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처럼 싸우는 법,
나는 그동안 간디에 대해 뭘 알고 있었던 걸까? 에릭 와이너가 이끄는 기차에 앉아 맨발의 간디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다. 경이와 흠모를 담고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간디를 향한 나의 지대한 관심이 이해가 잘 안 된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나는 인도인이 아니다.
금욕적인 사람도 아니다. 비폭력을 실천하긴 하지만 못 그럴 때도 있으며 은은한 수동공격성도 있다. 간디는 사람들을 이끄는지도자였다. 나는 그 누구도, 심지어 우리 집 개 파커도 이끌지 못한다. 파커는 더 큰 힘에 복종한다. 바로 음식이다. 사망 당시 간디의 소유물은 작은 숄더백에 다 들어갈 정도였다. 내가 가진 물건을 다 넣으려면 그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필요하며, 나는 지금도 쇼핑 중이다. 하지만 간디는 내게 말을 건넸고, 나는 그의 말을들었다.
인도에서 보낸 3년 동안 간디는 내 뇌 속에 스며들었다. 어떻게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간디의 사상은 아니더라도, 그의 이미지는 돈이며 건물 벽이며 온갖 곳에 다 있었다. 심지어 한 전화기 회사는 간디가 전화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걸어놨는데, 거대한수화기 때문에 간디의 작은 머리가 더욱 작아 보였다.
모한다스 K. 간디는 이력이 다양했다. 법정 변호사, 채식주의자, 사두(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하는 요가 수행자-옮긴이), 실험가, 작가, 국가의 아버지, 들것을 들고 옮기는 사람, 명상가, 중재자, 잔소리꾼, 교사, 학생, 전과자, 유머가 넘치는 사람, 보행자, 재단사,
- P273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 선동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간다는 투사였다. 그는 영국과 싸웠고, 편협한 외국인 및 인도인과 사회다.
소리를 내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싸움은 사우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싸움이었다.
물론 간디는 궁극적으로 폭력 없는 세상을 꿈꿨지만 그런 세상이 곧 도래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 만큼 현실적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더 잘 싸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들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며 자랑하는 부부를 한번 더올려보자. 그들의 이혼 소식이 들린다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만 하면 싸움은 생산적이다. 양쪽이 윈윈하는 해결책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싸우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해결책에 다다를 수도 있다. 동점으로 끝났지만 경기장이전보다 더 푸릇푸릇하고 건강해진 축구 경기를 떠올려보라 간디는 싸움을 필요악이 아닌 필요선으로 보았다. 우리가 잘 싸우기만 한다면 말이다.
미국의 기자이자 전기 작가인 루이스 피서는 간디의 아시람에서 그를 만났을 때 가슴이 떡 벌어진 탄탄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간디의 "다리는 가늘고 긴 근육질 이었고 실제 키 165 센티미터보다 훨씬 커 보였다. 간디는 "매우 남자다웠고 남성의 강철같은 신체와 의지를 가졌다. 피셔는 썼다.
간디는 남성성에 집착했다. 그가 쓴 글에는 "남자다움과 힘".
"용기" 같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심지어 인디안 레일웨이를 향해 불만을 표할 때도 거세 개념을 사용했다. "우리가 기차 - P274

여행의 고생스러움을 참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표시다."
간디는 영국이 인도를 거세했다고 믿었다. 그는 인도의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남성성은 좀 달랐다. 간디가 생각한 남성적 힘은 폭력이 아닌 그 반대에서 나왔다.
간다는 부당한 법에 복종하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여졌다. 그런 법에는 반드시 맹렬한 힘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비폭력적 힘으로 말이다. 간디는 그러려면 진정한 용기가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디에 용기가 더 필요한것 같은가? 대포 뒤에서 적을 조각조각 날려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웃는 얼굴로 대포 앞에 서서 조각조각 찢기는 것인가? 내 말을믿어도 좋다. 용기와 남자다움이 없는 남자는 절대로 수동적인저항자가 될 수 없다."
간디는 폭력을 혐오했지만 그가 폭력보다 더 싫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겁함이었다. 둘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면 간디는 폭력을 선택했다. "비겁한 사람은 남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간디의진정한 목표는 인도의 잃어버린 남성적 힘을, 인도만의 방식으로되찾는 것이었다. 간디는 그렇게 하면 자유가 자연히 따라오리라믿었다.
- P275


간디는 이 관점을 다음과 같은 짧은 단어로 요약했다. 욕망 없음. 나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욕망 없는 행위를 통해 해탈을 추구하는 카르마 요기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많은 것을한다.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것만 빼고,
우리의 방식은 다르다. 우리는 결과 중심적이다. 헬스 트레이너, 비즈니스 컨설턴트, 의사, 대학, 세탁소, 갱생 프로그램, 영양사, 재정 자문가, 많은 곳에서 결과를 약속한다.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결과를 지향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전제에는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간디는 결과를 지향하지 않았다. 과정을 지향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이 아닌, 독립할 자격이 있는 인도를 추구했다. 일단 인도가 독립할 자격을 갖추면, 잘 익은 망고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자유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간디는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 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 중심적인 접근법이 결과 중심적 접근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 P280

간디에게는수백만 명의 팬이 있었지만 가까이에 머무는 추종수행자들은 수백 명 정도였다. 간디와 함께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수행자들은 쉬운 것(도둑질하지 말라)과 고된 것(신체 노동), 아주 힘겨운 것(정조)이 포함된 열한 가지 서약을 지켰다. 지금껏 함께 살펴봤듯이 간디가 늘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요구가 많았고, 가끔은 냉혹하기도 했다. "간디와 함께 사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만큼 균형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해졌다.
 "나는 그럴 거야." 내가 카일라스에게 말한다. "나는 간디와 함께 살 거야."
내 말을 마치 다른 사람의 말처럼 내 귀로 들으면서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는다. 가끔 우리는 입으로 직접 말해야만 진실을 깨단는다.
나는 간디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 삶이 요구하는 고된 규칙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규칙 때문에. 나는 더욱 안락해지려는 노력에 상당한 시간과 돈을 쓴다. 그게 정말 필요한 것이아님을 알면서도, 에피쿠로스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충분한 걸로는 부족한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충분하지 않다.  - P299

간디처럼, 평화로운 과정을 거쳐 통일된 인도를 만들겠다는 간디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말년에 간디는 "폭풍이 휩쓸고간 뒤 아파하며 굶주리는 이 세상"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을느꼈다. 절망이 간디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디는 절대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1947년 8월 15일자정, 인도인들이 독립을 축하할 때 간디는 하루 종일 금식하며기도를 올렸다. 곧이어 기차와 두 발을 이용해 막 태어난 국가의전역을 돌아다니며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고자 노력했다. 목표는이루지 못했으나, 수단은 이루었다.
어떻게 싸우는가가 무엇을 두고 싸우는가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잘 싸웠다. 부당함을 인식하고 그에 맞섰다. 인디안 레일웨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에 맞서 창의적으로, 또 깨끗하게 투쟁했다. 정말로 그러고 싶었지만, 폭력에 의지하지 않았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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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의 언어를 믿으면서 사용할 줄을 모른다. 시도를 해봤지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것은 사물의 언어, 물질적인 흔적의 언어, 가시적인 언어다. (그 언어들을 단어로, 추상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멈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사진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이 그의사랑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라, 명백한 것들 앞에서, 사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증거 앞에서, 내가 절대 답을찾을 수 없는 그는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을 피하는 방법인 것 같다.
- P136

또 다른 방 하나가 이것과 오버랩된다. 같은 포근함을 지닌, 어느 겨울의 퀴리 병원, 3층 병실. 오늘 나는 그 방에서루앙 시립병원 병실을 떠올렸다는 것을 기억한다. 23살, 낙태 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 인생을 태어난 순간까지, 액자 속에 액자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상자처럼 볼 수는 없을까. 캠코더에 엉망으로 녹화된 영상처럼뿌옇게, 완전히 불투명해질 때까지.
- P146

우리는 사진 촬영을 계속한다. 어떤 장면도 절대 서로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행위다. 유일한 한계는 바로 욕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광경을 더는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장면을 응시하게 했던 그 고통도 더는 없는 듯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더이상 마지막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글쓰기 작업의 일부다. 순수한 형태는 사라졌다.
- P148

함과 세상에서 상의를 30% 할인가에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도 이미 먹이가 되었던 이갈망을 혐오했다. 나는 그 가게에서 봤던 유일한 남자, 입구에서 백 보를 걷던 흑인 경비원을 지나쳐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세일이라는 상품이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의가치하락과 사물, 보수가 매우 좋지 않은 일에 대한 모독으로 이뤄진 매혹적인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특징 없는 옷들과는 거리가 먼, 사랑을 나눈 후 버려진 우리들의 옷들의 작품들을 다정하게 생각했다. 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 내게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에게존엄성을 돌려주는 것이자,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의 ‘신성한제복‘을 만들려는 시도로도 보였다.
- P159

이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내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나는정면으로 거울을 마주하고 있다.
- P161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암에 걸렸다‘ 라는 생각과 말을 멈추고 ‘암에 걸렸었다‘라고 하게 됐을까? 언제든지 후자에서 전자로 갈 수 있기에, 암이 재발할 수 있기에 아직 이 둘 사이,
불확실한 구역에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지난해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사에 내가 느꼈던 무감각함과 그때 세상의 사건들에 내가 둔 거리감,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다시 깨운 분노의 비현실성, 또 한 번 내 것이 된 다소 쓸데없는 걱정들,
예로 식기세척기 5년 품질보장을 받으면서 내가 스스로에게준 미래의 폭으로 암의 현주소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면 암에 걸렸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개월 동안 현존하는 모든 기술로 내 몸 구석구석을 수없이 많이 검사하고 촬영했다. 나는 이제 그게 무엇이든 뼈와 신체 기관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검사를 할 때마다 무엇을 더찾아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했다.
- P171

우리는 곧 서로의 글을 교환할 것이다. 나는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이 두렵다. 그의 이타성을, 욕망과 함께 나눈 일상이감춘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글을 통해 그것이 단번에 밝혀지는 것이 두렵다. 글은 우리를 갈라놓을까, 혹은 더가깝게 만들까?
나는 그가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기를바란다. 나와 상관없이 세상을 향하기를, 내 경우는, 그가 내것을 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를 고려하여 한 일이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단순히 사진에서 그리고 현재의 구체적인 흔적에서 내가 이중으로 매료되었던 것들을탐색하여 하나의 텍스트 안에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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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역시 계속해서변화를 맞이했다. 탈모 그리고 전신 체모 탈락, 상처, 수술하고 몇 주 후에는 겨드랑이에 림프액으로 채워진 커다란 오렌지 같은 것이 있어서 가슴에 닿지 않게 팔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2차 성징을 겪는 소녀처럼 얇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털이 다시 나왔다. 후각은 극도로 예민해져서멀리서도 모든 냄새를 알아차렸다. 평소에 감지할 수 없던것까지도,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고, 개처럼 세상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내 이모를 보러 간 Y요양원에서 티브이 앞에 모여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얼굴에 한 겹 내려앉은 음식 냄새, 산패한 냄새, 오줌 냄새를 본 것 같았다. 나는 냄새를 만질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끔찍하지 않았다. 열심히 암 환자의 일을 수행했고, 내 몸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실험처럼 지켜보았다.
(나는 내가 삶과 글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경험을 묘사로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P92

사진에는 항상 시선을 붙잡는 디테일이 있다. 대관보다 마음을 더 동요시키는 디테일, 예를 들면 타일 위에 구불거리는 스타킹, 둥글게 말은 양말, 짝을 잃은 한 짝, 쇼윈도에 진열한 것처럼 마룻바닥에 컵이 납작하게 놓인 브래지어. 여기서는 창문 앞에 있는 흰색 뮬이 그렇다. 이미 여름 더위는 시작됐다. 그것이 계속 이어져이 되고 폭염이 끝난 후에는 수천 명의 노인들이 죽어
일요일에도 묻히게 되겠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저 아름다운 여름일 뿐이었다. 하얀 하늘 아래 세상은 비현실적으로 곳곳이 반짝일 것이고, 늘 그랬듯이 도덕성은 더욱 속에 녹아 버릴 것이다.
- P112

여름은 지나간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마치 가을에는 젊음이 끝나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모든 것을 당장 경험해야 했던 열여덟 살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사로잡혀버렸다. 우리는 정원에서 열린 창문 너머로 브라이언 페리든 존, 폴라레프, 비틀즈를 들었다.
- P113

이 노래들은 언제나 M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다른 노래들이 내게는 다른 남자들을, 그에게는 다른 여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노래들을 엄청나게 질투해야 할것이다. 쇼핑센터에서, 미용실에서, 우연히 그중 하나를 듣는 것만으로도, 구체적인 어느 날은 아니겠지만, 하늘의 변화와 대기의 온도, 세상의 다양한 사건들, 일상의 행동과 여정의 반복, 아침 식사부터 지하철 플랫폼의 기다림이 있는시간으로 나를 데려가기에 충분하다. 그것들은 어느 소설속에서처럼 녹아 버리고 만다. 단 하나뿐이던 긴 하루로, 춥거나 뜨거운, 어둡거나 밝은, 채색된 한 가지 감정, 행복 - P114

과거 속에서 노래는 확장되어 나가고 사진은 멈춘다. 노래는 시간의 행복한 감정이며, 사진은시간의 비극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한평생을 노래와 사진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과 연관된 어떤 노래를 떠올릴 수 있을까? 열심히찾아봤지만 기억을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빈 옷장이나 단순한 열정‘을 쓸 때였다, 라고 말할 만한 노래는 전혀 없다. 내게 글쓰기란 모든 감각의 정지 상태다. 다만 그것을 탄생시키고, 일으킬 뿐이다.
- P115


창문 양쪽으로 거실 책꽂이의 첫째 칸이 보인다.
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프랑스 문학, 외국 문학, 사회학서적들이 있다. 모두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됐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시립도서관처럼 배치한 객
책들 사이에서 뒤지는 즐거움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우리 집, 부모님 댁에는 비슷한 책들끼리 혹은 주제별로 나란히 꽂혀 있다. 토마스 만은 프루스트와 가까운 곳에, 피츠제럴드는 헤르만 헤세 옆에. 시간이 가고, 세르지에 자주 드나들면서 거기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내가 소유한 책들 대부분은 여전히 상자 안에 있기 때문에, 나의 이상적인문학 공간‘이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다.
- P118

사진 속에 우리의 육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나눈 사랑도 없다. 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고통.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것을 원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진의 ‘필사적인 의미, 우리는구멍을 통해 시간의, 무(無)의 불변의 빛을 엿본다.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적이다.
- P124


우리들의 사진을 볼 때면, 나는 내 육체의 소멸을 본다.
그러나 그곳에 더는 내 손이나 얼굴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걸을 수 없다는 것, 먹을 수 없다는 것, 성교를 할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소멸이다.
나는 몇 번이고 내 사고가 다른 곳에서 계속될 수 있다면 죽음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당신은 곧 죽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했잖아. 이제정말로 그렇게 됐네, 자기야."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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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읽고 있던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슬금슬금 읽다가
시집의 마지막 시를 읽는다.
다음 시집의 예고편이 시집의 마지막에 있다고 짐작한다.
2015년 1월 초판인... 2022년 1월 읽으면서
<무릎 꿇다> 얼마나 겸손한가를 생각한다.

시인의 새 시집을 기다린다.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무릎 꿇다


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나무와 흙과 바람이 잘 말라 까슬합니다.
죽기 좋은 날이구나
옛 어른들처럼 찬탄하고 싶습니다.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래겠습니다.


고요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홀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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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이 챕터는 매력적이었다. 잠깐잠깐씩 푹 빠져서 현실로 돌아오는데 애 먹었다.




기차가 내 목적지인 홀랜드파크역에 도착하자 나는 열치화랫폼 사이 간격을 조심하며 출구 쪽으로 향한다. 나는 걷고 있다.
기보다는 인파에 밀려 서핑을 하고 있다.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만 속도 때문에 불가능하다. 속도는 주의의 적이다. 역 바깥으로...
나온 뒤 갑작스레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깜박거리며 방향 감각을되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지하에서 지상의 삶으로 이행하는 것은 언제나 까다롭다. 방향감각을 잃고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며, 기이하게도 내가 누구인지도 함께 헷갈린다. 나는 어엿한 지상의존재인가, 아니면 수상쩍은 지하세계의 거주자인가? 낯선 이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또는 우리 자신이 그렇게 상상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빛이 쏟아지는 이곳 지상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한다.
나는 지상에서 존재할 자격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걷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앞으로 게속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노팅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동네는매우 아늑하다. 커피 한 잔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도 보낼 수 있을듯한 카페들과, 계속 존재함으로써 꿋꿋이 경제학 법칙에 저항하는, 성실하게 책을 골라 진열해놓은 책방들을 지난다. 한 파키스탄계 남자가 꽃을 팔고 있다.
- P242

우리는 물건을 급작스레 잃어버리지만 그 상실은 점차로 서서히 경험한다. 우리의 자동차 키가, 지갑이, 마음이 그저 잘못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한 물건과 한때 소유했던 물건사이를 나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가파르지 않은 것은아닌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비존재는 우리를 겁먹게 한다.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상실‘은 짧지만 위협적인 단어다. 명사계의 나폴레옹이다. 그안에 몸무게‘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 이상 거의 언제나 부정적인뜻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실을 그저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실로 고통받는다. 사람들은 일이나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길을 잃었다‘라고 표현한다. 어떤 국가나 사람의 인생을 따라갈 때 역사가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된 구체적인 시점을 정한다.
상실은 크기가 다양하지만 크기가 작은 경우는 없다. 상실은중간에서 시작해 점점 커진다. 상실의 느낌 또한 다양하다. 상실은 어떤 이에게는 고통스러운 것, 어떤 이에게는 충격적인 것,  - P249

어쩔 줄 몰라 다시 시몬에게 기댄다. 나는 절망적인 순간마다스스로에게 베유의 책 중 한 권을 펼치라고 말한다. 베유는 내가겪는 고충을 보고 단순한 진단을 내린다. 나는 그 공책을 정말 찾고 싶은 게 아니다. 그 공책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욕망에사로잡혔고, 욕망은 관심과 양립할 수 없다. 무언가를 욕망하는것은 곧 거기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는 뜻인데, 바로 그 상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 향하는 대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인 것은 그 주체, 즉 ‘나‘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환상이다. 헤로인 중독자는 헤로인을 갈망하지 않는다. 헤로인을하는 경험,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헤로인을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신적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 즉 아타락시아다.
다시 시몬에게로 돌아간다. "미덕이나 시, 또는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무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관심은 이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온몸에 힘을 풀고 책장을 넘긴다.
"문제는 늘 우리가 너무 적극적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수색에 나서고 싶어 한다."
이 문장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짜증나게도 한다. 당연히 수색에 나서고 싶죠. 시몬 ! 수색에 나서는 것 말고 내가 내 공책을찾을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나요?
- P252

깊게 심호흡을 하고 계속 책을 읽어나간다. 베유가 말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오로지 간접적인 방법만이 효과가 있다. 우선 한발짝 물러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물러서서, 지하실에서 한 트럭 분량의 아편처럼 내게 손짓하는 거대한 텔레비전으로 후퇴한다. 좋지 않다. 너무 멀리 물러졌다. 나는 체념 앞에 굴복했다. 체념은 변장한 절망이다.
베유는 행동과 결과를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 나의 문제라고 말한다. 삶은 늘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관심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기울이는 삶은 위험하다. 결과가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니 어디로 이끌기나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베유가 주창한 것과 같은 순수한 관심에는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출세하고 싶은 것과 같은 외부적 동기가 묻어 있지 않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베유는 말한다.
베유의 말이 옳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실을 찬미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결실이 눈에 더 잘 보이고 더 화려할수록 좋다. 시몬 베유처럼 지금 이 순간에만 마음을 쏟고 미래의 보상에는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애정을 담아 주의 깊게 딸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신경외과 의사가 될지 바리스타가 될지에는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공모전에 글을 내면서 상을 달지 못 탈지에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 P253

잃어버린 원고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시몬 베유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나설 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다." 베유의 말이 옳다. 나는기다려야 한다.
만약 이 책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라면 지금쯤 기적처럼 공정을 발견하고 여태껏 공책이 내 목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책은 스필버그 영화가 아니다. 이 책이 충성을 바치는 대상은 박스오피스가 아니라 진실이며, 진실은내가 내 공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책이 어떤 지혜를 담고있었을지, 또는 아무 지혜도 담지 않았을지 나는 평생 알지 못할것이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둔다. 공책을 보내주기로 한다.
이것도 진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럴지도. 하지만 이건 시몬 베유가 즐겨 쓰던 단어가 아니다. 진전이랄 것도, 승리랄 것도 없다.
오직 기다림만이 있을 뿐.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욱 기꺼이, 더욱끈기 있게 기다림은 그 자체가 보상이므로,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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