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우에게 물었다.
지우는 개새끼라는 말은 개의 새끼라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개는 가짜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정상 가족‘ 이라는 테두리 밖의
‘가짜‘ 자식을 뜻하는 멸칭이라고 했다. 지우는 거기까지 설명하더니나쁜 말이네, 라고 말하고는 앞으로는 그 던어를 쓰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개새끼. 미친놈, 씨발놈 어느 것 하나 쓸 만한 말이 없다.
면서, 인간은 왜 이렇게 치졸하냐고, 왜 꼭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식으로밖에 욕을 못 만드느냐고 했다.
"참신한 욕이 필요해, 분이 풀리는 욕이 필요해."
그것이 지우의 결론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개새끼라는 단어를 종이에 펜으로 써보았다. 개새끼. 어원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로그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떠올렸다. 자기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의 바짓자락에 붙어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 P13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이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증조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잠시라도 뒤돌아보면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십칠 년 동안 살던 집, 누린내가 가시지않던 집, 똥지게꾼도 상대해주지 않아 스스로 오물을 퍼내야 했던 집해질녘 구석에 핀 꽃이 예뻐 바라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날아온 돌에머리를 맞아야 했던, 무엇 하나 좋은 기억이 없던 집. 그 집을 떠나 기차역으로 가는데 그 짧은 길이 천릿길 같았고, 걸음걸음이 무거워 납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것 같았다.
그래도 떠나야 했다. 그게 사는 길이었으니까. 열차에서 노란 위액을 게워내면서 증조모는 생각했다. 잊을 거라고, 잊어버릴 거라고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할머니는 증조부가 증조모에게 왜 미쳤었는지 조금은 이해한다고말했다. 증조모의 눈 속에는 아이들에게서나 보일 법한 호기심과 장 - P34

난기가 있었다. 타고난 기질이 그랬다. 백정 딸 주제에 뭐가 당당하고즐거워서 저런 표징을 짓는 거지? 그런 이유로 어린 시절에는 맞기도했다. 고개 숙이고 걸어. 감히 양민과 눈을 마주치려 해?
그러나 중조모는 고개를 숙이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숙이려다가도 저절로 머리를 들게 됐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리 지어 날아가는 하늘의 새들을 쳐다보느라 넋을 놓았다. 만사를 궁금해했다. 세상이 궁금하고 사람이 궁금했다. 증조모가 증조부를 만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증조모는 역사 앞에서 삶은 옥수수를 팔았는데, 일이 끝나면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칠로를 따라 걸었다. 어느 날은 이 절로가 대체 몇리나 이어져 어디에 넣는지 궁금했다.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어 저쪽멀리서 철로를 따라 걷고 있던 남자에게 가서 물었다.
- 이 철길은 몇 리나 이어지는 기라요?
말을 뱉어놓고 나서야 증조모는 정신이 들었다. 백점이 양민의 길을 막았으니 호되게 맞아도 할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어린 남자는 멀뚱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 P35

그들은 그저 그녀를 피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도 그녀가다가가면 조용해졌고 도무지 끼워주지 않았다. 그녀가 인사를 하면고개를 돌렸다. 적극적으로 그녀를 위협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는공격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댓돌에 멍하니앉아서 마당에 떨어지는 햇빛을 바라보곤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빠르게 포기하고체념하는 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삶에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그건 사치이기 전에 위험한 일이었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 P54

나는 혼자 슬퍼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부정 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그녀는 댓돌에 앉은 채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픈 엄마를 버렸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땅에 묻어주지 못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개성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래, 그런 일이 있다. 그건 항상 그랬던 일이다.
엄마의 말대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식의 생각은 오히려 그녀를 더 화나게 할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떤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
그래, 개성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주먹을 쥐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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