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그때처럼



내가 입고 싶은 저 비단옷은 어느 록 가수가 입었던 가죽옷과 비슷해
감옥과 감옥 사이를 돌며 북과 기타를 울리며
노래하던 록 가수는 아마도 내 고향 비단 시장에 오면
비슷한 공연을 하면서 울지도 몰라

비단이 얼마나 많은 폭력 속에서 지어낸 피륙인지
누에는 알고 있을 거야
이제는 자연에서 혼자 사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저누에들은
어떻게 저 폭력을 참아내었을까
그래서 비단은 저렇게 곱게 차곡차곡 지층처럼 시장한가운데
누워 있는 걸까

난 한때 시인들이 록 가수였으면 했어
어쩔 수 없잖아 시인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월 스트리트, 증권 판매상이 그 일을 하니? - P-1

어미를 죽인 자
아이를 죽인 자
현금을 강탈한 자
강간한 자
외국인을 살해한 자
이 모든 것이 당신 탓이라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십자가를 긋던
수많은 성도들을 위해

저 많은 협곡을 돌아
저 많은 태풍을 뚫고 집에 돌아와
겨우 잠이 든 시인이
이 세계가 멸망의 긴 길을 나설 때
마지막 연설을 인류에게 했으면 했어

인류!
사랑해
울지 마! 하고

따뜻한 이마를 가진 계절을 한 번도 겪은 적 없었던 별처럼
나는 아직도 안개처럼 뜨건하지만 속은 차디찬 발을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냥 말해보는 거야

적혈구가 백혈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 P-1

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

차곡차곡 접혀진 고운 것들 사이로
폭력이 그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것처럼
폭력이 짧게 시선을 우리에게 주면서
고백의 단어들을 피륙 사이에 구겨 넣는 것처럼 - P-1

거짓말의 기록


나, 태어났어
추위라고 말하면 정말 추워서 이 세상을 떠도는 모든먼지들을 모아 옷을 만들어 입고 싶었지
태어났을 뿐이었어, 누군가 나를 자라게 했어

아직 꽃술을 열어보지 못한 꽃들이 성교를 하느라 바쁜 들판에 누워
아직 단 한 번도 새끼를 낳아보지 않은 새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나비에게도 잠자리에게도 덜 익은 빛을 보여줘라고 공기에게 말했던 적도 있었어
나와 자연은 사실혼 관계
법정에서는 서로에 대해 아무 권리가 없다는 걸 늦게사 알았지
나에게 말을 거는 저 암소가 일찍이 나에게 수유를 한 어머니라는 걸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어

매일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 P-1

하늘에 있는 공들에게도 내 수유의 어머니.
그 고깃덩어리가 걸린 정육점을 단 한 번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했어
공들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까? 인간을 수유하는 암소들을 생산하는
더러운 거리 구석에 있는 도살장을 알까,
저것 봐, 아이가 불어대는 풍선 어떤 포유류의 방광이 하늘로 가서
먼 들판을 은은하게 비추어대는 하늘의 공이 되네

시간을 잘라 만든 혁대를 목에 감고 죽은 테러리스트가 살던 감방 안에서 자라던 작은 백합의 뿌리는 세계를버티는 나무처럼 테러의 주검을 견뎌내고 있었어
아주 어린 중세가 대륙 저편에서 현대처럼 활개를 치고 있네, 그 말을 듣기 위해 춤을 추러 가는 아이들에게
나, 태어났어, 라고 말해봐, 말해봐
아이들이 당나귀처럼 웃으며 내 얼굴에다 총을 들이댈거야

피가 솟구치는 숨겨진 샘이 있다거나
죽을 수 없는 인간들이 매일매일 전쟁을 한다거나
그리고 당신이 날 사랑한다거나
그리고 그리고 그 말을 내가 믿는다거나 하는
엄숙하게 웃기는 나날 동안 - P-1

나, 태어났어
아퍼,라고 말하면 너무나 아파서 이 세상의 밤을 떠도는 모든 안개를 엮어 붕대를 만들고 싶었지
안개 붕대를 감고 누워 컴컴하게 웃고 있었으면 했어 - P-1

눈동자


죽은 이들 봄 무렵이면 돌아와 혼자 들판을 걷다 새로 돋은 작은 풀의 몸을 만지면서 죽은 이들의 눈동자 자꾸자꾸 풀의 푸른 피부 속으로 들어가다 마치 숲이 커다란 눈동자 하나가 되어 그 눈동자 커다란 검은 호수가 되어 검은 호수가 작은 풀끝이 되어 나를 자꾸 바라보고 있는데 내버려두었다네, 죽은 이들이 자꾸 나를 바라보는데,
그것도 나의 생애였는데

그 숲에는 작은 나무 집이 하나 있었다 집 앞 닫혀진 문 앞까지 걸어갔다 집 안은 아직 겨울이었고 결혼 대신 시를 신랑 삼았던 여성 시인이 있었다 시인의 저녁 식사에 올려진 양의 눈동자, 이방의 종교처럼 접시에 올려진양의 눈동자, 여성 시인을 신부 삼은 시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를 쓴다, 애인아, 이 저녁에 나는 당신의 눈동자를 차마 먹지 못해 눈동자를, 적노라,라고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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