한 자
외국인을 살해한 자
이 모든 것이 당신 탓이라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십자가를 긋던
수많은 성도들을 위해

저 많은 협곡을 돌아
저 많은 태풍을 뚫고 집에 돌아와
겨우 잠이 든 시인이
이 세계가 멸망의 긴 길을 나설 때
마지막 연설을 인류에게 했으면 했어

인류!
사랑해
울지 마! 하고

따뜻한 이마를 가진 계절을 한 번도 겪은 적 없었던 별처럼
나는 아직도 안개처럼 뜨건하지만 속은 차디찬 발을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냥 말해보는 거야

적혈구가 백혈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 P-1

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

차곡차곡 접혀진 고운 것들 사이로
폭력이 그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것처럼
폭력이 짧게 시선을 우리에게 주면서
고백의 단어들을 피륙 사이에 구겨 넣는 것처럼 - P-1

거짓말의 기록


나, 태어났어
추위라고 말하면 정말 추워서 이 세상을 떠도는 모든먼지들을 모아 옷을 만들어 입고 싶었지
태어났을 뿐이었어, 누군가 나를 자라게 했어

아직 꽃술을 열어보지 못한 꽃들이 성교를 하느라 바쁜 들판에 누워
아직 단 한 번도 새끼를 낳아보지 않은 새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나비에게도 잠자리에게도 덜 익은 빛을 보여줘라고 공기에게 말했던 적도 있었어
나와 자연은 사실혼 관계
법정에서는 서로에 대해 아무 권리가 없다는 걸 늦게사 알았지
나에게 말을 거는 저 암소가 일찍이 나에게 수유를 한 어머니라는 걸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어

매일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 P-1

하늘에 있는 공들에게도 내 수유의 어머니.
그 고깃덩어리가 걸린 정육점을 단 한 번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했어
공들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까? 인간을 수유하는 암소들을 생산하는
더러운 거리 구석에 있는 도살장을 알까,
저것 봐, 아이가 불어대는 풍선 어떤 포유류의 방광이 하늘로 가서
먼 들판을 은은하게 비추어대는 하늘의 공이 되네

시간을 잘라 만든 혁대를 목에 감고 죽은 테러리스트가 살던 감방 안에서 자라던 작은 백합의 뿌리는 세계를버티는 나무처럼 테러의 주검을 견뎌내고 있었어
아주 어린 중세가 대륙 저편에서 현대처럼 활개를 치고 있네, 그 말을 듣기 위해 춤을 추러 가는 아이들에게
나, 태어났어, 라고 말해봐, 말해봐
아이들이 당나귀처럼 웃으며 내 얼굴에다 총을 들이댈거야

피가 솟구치는 숨겨진 샘이 있다거나
죽을 수 없는 인간들이 매일매일 전쟁을 한다거나
그리고 당신이 날 사랑한다거나
그리고 그리고 그 말을 내가 믿는다거나 하는
엄숙하게 웃기는 나날 동안 - P-1

나, 태어났어
아퍼,라고 말하면 너무나 아파서 이 세상의 밤을 떠도는 모든 안개를 엮어 붕대를 만들고 싶었지
안개 붕대를 감고 누워 컴컴하게 웃고 있었으면 했어 - P-1

눈동자


죽은 이들 봄 무렵이면 돌아와 혼자 들판을 걷다 새로 돋은 작은 풀의 몸을 만지면서 죽은 이들의 눈동자 자꾸자꾸 풀의 푸른 피부 속으로 들어가다 마치 숲이 커다란 눈동자 하나가 되어 그 눈동자 커다란 검은 호수가 되어 검은 호수가 작은 풀끝이 되어 나를 자꾸 바라보고 있는데 내버려두었다네, 죽은 이들이 자꾸 나를 바라보는데,
그것도 나의 생애였는데

그 숲에는 작은 나무 집이 하나 있었다 집 앞 닫혀진 문 앞까지 걸어갔다 집 안은 아직 겨울이었고 결혼 대신 시를 신랑 삼았던 여성 시인이 있었다 시인의 저녁 식사에 올려진 양의 눈동자, 이방의 종교처럼 접시에 올려진양의 눈동자, 여성 시인을 신부 삼은 시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를 쓴다, 애인아, 이 저녁에 나는 당신의 눈동자를 차마 먹지 못해 눈동자를, 적노라,라고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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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1883-1924).
프라하의 유대인가정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후 보험회사에서 일하면서
작품을 집필했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고독과 소외라는 주제가 작품의 특징이다. 
대표작으로『변신』, 『심판』등이있다. - P-1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철갑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침대에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들어 보니 아치형의 각질 부분들로 나누어진,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이불은 배의 높은 부위에가까스로 걸쳐져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애처로울 정도로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하릴없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는 
생각했다. 이게 꿈은 아니었다. 좀 작기는 해도 사람이 살기에 손색이 없는 그의 방은 낯익은 사면의 벽에 조용히 둘러싸여 있었다. 풀어헤쳐 놓은 옷감 견본 모음집이 펼쳐져 있는 탁자위에는 ㅡ잠자는 출장 영업 사원이었다 ㅡ그가 얼마전-에 그림이 많이 들어 있는 잡지에서 오려 내 아기자기한 금 - P-1

박 액자에 끼워 넣은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림에는 모자를 쓰고 모피 목도리를 두른 숙녀가 반듯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보는 사람을 향해 팔뚝을 온통 가리는 묵직한 모피 토시를 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레고르는 창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우중충한 날씨에 그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울적해졌다. 창문의 함석판을 후드득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가들려왔다. <잠을 약간 더 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죄다 잊어버리는 게 어떨까?> 하고 그는 생각했으나 이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었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그런 자세로 누울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려고 아무리 뒤척여 보아도 번번이 흔들거리며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자세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한 백 번쯤 그런 일을 시도해보았고, 멋대로 버둥거리는 다리들을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다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가볍고 빼근한 통증을 옆구리에서 느끼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아아, 원 세상에> 그는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날이면 날마다 여행이나 다녀야하다니.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업무상 스트레스가훨씬 더 심하다. 게다가 여행하다 보면 골치 아픈 일들이한두 가지가 아니야.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려고 신경 써야 - P-1

하는 일,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 상대가 늘 바뀌는 탓에 결코 지속될 수도 없고 진실해질 수도 없는 만남 따위들. 이 모든 것을 왜 악마가 잡아가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는 배 위쪽이 약간 가려운 것을 느꼈다. 머리를 더 잘쳐들 수 있도록 그는 등으로 몸을 밀면서 느릿느릿 침대기둥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근질거리는 부위를발견했다. 그곳에는 뭔지 알 수 없는 깨알같이 작은 흰 반점들이 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리 하나를 내밀어 그 부위를 건드려 보려고 했지만, 이내 다리를 움츠리고 말았다. 다리가 그곳에 닿자마자 온몸에 오싹하는 소름이 돋았기때문이었다.
그는 미끄러지며 다시 이전 자세로 되돌아갔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니 > 그는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 아주 멍청해진단 말이야. 잘만큼 푹 자야하는데. 다른 출장 영업사원들은 하렘의 여자들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가령 주문받은 물건을 장부에 기입하려고 오전 중에 여관에 돌아와 보면 그 작자들은 그제야 일어나 앉아 아침을들고있지 않은가. 만일 내가 사장 앞에서 그러다간 당장 쫓겨나고 말 거야. 하기야 그러는 편이 나에게는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동안 부모를 생각해서 꾹 참아 왔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작 사표를 던지고, 사장 앞으로 걸어 나가 가슴에 묻어 두었던 생각을 그에게 다 털어놓았을지도 몰라.
그랬다면 사장은 틀림없이 책상에서 굴러떨어졌을 거야! - P-1

책상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직원에게 말하는꼬락서니는 참 별나기도 하지. 게다가 사장은 귀가 어두워직원들은 그에게 바짝 다가가서 말해야 해. 그렇다고 아직희망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야. 언젠가 내가 돈을 제법모아 부모님이 그에게 진 빚을 다 갚게 되면 ㅡ아직 한 5.
6년 걸리겠지ㅡ 꼭 그렇게 하고 말거야. 그러면 일생일대의 전기가 마련되겠지. 다섯 시면 기차가 떠나니까 지금당장은 물론 일어나는 일이 급선무야.>
그러고서 그는 서랍장 위에서 재깍거리며 가고 있는 자명종 시계 쪽을 건너다보았다. <아이고, 하느님 맙소사!)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벌써 여섯 시 반이 아닌가. 시곗바늘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30분을 지나 벌써 45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혹시 자명종이울리지 않은 것이 아닐까? 네 시에 정확히 맞추어져 있는게 침대에서도 보였다. 자명종이 울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온 방안을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그 소리를듣고도 마냥 편히 잠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긴 편히 잠을 잔 것은 아니었다 해도, 그런 만큼 깊은 잠에빠져든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다음 기차는 7시에 있었다. 그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부리나케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견본 모음집은 아직 꾸려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다가 기분이 별로 상쾌하지 않았고 몸도 그리 거뜬하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 P-1

그 기차를 잡아탄다 해도 사장의 불호령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환 녀석이 다섯 시 기차에 맞추어 대기하고 있다가 그가 타지 않은 사실을 진작 일러바쳤을 테니까. 사장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그는 줏대도 사리 분별도 없는 너석이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몸이 아프다고 알리면 어떨까? 하지만 이는 지극히 곤혹스러운 일이고 수상쩍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레고르는 회사에 5년간 근무하는 동안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은 의료보험 조합의 의사를 대동하고 나타나, 게으른 아들을 두었다고 부모님을 질책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의사의 소견을빌려 어떤 핑계를 대도 묵살해 버리고 말 것이다. 의사가보기에는 아주 건강하면서도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이 경우에 그의 견해가 아주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레고르는 잠을 오래 자고도 여분으로 좀 남아있는 졸린 기운 말고는 사실 몸의 컨디션이 아주 좋았고, 유달리 왕성한식욕마저 느꼈다.
침대에서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하고 이 
모든 생각에 잠겨 있을 때-이때 바야흐로 6시 45분을 알리는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그의 침대 머리맡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그레고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 P-1

마치 한결같이 작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몰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지배인이 와 있는데도 간밤에 풀어헤쳐 놓아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서 있었다. 어머니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먼저 아버지를 쳐다본 다음 그레고르 쪽으로 두어 걸음 걸어가더니 치마가 사방으로 쫙 펴지는 가운데 그 속에 푹 쓰러져 버렸다. 얼굴은 가슴에 푹 파묻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방 안으로 도로 밀어 넣으려는듯 적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는 거실 안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는 억센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꺼이꺼이 울어 대기 시작했다.
이제 그레고르는 거실로 나가지 않고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근 문짝의 안쪽에 기대어 섰다. 그리하여 그의 몸은 절반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위로는 다른 사람들을 건너다보기 위해 옆으로 기울인 머리가 보였다. 어느새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길 건너편으로 마주 바라보고 있고 끝이보이지 않는 짙은 회색 건물의 일부분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병원이었다. 그 건물의 전면에는 벽을 뚫고 창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었다. 아직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눈에 보일 정도로굵다란 빗방울들이 땅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식탁위에는 아침 식사에 쓰인 그릇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세끼 식사 중에 아침 식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P-1

오히려 그는 아무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이젠 괴상한 소리를 질러대며 그레고르를 앞으로 몰아댔다. 그레고르의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느덧 아버지 한 사람이 혼자서 내는 목소리가 더 이상 아닌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정말 더는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레고르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문 안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몸 한쪽이 들리면서 그의 몸 전체가 문 입구에 비스듬히 걸리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의 옆구리가 쏠리는 바람에 심한 상처를 입게되어, 하얀문에 보기 흉한 얼룩이 남게 되었다. 이내 그의 몸이 문에 꽉 끼게 되어, 혼자 힘으로는 더는 꼼짝달싹할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쪽 다리들은 바르르 떨며 허공에 걸려 있었고, 다른 쪽 다리들은 바닥에 짓눌려 욱실욱실 아파왔다. 그때 아버지가 뒤에서 그를 힘껏 걷어차는 바람에 그는 이제 그야말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피를 철철 흘리며 방안 깊숙이 날아가버렸다. 아버지가 지팡이로 문을 쾅 닫고 나자 드디어 사방이 조용해졌다. - P-1

밤늦게야 거실의 불이 꺼졌다. 그로 보아 부모님과 여동생은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제사람 모두 지금 조심조심 발끝으로 걸으며 멀어져 가는 소리가또렷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도 그레고르의 방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그는 이제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새로 꾸려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곰곰 생각해 볼 시간을넉넉히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속절없이 납작 엎드려있지 않을 수 없는 높다랗고 휑한방이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는통 알수 없었다. 그가 무려 5년 동안이나 살아온 자신의 방이건만. 그는 반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린 뒤, 왠지 알 수 없는 가벼운 수치심마저 느끼며 소파 밑으로 급히 기어 들어갔다. 등이 약간눌리고 고개도 이젠 쳐들 수 없었지만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딱 하나 유감스러운 점이라면, 이제 그의 몸이 너무넓적해서 소파 밑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밤새도록 그곳에서 지냈다. 그동안 때로는 얕은 잠에 들었다가 배가 고픈 나머지 몇 번이고 놀라 벌떡 잠이깨기도 했고, 때로는 걱정에 사로잡히거나 막연한 희망을품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의 결과 우선은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 P-1

그 때문에 그레고르도 당분간은 방바닥에 그대로 있기로 했다. 특히 벽이나 천장으로 도망치면 특별한 악의가 있는 걸로 아버지가 곡해할까 봐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이렇게 달리는 것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그는 무수히 많이 다리를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원래부터 폐가 그리 튼튼한 편은 아니었던 관계로 벌써부터 눈에 띄게 숨이 가빠 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달렸고, 달리는 일에 온 힘을 쏟느라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게다가 머리마저 흐리멍덩해져서 이렇게 거실 바닥을 달리는 것 말고는 다른 구원책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벽으로 달아날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잊고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곳의 거실 벽들은 톱니와 레이스장식으로 가득 찬, 정교하게 세공된 가구들로 가로박혀 있었지만 말이다. 그때 바로 그의 곁으로 휙 하고 가게 던진 무슨 물체가 떨어지더니 그의 앞으로 떼구루루굴러왔다. 그건 사과였다. 곧이어 두 번째 사과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레고르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계속 달아나 봐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버지는 사과로 그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기로 작심한 모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찬장 위의 과일 접시에서 사과를 몇 개 꺼내 주머니에 가득 채운 다음, 제대로 겨냥하지도 않고 사과들을 하나씩 던져 댔다. - P-1

조그만 빨간 사과들은 마치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이리저리 나뒹굴며 서로맞부딪쳤다. 약하게 날아온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을살짝 스치고 지나갔지만, 상처를 입히지 않고 미끄러지며굴러떨어졌다. 반면에 바로 뒤이어 날아온 사과는 그레고르의 등에 정통으로 박히고 말았다. 자리를 옮기면 깜짝놀랄 만큼 믿을 수 없는 통증이 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레고르는 몸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마치 못 박힌 듯 꼼짝할 수 없다는 기분과, 모든 감각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그만 그 자리에 쭉 뻗어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자기 방의 문이 확열리더니 비명을 지르는 여동생 앞으로 어머니가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오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기절한 어머니가 숨쉬기 편하도록 여동생이 옷을 벗겨 놓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냅다 달려가는 도중에 끈이 풀린 속치마들이 바닥으로 하나둘 흘러내렸다. 이윽고 어머니는 그 치마들에 걸려 비트적거리며 아버지를 향해 달려들어 그를 껴안으면서, 아버지와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되더니ㅡ하지만 그러는 중에 그레고르의 시력이 벌써 가물가물해지고있었다 ㅡ두 손으로 아버지의 뒷머리를 부여잡으며 애원했다. 제발 그레고르를 살려 달라고. - P-1

그레고르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어쩌다 차려놓은 음식 옆을 지나다가 장난삼아 한입 깨물기도 했지만 몇 시간 동안이나 그대로 물고 있다가 대개는 다시 뱉어 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의 방이 달라진 게 슬퍼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바로 방의 변화에 순응하게되었다. 식구들은 마땅히 다른 곳에 둘 수 없는 물건들을 이곳에 갖다 두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이제 그런 물건들이 이곳에 자꾸 쌓이게 되었다. 집의 방 한 개를 세 명의 하숙인에게 세를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진지해 보이는 이 신사들은 그레고르가 언젠가 문틈으로 내다본 바에 따르면 세 명 모두 털보였다 지나칠 정도로 정리 정돈에 신경을 썼다. 자기들 방 말고도, 이제 이 집에 살게 된 처지였으므로 집안 구석구석, 그러므로 특히 부엌의 청결 문제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이들은 쓸데없는 물건들이나 더러운 잡동사니를 보면 도저히 참지를 못했다. 그것 말고도 이들 세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쓰던 살림살이를 갖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물건들이 필요 없게 되었는데, 그것들을 팔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 내다버릴 수도 없었다. 이런 물건들이 죄다 그레고르의 방으로-옮겨졌다. 그런 것 중에는 부엌에서 쓰던 재 담는 통과 쓰레기통도 있었다. - P-1

아버지는 두 손으로 허공을 더듬거리며 자신의 안락의자로 비틀비틀 걸어가더니 그곳에 푹 쓰러져 버렸다. 그는보통 때처럼 몸을 쭉 펴고 저녁잠을 자는 듯이 보였지만, 머리를 계속 심하게 끄덕이는 모습으로 봐서 결코 잠을 자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레고르는 그때까지 계속 하숙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켰던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데 대한 실망감에다 너무 많이 굶주린 탓에 몸이 탈진했는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다들 곧 자신 때문에 폭발하여 무너져 내릴 것 같다는 두려움을 확실히 느끼며 다음 순간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무릎에 놓여 있던 바이올린이 그녀의 손가락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무릎에서 스르르 홀러내리며 꽈당하고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그는 그 소리에도 눈조차 꿈쩍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은 이렇게 말하고 손으로 식탁을 내리치며 서곡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안되겠어요.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깨달았어요. 저런 괴물을 오빠의 이름으로 부를 순 없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그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 내기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 P-1

그레고르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어두운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내 그는 자신이 이제 더는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게 의아하게 생각되기는커녕 오히려 지금까지 정말이지 이런 가다란 다리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기분도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비록 온몸이 아프기는 했지만 점차 약해지다가 결국 씻은 듯이 사라질 것 같았다. 등에 박혀 썩어 버린 사과며 부드러운 먼지같은걸로 완전히 뒤덮인 그 주변의 염증 부위도 어느덧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가족을 돌이켜 생각해 보며 감동과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가 사라져야한다는 생각은 여동생보다 아마 자신이 더욱 단호할 것이다. 이렇게 공허하고도 평화로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 탑시계에서 새벽 세 시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의 세상이 온통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것까지는 아직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의 고개가 아래로 푹 고꾸라졌고, 그의 콧구멍에서는 마지막 숨이 힘없이 새어 나왔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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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발굴



아직 해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만
이곳으로 올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삼초 간격으로 달라지는 하늘빛을 보세요
마치 적군의 진격을 목전에 둔 마을
여인들의 공포 같은
빛의 움직임

해가 정격 포즈로 하늘을 완전 점령하고 나면
이 발굴지를 덥석 집어 제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사탕수수도 목화도 자라지 않는 이 폐허
해는 이곳에 아찔한 정적을 경작하고
햇빛은 자유 데모보다 더 강렬하게
폐허의 심장을 움켜쥐지요

사방으로 줄자를 두르고
칼로 잘라낸 듯 땅을 나누고
(기록을 위해 만들어진 이 기술은 귀여워요, 감쪽같이당신이 이 지구에 있었던 마지막 자리를 남북경위도 숫자로 딱 매겨내지요, 그리고 제가 지금 기록하고 있는 격 - P-1

자 안에 든 작은 발굴지 지도를 좀 보세요, 그 안에 점을 찍으면 그 점이 당신의 마지막 지상의 자리가 됩니다)

그대들은 누구이신지요 앉은 다리로 서쪽을 향해 머리를두고
이 무덤 안에 든 그대들은 누구인지요
햇빛이 나오자마자 날아오는 초원의 파리 떼들
아직 산 자의 뜨거운 얼굴 땀으로 엉겨드는 파리 떼들

이름 없는 집단 무덤
해골 없이 다리뼈만 남아 있거나 마디가 다 잘린 손발을가진 그대들
해와 달이 다 집어 먹어버린 곤죽의 살덩이들은
흙이 되어 가깝게 그대들의 뼈를 덮었는데
아직 흙에는 물기가 남아 있어
비닐봉지에 그대들을 담으면 송송 물이 맺힙니다

그대들은 누구인지요 심장 없는 별을 군복 깊숙이 넣고사는
그대들은 누구인지요 저 초원에 사는 베두인들이
별에 쫓겨 이 폐허로 들어와 실타래 같은 짠 치즈를 팔고
해에 쫓겨 헉헉거리다 잠시 하는 휴식 시간,
설탕에 절인 살구를 치즈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는
이 점령지 폐허에서 그대를 발굴하는
이는 또 누구인지요 - P-1

저 해는 제 식민지를 잘 관리하는 이를테면 우주의 소작인인데
그리하여 우주보다 더 혹독하게 폐허의 등허리를 누르는데
흙먼지 미립 속에 찬연히 들어와 움직이는 식민 권력 속에
목마른 이는 물을 구하러 마을로 가고
폐허에 남은 이는 그대가 든 비닐봉지에 구멍을 뚫어주며
그대의 마지막 물기를 말리고 있습니다 - P-1

그때 달은



그때 달 하나 마치 나를 그릴 것처럼 저 혼자 내 속에서 돋아나더니 내 속을 빠져나가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에 감추어져 있던 나는 그렇게 빛 아래 서게 되었는데 (어쩌다가 내 속은 달을 돋아나게 했을까, 일테면 파충의 기억을 내 속은 가지고 있었던가) 후두둑 까마귀가 날아가는 소리 컹컹 늑대 우는 소리 저 먼 산이나무들을 제 품속에서 끄집어내어 올빼미를 깃들게 하고 (그때 또 달 하나 저 혼자 내 속에서 돋아나더니 내속을 빠져나가) 먼저 걸어 나간 달이 새로 걸어오는 달을 성큼 집어 먹자 산은 깃든 올빼미를 얼른 품으로 끌어안아 들였습니다 (그때 또 달 하나 저 혼자 내 속에서돋아나서는 내 속을 끌고 허공으로 걸어갔습니다) 달을집어 먹은 달은 새로 걸어오는 달과 내 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빛 속에 서 있던 나는 내 속을 성큼 집어 먹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내 속에서 돋아든 달과 내 속을 집어 먹은 나는 그렇게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 P-1

해는 우리를 향하여



까마귀 걸어간다
노을 녘
해를 향하여

우리도 걸어간다
노을 녘
까마귀를 따라

결국 우리는 해를 향하여,
해질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해 뜰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갔던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이 어려 죽은
손발 없는 속수무책의 신들이 지키는 담장 아래 살았던 아이들

단 한 번도 죄지을 기회를 갖지 않았던 - P-1

아이들의 염소처럼 그렇게

폭탄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날아가던
해뜰 무렵

아이와 엉겨 있던 염소가
툭툭 자리를 털면서
배고파, 배고파, 할 때

눈 부비며 염소를 안던
아이가 염소에게 주던 마른풀처럼
마른풀에 맺힌 첫날 같은 햇빛처럼 - P-1

연등빛 웃음



소녀가 웅크린 그 부엌 안에
작은 불을 켜며 라디오를 켜며
많은 나날들이 연빛 웃음처럼
소녀 또한 연등빛 웃음처럼

폭약 많은 오후조차
서기들에게 기록되지 않는 (너무나 흔한데요, 뭘, 등뒤에서 저 개들이 또
서기들의 어깨를먹어치울텐데요)
현대,라는 나날 인간 이야기

그러나 어느 날
우리들이 먹은 닭다리가 저 천변에 해빛에서 아득해질지라도
소풍 가는 날
가만히 옷장을 보면 아직 개키지 않은 옷들이
들어 있어도
그냥 둡시다 - P-1

갈잎 듣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돌아올 것이므로
그날 그 소풍에 가지고 갈
닭다리를 잘 싸고 포도주 두어 병도 준비하고

그대가 내 오라비로만
이 지상에서 그대가 나의 누이로만
이 지상에서 살아갈 것을 서약은 할 수 
없을지라도
오오 소풍을 갑시다, 울지 맙시다 - P-1

그해 사라진 여자들이 있다



그해 들판에는 꽃이 유난히도 많이 피고 꽃진 자리에서는 잎도 무성하게 돋아 나오다 잎은 오랫동안 가지에 달려 있고 그 아래에서 소들은 잘 쉬다 염소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치던 토끼는 연둣빛 풀을 배불리 먹고 작은 토끼를 낳고 들판을 아가 토끼와 걸어다니다 여자들은 아가 토끼를 사랑하여 그 옆에서 책을 읽고 수를 놓다 가지고 온 점심 도시락을 열어 까르르거리며 맑은 장아찌를 흰밥에 올려 먹다 그리고 그해 들판에는 해도 자주나와서 여자들의 등을 만져주다 여자들은 해를 껴안고 깊이 잠이 들기도 하다 바람이 지나갈 때 잠깐 깨어나서 눈을 부비다 구름은 나하고 하늘은 깊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는 이 세상 소리가 아닌 것처럼 맑다 여자들은 다시 눈을 감으며 멀리 잠이 들다 그해 사라진 여자들이 있다 그해 들판에서 많은 짐승들이 평안할 동안 멀리 잠이 든 것처럼 사라진 여자들이 있다 - P-1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얼마나 많았던가



빛 속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를테면 시간을 거슬러 가는 일, 시간을 거슬러 가서 평행의 우주까지 가는 일

그곳에서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않는다
나는 다른 부모를 가지고 다른 이름을 가지고
내 육체는 내가 가진 다른 이름을 이루어내고

그곳에서 흰빛의 남자들은 검은빛의 여자들에게 먹히고
(그러니까 내가 살던 다른 평행에서는 거꾸로였어요, 검은빛의 여자를 먹는
흰빛의 거룩한 남자들이 두고 온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자꾸 꾸며 우는 곳이었지요)
나는 내가 버렸던 헌 고무신 안에
지붕 없는 집을 짓고 무력한 그리움과 동거하며
또 평행의 우주를 꿈꾸는데

그러나 그때마다 저 너머 다른 평행에 살던 당신을 다 - P-1

시 만나는 건 왜일까.
그건 좌절인데 이룬 사랑만큼 좌절인데
하 하, 우주의 성긴 구멍들이
다 나를 담은 평행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면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를테면 시간을 거슬러 가서 아무것도 만나지 못하던 일, 평행의 우주를 단 한 번도 확인할 수 없던 일 - P-1

여름 내내



사과나무 아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 기억나지 않네요, 사과가 아주 작을 때부터 읽기를 시작했는데, 점점 책 종이가 거울처럼 투명해져서 작은 사과알들을 책을 읽으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점점 책 종이가 물렁해져서 책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사과알들이 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활자도 사과알을 따라 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책은 물렁해졌고 물처럼 흐르려고 했어요,
물처럼 흐르는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요, 사과알이 든 흐르는 책을 여름 내내 읽고 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알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 나무가 책의 물 회오리로들어왔습니다, 집과 새와 구름이 들어왔습니다, 해가 그리고 내 위의 하늘조각도∙∙∙∙∙, 책은 무거워지고 더 거세게 흐르고, 여름 내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과나무도 구름도 해도 하늘조각도 사라지는 자리에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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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행렬이 이전보다 좀 더 속력을 내는 듯했다. 주제엔 여전히 해가 쏟아지는 빛나는 들판뿐이었다. 하늘의 번쩍거리는 반사광이 이제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잠시후 우리 일행은 최근에 새로깐 도로의 일부를 지나가야겠다. 아스팔트는 햇볕을 받아 터져 나갈 듯 번쩍였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푹푹 박혀 들면서 아스팔트는 번들거리는 죽처럼 뭉개졌다. 운구차 위로 보이는 마부의 모자마저도가죽이 곤죽이 되다시피 하여 마치 이 검은 진창 속에 한데 넣고 짓이겨 놓은 듯한 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푸르고 하얗게 빛나는 하늘과 이 모든 색깔들의 단조로움, 그러니까 녹아 문드러지는 아스팔트의 번들거리는 검은색, 사람들이 걸친 옷의 생기 없는 검은색, 그리고 래커 칠을 한 마차의 윤나는 검은색으로 인해 약간은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 P-1

태양, 운구차에서 나는 가죽과 말똥 냄새, 래커와 향냄새, 불면의 밤이 주는 피로, 이 모든 것이 내 시선과 생각을 어지럽혔다. 나는 한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페레가 저 멀리 열기의 구름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페레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도로에서 빠져나와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그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길이 내 앞에서 꺾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제야 나는 이 고장을 잘 알고 있는 페레가 우리를 따라잡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길이 선회하는 모퉁이에 이르러 마침내 우리와 합류했으나, 이내 또다시 일행과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 벌판을 가로질렀다. 페레는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나는 피가 관자놀이를 때리는것 같았다. - P-1

 해결책은 없는 거였다. 그날 본 광경 중 몇몇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예를 들자면, 마을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를 따라잡았을 때의 페레의 얼굴, 그의 두뺨 위에는 흥분과 고통이 자아낸 굵은 눈물줄기가 흥건했다. 그러나 주름으로 인해, 눈물은 흘러내리는 대신 번지고 뭉쳐 그 엉망이 된 얼굴에 일종의 물의 유약을 씌워 놓았지. 또 있다. 교회당, 보도 위의 마을사람들, 공동묘지의 묘석들 위에 장식된 붉은 제라늄, 페레의 기절 (그때 그는팔다리가 빠진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엄마의 관 위에 덮이는 핏빛 흙더미, 거기 섞여 드는 풀뿌리들의 하얀 살, 또다시 사람들, 목소리들, 마을,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끝도없이 부릉거리는 모터 소리, 그리고 버스가 빛의 둥지 알제에 들어서며 마침내 잠자리에 들어 열두시간동안 잘수있다고 생각했을 때, 순간 내가 느꼈던 기쁨. - P-1

그때 나는 하품을 했다. 그러자 노인은 이제 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더 있어도 된다고, 또 그의 개한테 일어난 일로 나도 마음이 언짢다고 이야기했다. 살라마노는 고마워했다. 그리고 엄마가 자기 개를 무척 귀여워했다고 했다. 엄마 얘기를 할 때 그는 엄마를 <가엾은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엄마가 죽은 뒤로 내가 무척 불행할 것이 틀림없다는 짐작을 그런 식으로 내비쳤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어색한 태도로, 동네에서는내가 엄마를 양로원에 보낸 일 때문에 나를 좋지 않게 봤지만 자기는 내 사람 됨됨이와 내가 엄마를 무척 사랑했다는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아주 빠른 말투로 덧붙였다. 나는 나 자신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 점에 관해 나를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간병할 만한 돈이 없는 나로서는 얼마를 양로원에 보내는 일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퍽 오래전부터 저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혼자서 적적해하셨어요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렇지요, 그리고 적어도 양로원에서는 친구들을 사귈 수 있잖소> 하고 노인이 응답했다. 그러고는 이만 실례하겠다고 했다. 「가서 자야겠소. 내 생활에도 이제 변화랄 게 생겼는데, 앞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 P-1

잘 모르겠구려.」 그러면서 노인은 내가 그를 안지 처음으로 슬쩍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살갗의 까칠한 촉감을 느꼈다. 살라마노는 약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에 앞서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은 개들이 짖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난 꼭 그게 내 개인 것 같아서 말이지요.」 - P-1

붉은 반사광의 기세는 여전했다. 바다는 헐떡거리며 전력을 다해 모래 위로 작은 파도들의 받고도 숨막히는 호흡을 밀어냈다. 나는 천천히 바위 더미 쪽으로 걸었다. 태양아래서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열기전체가 나를 짓누르며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섰다. 열기의 뜨겁고 거대한 입김이 얼굴 위로 느껴질 때마다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주머니 속의 주먹을 꽉 쥔 채 태양과 태양이 내게 쏟아붓는 이 뚫을 수 없는 취기를 이겨내기 위해 온몸을 긴장했다. 모래밭에서, 새하얀 조가비나 깨진 유리 조각에서, 빛의 검이 솟구쳐 오를 때마다 내턱은 부르르 경련했다. 나는 오랫동안걷고 또 걸었다.
저만치, 빛과 바다의 먼지가 만들어 내는 눈부신 훈영에 에워싸인 작고 어슴푸레한 바위 더미가 보였다. 나는 그바위 뒤에 흐르던 신선한 샘물을 떠올렸다. 졸졸 흐르는그 샘물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태양과 힘든 노력과 여자의 울음소리를 피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그늘과 그늘이주는 휴식을 되찾고 싶었다. 한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갔을때 나는 그 자리에 레몽을 노렸던 아랍인이 되돌아와 있는것을 발견했다. - P-1

나는 기다렸다. 태양의 뜨거운 기운이 뺨에 와 닿았다. 나는 눈썹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특히 이마가 지끈거리며 아팠고, 피부 밑에서 머리의 혈관 전체가 한꺼번에 쿵쿵거리며 때리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 뜨거움 때문에 나는 앞으로 한 발짝 움직였다. 나도 그것이 어리석은 행동임을, 그러니까 한 발짝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태양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 걸음을, 딱 한 걸음을 내딛고말았다. 그러자, 아랍인이 여전히 자리에 누운 채로 칼을 빼 들었다. 그는 태양의 한복판에서 칼을 들어 내 쪽으로향했다. 단검 위에서 빛이 분출했다. 번쩍이는 길디긴 빛의 날이 내 이마를 강타했다. 그 순간 눈썹에 모여 있던 땀이 단숨에 흘러내리며 내 두 눈꺼풀을 미지근하면서도 두터운 너울로 덮어씌웠다. 그 눈물과 소금의 장막 뒤에서내 눈은 멀어 버렸다. 이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이마에서 울려 대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그리고 그것에 가세한 정면의 단검이 뿜어 대는 번쩍이는 빛의 칼날뿐이었다. 그 뜨거운 검이 내 속눈썹을 파고들어 고통에 사로잡힌 눈을 후볐다. 그러자 모든 것이 흔들렸다. 바다로부터짙고 뜨거운 숨결이 실려 왔다. 내게는 마치 하늘이 통째로 열리면서 비오듯 불을 내리붓는 것 같았다. 나의 존재 - P-1

전체가 송두리째 팽팽하게 긴장했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며 권총을 쥔 손에 발작적으로 힘을 주었다. 방아쇠가 굴복하고,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건드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무미건조한 동시에 귀를 찢는듯한 그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내가 방금 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고요를 파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꼼짝하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대고 또다시 네 발을 더 쏘았다. 총알들은 바깥으로 흔적을 드러내는 대신 몸뚱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 네 발의 총성이내게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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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1913-1960).
프랑스의 식민지였던알제리의 봉도비에서태어났다. 알제대학철학과를 졸업했다.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에대한 고민을 담은작품들을 발표했으며,
1957년 노벨 문학상을수상했다. 대표작으로『이방인』, 『페스트』등이있다. - P-1

서문


오래전 나는 「이방인』을 이렇게 요약한 적이 있다. <우리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이 말이 매우 역설적이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단지 이 책의 주인공은 술책을 부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사형에 처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회속에서 변두리의 사적이고 고독하며 관능적인 삶을 살면서 그 가장자리를 떠도는 그는 그 사회의 이질적인 존재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독자들은 그를 일종의 표류자로 간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과연 어떤 점에서 뫼르소가 술책을 부리지 않은 것인지 자문해 본다면, 우리는 이 인물




서문은 1958년 런던의 Methuen and Co.에서 발간한 영문판 「이방인』에 실렸다. 카뮈가 이 서문을 쓴 시기는 대략 1953년에서 1955년 사이, 다시 말해 그가 반항의 인간L‘homme révolté』의 여파로 논쟁에 휘말리면서자신의 작품과 사상을 둘러싼 각종 오해와 왜곡, 비난에 대응해야 했던 무렵으로 추정된다. - P-1

느끼는 것으로서의 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자기와 세계에 대한 승리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을 아무런 영웅적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내의 이야기라고 읽는다면 과히 틀리지 않은 셈이다. 나는 전에 이 작중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형상화하려 했다는, 역시나 역설적인 말도 한 적이있다. 지금 나의 설명을 듣고 난 독자라면 그 말이 결코 신성 모독의 의도에서 나온게 아니라 다만 한 예술가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 대해 응당 가질 수 있는 약간의 아이러니 섞인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리라.

A.C. - P-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까.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예정. 삼가 애도함. > 이걸론 알 수 없다. 아마 어제였겠지.
양로원은 알제에서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마랑고에 있다. 2시에 버스를 타면 오후 안에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밤샘을 하고 다음 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면 된다. 사장에게 이틀간 휴가를 달라고 했다. 이런 종류의 사유를 두고 안 된다 할 순 없었겠지만, 사장은 그리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제 탓은 아닙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사장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괜히 그 말을 했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가 사과를 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사장이 내게 조의를표했어야 옳다. 하긴, 모레 내가 상복을 입고 있는걸 보면그도 그렇게 하겠지. 지금으로선, 어느 정도는 엄마가 죽지 않은 것과 같다. 하지만 장례가 끝나고 나면, 그땐 반대로 일은 다 처리된 셈이 될 테고, 그러면 모든 게 보다 공식적인 면모를 띨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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