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네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리에는 노란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시우에게 좋은 일이잖아. 좀더 나은 일. 그런데도 시우 어머니가 ‘새집으로 계속 와주실 수 있느냐‘ 물었을 때 왜 흔쾌히 대답 못한 걸까? 지금보다 십오 분 더 멀어져서? 정말 그것 때문에? 순간 손에 쥔휴대전화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올 때 편의점에서 맥주 좀 사다줘.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 정류장을 한 - P130
참지나 있었다. 내년 봄, 남편과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여기서 얼마나 더 멀어지는 걸까? 옮기시는 곳이 어디든 4월까지는 과외를 하겠다‘고 말해야 했던 게 아닐까? 내가 경제적으로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원 더 올려 받을걸…… 누가 누굴 걱정한 거지? 나는 발길을 돌려 정류장으로 돌아갈지, 이대로 그냥 좀더 걸을지 고민했다. - P131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그저 약간의 선의와 교양으로 가끔 어딘가 기부하고, 진보 성향의 잡지를 구독하는 정도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라 착각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자 한동안 피하고 싶었던 무겁고 부담스러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게 나라면, 이 시장에서 이익을 본 게 나라면, 지금도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대놓고 기뻐하거나 자랑하지는못해도 적어도 깊은 안도감 정도는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요. - P141
다시 어두워진 현관 한쪽에서 종이상자를 가만 내려다봤다. 집 우후, 집 주宙.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큰 집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떤 존재들은 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못할까. 실은 돌아왔는데, 몇 번 돌아왔었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서, 우리가 깜빡하고 닫아놓은 문만 한참 바라보다 떠난건 아닐까? ......사실 남편과 타임머신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남편이 우리만 아는 그때,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어쩌면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왠지 그게 순도 높은 진심 같아, 앞으로도 같은 답을 할 것 같아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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