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의 언어를 믿으면서 사용할 줄을 모른다. 시도를 해봤지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것은 사물의 언어, 물질적인 흔적의 언어, 가시적인 언어다. (그 언어들을 단어로, 추상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멈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사진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이 그의사랑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라, 명백한 것들 앞에서, 사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증거 앞에서, 내가 절대 답을찾을 수 없는 그는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을 피하는 방법인 것 같다. - P136
또 다른 방 하나가 이것과 오버랩된다. 같은 포근함을 지닌, 어느 겨울의 퀴리 병원, 3층 병실. 오늘 나는 그 방에서루앙 시립병원 병실을 떠올렸다는 것을 기억한다. 23살, 낙태 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 인생을 태어난 순간까지, 액자 속에 액자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상자처럼 볼 수는 없을까. 캠코더에 엉망으로 녹화된 영상처럼뿌옇게, 완전히 불투명해질 때까지. - P146
우리는 사진 촬영을 계속한다. 어떤 장면도 절대 서로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행위다. 유일한 한계는 바로 욕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광경을 더는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장면을 응시하게 했던 그 고통도 더는 없는 듯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더이상 마지막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글쓰기 작업의 일부다. 순수한 형태는 사라졌다. - P148
함과 세상에서 상의를 30% 할인가에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도 이미 먹이가 되었던 이갈망을 혐오했다. 나는 그 가게에서 봤던 유일한 남자, 입구에서 백 보를 걷던 흑인 경비원을 지나쳐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세일이라는 상품이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의가치하락과 사물, 보수가 매우 좋지 않은 일에 대한 모독으로 이뤄진 매혹적인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특징 없는 옷들과는 거리가 먼, 사랑을 나눈 후 버려진 우리들의 옷들의 작품들을 다정하게 생각했다. 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 내게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에게존엄성을 돌려주는 것이자,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의 ‘신성한제복‘을 만들려는 시도로도 보였다. - P159
이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내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나는정면으로 거울을 마주하고 있다. - P161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암에 걸렸다‘ 라는 생각과 말을 멈추고 ‘암에 걸렸었다‘라고 하게 됐을까? 언제든지 후자에서 전자로 갈 수 있기에, 암이 재발할 수 있기에 아직 이 둘 사이, 불확실한 구역에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지난해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사에 내가 느꼈던 무감각함과 그때 세상의 사건들에 내가 둔 거리감,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다시 깨운 분노의 비현실성, 또 한 번 내 것이 된 다소 쓸데없는 걱정들, 예로 식기세척기 5년 품질보장을 받으면서 내가 스스로에게준 미래의 폭으로 암의 현주소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면 암에 걸렸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개월 동안 현존하는 모든 기술로 내 몸 구석구석을 수없이 많이 검사하고 촬영했다. 나는 이제 그게 무엇이든 뼈와 신체 기관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검사를 할 때마다 무엇을 더찾아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했다. - P171
우리는 곧 서로의 글을 교환할 것이다. 나는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이 두렵다. 그의 이타성을, 욕망과 함께 나눈 일상이감춘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글을 통해 그것이 단번에 밝혀지는 것이 두렵다. 글은 우리를 갈라놓을까, 혹은 더가깝게 만들까? 나는 그가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기를바란다. 나와 상관없이 세상을 향하기를, 내 경우는, 그가 내것을 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를 고려하여 한 일이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단순히 사진에서 그리고 현재의 구체적인 흔적에서 내가 이중으로 매료되었던 것들을탐색하여 하나의 텍스트 안에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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