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1882-1941

열세 살이 되던 1895년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처음신경증 증세를 보인 후 수차례의 정신 질환과 자살 기도를 경험한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적인모더니스트로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일궈놓은 선구적 페미니스트, 1907년 블룸즈버리 그룹을 형성하여 화가 덩컨그랜트, 경제학자 J. M. 케인스, 소설가 E. M. 포스터, 후에 남편이 된 레너드 울프 등과 문화와 사회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모임을 가지면서 울프는 세계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지성인으로 떠오른다. 
1915년에 처녀작 『출항』간행 이후 「제이콥의 방』(1922) 『댈러웨이 부인』(1925)「등대로』(1927) 『세월』(1937) 등의 소설과 페미니스트에세이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1929)을 출간했으며 많은 평론과 에세이, 작가의 내면 풍경을 솔직하게풀어놓은 여러 권의 일기를 남겼다.
울프는 그동안 남성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온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된 질서를 뛰어넘어 단순히 여성 해방의 차원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했다. 아울러 이성적 언어 이전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만큼이나 삶의 심연에 천착해 깊고 다양한 문학 세계를 이루었다. - P-1

왜 지금 울프인가? 1941년 3월 28일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넣고 우즈 강에 투신 자살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을 이역만리 한국에서 왜 지금 내놓는가?
20세기 초라면 울프에 대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위상 정립 작업이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한 1980년대라면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활발하게 진행된 페미니즘 논의와 연관시켜 페미니스트로서의 위치 설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다. 울프는 누가 뭐래도 페미니스트이다. 울프의 페미니즘은 비록 예술이라는 포장지에 곱게 싸여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격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절대로 울프 문학의 진수도 아니며, 전부는 더더욱 아니다.
그녀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주의 문학이다. 사랑을 설파한 문학, 이타주의利他主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 고전 중의 고전이 그녀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같은 것들은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잠깐씩 들른 간이역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인본주의라는 정거장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모더니즘의 기수라는 훤칠한 한 그루의 나무로, 또는 페미니즘의 대모라는 또 한 그루의 잘생긴 나무로 우리의 관심을 지나치게 차지하여 우리가 크고도 울창한 숲과 같은 이 작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제는 바야흐로 이 깊은 숲을 조망할 때가 온 것으로 믿는다. 지금 우리가 울프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집이 울프를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읽는 이의정서를 순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울프 전집 간행위원회 - P-1

8월 4일, 월요일

공책을 하나 사서 먼저 크리스티나 로세티에 대한 인상을, 다음으로 바이런에 대한 인상을 쓰기 전에 우선 여기 몇 자 적어두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 이유는 르콩트 드릴의 책을 많이 사서 지금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타고난 시인이라는 큰 자질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신에 대해 소송을 벌인다면 크리스티나야말로 내가 맨 먼저 불러낼 증인이 될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글은 우울하다. 우선 크리스티나는 스스로를 사랑에 굶주리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삶에 대해서도 굶주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시에 대해서도 크리스티나는 종교가 자기에게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굶주리게 했다. 크리스티나 - P9

에게는 두 사람의 좋은 구혼자가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나름대로 특이한 데가 있었다.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특정한 색깔의 크리스천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색깔을 한 번에 몇 달밖에 유지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첫 번째 구혼자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 안 좋았던 것은 두 번째 콜린스의 경우다. 콜린스는 매우 유쾌한 학자였고, 비세속적인 은둔자였으며, 크리스티나를 한결같이 숭배했으나 콜린스를 교회의 우리 안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크리스티나는 콜린스가 사는 곳을 애정 어린 마음만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크리스티나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크리스티나의 시 또한 거세되고 말았다. 크리스티나는 성경의 「시편」을 시의 모양으로 바꾼다든지, 자신의 모든 시를 기독교 교리에 맞게 쓰려고 하였다. 그 결과 스스로의 뛰어난 독창력을 엄격한 금욕으로 굶겨볼품없게 말려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자유만 주어졌더라면 크리스티나는 브라우닝 부인보다 훨씬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아주 쉽게 글을 썼다. 참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생각을 어린애처럼 쓰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재능은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했지만 크리스티나는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사색도 했고, 상상력도 지니고있었다. 세속적으로 추측컨대 크리스티나는 점잖지 못한 것이나 - P6

기지가 뛰어난 것이나 모두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희생에 대한 대가로 크리스티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공포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도 크리스티나의 시를 다시 한 번 더 읽어본 것에 불과하며,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시에만 눈길이 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없다.


8월 7일, 수요일

아샴에서 쓴 일기에는 자질구레한 것들, 꽃이랑 구름, 딱정벌레나 계란값 등에 대한 꼼꼼한 관찰로 가득 차 있다. 혼자 있으니 달리 기록할 사건도 없다 큰 사건이래야 고작 애벌레 한 마리를 으깨 죽였다는 따위거나, 우리들이 흥분한 사건이란 어젯밤 루이스‘에서 가정부들이 돌아왔다는 것 정도다. 가정부들은 레너드에게는 전쟁 관계의 책들, 그리고 나에게는 영국 평론』을 가져다주었는데, 거기에는 국제연맹에 대한 브레일스퍼드의 글이랑『환희」에 대한 캐서린 맨스필드의 글이 들어 있었다. 나는 환희』를 읽고 "캐서린도 이젠 끝났군!" 하고 소리치며 내동댕이쳤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캐서린에 대해 여자로서, 또 작가로서 얼마만큼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캐서린의 지력은 아주 얕은 두께의 흙으로서, 완전 불모의 바위를 겨우 1.2인치 - P11

의 두께로 덮어 싼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환희」는 비교적 긴 작품이므로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갈 기회가 있었을 터이다. 대신 캐서린은 피상적인 재치를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구상 전체가 빈약하고 경박하며, 설사 불완전하더라도 값있는 정신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문장도 서툴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캐서린이 둔감하고 냉혹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시 읽기는 하겠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계속 글을 써서 스스로와 머리를 만족시킬 것이다. 그들이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글 한 편으로 캐서린의 사람됨에 대해 이처럼 많은 것을 읽어낸다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까?
어찌 되었든 읽던 바이런을 계속해 읽게 되어 매우 기쁘다. 적어도 바이런에게는 남자로서의 매력이 있다. 사실 바이런이 여자들에게 미쳤을 영향을 상상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더 재미가 생겼다. 특히 어리석거나 배우지 못한 여자들은 바이런에게 머리를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많은 여자들이 바이런을 고쳐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거틀러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하기나 하려는 듯, 늘 이 말을 했지만) 누군가의 전기를 철저히 읽고 거기에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어 붙여 그 사람의 사람됨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참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쿠퍼나 바이런이나 다른 누구의 이름이든 간에 전혀 뜻하지도 않던 책의 페이지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은 갑자기 멀어져죽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B의 시가 말할 수 없이 서툴다는 사실에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무어가 거의 황홀경 - P12

에 빠져 인용하는 부분이 그렇다. 왜 그들은 B[바이런]의 「앨범」류의 시를 시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시는 L. E. L.이나 엘라 휠러 콕스보다 나을 것도 없다. 사람들은 B가 할 수있고, 또 스스로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풍자를 하지 않도록 설득시키고 말았다. B는 풍자(호라티우스의 패러디)가 든 가방과「차일드 헤럴드의 순례」를 가지고 동양에서 돌아왔다. 사람들은 B에게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야말로 지금까지 씌어진 것 중 최고의 시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B는 젊었을 때는 자신의 시에 대해 확신을 가진 적이 없었다. B와 같은 독선적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시적 자질이 없었다는 증거다. 워즈워스나 키츠 같은 시인들은 다른 것을 믿듯이 스스로의 재능도 믿었다. B의 성품은 종종 루퍼트 브룩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브룩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바이런은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편지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바이런은 또한 여러 면에서 뛰어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아무도 바이런이 잘난 척하는 것을 조롱해서 못하게 한 적이 없으므로, 좀 지나치게 호러스 콜처럼 되고 말았다. 바이런을 조롱할 수 있는것은 여자뿐이었는데, 여자들은 오히려 그를 숭배하고 말았다.
바이런의 부인에 대한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그 부인은 비웃는 대신 못마땅한 표정만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이런은 ‘바이런적‘이 되고 말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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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산사람이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습니다.

살아 세운 허술한 집보다
단정한 햇살이 결 고운
식솔 거느리고 먼저 앉았는데

먼 산 가차운 산
무더기째 가슴을 포개고 앉은
무심한 산만큼도 벗하고 싶지 않아
우리보다 무덤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승사람일 적
우리만큼 미련퉁이였을
그가요 살아 세운 허술한
집에서 여즉
그와 삶을 나누고 있는 우리에게요
점심밥만큼 서늘한 설움이
장한 바람에 키를 낮추는데 - P15

낫을 겨누어 베허버리는 건
누워 앉은 무덤입니다. - P16

신원경


산소에 갈 때마다 저 둥근 무덤 속에 친밀한 육체가들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몸이 흙을 껴안고, 시간과 함께 서서히 허물어져 마침내 형체를 잃으며 우리를 떠난다는 것이. 그럼에도 우리는 무덤 속에 사랑하는 이가 잠들어 있기를 바란다. 그가 유독 좋아했던 사과 한 알을 들고 함께 나눠 마실 막걸리를 뿌린 뒤, 잠든 조카가 무사히 모든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며 두 번씩 절을 올린다. 돗자리 위에서 우리는 슬픔과는 영무관한 이야기를 한다. 작년의 농담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자리를 턴다.
지난해에 가지치기했던 나무는 이전과 동일해져서 우리는 꼭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되돌아온 것만 같다. 산소에 다녀오면 큰아버지는 한동안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산 자의 몸에 붙어온 영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그 얼굴들을보고 온 날이면 무덤보다도 할 말 없는 사이가 친밀하지 않은 사이는 아니라고 이해한다. - P17

폐병쟁이 내 사내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 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 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 P18

유계영


모든 존재의 고통이 ‘나‘의 고통 위로 쓰러지는 일.
이것이 시인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인간의 살해 역사가 ‘나‘의 전쟁이 아닐 리 없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우리가 이미 죽은 자들의 고통에 휘말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허수경의 첫 시집은 먼데서 시작하는 듯 보이지만 시의 현장은 먼 데가 아니다. 시인은 죽은 존재들을 다시 낳고, 그들을 위해 쓸쓸한 밥상을 차리고, 사랑을 나누며, 그들의 고통과 회복에 현재 시제로 가담한다. 언제나 과거의 말단에 서 있는것. 시인의 시간만 그러하진 않을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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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내가 이 집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창밖의 초록을 그토록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우리가 이 집 말고 다른 집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날 날씨가 그렇게 화창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그날 공인중개사는 ‘이 집을 마음에 들어한 다른 부부가 오늘 오후 가계약 여부를 알려주기로 했다‘며 두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곤 ‘여기 집주인이 건물도 많고 신용이 확실한 분이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공인중개사 말이니까. 말 그대로국가가 인증한 사람이 보증하는 곳이니까 괜찮으리라 믿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지 않았다면 수호는 지금 내 옆에 있을 텐데, 우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한 번도입 밖에 내본 적은 없지만 지수는 수호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 집이 좋다고 한 사람도, 이 집에 살자고 한 사람도 자기였기 때문이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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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신을 단속하는 일이라면 조금 자신 있었다. 나이들어도 세상 소식에 귀를 열어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주변에 크게 폐 끼치는 존재는 되지 않으리라 과신했다.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을 되는 거였다.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존재가되는 것. 긴 시간이 지나 기태가 진심으로 놀란 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태는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 ‘나‘라는 점만 이동하리라 착각했었다. 점과 더불어 좌표도 같이 움직이는데다 다른 그래프와 충돌하며 곡선과 직선이 찌그러지고 휠 거라 예상 못한 까닭이었다.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 P175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희주도 그랬을까? 요즘 내가 느끼는 걸 희주도 체감할까?‘
부하 직원들에게 위화감을 느끼거나 몸이 쇠해질 때마다 기태는 희주 생각이 났다. 이제 와 뭔가 의지하고 싶다거나 자기연민이 들어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쩐지 희주라면 이런 자신을판단하거나 혐오하기 이전에 이해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연애 시절 대화가 가장 잘 통했던 사람도 희주였고 살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도 희주였다. 그런데 우리는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희주의 안부가 궁금할 때 기태는 종종 차대표의 SNS 계정에 들어갔다. 게시물을 잘 올리지 않는희주에 비해 차대표는 자기 매체를 부지런히 운영하고 활용했다. 가끔은 차대표의 계정에서 희주의 소식을 더 자주 확인할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단둘일 때보다 여럿이 함께일 때가 많았지만 기태는 둘 사이에 오가는 묘한 기운이랄까 성적 긴장이 신경쓰였다. 특히 희주 쪽에서 좀더 적극적이었는데, 아는사람은 알아차릴 수 있는 암시와 암호를 볼 때 그랬다.  - P176

나를 향해 활짝 열린 로버트의 동공을 보자 내 눈동자도 거기호응하듯 크게 벌어졌다. 실은 며칠 전 나는 화면 속 로버트의 얼굴을 보고 작게 동요했다. ‘저 남자, 날 감상하고 있어‘란 자각이 들어서였다. 로버트는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편에 속했는데도 그런 감정이 전해졌다. 동시에 ‘오랜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담긴 호감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긴장을 마주하는 것은. 그런데 그게 전혀 느끼하거나부담스럽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런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헌수와 헤어진 뒤 누군가와 정신적으로도또 육체적으로도 진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인간적인 호감인지, 성적 주체가 되는 기쁨인지, 성적 대상이 되는 설렘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 모든 게 섞인 총체적인 무엇일지 몰랐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사실 대상과무관하게 외국어 수업에는 어느 정도 성애적인 측면이 있었 - P233

다. 일말의 더듬거림과 망설임, 지연과 기쁨, 찰나의 교감, 수치심과 답답함, 긴장과 해소,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 실수와용서 등이 그랬다. 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응. 나 잘 지냈어. 당신은?
-나도.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은 뒤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더 이어나갔다. 이를테면 "그런데 한국어로 ‘안녕‘은 뭐라 그래?" 같은 말과 몇몇 감상을. 얼마 뒤 로버트는 그 큰 눈으로 화면 속 슬라이드 교재를 훑다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 P234

별생각 없이 대꾸해놓고 방금 전 문장이 후 어떤 유혹처힘 들리면 어쩌나 걱정했다. 내가 로버트의 시선을 의식해 생긴 긴장이었다. 에코스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와 유대가 쌓이는 경우는 흔했다. 나 또한 샌드라나 로즈와 겪은 일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로버트로 바뀌자 그 공기가 좀 달라졌다. 어쩌면 온갖 풍부한 감정이 담긴 인간의 눈을 너무 오랜만에봐서 그런지 몰랐다. 뇌를 다쳐 일상적인 의사 표현이 어려웠던 내 어머니도 얼마간 나와 눈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그 안에는 어떤 미안함이나 고마움보다 의심과 비난이 자주아른거렸다. 음식. 그래. 엄마는 자기 음식을 제일 좋아했지. 다른 사람 칭찬은 잘 안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는 누굴 만나든 자신의 지위가 높아지는 데 가장 큰 관심을 쏟았다. 더불어 그걸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배역을 떠넘기는 데 능숙했다. 심지어 그게 딸이라 해도, 언젠가 헌수와의 식사 자리에서도 엄마는 거의 재난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자기 딴에는 조실부모한 사람을 위로하려 한 말이었겠지만, 늘 그렇듯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거였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두 눈으로 내게 가장 많이 보낸 메시지는 ‘미안해‘도 ‘고마워‘도 아닌 ‘두려워......‘였지. - P235

일년 뒤 어머니마저 폐암 진단을 받는 바람에 오 년간 또 어머니를 간호해야 했다. 대학 시절을 포함해 거의 십 년가량을가족 간호로 보냈지만, 대학 졸업 즈음 어머니가 떠나고 졸지에 고아가 돼 병역을 면제받았다. 언젠가 침대에서 헌수는 "그십년 중 이 년 정도는 엄마가 나 빼준 거라 생각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헌수가 그런 농담을 하기까지 혼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현수와 헤어지고, 육 인용 병실 보호자용 침대에 혼자덩그러니 누워 있을 때면 더러 헌수와 함께 <러브 허츠>를 듣던 아침 풍경이 떠오르곤 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모 이름을 보고 불길한 표정을 짓던 내 모습과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눈으로 지켜보던 현수 얼굴도. 그때만 해도 그게 우리 관계의파열음이 될 줄 몰랐는데. 이제 와 헌수 말을 빌리자면, 그런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사람들처럼. - P250

병실에서 혹은 쇠락한 고향 골목에서 홀로 어둠과 마주하며나는 종종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미 많은 걸 잃었다 여겼는데 여전히 잃을 게 남은 삶 속에서, 자꾸자꾸 잃는 과정에서,
물수건으로 엄마 뒤를 닦고 엄마 눈을 본 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었던 때,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때, 그러지 못했으나 거의 그럴 뻔했던 때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가족 간병을 경험한 헌수는 어쩌면 그게 뭔지 너무 잘 알아서, 그걸 다시 겪을엄두가 안 나서 나를 떠난 걸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내 쪽에서 먼저 정중하게 도망친 거였지. 물론 칼같은 이별은 아니었고 그뒤 몇 번의 재회, 몇 번의 잠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먼저 안녕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우리가 이제 다시는못 볼 사이가 됐다는 걸 알았다.  - P251

ㅡ.....
ㅡ나는 늘 부러웠거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ㅡ......
현수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땐 미처 몰랐지만 아마 헌수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해선 안 되는말, 할 수 없는 말 등이 뒤엉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건 ‘좋은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일지몰랐다. 마치 내가 나의 삶에 계속 놀라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 삶도 잘 판단 않게 된 것처럼. 당연한 얘기지만 긴 시간 엄마 옆에 머물며 내가 가장 그리워한 사람은 헌수였다. 나와 결혼할 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고독을 겪은 사람이라 그랬다. 헌수와 헤어지고 이 년 뒤 엄마 병실에서 쪽잠을자는데 만취한 헌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보호자용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들고 슬며시 병원 복도로 나갔다. 그러곤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동화에 집중했다. 헌수는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 엉뚱하게도 우리가 <러브 허츠>를 들은 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만약 지금 너를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이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 - P252

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 그러곤 그런 스스로가 창피했는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날, 통화가 끝난 뒤에도 병실 복도에 한참 서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그런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지금은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 P253

나는 로버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실력도 안 될뿐더러 지금 내 마음을 어색하게 번역했을 때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누락과 손실이, 하찮은 세부하나하나가 내 감정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으로 느껴질것 같아서였다. 기쁨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슬픔은 달랐다. 고통만큼은 내 슬픔의 언어, 감정의 뿌리, 모국어로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모국어로 말한들 과연 그게 온전히 전해질까?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고작 이렇게 말했다. - P253

로버트의 순수하게 활짝 벌어진 동공을 보자 내가 생각보다 이 이별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 시절 누군가와 정기적인 대화를 나눴다 해서, 긴장과 웃음, 안부를 나눴다 해서 헤어짐이 이렇게 서운할 줄은 몰랐다. 이상하지. 직장에서는 그 모든 게 지겨웠는데. 사회적 감각의 스위치를 꺼두고만 싶었는데, 고향에서 엄마와 나 오직 두 사람만의 관계로세계가 쪼그라들자 그 많은 언어가 그리워졌다. 실수하고, 변명하고, 거짓말하고, 반문하고, 더러 표 안 나게 유혹하고, 티나게 매혹하고, 긍정하고, 의심하고, 호응하는 사회적 몸짓이. 그래서 그 일부를 한동안 내준 로버트가 필요 이상으로 소중하고 친밀하게 다가왔는지 몰랐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번쯤 캐나다에 직접 가보고 싶을 정도로.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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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네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리에는 노란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시우에게 좋은 일이잖아. 좀더 나은 일. 그런데도 시우 어머니가 ‘새집으로 계속 와주실 수 있느냐‘ 물었을 때 왜 흔쾌히 대답 못한 걸까? 지금보다 십오 분 더 멀어져서? 정말 그것 때문에? 순간 손에 쥔휴대전화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올 때 편의점에서 맥주 좀 사다줘.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 정류장을 한 - P130

참지나 있었다. 내년 봄, 남편과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여기서 얼마나 더 멀어지는 걸까? 옮기시는 곳이 어디든 4월까지는 과외를 하겠다‘고 말해야 했던 게 아닐까? 내가 경제적으로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원 더 올려 받을걸…… 누가 누굴 걱정한 거지? 나는 발길을 돌려 정류장으로 돌아갈지, 이대로 그냥 좀더 걸을지 고민했다. - P131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그저 약간의 선의와 교양으로 가끔 어딘가 기부하고, 진보 성향의 잡지를 구독하는 정도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라 착각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자 한동안 피하고 싶었던 무겁고 부담스러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게 나라면, 이 시장에서 이익을 본 게 나라면, 지금도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대놓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는못해도 적어도 깊은 안도감 정도는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요. - P141

다시 어두워진 현관 한쪽에서 종이상자를 가만 내려다봤다. 집 우후, 집 주宙.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큰 집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떤 존재들은 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못할까. 실은 돌아왔는데, 몇 번 돌아왔었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서, 우리가 깜빡하고 닫아놓은 문만 한참 바라보다 떠난건 아닐까? ......사실 남편과 타임머신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남편이 우리만 아는 그때,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어쩌면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왠지 그게 순도 높은 진심 같아, 앞으로도 같은 답을 할 것 같아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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