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이 학교가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시실 갈 몰랐다.
단지 가톨리 신자들에게 평판이 좋다는 이유로 생트마리를 골랐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시몬은 프랑스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학뒤를 소지한 교사 마들렌 다니엘루(Marcleleine Danielou)를 만났다. 마들렌은교육이 해방의 열쇠라고 믿었다. 남편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샤를 다니엘루도 생각이 같았다. 딸들이 다 컸고 남편도 집을 자주 비우다 보니 시간이 많았던 프랑수아즈는 독서와 공부에 매달리면서 시몬의 공부를 따라갔다. 머리가 좋았던 프랑수아즈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니에루 선생의 커리큘럼에 감탄하게 되었다.
시몬은 어머니의 관심이 기쁘면서도 씁쓸했다. 어머니가 친구 같은 모녀 관계를 원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외할머니와 결코 누려보지 못했던 친밀함을 딸에게 바랐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보다는 무리하게 접근을 시도했기에 딸은더 움츠러들고 원망이 생겼다. 엘렌은 언니가 열여덟 살 때도 어머니가 언니 앞으로 오는 편지를 다 뜯어서 읽어보고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는 편지는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잖아도 깨알 같던 시몬의 손글씨는 마치 어머니의 염탐하는 눈을 피하려는 듯 점점 더 작아졌다.
- P77

확실히 나는 개인주의적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적이면 타인을 사심 없이 사람하고 헌신할 수 없는 걸까? 나의 어떤 부분은 내어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내가 지키고 고양해야 하는 것 같다. 후자의부분은 그 자체로 타당하고 타인의 가치를 보증한다.)시몬은 열여덟 살에 "공허하기만 한 철학 토론에 염증을 느끼고머리로 아는 것과 실생활에서 느끼는 것의 격차를 이미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학이 이 격차를 메워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삶을 재발견하는 작가가 좋다.  - P81

"처음부터 남자들은 나의 적이 아니라 동료였다. 나는 그들을 시기하기는커녕 내 위치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이미 일종의 특권이라고 느꼈다. "12) 보부아르는 나중에가서 자신이 토큰 여성 이었다고 인정했지만 이 토크니즘이 문제라고 인식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중 일이다. 학생 시절에는 남학생들이보부아르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편한 친구로 지내기도 쉬웠다. 그 이유는 프랑스 교육 시스템이 남녀를 똑같이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은 정원 외 인원‘으로 선발되었고 똑같은 일자리를 두고 남자들과 경쟁할 일이 없었다. (여성은 교사가 되더라도 여학교에만 갈 수 있었다. 프랑스 공교육은 여자아이들에게 열려 있었지만 남자 교사에게 여자아이들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 P98

토크 여성(Toker Woman) 남성 지배적인 조직에서 성차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소수로 고용한 여성, 혹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여성을 가리키는다.

토크(Tokenitem) 미국 사회학자 로자베스 켄터(Rosabeth Kanter)가 제시한 개념,
성, 인종, 종교, 민족 등 사회적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소수 집단 내 상징적 인물을 조직에 포함시키거나 평등하게 처우하는 관행을 가리권다.
- P98


자자는 1929년 11월 25일에 죽었다. 그 후 보부아르는 이 일의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 거의 30년을 기다려야 했다. 보부아르는 절망을느끼며 슬픔으로 추락했다. 자자와 나눴던 대화, 메를로퐁티의 편지가 말도 안 되게 느껴졌고 분노하다 못해 경악했다. 그 둘은 자기네들의 고통을 ‘영적으로 승화하고 진짜 원흉을 응징하기보다는 자기네들의 덕을 갈고 닦으려고 했다. 적절하게 산다는 것은 끔찍하게부당했다. 그들은 잘못이 없었다. 세상이 잘못했다. 그리고 하느님은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P110

보부아르는 삶이 다시 즐거워졌다. 친구가 많이 생기기도 했지만특히 마회, 메를로퐁티, 자자와 지자의 사망은 다섯 달 후에나 일어날 일이었다. - 함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기를원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비록 자자는 그 모습을 "도덕 관념 없는 숙녀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재미가 있었다. 엘렌이 사르트르를 만나러 나간 날, 보부아르는 행복에 취해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 안에 비축된 풍요로운 것들이 반드시 흔적을 남길 거라는 확신, 내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게 될 거라는 확신, 나의 삶이 다른 많은 이들이 목을 축이는 우물이 될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든다. 소명에 대한 확신이다.  - P115

사르트르는 프랑스에서 성공한 남성 작가들의 이름을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테몸에는 프랑스의 철학적 · 문학적 후손을 기념하며 나라의대문호를 찬미하는 묘비들이 가득했다. 보부아르에게 문학으로 기억되는 여성들의 이름은 별로 없었고 철학자로 기억되는 여성은 더 적었다. 앞서간 여성들은 전통 가치를 거부한 대가를 비싸게 치렀고 때때로 자유를 얻기 위해 행복을 희생했다. 보부아르는 더 나은 것을원했다. 왜 사랑을 희생해야만 자유를 얻는가? 혹은 왜 자유를 희생해서 사랑을 얻는가?
- P122

반면에 천재인 여성은 너무 화려하게 빛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100년에도 프랑스 교육 체계는 교수자격시험에서 남성보다 뛰어난 여성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신중을 기했다. 교수자격시험 결과는운동 경기 순위처럼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부터 차례대로 이름이 나오는 식이었다. 그래서 이처럼 공식적이고 영향력 높은 시험에서 여학생보다 하위 점수를 기록한 남학생들은 비록교수 자리를 못 차지할 위험은 없었지만 창피해했다. (교육부는 이 굴욕을 덜어주려고 1891년부터 남학생 순위와 여학생 순위를 따로 발표했다.
그러다가 1924년부터는 다시 남녀 합산 순위제를 도입했다.)보부아르의 경험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그로부터 20년 전 사르트르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사르트르 어머니가 아들을 시댁에 뺏길까 봐황급히 파리를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에 대한 친모의 권리가 사망한 친부의 가족들 권리만도 못했다. 시몬이 공부하던 때만 해도 프랑스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었고 자기 명의의 은행 계좌조차 만들 수 없었다. 시몬이 교수자격시험을 치르던 그해, 프랑스에서 대학에 다니는 여성은 전체 대학생의 24퍼센트였다. (그래도이전 세대인 1890년에는 1.7퍼센트로 전국에 288명 수준이었으니 폭발적으로 증가한 편이다.) 하지만 여성은 투표도 못하고 은행 거래도 못하는시대에 게다가 자기가 낳은 자식에 대한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무슨 권리를 일 순위로 누렸겠는가?
- P127

보부아르는 생애 후기에 사르트르의 초연함이 때때로 존경스러웠다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위대한 작가는 감정에 사로잡히기보다 감정을 포착해야 하므로 냉정함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또 어떨 때는 말이 "현실을 포착하기도 전에 죽여버린다."
고 느꼈다. 보부아르는 현실이 죽기를 원치 않았다. 현실 속에서 즐기고 싶었다. 방부 처리해서 후세에 남기기보다는 자기에게 다가오는그윽한 풍미를 맛보고 싶었다. 두 사람은 문학의 중요성에 동의했지만 문학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두고는 생각이 달랐다.
사르트르는 말에는 힘이 있지만 결국 문학은 속임수와 위장이라고보았다. 보부아르는 문학이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버지니아울프를 읽으면서 경외감을 느꼈다. 문학과 삶의 간격을 좁히려 했던여성이 바로 거기 있었다. 보부아르는 세상을 알고 싶었고 진정으로세상을 드러내고 싶었다.
보부아르는 두 번째 회고록 《생의 한창때 에서 사르트르가 철학적인 면에서 경솔하고 부정확해 보일 때도 많았다고 썼다. 하지만 자신의 정확하고 치밀한 사유보다 그의 객기가 더 생산적인 사상을 만든다고 보았다.39) 이 경우에서든 다른 여러 경우에서든,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자기에게 없는 장점들을 바탕으로 삼아 자신감을 키웠다.
- P151

이 여행에서는 새로운 장소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전에는 본적없는 불평등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시몬 베유의 가시 돋친 말과 달리, 보부아르도 배고픔이 뭔지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기는 그래도 특권층이라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다. 남부 지방에내려가 만난 사촌은 그들에게 공장을 구경시켜주었다. 작업장은 더럽고 금속 분진이 자욱했다. 보부아르도 마르크스를 읽었고 노동과 가치의 관계에 눈뜨고 있었지만 파리에서 책으로 본 것과 공장 바닥에서 느낀 것은 천지 차이였다. 노동자들이 하루 몇 시간이나 근무하는지 물어보았고 죽도록 단조로운 일을 8시간 3교대제로 한다는 말에눈시울을 붉혔다.  - P158

‘자기 기만‘은 20세기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예로 든 웨이터‘는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이 무엇이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왜 보부아르는 이 개념을
‘우리‘가 발견했다고 말하는가? 1930년대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서로에게 무엇을 이바지했는지 명명백백하게 가리기란 매우 어렵다.
엘렌의 남편 리오넬 드 룰레(Lionel de Roulet)는 두 사람의 관계를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 모든 것을 공유하는 방식을 통하여 서로를 너무 밀접하게 비춘 나머지 둘을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 없게 됐다. "20)이 단계에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정치적 인식에 눈떴다. 비록원숙기의 보부아르는 이때의 그들을 돌아보며 "정신적 자부심이 넘쳤고" "정치적으로는 장님이었다."고 했지만 말이다.1) 오드리와 다른 친구들을 통해 트로츠키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을 만났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자신들의 혁명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들의투쟁은 철학적이었다. 그들은 이성적이고 육체적인 자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했다. 그들은 자유를 이해하기 원했고 사르트르는 신체를 - 신체의 욕구와 습관을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생각했다. 비록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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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보부아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당한 사람이었다.
보부아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보부아르가 여성성으로부터 일탈한것을 강조하면서 그녀가 여성으로서 ‘실패작‘ 이라고 몰아붙였다. 후은 독창성이 없고 죄다 사르트르에게서 빌려 왔으므로 사상가로서실패했다고들 했다. 또는 자신의 도덕적 이상에서 벗어났으므로 인간으로서 실패했다고들 했다. 그래서 보부아르의 사상은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곧바로 묵살되기 일쑤였다.
원칙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 당연히 인신 공격의 오류에 발목을잡힐 수 있다. 상대의 성격이나 동기를 공격함으로써 관심을 당면한주제에서 다른 데로 돌리는 전략 말이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단순히성격 문제나 불순한 동기 때문에 비난받은 게 아니다. 그녀는 자연에역행했다고, ‘여성으로서 실패했다고 비난받았다. 최근의 심리학 연구는 이른바 ‘독자적(agentic)‘ 위치, 다시 말해 능력, 신망, 자기 주장을 포함하는 행위 주체성을 보여주는 지위를 획득한 여성들이 곧잘
"사회적 지배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여성이 전통적으로 남성이 차지하던 고위직을 노리거나 성취함으로써 젠더 위계를 깨뜨리면 거만하다거나 공격적이라는 평판이 나돌고 젠더 위계를유지하기 위해 — 때로는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 그런 여성을 끌어내리거나 깎아내리기 일쑤다. 47) - P31

보부아르의 철학은 학생 시절 일기에서부터 마지막 이론적 저작년) (1970년)에 이르기까지- 자기 되기의 두 측면을 구분한다. 하나는 ‘안에서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보는 관점‘이다. 보부아르가 안에서 보았던 관점에 다가가려면 생애의 어떤 부분은 순전히 회고록에 의지해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고록의 내용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으므로 나는 새로운 자료가 내용의 누락이나 모순을 입증하는 대목은 최대한 강조해서 다루었다.
또한 나는 자기 되기‘에 대한 보부아르의 이해가 나이를 먹으면서변했다는 데 주목했다. 알다시피 자기 자신을 보는 눈도 세월에 따라변한다. 심리학 연구들은 자기 개념이 달라지며 기억도 그에 맞추어선별된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우리는 또한 사람은자기 말을 듣는 상대에 따라서 자기를 제시하는 방식을 여러모로 달리한다는 것도 안다.  - P32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거니와, 전기 작가의 연구 대상이 여성일 때는 더 어려워진다. 페미니스트 캐럴린 하일브런(CarolynFIeilbrun)이 지적했듯이 "여성의 진기는 기껏 집필이 되더라도 용인될 만한 논의, 무엇을 삭제해도 되겠는가에 대한 합의라는 제약 안에서 쓰인다. 5 보부아르의 삶은 관습에 저항했다.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고려나 그녀가 쓴 글의 적법성에 대한 고려는 일단 별개의 문제로뇌두더라도, 보부아르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솔직하게 털어놓았더라면 더 큰 추문이 따랐을 것이고 독자들을 더 멀어지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부아르는 자신의 철학과 사적인 관계에서 많은 부분을 누락했다. 안에서 본 관점‘을 많이 삭제한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많았고, 우리는 그 삶의 맥락에서 그 이유가 불거질 때마다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보부아르는 철학자였으므로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질문이 있다. 왜 전기가 보부아르라는 인물의 생애와 작업에서중요한가?
- P33

이 책의 집필은 정말로 겁나는 일이었고 때로는 끔찍했다. 보부아르는 한 인간이었고 나는 가장 혼란스러운 기억이든, 경외감을 자아내는 기먹이든, 불확실한 기억이는 그의 기먹을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지료 고증이 잘 되었더라도 한 인생에 대한 자료가 진짜고 인생은 아니다. 나는 내가 저한 상황의 이익에 좌우되며 보부아르가 이미 선별 대상으로 삼았던 자료에 의존한다는 점을 의식하면서선별에 임했다. 보부아르의 인간됨을 모든 면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감과 자기 의혹, 의욕과 절망, 지적 욕구와 육제적 열정을, 나는모든 읽기, 모든 친구, 모든 연인을 다루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보부아르의 철학은 포함했다. 그 철학 없이는 보부아르의 모순이나 공헌을 진실하게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보부아르는 장대한 삶을 살았다. 지구를 누비고 다니며 20세기 문학, 철학, 페미니즘의 아이콘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세핀 베이커, 루이 암스트롱, 마일스 데이비스와도 만났다. 찰리 채플린과 르 코르뷔지에가 그녀를 위해 일부러 뉴욕 파티에 와서 자리를 빛내주었다.  - P37

하지만 철학이 없었다면 시몬 드 보부아르는 결코 시론 드 보부아르‘가 될 수 없었을 테고,
그 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일단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제자였다는 신화가 너무 오래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커플이 의견 차이가 있던 지점, 그들의 지속적인 대화가 보부아르가 그녀 자신이 되는 데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한 부분일 뿐이다. 1963년에 보부아르는 이렇게작가의 삶에서 공개된 면은 그야말로 일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내 문학 이력과 연관된 모든 것이 내 사생활의 일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독자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공적 삶이있다는 것이 사적 관점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하려고 애써 왔다.  - P38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철학과 사랑을 비판했지만 사르트르는 첫만남 이후 바로 그랬던 것처럼 "사유의 견줄 데 없는 친구"로 그녀에게 남았다. 보부아르의 사유는 동시대인들에게 근본적인 도전이었고으레 묵살당하고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 그녀는 자기 정신의 가치와생산성을 인정하고 믿었기 때문에 사유하고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
보부아르는 열아홉 살에 이미 "내 삶에서 가장 뜻 깊은 부분은 나의생각들이다."라고 일기에 썼다. 그리고 59년 뒤 살면서 이뤄낸 그59)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78세의 보부아르는 여전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정신"이라고 했다.
- P38

버지니아 울프는 "어떤 이야기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 해야한다."고 썼다. 그러나 보부아르의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우리가 보부아르의 일기와 편지에 나오는설명을 읽고 나면, 또 철학을 향한 사랑, 전례 없는 방식의 사랑을 추구하고픈 욕망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면 우리 눈에 비치는 보부아르의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 P39

그런 탓에 보부아르는 궁핍에서 한참 벗어난 후에도 절약 정신이투철했다. 공책에도 어찌나 깨알 같이 쓰는지 학교 선생님들이 알아보기 힘들다고 뭐라 할 정도였다. 시몬은 돈과 물자를 알뜰하게 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렇게 썼다. "나는 늘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까지도 최대치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시몬은 열심히공부하는 동시에 훌륭한 가톨릭 신자의 길을 익혔다. 그 노력이 얼마나 가상했던지 사제는 시몬의 어머니를 붙잡고 "눈부시게 아름다운영혼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시몬은 ‘수난의 천사들 이라**11)112)는 어린이 봉사단에도 들어갔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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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까지의 길목에는 여러 히들이 있다. 가족이나 타인의 몰이해,
무관심, 비난일 때도 있고 거대한 벽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허들인 경우도 있다. 상처 입은 당사자 자신이 공감의 허들일 때도 많다.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이 무엇이든 그것을 만나면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게 허들을 넘어설 수 있어야 홀가분하게 공감을 경험하고 자유를 얻는다. 그래서 공감자는 ‘다정한 전사‘라야 한다.
- P212

충분히 공감받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쉽지 않다. 공감하며 사는 사람은 꽤 만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가 한개별적 존재로 충분히 공감받고 사는가에 시선이 미치면 그렇다고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누구나 한결같이 공감받고 공감하며 살길 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살기 힘든 건 공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라서 일 수도 있지만 공감까지 가는 길목에서 여러 허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 허들을 잘넘어야 마침내 공감에 도달할 수 있다. 그토록 원하는 공감받고 공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허들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허들이 감정에 대한 통념이다.
- P216

전문가들뿐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오해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서로를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서로에 대한 정서적 욕구 욕망이 더 많아서 그렇다.
옆집 사는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게 대해도 내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어렵다. 남에게는 특별한 기대나 개인적 욕망이 덜해서다. 그러나 내 배우자나 가족이라면 얘기가다르다. 그로부터 받고 싶은 나의 개별적 욕구와 욕망이 있다. 그 욕구만큼이나 좌절과 결핍이 쌓인다.  - P228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문제를 해결하며 한고비 한고비 넘는 스무 고개 같은 길이다. 하지만그녀가 그랬듯 수십 년 전에 헤어졌던 혈육을 찾은 것처럼 쪼개졌던내 심장의 일부를 찾는 뜨거운 설렘과 횡재의 길이기도 하다.
- P245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 P266


모든 인간은 각각 개별적 존재, 모두가 서로 다른 유일한 존재들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다르다. 그러므로공감한다는 것은 네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끝까지 집중해서 물어봐 주고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다. 그것이 공감적 태도다. 공감적 태도가 공감이다. 그 태도는 상대방을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믿게 하고자기 마음을 더 열게 만든다.
- P272

누군가의 속마음에 깊이 주목하고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반드시자기 내면의 여러 마음들이 떠오른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통이자 축복이다. 자기 내면을 알 수 있고 치유할 수있는 기회라서 축복이고 힘들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과정을 거쳐야해서 고통이다. 그녀도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깊이 고민하던 끝에 자기를 만난 것이다.
- P274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자신이 공감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간하는 일은 감정 노동이른 아니든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공감하는 일은 시늉할 수 없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를 속일 방법은 없다.
누구든 타인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가 자극돼 떠오르고 뒤섞이면 혼란에 빠진다. 그때의 혼란은 자기 치유와 내면의 성숙을 위한 통과 의례 같은 반가운 혼란이다. 이떤 종류이는 혼란은 힘들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서다. 그럼에도 나에 대한 혼란은 반가운손님이다. 꽃 본 듯 반겨야 한다. 그 혼란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
- P276


상처를 떠올리고 말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상처가 거부당하는 느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아픈 것이다. 상처를 말하는 일이 더 큰 고통과 상처로 이어졌던 경험 때문에 힘든 것인데, 그걸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당사자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오판한다. 반복하자면 아팠던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게 고통스러운 것은 그얘기가 외면당하고 공감받지 못해서다. 거기에 더해 내 고통이 충조평판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다.
상처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파서 못 꺼내는 것이 아니라 꺼낸 고통위에 소금이 뿌려졌던 경험이 상처를 꺼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중 삼중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상처를 다시 꺼내기가어렵다. 심약한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
- P284


공감이 그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저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낼수 있다. 없는 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진다. 사람들마음속에서 공감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다. 공감의 힘이다. 그렇게 놀랍고 아름다운 공감의 힘을 내가 가진 경험과 정성을 다해 펼쳐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지금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이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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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힘이 세다.


사람들이 부르는 별칭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전 치유자‘라는 말이다. 어깨가 무거운 별이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거의 전부이기도 하다. 현장 지유자로서 내가 가진 결정적 무기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공감이다.
공감은 힘이 세다. 강한 위력을 지냈다. 쓰러진 수도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 같은 힘을 가졌다. 공감은 돌처럼 꿈쩍 않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경각에 달린 목숨을 살리는 결정적인 힘도 가졌다. 치유의 알파와 오메가가 공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삶의 생생한 저자거리에서 상처받은 사람들과 마음을 섞고 감정을 공유한 끝에 얻은깨달음이다.
- P115

공감에 대한 오해나 편견은 셀 수 없이 많다. 시간을 아주 많이다면 공감의 극적인 효과를 혹시 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하루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공감 같은 일대일 아날로 그 소동은 적절한가 과연 그만큼 효과가 있을까, 그보다는 좀더 최적인 소통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조바심이 생길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상처 입은 마음을치유하는 힘 중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힘이 공감이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이다. 공감은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입하여 최첨단 의학, 약학, 뇌과학, 생리학, 유전학, 생물학 등의 연구방법론을 통해 개발된 어떤 항우울제보다 탁월하다. 동시에 그런 약물과 다르게 부작용이 전혀 없다. 압도적인 효과가 있는데 부작용도없으니 비교가 무의미하다.
비유적으로, 항우울제 등의 약물이 극심한 갈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동네 어귀에 살수차가 와서 물을 쏟아 놓고 가는 것이라면, 잘버려지고 정확한 공감은 목이 타는 사람에게 다가와서 나뭇잎 띄운물 한잔을 직접 건네는 일이다.
- P116

공감은 내 등골을 배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 P121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얻게 되는 무엇이다.
- P125

공감의 원리도 같다. 질문을 통해서 상대의 상황과 마음이 거울에비춘 듯 또렷하게 보이면 공감은 절로 일어난다. 공감을 받은 이의속마음은 더 열리고 자기 기억이나 자기에 대한 느낌들을 더 잘 떠올리고 말하게 된다.
구석구석 비춰주는 거울처럼,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나를 담고 있는 누드 사진처럼 거부감 들지 않고 다정하게, 그러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공감 유발자다. 자세히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해야 공감할 수 있다.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습관이다.
- P129

상처를 덧나게 하는 질문이 따로 있다기보다 상대방에게 던진 질문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거나 오해를 하고 있다는 증거나 나를 비난하는 의도를 품고 있다고 느껴졌을 때 사람은상처를 받는다. 그러니 그런 마음이 전혀 아니라는 내 입장을 먼저알려주고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걱정 없이 물어볼 수 있다.
- P128

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정확하게 듣는 일이다. 정확하게라는 말은 대화의 과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감에는 과녁이 있다. 과녁에서 멀어지는 대화는지리멸렬해진다.
모임에서 자기만 깊이 관심을 가진 주제를 꺼내서 장황하게 얘기를 시작한 그에게 나는 첫 질문부터 "역사는 됐고, 너는?"이라고 내질문의 최종 목표를 분명히 했다. 과녁을 분명히 정하고 말한 거다.
역사는 중요한 것이냐 아니나, 지금 그 얘기를 할 자리냐 아니냐, 그게 의미가 있냐 없냐는 논쟁은 내 관심 밖이었다.  - P132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인정과 주목을 존제에 대한 주목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에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먹어도 기대만큼 포만감이 없다.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공감도 없고, 오른 석차에 대한 반응도 없는무관심보다는 낫다. 하지만 밥 없이 반찬으로만 배를 채운 사람처럼아무리 많이 먹어도 편안한 포만감이나 포만감으로 인한 안정감이없다. 반찬으로만 채운 배는 한계가 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은 갓 지은 밥 같은 것이다. 잘 지은밥이 있으면 간장 하나만 가지고도 든든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밥이 기본이라서다.
- P142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 사람은 그런 외형에 덜 휘둘리며 살 수 있게 된다. 공감은 쓰러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큼 큰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은 그가 고요하게 가만히 있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초조하지 않을수 있는 차돌 같은 안정감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공감의 힘은 그렇게 입체적이다.
- P143

공감은 상처를 더 드러낼 수 있게 만들고 제대로 드러난 상처 위에서 녹아드는 연고다. 상처 위에 바로 스민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겉옷 위에 뿌리는 분무제가 아니라 옷을 젖히고 상처 난 바로 그부위 맨살에 바르는 약이다. 정확하고 집중력 있는 공감은 문제 해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다. 공감은 치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관장하는 강력한 치유제다.
- P158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좋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 P167

공감자는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많이 있지만 나도 마음이 있다는 점, 너와 나는 동시에 존중받고 공감받아야 마땅한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관계를 끊을 수 있는 힘도 공감적 관계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것이다. 관계를 끊는 것이 너와 나를 동시에 보호하는 불가피한 선택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울며 겨자먹기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나에게는 파괴적인 행위고 상대에게는 자기 행동에 대해 성찰할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양쪽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결국 또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에게 공감적인 사람도 불가능하다. - P170

그러나 성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공감자는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다. 큰오빠를 보지않겠다고 한 동생의 마음도 옳다.
- P171

모든 인간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적응하는 독립적이고 개별적 존재다. 그 사실을 믿으면 함께 울며 고통을 나누면서도 서로의 경계를인정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과 근원이 된다. 눈에 보이지는않지만 존재들이 지닌 경계를 인식해야만 모두가 각각 위엄 있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 P186

내 상처가 공감 받고 치유받지 못했던 시간 동안 내 직업은 발을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큰 고통이었다. 선배 의사에게 정신분석상담을 받았던 몇 년의 시간이 도움이 됐지만 더 결정적인 건 상당실 카우치 위가 아닌 내 일상에서 그 시간의 백 배도 넘는 시간 동안 나의 스승이자 연인, 도반이고 반려인 남편에게 남김없이 공감받은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천천히, 끝까지, 모든 게 바뀌었다. 나를 더충분하게 드러내고 깊이 공감받고 이해받았던 시간, 그리고 깊이 사랑받았던 시간을 거치며 내 직업은 고통이 아닌 희열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누군가의 고통에 기꺼이 심리적 참전을 할 수 있다는 게축복이 되었다.
- P188

어떤 기간 동안, 어떤 특정 맥락과 상황 속에서는 내가 참고 견딜수도 있지만 나는 항상 그래야 하는 존재,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공감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은 양립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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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판단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
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리 없다. 알지 못하는 사림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일상의 언어 대부분은 충조평판이다.
- P106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의 언어는 거기서 벼랑 처럼 품어진다. 길을잃는다. 그 이상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노느니 장독 낀다고 충조평판이라도 날려보는 것이다. 그러니 끼니처럼 찾아오는 일상의 갈등과 상처가 치유될 리 만무하다. 덧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이 풀리지 않을 때 현장을 다시 찾는 수사관처럼 내 언어가끊어진 벼랑으로 돌아가 보자, 현장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해결의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다.
그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그의 존재, 그의 고통에 눈을 포개고 그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그에게 물어줘야 한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사실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잘 모르지 않는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한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자연히 떠오른다.
- P107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앓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있으면 사람은 산다.
- P109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우주라서 그럴것이다. 근사한 수식이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신비한 팩트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그래서 누구든 결정적인 치유자가 될수 있다.
‘나‘ 이야기,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의 불씨가 지펴지면 희미하던 생명의 박동이 쿵쾅쿵쾅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 이야기에 정확하게 두 손을 대고 있는 한 사람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심리적 CPR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다. 두손을 그의 나‘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한 존재와 이어진 것이다. 존재와 존재의 연결이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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