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1882-1941
열세 살이 되던 1895년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처음신경증 증세를 보인 후 수차례의 정신 질환과 자살 기도를 경험한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적인모더니스트로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일궈놓은 선구적 페미니스트, 1907년 블룸즈버리 그룹을 형성하여 화가 덩컨그랜트, 경제학자 J. M. 케인스, 소설가 E. M. 포스터, 후에 남편이 된 레너드 울프 등과 문화와 사회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모임을 가지면서 울프는 세계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지성인으로 떠오른다. 1915년에 처녀작 『출항』간행 이후 「제이콥의 방』(1922) 『댈러웨이 부인』(1925)「등대로』(1927) 『세월』(1937) 등의 소설과 페미니스트에세이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1929)을 출간했으며 많은 평론과 에세이, 작가의 내면 풍경을 솔직하게풀어놓은 여러 권의 일기를 남겼다. 울프는 그동안 남성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온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된 질서를 뛰어넘어 단순히 여성 해방의 차원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했다. 아울러 이성적 언어 이전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만큼이나 삶의 심연에 천착해 깊고 다양한 문학 세계를 이루었다. - P-1
왜 지금 울프인가? 1941년 3월 28일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넣고 우즈 강에 투신 자살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을 이역만리 한국에서 왜 지금 내놓는가? 20세기 초라면 울프에 대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위상 정립 작업이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한 1980년대라면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활발하게 진행된 페미니즘 논의와 연관시켜 페미니스트로서의 위치 설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다. 울프는 누가 뭐래도 페미니스트이다. 울프의 페미니즘은 비록 예술이라는 포장지에 곱게 싸여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격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절대로 울프 문학의 진수도 아니며, 전부는 더더욱 아니다. 그녀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주의 문학이다. 사랑을 설파한 문학, 이타주의利他主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 고전 중의 고전이 그녀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같은 것들은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잠깐씩 들른 간이역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인본주의라는 정거장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모더니즘의 기수라는 훤칠한 한 그루의 나무로, 또는 페미니즘의 대모라는 또 한 그루의 잘생긴 나무로 우리의 관심을 지나치게 차지하여 우리가 크고도 울창한 숲과 같은 이 작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제는 바야흐로 이 깊은 숲을 조망할 때가 온 것으로 믿는다. 지금 우리가 울프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집이 울프를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읽는 이의정서를 순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울프 전집 간행위원회 - P-1
8월 4일, 월요일
공책을 하나 사서 먼저 크리스티나 로세티에 대한 인상을, 다음으로 바이런에 대한 인상을 쓰기 전에 우선 여기 몇 자 적어두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 이유는 르콩트 드릴의 책을 많이 사서 지금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타고난 시인이라는 큰 자질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신에 대해 소송을 벌인다면 크리스티나야말로 내가 맨 먼저 불러낼 증인이 될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글은 우울하다. 우선 크리스티나는 스스로를 사랑에 굶주리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삶에 대해서도 굶주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시에 대해서도 크리스티나는 종교가 자기에게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굶주리게 했다. 크리스티나 - P9
에게는 두 사람의 좋은 구혼자가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나름대로 특이한 데가 있었다.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특정한 색깔의 크리스천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색깔을 한 번에 몇 달밖에 유지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첫 번째 구혼자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 안 좋았던 것은 두 번째 콜린스의 경우다. 콜린스는 매우 유쾌한 학자였고, 비세속적인 은둔자였으며, 크리스티나를 한결같이 숭배했으나 콜린스를 교회의 우리 안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크리스티나는 콜린스가 사는 곳을 애정 어린 마음만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크리스티나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크리스티나의 시 또한 거세되고 말았다. 크리스티나는 성경의 「시편」을 시의 모양으로 바꾼다든지, 자신의 모든 시를 기독교 교리에 맞게 쓰려고 하였다. 그 결과 스스로의 뛰어난 독창력을 엄격한 금욕으로 굶겨볼품없게 말려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자유만 주어졌더라면 크리스티나는 브라우닝 부인보다 훨씬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아주 쉽게 글을 썼다. 참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생각을 어린애처럼 쓰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재능은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했지만 크리스티나는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사색도 했고, 상상력도 지니고있었다. 세속적으로 추측컨대 크리스티나는 점잖지 못한 것이나 - P6
기지가 뛰어난 것이나 모두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희생에 대한 대가로 크리스티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공포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도 크리스티나의 시를 다시 한 번 더 읽어본 것에 불과하며,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시에만 눈길이 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없다.
8월 7일, 수요일
아샴에서 쓴 일기에는 자질구레한 것들, 꽃이랑 구름, 딱정벌레나 계란값 등에 대한 꼼꼼한 관찰로 가득 차 있다. 혼자 있으니 달리 기록할 사건도 없다 큰 사건이래야 고작 애벌레 한 마리를 으깨 죽였다는 따위거나, 우리들이 흥분한 사건이란 어젯밤 루이스‘에서 가정부들이 돌아왔다는 것 정도다. 가정부들은 레너드에게는 전쟁 관계의 책들, 그리고 나에게는 영국 평론』을 가져다주었는데, 거기에는 국제연맹에 대한 브레일스퍼드의 글이랑『환희」에 대한 캐서린 맨스필드의 글이 들어 있었다. 나는 환희』를 읽고 "캐서린도 이젠 끝났군!" 하고 소리치며 내동댕이쳤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캐서린에 대해 여자로서, 또 작가로서 얼마만큼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캐서린의 지력은 아주 얕은 두께의 흙으로서, 완전 불모의 바위를 겨우 1.2인치 - P11
의 두께로 덮어 싼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환희」는 비교적 긴 작품이므로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갈 기회가 있었을 터이다. 대신 캐서린은 피상적인 재치를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구상 전체가 빈약하고 경박하며, 설사 불완전하더라도 값있는 정신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문장도 서툴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캐서린이 둔감하고 냉혹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시 읽기는 하겠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계속 글을 써서 스스로와 머리를 만족시킬 것이다. 그들이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글 한 편으로 캐서린의 사람됨에 대해 이처럼 많은 것을 읽어낸다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까? 어찌 되었든 읽던 바이런을 계속해 읽게 되어 매우 기쁘다. 적어도 바이런에게는 남자로서의 매력이 있다. 사실 바이런이 여자들에게 미쳤을 영향을 상상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더 재미가 생겼다. 특히 어리석거나 배우지 못한 여자들은 바이런에게 머리를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많은 여자들이 바이런을 고쳐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거틀러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하기나 하려는 듯, 늘 이 말을 했지만) 누군가의 전기를 철저히 읽고 거기에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어 붙여 그 사람의 사람됨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참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쿠퍼나 바이런이나 다른 누구의 이름이든 간에 전혀 뜻하지도 않던 책의 페이지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은 갑자기 멀어져죽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B의 시가 말할 수 없이 서툴다는 사실에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무어가 거의 황홀경 - P12
에 빠져 인용하는 부분이 그렇다. 왜 그들은 B[바이런]의 「앨범」류의 시를 시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시는 L. E. L.이나 엘라 휠러 콕스보다 나을 것도 없다. 사람들은 B가 할 수있고, 또 스스로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풍자를 하지 않도록 설득시키고 말았다. B는 풍자(호라티우스의 패러디)가 든 가방과「차일드 헤럴드의 순례」를 가지고 동양에서 돌아왔다. 사람들은 B에게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야말로 지금까지 씌어진 것 중 최고의 시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B는 젊었을 때는 자신의 시에 대해 확신을 가진 적이 없었다. B와 같은 독선적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시적 자질이 없었다는 증거다. 워즈워스나 키츠 같은 시인들은 다른 것을 믿듯이 스스로의 재능도 믿었다. B의 성품은 종종 루퍼트 브룩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브룩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바이런은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편지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바이런은 또한 여러 면에서 뛰어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아무도 바이런이 잘난 척하는 것을 조롱해서 못하게 한 적이 없으므로, 좀 지나치게 호러스 콜처럼 되고 말았다. 바이런을 조롱할 수 있는것은 여자뿐이었는데, 여자들은 오히려 그를 숭배하고 말았다. 바이런의 부인에 대한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그 부인은 비웃는 대신 못마땅한 표정만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이런은 ‘바이런적‘이 되고 말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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