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너희들의 아버지인 내가 후에 너희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그것은 상상할 수 없다. 아마 내가 지금 여기서 사라져 간 시대를 비웃고 연민하듯, 너희들도 나의 케케묵은 마음가짐을 비웃고 연민할지모른다. 나는 너희들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너희들은 나를 발판으로 삼아 높고, 멀리 나를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은 몹시 쓸쓸하다. 우리들은 그저 이렇게 말만 하며 태연히 있을수 있을까? 너희들과 나는 피의 맛을 본 짐승처럼 사랑을 맛보았다. 가자. 그리고 우리들 주위의 쓸쓸함을 제거하기 위해 일하자. 나는 너희들을 사랑했다. 영원히 사랑한다. 이것은 어버이로서 너희들에게 보답을 받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 준 너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나의 감사를 받아달라는 것뿐,
죽어 넘어진 어미를 먹어 치우면서 힘을 기르는 사자 새끼처럼 힘차고 용감하게, 나를 떨쳐버리고 인생의 길로나아가거라.
내 일생이 아무리 실패작이더라도, 내가 아무리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의 발자취에 불순한 어떤 것을 너희들이 발견할 만한 짓은 하지 않겠다. 꼭 그렇게 하겠다. 너희들은 내가 죽어 넘어진 곳에서 새로운 - P182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가야하는가를 너희들은 나의 발자취에서 어렴풋이나마 찾아낼수있을 것이다.
아이들아, 불행하지만 동시에 행복한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축복을 가슴에 간직하고 인생의 여정에 오르거라. 앞길은 멀다. 그리고 어둡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거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앞에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가거라 용감하게, 아이들아! (1919)

루쉰의 산문 <아이들에게>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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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부르는 소리로 저리도 청랑하게 흐를 수 있는 세상은 두렵습니다 아름다워진 것이 겁나고 오밀조밀하게 색칠한 것이 화장독 오른 계집 아침 분세수 세모시 옷깃 새로 페니실린 냄새가 납니다
물결같이 이를 악물고 바스라지기도 하지만 아래에서면 빛나고 싶어 두려워집니다
희끗희끗 칼금 그으며 지나는 바람이 나뭇잎 수척한 얼굴에 계절 굽이지는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 내려앉아 우수수 몸을 떨지만 거미줄은 은빛으로 빛나도 나비는 거미에게 먹히고 불러 세워 뒤돌아보아도 나는
몇 광년 후에야 보는 별빛으로 먼데요 - P32

김연덕


빛에 관한 이 짧은 시를 읽다 보면, 섬세하고 날카롭고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느끼곤 하는 매혹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어온다. 이때의 두려움은 빛과 멀찍이 떨어지려는 두려움이 아니다. 관조하는 두려움이 아니다. 빛나고 싶어" 찾아오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기로 한 빛의 끝은, 잡아먹힘 혹은 몇광년 후에야 겨우 멀게 나타날 수 있는 빛. 빛나는 찰나를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암흑 같은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 시간들은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시간의 결을 따라 어둠을 반으로 쪼갠다면 은빛을 띤 페니실린 냄새가생생히 퍼져 나갈 것이다. - P33

백은선


청량하게 흐르는 세상이 두려운 까닭은 세상이 얼마나 망가져 있고 악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겁나는 이유는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 삶이라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리라. 그 비천함과 아름다움 사이의 검게 벌어진 틈을 끝없이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아름다워질수록 더더욱 겁이 날것이다. 그럼에도 빛나고 싶어지는 마음. 그 마음 또한 진심이어서 이승과 저승으로 현재와 먼 곳으로 계속해서 분열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비밀을 목도한 사람이 감내해야만 하는 형벌이라면우리는 한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리고 한 발로만 나아가야 하는 걸까. 영혼의 시차에 멀미를 느끼며 흔들리는 한 그루 나무. 달빛 아래 떠오르는 나무를 생각한다.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은 누구이며 돌아보는 나는 무엇을마주하는 걸까? - P34

안미린


한 사람의 시간이 그치고 남겨진 것은 이상할 만큼우리다. 우리는 놀라울 만큼 가볍게 우리로 묶인다. 한사람을 떠나보내는 동안 우리는 거의 처음으로 우리를느낄 수 있다. 우리는 연약한 세계 단위가 된 것 같다. 끝과 처음 어디쯤에 우리가 놓인다. 끝없는 것이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이고, 끝나버린 것들이 끝없다는 생각에 가닿는다. 그 끝에 투명한 바통이 남겨진다. 바통에 손을 뻗듯 고인의 첫 책을 펼친다. 다시 첫책을. 또 다른 세계로 떠난 시인의 첫 시집을. 우리는 그러고 싶어 한다. 새로운 처음을 보고 싶어 한다. 남겨진 우리 세계를, 끝남이 끝이 없는 세계를 다시 조금씩받아들이려는 시도를 한다.
한 사람의 시간이 그치면 연약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처음인 일이 반복된 지 오래인 것. 투명한 바통이 오가던 무수한 궤적들. 또 다른 세계로 떠난 시인의 첫 시집을 펼치면서 나는 그리운 미래감感의 흔적을살핀다. 「달빛」에 닿으면, 이 자태에 오래 의지하고 싶어진다. 아득한 빛을 발하는 시의 자태에.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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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월요일


공책을 산 다음에 여기에 써놓은 것을 베낄 것이므로 새해에 걸맞은 미사여구는 생략하겠다. 이번에 내게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두 주일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있던 끝이어서 플리트 가까지 몸을 끌고 나갈 기운이다. 내 오른손 근육의 감각도 일하는 아줌마 손처럼 마비된 느낌이 든다. 이상한 노릇이지만 문장을다루는 것도 마찬가지로 뻣뻣한 느낌이다. 이치로는 한 달 전보다 더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2주간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은 이를 하나 뺐기 때문이며, 또 너무 지쳐서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 마치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1월 안개와 같은, 오랜 동안의 우울한 생활. 앞으로 몇 주 동안은 하루에 한 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정한다. 오늘 아침은 그 시간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그 일부를 여기서 쓸 수가 있다. 레너드는 외 출 중이며, 1월분 일기가 상당히 밀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기를 쓰는 것은 글을 쓴다는 부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 P19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는 기분 내키는대로 앞질러 달려 나가는 그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가의 돌부리에 견딜 수 없게 차이면서 달려나가는것이다. 그러나 가장 빠른 타자기보다 더 빨리 쓰지 않았다면, 또쓰던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든지 했다면 이 글은 결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의 장점은 만약에 내가 머뭇거렸다면 빼버렸을 사소한 것들을 우연하게도 건져 올렸다는 데에 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쓰레기 속의 다이아몬드인 것이다. 만약 버지니아 울프가 나이 50이 되었을 때, 이 일기를 근거로 회고록을쓰려고 해도 문장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저 쉰살의 버지니아 울프를 위로하고 벽난로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수밖에 없다. 일기장을 태워서 쪽지들이 새까만 필름처럼 타면서 그 안에 빨간 눈이 생기도록 태워도 좋다는 허가를 내주게 될 것이다.  - P20

그러나 쉰 살의 버지니아 울프를 위해 내가 준비하고 있는이 일을 생각하면 그녀가 부러워진다. 이보다 내가 더 좋아할 일은 없다. 그 생각을 하니 다음 토요일에 맞이하게 될 내 서른일곱 번째 생일도 그리 무섭지 않아진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이나이든 부인(이 나이가 되면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50은 많은 나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항의할 테고, 나도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겠지만) 때문이고, 또 다른 까닭은 지금처럼 갇혀 있는 몇 주 동안, 저녁에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의 기초를 금년 중에 확실하게 다져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친구들의 지금의 상태, 그들의 성품에 관한 이야기들을 쓰고, 그들이해놓은 일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그들이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예측을 해보리라. 이 쉰 살의 부인은 내가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가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충분히 많이 썼다(1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 P20

4월 12일, 토요일


「몰 플랜더스‘를 읽다가 10분을 쪼개서 이 글을 쓴다. 내시간표대로였다면 이 책은 어제 끝마쳤어야 하는데, 읽다가 말고런던에 가고 싶은 욕망에 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디포의 눈을 통해 런던을 보았다. 특히 헝거퍼드 다리에서 바라다본 도시의횐 교회와 궁전이 그러했다. 나는 그의 눈을 통해 성냥을 팔고있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세인트 제임스 광장의보도를 치마를 끌며 걷고 있는 소녀들은 『록새너』나 『몰 플랜더스』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다. 2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에게 이와 같은 압력을 가하는 디포는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위대한 작가라는 포스터가 디포의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니! 내가 도서관에 가까이 가자 포스터가 나를 손짓해 불렀다. 우리는 다정하게 악수를 했다. 그러나 나는 포스터가 항상 민감하게 나에게서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자인, 그것도 머리가 좋은 여자이며, 신식 여자인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포스터에게 디포를 읽으라고 명령했다.
포스터 헤어져서 도서관에 가서 디포를 몇 권 더 빌렸다. 가는 길에 비커스 서점에서도 한 권 샀다. - P27

4월 20일, 부활절, 일요일


긴 논문을 쓰고 나면 으레 나태해지는데, 이번 달 들어 쓴 두 번째의 긴 논문인 디포에 관한 글을 마친 뒤여서 이 일기를 꺼내 읽었다. 자기가 쓴 글을 읽을 때는 항상 일종의 죄스러운 열정으로읽게 된다. 내 일기의 문체는 난폭하며 제멋대로인 데다 번번이비문법적이며,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단어들이 눈에 띄어 읽기가좀 괴롭다. 앞으로 이 일기를 읽을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이것보다는 훨씬 더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말해두고자 한다. 이 일기에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이 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조금 칭찬을 해 - P29

도 좋을 것 같다. 이 일기에는 거친 구석과 박력이 있으며, 때로는뜻하지 않게 어떤 문제에 대해 급소를 찌를 때가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처럼 나만을 위해 글을 쓰는 습관은 글쓰기의좋은 훈련이 된다는 신념이 나에게는 있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는 근육을 이완시켜준다.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다고 해도신경 쓸 것은 없다. 이처럼 글을 빨리 쓰고 있으니 대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순식간에 돌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닥치는 대로 단어를 찾고 골라서, 펜에 잉크를 묻히느라 쉬는 시간 말고는간단없이 그 단어들을 내던져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직업적인글을 쓰는 일이 좀 편해진 것 같은데, 이것은 차 마시고 난 뒤에스스럼없이 보낸 반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기라는 것이 도달할지도 모를 희미한 형태의 그림자 같은 것이 내 앞에 떠오른다.  - P30

그러다 보면 따로따로 떠다니는 인생의 부유물 같은 소재들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될지 모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소설 속에 사용하는 것 말고도 다른 용도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일기가 어떤 모양이기를 바라는가? 짜임새는 좀느슨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고, 머릿속에 떠올라오는 어떤 장엄한 것이나, 사소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라도 다 감쌀 만큼 탄력성이 있는 어떤 것. 고색창연한 깊숙한 책상이나 넉넉한 가방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도 던져넣을 수 있는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한두 해 지난 뒤 돌아와 보았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저절로 정돈이 되고, 세련되고, 융합이 되어 주형으로 녹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 정말 신비스럽게도 이런 저장물들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그같은 주형이 우리 인생에 빛을 반사할 만큼 투명하면서도, 예술 - P30

작품의 초월성이 갖는 침착하고 조용한 화합물이기를 바란다. 오래된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검열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내키는 대로아무거나 쓰는 것이다. 내가 별생각 없이 써놓았던 것에서, 쓸 당시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묘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만함은 곧 지저분함이 된다. 어떤인물이나 사건을 기록해야 할 때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펜이 길잡이 없이 멋대로 제 갈 길을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안 그러면 버넌 리의 글처럼 느슨하고 지저분해질 염려가 있다. 버넌리가 글들을 연결하는 방식은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느슨한 감이 있다. - P31

레너드의 판정을 듣고 나는 「벽 위에 난 자국Mark onthe Wall을 읽을 마음이 생겼는데, 읽고 나니 결점투성이였다. 언젠가 시드니 워터로우가 한 말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의 가장 나쁜 점은 남의 칭찬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단편 때문에 칭찬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으므로, 크게신경은 쓰지 않을 것이다. 칭찬을 받지 않으면 아침에 글 쓰는 일이 힘들어진다. 그러나 의기소침하는 것도 불과 30분이다. 일단글을 쓰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 사람이란 부침을무시하는 법 또한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여기서는 칭찬받고, 저기서는 아무 말도 못 듣는 일을. 머리와 엘리엇에게는 주문이 들어왔지만 나에게는 없었다. 변함없는 중요한 사실은 문학에 종사하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라는 것. 정신이 이처럼 안개 속에있듯 몽롱한 것에는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이 깊은 곳에 숨어 있기는 하지만. 인생에는 썰물과 밀물이 있는 법이고, 그 법칙이 숨어 있는 원인을 설명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 썰물과밀물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 P32

4월 10일, 토요일


운이 좋으면 다음 주에 『제이콥의 방Jacob‘s Room』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묘사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계절은 봄이다. 다음 몇 가지를 적어두겠다. 금년에나무에 새싹이 나온 것을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한다. 하긴 나뭇잎이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밤나무 몸통에도 늘 보던 까만 쇳빛이 보이지 않으며 늘 무언가 부드럽고 옅은색깔이 보이는데, 이것은 평생 보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한겨울을 건너뛰고 마치 한밤중의 태양과 같은 계절을 보낸뒤, 환한 대낮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밤나무 잎이 돋았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작은 파라솔 같은 잎이 우리들 창가의 나무 위에 퍼져 있다. 그리고 묘지의 잔디는 마치 녹색 물처럼 오래된 묘석 위에 퍼져 있다. - P48

내가 쓴 모든 것을 냉철한 시선으로 다시 본다. 이것은 옛날부터 있어온 "화려한 심정의 토로"에 대한 것으로서, 틀림없이휘클리의 비판은 옳다. 그러나 이 병은 내가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고, 헨리 제임스에게 감염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위안이될는지는 몰라도. 그러나 나는 이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임스」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다. 한 가지 이유는 ‘타임스」에글을 쓸 때는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헨리 제임스의경우에는 글 쓰는 것을 복잡한 무늬의 도안을 그릴 때처럼 장식을 많이 달게 된다. 그러나 데즈먼드는 자청해서 칭찬을 해주었다. 칭찬과 비난에 대한 어떤 규칙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운명적으로 무더기로 비난을 받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남의 이목을 끌고,
특히 나이 든 신사들을 짜증나게 하는 모양이다. 틀림없이 「씌어지지 않은 소설」을 헐뜯을 것이다. 이번에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사람들을 분개시키는 이유다. 늘 그래왔다. 사람들은 "건방지다"고 말한다. 여자가 글을 잘쓰다니, 또 게다가 타임스」에 글을 쓰다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제이콥의 방을 쓰기 시작하는 일을 좀 미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대로 값어치가 있다. 심지어는 워클리의 글에서 마저 자극을 받는다.  - P49

5월 11일, 화요일


나중을 위해 적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새 책을 쓰기시작하면 그처럼 신나게 끓어오르던 창조력은 얼마 뒤에는 조용해지고, 좀 더 차분하게 일하게 된다. 의심이 생긴다. 그러다 체념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 그리고 머지않아 어떤 형태를 갖추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이 일을 계속하게만든다. 조금 불안하다. 이 구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하자마자 익숙한 풍경 속을 걷고 있는 사람처럼 된다. 이 책에서는 즐겁게 쓸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고 싶지않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 P50

『돈키호테』도 그런 동기에서 씌어졌다는 인상이 깊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을 계속해서 즐겁게 하려고 한다. 내가 판단하는 한, 아름다움과 사색은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생겨난다. 세르반테스는진지한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별 생각이 없고, 우리들이 보듯 『돈키호테』를 보고 있지 않다. 사실 이것이 문제다. 비애나 풍자의어디까지가 힘들이지 않고 우리 것이 될 수 있는가. 혹은 저런 위대한 인물들은 자기들을 바라보는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능력을가지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이야기의 대부분은 재미없다. 아니,
그정도는 아니지만 제1권의 끝 부분은 좀 그렇다. 이곳은 분명히 읽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쓴 부분이니까. 말은 조금밖에 하지 않고, 많은 부분을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은 마치 이야기의 그부분을 더 이상 발전시키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갤리선의 노예들이 행진하고 있는 광경이 그 예다. 세르반테스도 내가 느끼는 만큼의 아름다움과 비애를 모두 느꼈을까? 나는 두 번이나 ‘비애‘라는 말을 썼다.
이것이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 본질적인 것일까? 하지만 이야기의 처음 부분 전체에서 볼 수 있듯이, 돛을 펴고 위대한 이야기의 돌풍을 타고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가! 페르 - P52

난도, 카르디노, 루신다의 이야기는 당시 유행에 맞춘 궁정풍의에피소드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쨌든 나에게는 지루하다. 나는 「단순한 고아도 읽고 있다. 재기 넘치고, 효과적이고 재미있지만 아주 무미건조하며 말쑥하다. 세르반테스에게는 그 모든것이 있다. 아직 설익은 상태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깊고, 대기에비유될 만하다. 살아 있는 등장인물들이 인생 그대로의 알차고윤색된 그림자를 던진다. 이집트인들은 대부분의 프랑스 작가들이 그렇듯, 그 대신 본질적인 가루를 조금 주는데, 그것은 훨씬 더톡 쏘는 느낌이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결코 그만큼 포괄적이거나광범위하지는 않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얼 쓰고 있는 건가! 늘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제이콥의 방을 쓰고 있다. 날마다의 일이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일이 끝난 뒤 장애물을 멋지게 뛰어넘든지, 아니면 차단 봉을 떨어뜨리든지 할 때까지는 내 정신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또 딴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지 흄의 산문을 구해 나를 정화해야겠다. - P53

소설을 쓸 때는 우리 마음이 담대하고 자신에 차 있어야 한다. 엘리엇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조이스 씨가 더 잘하고 있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늘 그렇지만, 내가 계획하고있는 일에 관해서 충분히 분명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오므라들고, 좀스럽게 되고, 주저하게 된다. 이건 결국 다 끝났다는 뜻이다. 두 달 동안 일했던 것이 그 원인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에벌린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여성에 관한 글을 하나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문에 발표된 바넷 씨의 반대 의견에 대한 맹렬한항의문이다. 두 주전 나는 산책을 하면서 쉬지 않고 『제이콥의방』을 구상해왔다. 인간의 마음은 참 요상하다! 변덕스럽고, 불성실하고, 그림자 앞에서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어쩌면 내 마음밑바닥에서는 모든 점에서 내가 레너드에게 뒤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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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1882-1941

열세 살이 되던 1895년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처음신경증 증세를 보인 후 수차례의 정신 질환과 자살 기도를 경험한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적인모더니스트로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일궈놓은 선구적 페미니스트, 1907년 블룸즈버리 그룹을 형성하여 화가 덩컨그랜트, 경제학자 J. M. 케인스, 소설가 E. M. 포스터, 후에 남편이 된 레너드 울프 등과 문화와 사회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모임을 가지면서 울프는 세계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지성인으로 떠오른다. 
1915년에 처녀작 『출항』간행 이후 「제이콥의 방』(1922) 『댈러웨이 부인』(1925)「등대로』(1927) 『세월』(1937) 등의 소설과 페미니스트에세이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1929)을 출간했으며 많은 평론과 에세이, 작가의 내면 풍경을 솔직하게풀어놓은 여러 권의 일기를 남겼다.
울프는 그동안 남성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온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된 질서를 뛰어넘어 단순히 여성 해방의 차원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했다. 아울러 이성적 언어 이전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만큼이나 삶의 심연에 천착해 깊고 다양한 문학 세계를 이루었다. - P-1

왜 지금 울프인가? 1941년 3월 28일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넣고 우즈 강에 투신 자살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을 이역만리 한국에서 왜 지금 내놓는가?
20세기 초라면 울프에 대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위상 정립 작업이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한 1980년대라면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활발하게 진행된 페미니즘 논의와 연관시켜 페미니스트로서의 위치 설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다. 울프는 누가 뭐래도 페미니스트이다. 울프의 페미니즘은 비록 예술이라는 포장지에 곱게 싸여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격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절대로 울프 문학의 진수도 아니며, 전부는 더더욱 아니다.
그녀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주의 문학이다. 사랑을 설파한 문학, 이타주의利他主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 고전 중의 고전이 그녀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같은 것들은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잠깐씩 들른 간이역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인본주의라는 정거장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모더니즘의 기수라는 훤칠한 한 그루의 나무로, 또는 페미니즘의 대모라는 또 한 그루의 잘생긴 나무로 우리의 관심을 지나치게 차지하여 우리가 크고도 울창한 숲과 같은 이 작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제는 바야흐로 이 깊은 숲을 조망할 때가 온 것으로 믿는다. 지금 우리가 울프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집이 울프를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읽는 이의정서를 순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울프 전집 간행위원회 - P-1

8월 4일, 월요일

공책을 하나 사서 먼저 크리스티나 로세티에 대한 인상을, 다음으로 바이런에 대한 인상을 쓰기 전에 우선 여기 몇 자 적어두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 이유는 르콩트 드릴의 책을 많이 사서 지금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타고난 시인이라는 큰 자질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신에 대해 소송을 벌인다면 크리스티나야말로 내가 맨 먼저 불러낼 증인이 될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글은 우울하다. 우선 크리스티나는 스스로를 사랑에 굶주리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삶에 대해서도 굶주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시에 대해서도 크리스티나는 종교가 자기에게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굶주리게 했다. 크리스티나 - P9

에게는 두 사람의 좋은 구혼자가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나름대로 특이한 데가 있었다.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특정한 색깔의 크리스천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색깔을 한 번에 몇 달밖에 유지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첫 번째 구혼자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 안 좋았던 것은 두 번째 콜린스의 경우다. 콜린스는 매우 유쾌한 학자였고, 비세속적인 은둔자였으며, 크리스티나를 한결같이 숭배했으나 콜린스를 교회의 우리 안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크리스티나는 콜린스가 사는 곳을 애정 어린 마음만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크리스티나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크리스티나의 시 또한 거세되고 말았다. 크리스티나는 성경의 「시편」을 시의 모양으로 바꾼다든지, 자신의 모든 시를 기독교 교리에 맞게 쓰려고 하였다. 그 결과 스스로의 뛰어난 독창력을 엄격한 금욕으로 굶겨볼품없게 말려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자유만 주어졌더라면 크리스티나는 브라우닝 부인보다 훨씬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아주 쉽게 글을 썼다. 참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생각을 어린애처럼 쓰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재능은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했지만 크리스티나는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사색도 했고, 상상력도 지니고있었다. 세속적으로 추측컨대 크리스티나는 점잖지 못한 것이나 - P6

기지가 뛰어난 것이나 모두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희생에 대한 대가로 크리스티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공포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도 크리스티나의 시를 다시 한 번 더 읽어본 것에 불과하며,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시에만 눈길이 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없다.


8월 7일, 수요일

아샴에서 쓴 일기에는 자질구레한 것들, 꽃이랑 구름, 딱정벌레나 계란값 등에 대한 꼼꼼한 관찰로 가득 차 있다. 혼자 있으니 달리 기록할 사건도 없다 큰 사건이래야 고작 애벌레 한 마리를 으깨 죽였다는 따위거나, 우리들이 흥분한 사건이란 어젯밤 루이스‘에서 가정부들이 돌아왔다는 것 정도다. 가정부들은 레너드에게는 전쟁 관계의 책들, 그리고 나에게는 영국 평론』을 가져다주었는데, 거기에는 국제연맹에 대한 브레일스퍼드의 글이랑『환희」에 대한 캐서린 맨스필드의 글이 들어 있었다. 나는 환희』를 읽고 "캐서린도 이젠 끝났군!" 하고 소리치며 내동댕이쳤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캐서린에 대해 여자로서, 또 작가로서 얼마만큼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캐서린의 지력은 아주 얕은 두께의 흙으로서, 완전 불모의 바위를 겨우 1.2인치 - P11

의 두께로 덮어 싼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환희」는 비교적 긴 작품이므로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갈 기회가 있었을 터이다. 대신 캐서린은 피상적인 재치를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구상 전체가 빈약하고 경박하며, 설사 불완전하더라도 값있는 정신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문장도 서툴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캐서린이 둔감하고 냉혹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시 읽기는 하겠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계속 글을 써서 스스로와 머리를 만족시킬 것이다. 그들이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글 한 편으로 캐서린의 사람됨에 대해 이처럼 많은 것을 읽어낸다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까?
어찌 되었든 읽던 바이런을 계속해 읽게 되어 매우 기쁘다. 적어도 바이런에게는 남자로서의 매력이 있다. 사실 바이런이 여자들에게 미쳤을 영향을 상상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더 재미가 생겼다. 특히 어리석거나 배우지 못한 여자들은 바이런에게 머리를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많은 여자들이 바이런을 고쳐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거틀러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하기나 하려는 듯, 늘 이 말을 했지만) 누군가의 전기를 철저히 읽고 거기에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어 붙여 그 사람의 사람됨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참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쿠퍼나 바이런이나 다른 누구의 이름이든 간에 전혀 뜻하지도 않던 책의 페이지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은 갑자기 멀어져죽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B의 시가 말할 수 없이 서툴다는 사실에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무어가 거의 황홀경 - P12

에 빠져 인용하는 부분이 그렇다. 왜 그들은 B[바이런]의 「앨범」류의 시를 시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시는 L. E. L.이나 엘라 휠러 콕스보다 나을 것도 없다. 사람들은 B가 할 수있고, 또 스스로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풍자를 하지 않도록 설득시키고 말았다. B는 풍자(호라티우스의 패러디)가 든 가방과「차일드 헤럴드의 순례」를 가지고 동양에서 돌아왔다. 사람들은 B에게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야말로 지금까지 씌어진 것 중 최고의 시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B는 젊었을 때는 자신의 시에 대해 확신을 가진 적이 없었다. B와 같은 독선적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시적 자질이 없었다는 증거다. 워즈워스나 키츠 같은 시인들은 다른 것을 믿듯이 스스로의 재능도 믿었다. B의 성품은 종종 루퍼트 브룩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브룩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바이런은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편지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바이런은 또한 여러 면에서 뛰어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아무도 바이런이 잘난 척하는 것을 조롱해서 못하게 한 적이 없으므로, 좀 지나치게 호러스 콜처럼 되고 말았다. 바이런을 조롱할 수 있는것은 여자뿐이었는데, 여자들은 오히려 그를 숭배하고 말았다.
바이런의 부인에 대한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그 부인은 비웃는 대신 못마땅한 표정만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이런은 ‘바이런적‘이 되고 말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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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산사람이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습니다.

살아 세운 허술한 집보다
단정한 햇살이 결 고운
식솔 거느리고 먼저 앉았는데

먼 산 가차운 산
무더기째 가슴을 포개고 앉은
무심한 산만큼도 벗하고 싶지 않아
우리보다 무덤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승사람일 적
우리만큼 미련퉁이였을
그가요 살아 세운 허술한
집에서 여즉
그와 삶을 나누고 있는 우리에게요
점심밥만큼 서늘한 설움이
장한 바람에 키를 낮추는데 - P15

낫을 겨누어 베허버리는 건
누워 앉은 무덤입니다. - P16

신원경


산소에 갈 때마다 저 둥근 무덤 속에 친밀한 육체가들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몸이 흙을 껴안고, 시간과 함께 서서히 허물어져 마침내 형체를 잃으며 우리를 떠난다는 것이. 그럼에도 우리는 무덤 속에 사랑하는 이가 잠들어 있기를 바란다. 그가 유독 좋아했던 사과 한 알을 들고 함께 나눠 마실 막걸리를 뿌린 뒤, 잠든 조카가 무사히 모든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며 두 번씩 절을 올린다. 돗자리 위에서 우리는 슬픔과는 영무관한 이야기를 한다. 작년의 농담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자리를 턴다.
지난해에 가지치기했던 나무는 이전과 동일해져서 우리는 꼭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되돌아온 것만 같다. 산소에 다녀오면 큰아버지는 한동안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산 자의 몸에 붙어온 영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그 얼굴들을보고 온 날이면 무덤보다도 할 말 없는 사이가 친밀하지 않은 사이는 아니라고 이해한다. - P17

폐병쟁이 내 사내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 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 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 P18

유계영


모든 존재의 고통이 ‘나‘의 고통 위로 쓰러지는 일.
이것이 시인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인간의 살해 역사가 ‘나‘의 전쟁이 아닐 리 없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우리가 이미 죽은 자들의 고통에 휘말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허수경의 첫 시집은 먼데서 시작하는 듯 보이지만 시의 현장은 먼 데가 아니다. 시인은 죽은 존재들을 다시 낳고, 그들을 위해 쓸쓸한 밥상을 차리고, 사랑을 나누며, 그들의 고통과 회복에 현재 시제로 가담한다. 언제나 과거의 말단에 서 있는것. 시인의 시간만 그러하진 않을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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