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가 있는 정물


그대라는 자연 앞에서
내 사랑은 단순해요.

금강에서 비원까지
차례로 수국이 켜지던 날도

홍수를 타고
불이 떠내려가던 여름
신 없는 신앙을 모시듯이

내 사랑에는 파국이 없으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과육을 파먹다
그 속에서 죽은 애벌레처럼
순진한 포만으로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사랑일 수밖에요

죽어가며 슬어놓은 알

끝으로부터 시작이
말려들어갑니다

스미다강의 불꽃 축제


강으로 가자고 했다.
진흙 코끼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좋은 것은 무엇일까
외투를 입히고 단화를 신겼다
부스스 흙이 떨어졌다
코끼리는 밀차 손잡이를 꼭 쥐고
천천히 발을 뗐다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다
더는 걷지 못하겠다는 듯
옆으로 풀썩 누웠다
교각 위에 차량이 길게 늘어섰고
화가 난 사람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연잎만큼 넓은
코끼리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이라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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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진실을 요구하는 싸움을 하는 동안 시민들은 고결하고 당당한 인간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죽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면, 살아남은 자가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그 죽음을 사주한 자들을 벌하는 것이다. 돈이 아니라 ‘진실‘을요구한다는 사실이 간혹 어떤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 같다.
정권과 국회와 언론이 모두 작당하여 공격할 때 맞서 싸울 수있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도 몇몇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적 같은 강력한 저항을 통해 우린 부패한 권력과 그 속에서 함께 썩어간 시대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 P138

그럼에도 여전히 가난한 시민이 가진 가장 값진 무기는 그의생명이라는 듯 김영오 씨는 자신의 생명을 잘게 조각내어 이 질긴 투쟁의 제단에 바쳤다. 우리가 빠진 수렁은 생각보다 깊고어둠은 생각보다도 완강하며, 악취는 생각보다 독하다. 진실을알고자 하는 욕구를 죄악시하는 이 사회는 부대낌 없이 이곳을살아내고 싶거든 노예의 정신을 갖추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유족들의 싸움은 결국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싸움이다. 이것은, 2014년 남한사회에서 ‘좌빨‘의 징표가 되어버린 "진실을요구하는 인간들의 싸움"이며, 민주주의라는 거적을 둘러쓴집단을 향해 그 실체를 요구하는 싸움이다. - P139

울어라. 우리 모두 함께 울자. 눈물은 아름다운 것이다. 진실함이고, 솔직함이다. 이토록 큰 슬픔 앞에서 우리 함께 목 놓아울고, 그리고 진실을 역사 속에 남기기 위해 다시 싸우자. 우리위에 내려앉은 이 거대한 슬픔은, 진실을 덮고 쌓아 올린 거짓의 산더미에 올라앉아 더 큰 거짓의 성을 쌓아야만 숨 쉴 수 있는 자들이 벌인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합당한 벌을 받고있다. 단 한순간도 진실을 살지 못하는 그 벌을 우린 지금 울고 있지만, 결코 패자가 아니란다. 우린 함께 진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편에 선다는 것은 삶에 드리울 수 있는 거대한 축복이며, 인생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강렬한 휘장이다. 우린 그걸 갖고 있다. - P143

가부장제가 부여한 과도한 남성 권력이 가족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데도 스스로 궤도 수정을 할 줄 모르는 이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잔혹한 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마침내 승리하는여성들을 보노라면 환희와 절망이 교차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만이 스스로 지속에서 해방되는 방법임을 알지라도, 그 수많은 장애물을 건너면서 그들은 얼마나 지치고 다치고 다시 좌절하게 될 것인가.
그러나 용기를내어 자신의 고통을 끄집어내는 순간, 그것은 이제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피해자는 이러한경험을 공유하고 사회에 가해자 처벌을 요구함으로써 자기 자신뿐 아니라 동료 여성들을 비추고 끌어안게 된다. 당신들이 저지른 국가적 범죄를 인정하라는 자신의 온 생애와 존엄을 건싸움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세상의 모든 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싸우는 운동가로 거듭났던 것처럼. - P166

식민통치의 시대는 종식되었지만, 그 시절 빚어진 비극에서기인한 트라우마는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고, 여전히 한국사회를 피멍들게 한다. 거기서 헤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고, 명확히 기록하고 인정하며, 반성과 사과로매듭짓는 것이다. 한사코 과거를 덮으려는 나라에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그 위대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들이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역사에 명확히 이 일을 기록하고 청산해야 한다. 그 끔찍한 역사를 올바르게 청산해야만 비틀린 현재의 우리를 수정할, 반복되는 트라우마로부터 탈출할 길이 열릴 것이다. - P171

선생의 집은 라스코 동굴벽화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라스코동굴 벽화가 처음 발견된 후 관람객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기시작하자, 프랑스 당국은 그 옆에 라스코 동굴벽화를 섬세하게재현한 제2의 라스코 동굴을 만들었다. 선생은 7년에 걸친 벽화작업에 참여한 6인의 화가 중 한사람이었다. 작업이 끝난 후 받은 사례비로 근처에 집을 마련했고, 은퇴 후 거기서 살았다. 그런 선생이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다.  83세. 숲 속에 자리 잡은요양원에서 선생은 세상과 단절된 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계신다. 국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필리버스터 투쟁의 놀라운 장면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특히 전태일의 동생 전순옥의원의 발언을 전해드렸더니 감격하셨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전순옥씨와 잘 아는 사이라면서. - P183

선생은 말씀하셨다. 정의로운 길을 택하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승리라고 그 길에 서 있어야만 기쁘고 당당하게 인생을누릴 수 있다고,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길을 함께할 수 있는 동지를 찾으라고 한사람이면 족하다고. - P184

세상의 모든 문명에는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어
"*둠과 빛을 조율해내는 방식이 그 문명이 축적해온 문화적 역량일 터이다. "도망간 노예를 잡아들이는 이 시절, 자본과 국가의 무모한 불장난으로 집을 잃고, 더는 잃을 것 없이 탈진하고분노한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드는 이 황망한 사태, 앞으로 어느집 지붕 위로 불이 옮겨붙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럽인들은 수렁에 빠진 바퀴들을 하나둘 끌어올려야 한다. 너무 낙심하거나 지치지 않고, 그 어떤 광기에도 현혹되지 않은 채. - P198

그런데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은 유독 파리의 테러를 아파했고, 파리를 위해 기도했다. 페이스북이 ‘Pray for Paris‘를 외치는 전 세계 유적지들의 사진으로 뒤덮였다. 파리라는 도시가 세계인들에게 갖는 그 각별한 의미와 애정을 드러낸 에피소드였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라는 말은 당신과 나 사이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호 간에 믿어 의심치 않을 때만 축복의 의미를 갖는다. 신의 존재를 수긍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말은 허무맹랑하고 강압적으로 들린다. 많은 파리지앵은 무신론자이며,
신앙을 지니고 있더라도 굳이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회적 약속과 판단이 통용되는곳이 바로 이 혁명의 도시 파리다.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들의피를 보고야 마는 배타적 속성을 수세기 동안 겪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테러가 대체 어떤 연유로 일어났는지를 잠시만이라도 생각한다면, 당신들을 파괴한 그들을 벌해달라고 나의 신에게 기도하겠다는 말이 과연 축복으로만 들릴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P201

테러 직후 파리에서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이 있다.
가난한 문학청년 헤밍웨이가 소설 하나 써보려고 애쓰며 돌아다니던 파리 시절의 기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reable Feast」다.
사람들은 기도하는 대신 테라스에 앞다퉈 앉으며 여전히 포도주를 마셨고, 가난한 문청시절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누렸던 축제의 날들을 되찾고자 그의 책을 사 갔다. 기도 대신 파리라는 축제를 계속 즐기는 것. 그것이 파리를 사랑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다.
- P202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테러에 희생당한 파리사람들을 위해Pray for Paris‘라는 배너를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국교를 가지지 않은 세속국가이며, 모든 국민이 자신이 원하는 신앙을 가질, 혹은 가지지 않을 자유를 가지며, 특히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금합니다. 그것은 프랑스 공화국이 가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정교분리의 원칙aicité ‘이지요. 미국에서와 달리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올리고 맹세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정말로 뭔가를 기원하고 싶다면, 차라리 - P202

Peace for Paris‘ 라든가 혹은 헤밍웨이가 말한 것처럼 ‘파리는 언제나 축제‘라고 기원해주세요. 시네아스트 조안 스파르Joann Star가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더 이상의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음악을 믿고, 포옹을 믿으며, 삶을 믿고, 샴페인과 기쁨을 믿습니다". 그러니 자,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기보다 근본주의자들을 향해 잔을 듭시다. 어둠을 지향하는 자들을 향해 우린 축제의 폭죽을 터뜨립시다. - P203

프랑스가 인류에게 기여한 가장 큰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두말할것도 없이 ‘혁명‘이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감옥을 부수고 왕의 목을 칠 수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보여주었고,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세상은 드디어 왕을 없애기 시작했다. 에어프랑스 노동자들의 행동은 프랑스의 대외적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혁명의 화산이 분출했던 순간을 환기하고 혁명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대외 이미지를 고양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장면이지배계층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있다. 그 지배계급의 대변자인 미디어는 그 장면을 이용해 역풍을 만들어보려 무진 애를 썼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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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란 들춰보지 않아도 약속대로 사회 구석구석이 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그 무엇하나 법대로, 원칙대로,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고, 뒷구멍을 통해 수를 쓰면 다른 결과가 나오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독재의 기억이 비정상적인 힘, 법 이외의 관행에 의해사회가 굴러가는 것을 내버려 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6·25종전 이후 지난 60년간 군에서 의문사로 죽은 사람이 6만 명에이른다(《한겨레신문》 2013년 3월 8일 자). 연평균 1,000명이 죽어나간 셈이다. 삼성가의 남자들은 그중 73퍼센트가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았다고 한다. 대학 시절 강남 사는 남학생이 군대에현역으로 가게 되면, "걔네 엄마 계모냐?"라는 소리가 공공연한 농담으로 나돌기도 했다. 우린 노벨상을 타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는 것으로 선진국에 진입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것보다 먼저 이뤄야 하는 것은 ‘투명사회‘다. - P128

프랑스의 모든 공공기관 입구에는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이 여전히 적혀 있다. 그 세 단어를 음미하다 보면, 헛웃음이 터져 나오곤 한다. 그 혁명의 이상으로부터너무도 멀리 와 있는 프랑스의 현실을 보며, 주변 사람들을 붙짧고 성토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람들은 중심을잃지 않았다. 세상이 비틀거리고 추락할 때마다 자신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사회로부터 멀어져감을 느낄 때마다, 거리에 나와 우리에겐 자유·평등·박애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누구도도를 달 수 없는 이들의 중심은 바로 그 혁명정신이다. 그래서이들은 추락을 경험해도, 다시 힘을 모아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 P131

그렇다면 우리가 공유하는 가장 빛나는 기억, 한마음으로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시험 문제의 정답과 삶에서 만나는정답이 다른 세상은 가치가 분열된 사회다. 우린 바로 그 전복되고 분열된 가치의 시대를 지르밟으며‘ 가고 있다. 깨져서 산산조각이 난 가치들을 밟아야 하는 우리의 발바닥에는 피가 맺힌다. 끝나지 않는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이 시절. 마침내 이 시절을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게 된다면, 결코 후퇴할수 없이 단단한 우리의 가치를 세워가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것이다. - P132

2016년 봄,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함께 보낸 파리에서의 나흘은경이로운 시간이었다. 마술처럼. 곤경에 처하면 바로 다음 순간새로운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번 세월호 유족의 파리 방문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모든 멤버들이 함께 경험한 일이다.
유족들의 강연과 영화 <나쁜 나라>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던소르본 대학 내 바슐라르 강의실은 천장 한가운데가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해가 쨍쨍 내리된다면 화면이 선명하게 보이지않을 수 있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영시간이다가오자, 해는 사라지고 먹구름이 요란스런 바람과 함께 밀려들었다. 우리는 아무ㅈ불편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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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우리는 너무 떨어져 살아서 만날 때마다 방을 잡았다.
그 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파티를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기면 한 사람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혼자 남아 있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
그 방 창문을 나는 한 번쯤 올려다보았다.



2023년 9월
김소연

사라지는 일에 하는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힘찬 삶의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상기해내면서.

파멸하고
추락하는 것에
실패하기.
물러서기.

자신의 역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인간에게 또 다른 방식의 영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사람은 생각한다.

그 사람은
벼랑 끝에서
황금빛 테두리에 갇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그 사람은 올무를 손에 들고 서 있다.

그 올무를 손에 들려준
또 다른 올무를 든 사람들과 마주 서서
우정을 나눈다.

거기에 깃든 온기와 온화를
나는 매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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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삶을 만들어내는 법, 상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재주를 배워야 한다. 이런 재주를 보여줄 안내인이 필요하다. 이런 것을 배우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우리 삶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간은 항상 가장 훌륭하게 사는 법과 서로를 도와 계획을 실행하는 법을 상상하기 위해 집단에 합류한다. 인간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가 살아야하는 삶,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서로 협력하여 배우고 가르치며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계속 나아가게 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 P344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기계로 재생목소리와 영상, 상업과 정치적 이윤을 겨냥한 말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이 시대에는 강력하고 유혹적인 미디어를 동원해서 대중을 멋대로 주무르고 통제하려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에게 혼자 힘으로 길을 찾아내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사실 누구나 혼자서는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분별력과 자유가 있는 삶을 상상한 사람을 찾아내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귀를 기울여야 한다.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공간, 시간, 침묵을 차지하는 공동체행동이다.
읽기는 듣기의 수단이다.
읽기는 듣기나 보기만큼 수동적이지 않다. 능동적인 행동이다.  - P345

물론 전통적인 의미의 ‘책‘이 아닐 수는 있다. 펄프로 만든 종이 위에 잉크로 글자를 찍은 형태가 아니라, 손바닥 위의 화면 속에서 깜박거리는 글자일 수 있다. 앞뒤도 안 맞고상업적인 내용, 포르노와 마약과 허튼소리가 가득한 케케묵은 내용이라 해도, 전자출판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수단을 제공해준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내용이다. 그 내용을 나누는것이다. 글을 읽어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문자문화가 중요한 것은 문학이야말로 작업 지시기때문이다. 문학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침서다. 우리가 방문중인 땅, 즉 인생이라는 나라에서 길을 찾는 데 가장 유용한 안내인이다. - P347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성 우월적인 주장과 제도를 떠받치며 남자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말에 드러나게 복종한다. 남자가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자연스러운사실 또는 종교적 교리로 옹호한다.
지위가 낮은 남자들 (젊은 남자와 가난한 남자)은 자기를낮은 지위에 묶어두는 체제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다. 지배자나 종교의 힘을 지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치러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사들은 대부분 그사회가 열등하게 취급하는 남자들이었다.
"속박의 사슬 외에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사슬에 입을 맞추는 편을 선호한다. - P353

권력을 쥔 사람은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무기로주장하고, 더 좋은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그 자리를 계속 지킬 능력이 더 뛰어나다. 이것만으로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가?
확실히 남자가 여자에 비해 약간 더 크고 더 근육질이라는 사실(그러나 지구력은 조금 떨어진다)만으로는 체구와 근육이큰 역할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젠더 불평등이 항상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다.
우리 생각처럼 인간이 정말로 불의와 불평등을 싫어한다면, 과거의 대제국과 고도의 문명이 과연 단 15분 동안이라도 존재할 수 있었을까?
우리 주장처럼 우리 미국인들이 불의와 불평등을 강력히 싫어한다면, 이 나라에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이 존재할까?
ojo Lie우리는 반란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반란의 정신을 요구하지만, 특권층은 잘못된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P355

폭력이 있어도 없어도 사회는 변한다. 재창조가 가능하다. 건설도 가능하다. 망치, 못, 톱외에 우리가 지닌 건설도구가 무엇인가? 교육, 생각하는 법 배우기, 학습 능력?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집을 짓기 위해 반드시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도구가 있는가?
우리가 현재의 지식을 바탕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면 현재의 지식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 유색인, 여자, 빈민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
지금껏 배운 백인과 남자와 권력자의 지식을 모두 머리에서몰아내야 하는가? 성직자와 남성우월주의뿐만 아니라, 과학과 민주주의도 내다 버려야 하는가? 다른 도구는 하나도 없이맨손으로 새로운 사회를 세우려고 애쓰는 신세가 될까? 로드의 은유는 풍요롭고 위험하다. 그것이 제기하는 의문들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 P359

우리가 정의를 상상할 능력이 없다면, 우리 자신의 불의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자유를 상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정의와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
고 상상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에게 정의와 자유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 P363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러분은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믿고, 독자를 믿어야 합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야기도 독자도 존재하지않으므로, 여러분이 믿어야 할 것은 여러분 자신뿐입니다. 그리고 작가로서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되는 방법은글쓰기뿐입니다. 글쓰기에 여러분을 바치십시오. 글을 쓰고있는 상태에, 글을 이미 쓴 상태에 글을 쓰려고 준비하는 것에, 글을 쓰려고 계획하는 것에 읽기에, 쓰기에, 자신의 일을연습하는 것에 자신의 일을 배우는 것에 여러분을 바치십시오. 그러다 보면 뭔가를 알게 되고, 여러분은 자신이 뭔가를알게 됐음을 깨닫습니다. - P367

작가로서 자신을 믿는 것은 모든 종류의 믿음과 거의 똑같습니다. 예를 들면, 배관공이나 교사나 기수의 믿음이그렇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을 믿을 자격을 얻고, 열심히 일하면서 천천히 믿음을 쌓아 올립니다. 때로는, 특히 처음 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거짓으로 믿음이 있는 척합니다. 마치 그 일을 잘 아는 것처럼 구는 겁니다. 어쩌면 거짓을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축복받은 것처럼 굴다 보면 정말로 축복을 받을 때가 있죠. 그것도 자신을 믿는 일의 일부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방법이 배관공보다 작가에게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 P368

작품의 계획, 주제, 속도, 방향을 알고 지킨다는 의미에서 신중하고 의식적인 통제는 계획 단계(글을 쓰기전)와 수첫 번째 초고 완성 이후)에서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이귀중합니다. 글을 실제로 쓰는 동안에는 의식적이고 지적인통제를 느슨하게 풀어두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글의 의도를 고집스럽게 계속 의식하다 보면 그것이 글을 쓰는 과정에 간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작가가 이야기의 방해꾼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말만큼 신비로운 일이 아닙니다. 고도의 기술이필요한 일, 즉 진정한 기술과 예술은 모두 경험을 통해, 매체에 대한 완벽한 숙지를 통해 대부분의 과정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완성됩니다. 매체가 조각가의 돌이든, 고수의 북이든, 무용수의 몸이든, 작가가 다루는 말의 소리와 의미와 문장의 리듬과 구문이든 모두 똑같죠. 무용수는 자신의 왼발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작가는 쉼표가 어디에 필요한지 압니다.  - P370

제가 마치 기쁜 소식을 알려주겠다는 듯이, 작가들에게별것 없으니 그냥 머리를 쓰려고 애쓰지 말고 우뇌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말을 뱉어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좋겠습니다. 저는 저의 예술과 기술, 경험, 열심히 생각하는과정, 정성들여 글을 쓰는 과정을 엄청나게 존중합니다. 이것들에 경외심을 품고 있어요. 저는 하원의원보다 쉼표 하나를 훨씬 더 존경합니다. 쉼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심리 치료나 자기표현 같은 좋은 주제를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글쓰기에 대해 하는 말일 리가 없습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는 법, 수줍음을 극복하는 법, 감정적인 정체를 돌파하는 법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 P371

무용수가 되고 싶다면 발을 사용하는 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쉼표를 찍을 장소를 알아내야 합니다. 그 밖의 모든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자, 제가 이야기를 하나 쓰고 싶어 한다고 칩시다(개인적으로 이건 제게 당연하다고 할 만한 일입니다. 저는 항상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니까요. 이야기를 쓰는 대신 하고 싶은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 먼저 저는 영어를 쓰는 법을 배우고, 이야기를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주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바로 이야기 쓰는 법을 배우는방법입니다. - P372

사치스러운 환경을 일의 전제 조건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작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이미 버지니아울프가 말했습니다.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과 자기만의 방. 이 둘 중 어느 것또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 자신의 몫입니다.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을 어떻게 손에넣을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생계를 해결하는 돈은 십중구글쓰기가 아니라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 나올 겁니다.
방이 더러워지는 것도 작가 자신에게 달린 일입니다. 방문을언제 얼마나 오래 닫을지 결정하는 사람도 작가 본인입니다.
써야 할 글이 있다면, 자신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어야합니다. 상냥한 배우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합니다.
넉넉한 지원금, 우연히 찾아온 진전,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있는 시간도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일이므로, 작가가 자신의 상황에 맞춰 글을 써야 합니다. - P375

저는 아무런 의문도 없이 열정을 하얗게 불태우며 이야기를 쓸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연습을 통해 실력을 갈고 닦았다면,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감을 잡고 있다면. 이야기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저는 기꺼이 그대로 돌아서서 원고를 몇 번이나 살펴볼 겁니다. 단어 하나하나, 아이디어 하나하나를 살피며 시험하고 또 시험할 겁니다. 이야기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까지 이야기 전체가 올바른방향으로 나아갈 때까지.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단계에서 다른 사람들, 즉 동료나전문 편집자의 비판적인 의견을 구하는 것이 가장 유용합니다. 글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작가를 응원하며 들려주는 비판적 - P376

인 의견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글을 발표하지 않은 사람도, 경험 많은 전문 작가도 자신감과 비판적인눈을 기르는 데 워크숍이 유용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믿을 만한 편집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진주입니다. 독자를 신뢰하는 법과 어떤 독자를 믿어야 하는지 알아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주 커다란 한 걸음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끝내 이걸음을 내딛지 못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곧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저는 이야기를 믿어야만 이야기의 방향을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다 쓴 다음에는 자신을 믿어야만제가 어디서 길을 벗어났는지, 모든 것을 어떻게 온전히 한방향으로 되돌릴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 P377

예술은 인간 공동체를 확립하고 확인하는 데 강력한 기능을 발휘합니다. 말로 하는 것이든 글로 쓴 것이든 이야기는온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의 위치를 더 많이 이해할수 있게 해주죠. 이런 쓰임새는 예술 작품에 처음부터 존재하며, 그것이 있어야 작품이 완전해집니다. 그러나 제한된 목표, 의식적인 목표, 객관적인 목표는 모두 그 완전성을 가리거나 흉하게 변형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의 재주와 경험이 충분한 것 같지 않아도(실제로 언제나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반드시 저의 재능을 믿어야 합니다. 따라서 제가 쓰는 이야기를 믿고, 그 쓰임새나 의미나아름다움이 제가 계획한 모든 것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P379

예를 들어, 『전쟁과 평화』를 읽어보자(아직 『전쟁과 평화』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왜 꾸물거리고 있는가?). 모든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이 작품에서가끔 톨스토이 백작의 목소리가 불쑥 치고 들어온다. 그는 역사에 대해, 위인에 대해, 러시아의 영혼에 대해, 그 밖의 여러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를 우리에게 일러준다. 강연으로 들을 때보다 이렇게 이야기에서 무의식적으로 흡수할 때, 그의 의견이 훨씬 더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
톨스토이는 자신감이 아주 대단한 작가였고, 그럴 자격도 있었다. 그의 작품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은 대부분 등장인물에 대한 그의 완전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들은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을 모두 해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열렬한 신념 때문에 오히려 그 신념을 작품에 구현하는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다소 잃어버린 듯하다. 모든 소설 중 가장 위대한이 작품에서 지루하고 설득력 없는 부분에서는 모두 이런 신뢰 부족이 드러난다. - P379

이야기는 이야기꾼과 청중, 작가와 독자 사이의 협업입니다. 픽션은 환상일 뿐만 아니라, 공모이기도 합니다.
독자가 없으면 이야기도 없습니다. 아무리 잘 쓴 작품도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으면 이야기로서 존재하지 못합니다. 작가 못지않게 독자도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작가는 이 사실을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아마 화가 나기 때문이겠죠.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대중적인 시각에서 통제와 동의의 문제로 보입니다. 작가는 독자의 흥미와 감정을 강제하고통제하고 조종하는 주인입니다. 이 가설을 좋아하는 작가가아주 많습니다. - P380

게으른 독자는 대가의 솜씨를 지닌 작가를 원합니다. 모든 일을 작가가 알아서 하고, 자기는 텔레비전을 보듯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걸 그냥 보기만 하겠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기꺼이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려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입니다. 표지의 선전 문구는그 책이 지닌 위압적이고 공격적인 힘을 강조할 때가 많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출 수 없다. 가슴이 덜컹한다. 머릿속을 태운다,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이게 뭐죠? 전기 충격 고문입니까? - P380

지금까지의 설명은 모두 접근 단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단계죠. 이제 어떤 독자(제 손녀에서부터 모든 후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 중에서 고르면 됩니다)를 염두에 둘 것인지 흐릿하게든 또렷하게든 알게 되었으니 저는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이 집필단계에서 청중을 의식하는 것은 때로 더할 나위 없이 치명적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어느 한 지점에서 막혀 자꾸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며 끝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어깨 너머에서 글을 들여다보며 "그 문장 첫머리를 ‘The‘로시작하는 게 좋은 방법입니까?"라는 말이나 해대는 상상 속 - P384

비평가들이 가득한 방은 안 됩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내면의대한 검열관 또는 외부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것(내 대리인이나 편집자가 무슨 말을 할까?)은 이야기의 앞길을 가로막는바위 사태와 같습니다. 집필단계에서 저는 작품이 스스로 길을 찾아낼 거라 믿고 작품을 도우며 전적으로 작품 그 자체에집중해야 합니다. 작품의 목표나 잠재적인 독자에 대해서는거의 또는 전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BAP그러나 세 번째 단계인 퇴고에 이르면 상황이 다시 반전됩니다.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읽을 것이라는 인식, 예상되는독자의 종류에 대한 인식이 몹시 중요해집니다. - P385

퇴고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명확성-강한 인상- 속도 - 힘 - 아름다움…… 모두 이 이야기를 머리와 마음으로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퇴고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걷어내, 독자가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쉼표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그냥 얼추 맞는 단어가아니라 딱 맞는 단어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조리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함의가 중요한 겁니다.
그 밖에도 이야기를 읽기 쉽게 만들어주고 살아나게 해주는모든 요소가 중요합니다. 퇴고할 때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과자신의 판단력이 잠재적인 독자의 영민한 머리에 맞춰 작동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배우자, 친구, 워크숍 동료, 교사, 편집자, 대리인 등주변의 구체적인 독자들도 믿어야 합니다.  - P385

글에 등장시키는 인물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내든 아니면 자신이 아는 사람의 면모를 빌려 오든, 픽션 작가는 이 인물이 일단 소설 속 인물이 되면 자기만의 생명을 얻는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한다. 때로는 이 인물이 작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작가조차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나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쓰는 작품 속 사람들은 내게 가까운 사람인 동시에신비로운 존재다. 친척이나 친구나 적과 비슷하다. 그들은 내머릿속에 살면서 내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창조했으나, 그들의 동기를 고민하고 그들의 운명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내 것과는 다른 자기만의 현실을얻는다. 그들이 그렇게 할수록 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점점더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그 인물들은 내 - P387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할 때와똑같이 그들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들을 이용하고 조종하려 들면 안 된다. 그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도 아니고메가폰도 아니다.
그러나 집필이란 특수한 상황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내가 한발 물러나, 내 인물들이 이야기에 딱 맞는 말과 행동을 할 것이라고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 이야기를 계획할 때와 퇴고할 때는 인물들과 어느 정도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싫어하는 인물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그들을 곁눈질로 비스듬히 바라보며, 다소 차갑게 그들의 동기를 조사하고, 그들의 말을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 그들이 나의 빌어먹을 자아를 대변하는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때까지. - P388

만약 내가 내 소설 속 인물들을 무엇보다도 나의 자아 이미지, 자기애 또는 자기혐오, 나의 욕구, 의견 등을 충족시키는 데 이용한다면, 그들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없고진실도 말할 수 없다. 이야기 자체는 욕구와 의견을 드러내보여주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들은 인물이 아니라 꼭두각시가 되어버릴 것이다.
작가로서 나는 내가 바로 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의식해야 한다. 나는 곧 그들이고,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  - P388

자기 인식에는 맑은 머리가 필요하다. 이런 또렷함은 강인한 정신으로 얻을 수 있고, 강인한 정신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얻을 수 있다. 어쨌든 노력을 기울여 얻어야 한다. 작가는이야기를 향해 투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아는 불투명하다. 이야기의 공간을 채워 정직함을 차단하고,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말을 날조한다.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픽션도 창조자가 창조물과 자신의 차이를 사랑하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그 공간이 없다면일관된 진실성도,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존중도 있을 수 없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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