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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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머리를 식히려고 정세랑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시작했다가 전혀 가볍지 않은 글에 살짝 밀어두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마치고 나면 다시 시작하리라. 할 말이 꽤 많아지는 작가다.}라고 지난주에 적었다.

작가 정세랑. [나무위키]에서 소개되는 작가의 프로필은 이렇다.

편집자로 일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편소설을 많이 썼고 장편도 자주 책으로 내는 편이다. 초기엔 장르소설, 특히 SF에 주력했는데 이만큼 가까이 이후로는 일반적인 순수문학 작품도 병행해서 쓰고 있다.

1984년생이며 2010년에 등단하여 이쪽 작가 중에서는 신참인 편.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출신이며 국어국문학을 이중 전공했다. 판타스틱 2010년 1월 호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2014년 '이만큼 가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피프티 피플로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덧니가 보고 싶어 (2011/11) 지구에서 한아뿐 (2012/6) 이만큼 가까이 (2014/3) 재인, 재욱, 재훈 (2014/12)

보건교사 안은영 (2015/12) 피프티 피플 (2016/11) 섬의 애슐리 (2018/6) 옥상에서 만나요 (2018/11)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 (2019/6) 목소리를 드릴게요 (2020/1) 시선으로부터, (2020/6)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2021/6) 아라의 소설 (2022/8)

이렇게 작품이 많은데 그동안 내가 읽은 건 고작 장편 하나, '이만큼 가까이'다. 소설, 그것도 한국 소설에 진심인 편이라고 떠들면서 이유야 어찌 됐든 부끄러운 결과다. 덧붙일 필요는 없지만 굳이, 스스로라도 납득될만한 이유를 대자면 '이만큼 가까이'를 읽고서 내 취향이 아니라고 접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게 읽힌 정세랑 작가는 젊고 명랑하고 환하고 밝았다. 태생적으로 어둡고 음침한 데다 부정적인 시선을 장착한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 밝고 환함이다. 밝고 환한 곳에서는 어둠은 기생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가 여행 산문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읽으면서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작가가 장착한 밝음은 가장 어두운 순간들을 외롭고 치열하게 통과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앎은 그토록 얄팍했던 것이다.

책은 첫 번째 뉴욕에 가게 된 이유를 밝히면서 "여행을 왜 즐기지 않느냐면"으로 시작한다.

"어렸을 때 아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소아 뇌전증을 앓았다. 부모님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갔을 때 내가 발작을 일으킬까 봐 걱정하시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길 바라셨던 듯한데, 이렇게 두 번째 챕터에서 시원하게 말해버린다. 문학 출판계에 들어와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이 아팠던 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무척 아름다운 방식으로 마구마구 해버린다는 점이었다. 첫 회사에서 한 시인의 인터뷰 자리에 갔던 적이 있는데 나와 같은 소아 뇌전증을 앓으셨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셔서 듣고 있다가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말해도 되는구나. 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전 연령대에서 천 명에 네다섯 명은 뇌전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전기 신호가 다르게 달린다는 이유로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과 오해는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혹시 같은 병을 앓았거나 앓는 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 지지하는 마음을 보내고 싶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것은 내가 쓰는 글들이 다소 엉뚱하고 기괴하다 보니 혹 오해를 더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쓰러지는 발작이 가장 위험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나의 경우 잠들었을 때 부분 발작을 일으켰다. 숨을 쉴 수 없어서 깼다. 마치 거인이 내 목을 밟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아슬아슬할 정도로 위험한 시점에 다시 호흡이 돌아왔다. 오류가 난 컴퓨터를 억지로 껐다 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때로 얼굴 일부나 한쪽 팔이 마비되기도 했다. 누워 있을 때 발작을 일으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상의 가능성이 적었지만, 늦은 밤 혼자 겪으며 내면이 천천히 조각되었다. 치료를 위해 계절마다 대학병원의 층층을 엄마 손을 잡고 오락가락했다. 『 피프티 피플』을 쓴 것은 친지 중에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이가 많아 인터뷰 대상자를 소개받기 쉬워서였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뇌파검사를 위해 머리카락 속에 풀을 잔뜩 바르면 『프랑켄슈타인』에 나올 만한 헤어스타일이 되었고, MRI 기계 속은 몸이 굳도록 추웠다. 그런 유년의 기억들이 내 안에 남아 있어서 병원 이야기를 쓰게 된 것 같다. 혼자 느끼는 외로움도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친밀감도 극대화되는 공간을 소설 안에 세워본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낯선 상황에서 피곤하면 발작이 일어나곤 했으므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했다. 치료를 받고 성장하며 발작은 사라졌고 다행히 아직 재발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재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발작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에 그렇게 사망한 이의 사례가 보도되면 먼 나라의 모르는 사람인데도 슬퍼진다. 얼마 전에는 할리우드의 배우 캐머런 보이스가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뇌전증으로 인한 수면 중 발작으로 사망했다. 할리우드의 배우라서 알려진 것이지, 비슷한 죽음은 지구 곳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현대사회에서도 모두가 평균수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똑바로 마주 본 사람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더 잘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에 ‘만약 내가 4년 후에 죽는다면 후회할까? 8년 뒤라면?‘

하고 가정해 보는 것만으로도 한결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아팠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70대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며 50권까지 쓰는 것이지만, 충분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요절한 사람이 아니라 열한 살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뵐 때마다 무병장수를 빌어주시는 독자분들께 부응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고 있긴 하다.

어쨌든, 발작을 빼도 딱히 건강한 젊음이었던 적은 없다. 박카스 광고나 국토대장정 포스터에 좀처럼 이입을 못 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의학의 혜택 속에 살아왔다. 전근대에 태어나지 않아 행운이었다고 안도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여행에 대한 욕망이 약했다. 여행은 건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고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 선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나머지 여행까지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큰 결심을 하고 여행을 갈 때는 바탕화면에 유서에 가까운 지시 사항을 남기고, 담당 편집자님께 그때까지 쓴 원고를 예약 메일로 전송해두기도 했다. 매번 살아 돌아와서 잘 취소했지만…….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상태가 너무 신기하지 않은지? 꼭 개인적 얘기, 사람들 얘기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렇다. 지구가 초속 30킬로미터로 빙글 뱅글 날아가고 있는데 그 위에서 온갖 동식물이 38억 년 동안 생겨났다 멸종했다 하며 보글보글 지내왔다는 것이……. 우주는 죽어 있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어떻게 다들 살아 있지? 거의 매일 놀란다. 심장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었다니?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호흡이 계속된다니? 산책만 나가도 흥미로운 발견을 하고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환경 주의자가 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아팠던 청소년이 쉽게 경이로워하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경이의 스위치가 반발력 없이 딸깍딸깍 눌리고 말아서, 다른 아팠던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얼마나 비슷한 성향일지 궁금해진다. 나의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스머프 같은 성격이 (특히 동료 작가들에게) 좀 부담스럽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는데, 나름의 맥락이 있다. 어둡고 죽어 있는 우주에서 기적 같은 지구에 산다는 것이 신기해, 냉소와 절망에 빠졌다가도 빨리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개념의 여행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잘 쓰인 여행 책, 화질 좋은 여행 프로그램,

친구들이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보여주는 사진들을 즐기며 충분히 만족해버리는 편이어서 스스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아니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 P13~17"

작가, 정세랑. 새로이 알게 되었는데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자신의 병력을 밝히는 순간에 이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과 참담함을 건너왔을까 싶어서 아득해졌다. 본인이 로또에 좀처럼 맞지 않는 것은 이미 로또 같은 부모를 가졌기 때문이라는데 아픈 아이를 지켜보고 손을 잡고 대학 병원 층층을 다녔을 엄마의 타는 속내가 보여서 먹먹하다.

'모든 원인이 상대방의 탓인 것만 같고, 다른 집 자식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저 팔자소관으로 내몰지도 않고, 그 분노를 폭발시키지도 않고' 보살핌과 치료와 믿음을 보여준 그 부모님은 작가의 로또가 맞다. 작가는 다른 뜻으로 말했는데 나는 어쩐지 그렇게 오독한다.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그러나 어쩌면 매우 환경과 훈련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지구에서 한아뿐』의 헌사에 ‘아무리 해도 로또가 되지 않는 건 이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라고 쓴 것은 아부나 효도가 아니라 사실 진술에 가까웠다. 나의 부모님은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나 가난과 싸우며 고학했고, 결국 교육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났다. 경영대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엄마는 과의 유일한 여성이었다니 1970년대 중반은 대체 어떤 세상이었는지…….

두 분은 경제성장기에 사회인이 되어 여유가 생기자 억눌렸던 것을 해소하려는 듯,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여행 등 문화적 경험에 탐닉했다. IMF 때를 비롯해 주춤거린 시기야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내 멈추지 않았다. 먹는 것에도 입는 것에도 집을 가꾸는 데에도 심드렁한 채, 신발은 길에서 만 원짜리를 사더라도 책은 매주 사들여 탑을 쌓았다. 그런 부모님 곁에서 자라는 동안 나 역시 예술을 사랑하고 즐길 수밖에 없도록 빚어진 것이다. 믿을 수 없이 큰 혜택을 받고 컸다. 무형의 것을 받아서 뒤늦게 깨달았지만, 복권 당첨이었다.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거저 주어진 것이니 살면서 세상에 갚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p39,40"

나도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부러움도 한가득이지만 그걸 시기하는 병을 극복해야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라면은 결국 같은 결과일 것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 온 결과이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 여기의 나. 지금 여기의 가치관이나 생각들이 나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나는 왜, 복권 당첨 같은 부모님을 만나지도 못했는데 로또가 안 되는 걸까? 왜?

뇌전증, 간질이라 불리는 이 병은 나와도 무관하지는 않다. 중학교 때 급우의 발작을 본 적이 있다.

평소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낮은 친구였는데 갑자기 쓰러져서는 몸이 비틀리며 떨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입에 거품이 가득하고 눈이 뒤집히는 놀라운 상황에 모두들 어쩔 줄 모르고 빙 둘러서있기만 했다. 아무 조치도 못하는 건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때마침 나타나신 양호선생님의 침착함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었다. 그 친구의 경련과 경직의 순간은 길지 않았는데 그 상황의 여파는 오래갔다. 오후 내내 양호실에 누워있다가 연락받은 가족이 데리러 왔는데 할머니였을까? 엄마였을까? 왜소하고 까무잡잡하게 나이 드신 분이 당시의 우리들에 비해 한참 작은 그 친구가 당신보다는 훨씬 큰데도 어깨를 감싸 안고 종종걸음으로 떠났다. 그 후로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없다. 장기간의 결석 이후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 병증의 충격을 직접 겪었다.

유독 내 주변에만 그랬던 건지 그 시절이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이후 발작을 목격할 일은 많았다. 시집간 큰언니가 세 들어 살던 안집의 몇 살 위 언니가 주기적으로 그랬고, 동갑의 한 동네 남자애의 경련을 목도하기도 했다. 유전이라고 쉬쉬하면서 끝끝내 숨기던 몹쓸 병이었기에 숨기다가 드러나면 더 깊숙하게 숨어버려야 하는 병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숨기는 것만이 능사였던 시절, 아픈 걸 견디며 일상을 사는 것만도 버거울 텐데 주변에서 누구라도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당사자와 가족들의 마음을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가끔 그 친구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ㅍ.ㅅ.ㅅ. 내게 지나쳐온 세월만큼 그 친구도 세월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 이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고 말도 섞어본 적이 없을지 모른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수업 시간을 빼고는 교실에 붙어있지도 않았던 나는 몇 친구 말고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친구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혼자 안부를 묻고는 했다. 죄책감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아픈 엄마를 지켜보는 막막함을 견디고 있었다. 아픈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속이 타들어가는 조바심과 안타까움과 치밀어 오르는 짜증이 많아지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발작으로 팽창하던 분노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만 특별하게 불행하지 않다고, 나보다 더한 친구도 있다는 생각이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아픈 친구한테……. 그런 몹쓸 생각이 오래 미안했다. 그래서 이름이나마 기억하면서 마음 안에 두었던 것이다. 오래 아프면서도 가끔 그 이름을 생각했다. 어딘가 고장이 나고 아프다는 건, 한편으로는 다른 어딘가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아픈 시절을 건너왔기에 조금이나마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약만 잘 복용하면 조절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 그 병에서 자유로워져서 고만고만하게 늙어가고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덧붙여서 나도 이렇게 그 친구를 놓아 보낸다.

"그날 살해된 사람들은 모두 개인이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을 비행기 승객들, 매일매일 출근하던 직장인들, 전망대에 올라 희열에 찼을 관광객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던 구조 대원들이었다. 메모리얼파크 바깥에는 그날 순직한 구조 대원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었다.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도록 닦는 사람은 사실 먼지보다 망각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

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억을 단단히 굳히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망가지고 만다. 역사교육을 전공하며 공부한 자세한 내용들은 많이 잊었지만 그것 하나는 배운 것 같다. 배운 것을 자꾸 현실과 비교해 보며 다급함에 종종거릴 때가 있다. - P116"

우리 모두가 아는 뉴욕 무역 센터가 무너진 곳에는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그곳에 선 작가의 심경이, 작가의 정신과 삶과 글쓰기의 방향까지 짐작하게 한다. 작가, 정세랑을 응원하게 만든 감동적인 부분이 이 챕터였다. 집단의 이름으로 쉽게 사라지는 개인을 호명하는 일을 이 작가에게서 기대해 본다. 모든 시작은 개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을 때, 각각의 존재는 그 존재만으로 한 우주를 이룰 때, 세상은 조금씩 평화를 향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정혜윤 피디를 작가로서 좋아하고 모든 책을 찾아 읽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게 '세월호'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날 나는 앤서니와 헤어져 유리창을 찾아보았다. 추모관은 아주 넓었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창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잠시 머물렀다. 나도 유리창 앞에 서보았다. 그 유리창 앞에 서 있었을 성호 아버지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성호 생각도 났다. 아이들 생각도 났다. 그리고 그날 어느 창가에 서 있었을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날 죽었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그것이 유리창 너머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내 눈앞에 있던 것은 9·11의 어두운 건물 파편들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처럼. 그 파편 너머,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상상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폐허만을 보게 되리라는경고처럼. - 정혜윤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P194"

"열네 살 된 딸아이가 오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는 난생처음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 혼자서, 딸아이는 오늘 밤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현재 뉴욕에는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으며, 아내와 나는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사는 친구들에게 딸아이를 재워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딸아이가 세계 무역 센터 지하를 지나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쌍둥이 빌딩이 폭삭 주저앉았다.

우리 집 꼭대기 층에서 보면 연기가 도시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늘은 바람이 브루클린 쪽으로 불어와서 화재현장의 냄새들이 집의 모든 방으로 들어왔다. 화염에 휩싸인 플라스틱, 전선, 건축자재, 시체들의 고약한 냄새, 코를 찌르는 그 악취, - 폴 오스터의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P430"

2001년 9월 11일을 우리는 지켜보는 사람이었다면 뉴욕의 작가 '폴 오스터'는 당사자다. 지금 막 마친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는 그랬기에 충격적이다. 배가 서서히 잠겨가면서 뒤집히는 걸 보고 있던 그때처럼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 최근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물난리에 속절없이 죽어간 이들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지금 존재하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는 작가, 정세랑의 여행이야기이면서 사는 이야기고 친구들과 함께(여행 동행에서 인생의 동행이 된 남편까지 포함해서) 나누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여행을 권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제주를 아끼면 제주에 가는 횟수를 줄이라 한다. 하와이가 너무 좋았지만 아마도 안 가게 되는 이유도 그럴 것이라고. 심각하게 수긍되는 말이다. 좋아하면 아끼고 귀하게 대해야 한다. 좋아한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은 상대를 망가뜨리는 스토킹에 불과하다. 사랑한다면 상대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려본다.

'떠나라'라고 등 떠미는 사회에서 지적질 받을 텐데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들이 좋았다. 정말 지구를 사랑하는 우리는, 우리의 지구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정치적인 거 말고, 보이는 거 말고, 진짜로.

소비를 줄여야 한다. 결국은 소로처럼 살아아 한다는 건데. 내가, 될까?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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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진단에서 의사들은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진통제 디히드로코데인을 하루에 백 알 넘게복용하다 중독된 것이었다. 작가 윌리엄 버로스가 묘사했듯 이 약물은 자극성은 코카인만큼 약하지만 효능은 코데인의 두 배로 헤로인과 맞먹기에 미국 의사들은 괴링을 법정에 세우기 전에 의존증부터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합군에 체포될 당시 괴링이 가지고 있던여행 가방에는 2만 회 넘게 투약할 수 있는 디히드로코데인이 들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에 남아 있던 생산분의 사실상 전부였다. 그의 중독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 - P9

다. 독일 국방군 거의 전원이 페르비틴을 지급받았으니 말이다. 이 메스암페타민 알약을 복용한 병사들은 몇 주일 내리잠도 자지 않은 채 광적인 흥분과 악몽 같은 혼수를 오가며 정신 착란 상태에서 싸웠다. 과다 복용한 병사 중 상당수는 걷잡을 수 없는 희열에 사로잡혔다. "사위가 쥐죽은듯 고요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의미해진다. 마치 내가 조종하는항공기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독일 공군의 한 조종사가 몇 년 뒤쓴이 문장은 치열한격전의 현장이 아니라 지복의 환상을 목격하는 고요한 환희를 회상하는 듯하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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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처음으로 읽은 최고의 고전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To the Lighthouse』이다. 나는 열여덟 살 때 울프의 소설 『파도The Waves』와 『올랜도Orlando』를 읽었는데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그 후 51년 동안 울프를 독서목록에서 지웠다.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등대로』는 내가 읽어 본 소설 중 손꼽을 만큼 아름다운 작품에 속한다. 이 소설은가슴 깊이 파고들어 나를 전율하게 만들었고 계속해서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길고 반복적인 문장들이 이루는 음악, 절제된감정의 깊이, 미묘한 구조적 리듬들이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한구절을 서너 번씩 읽으며 되도록 천천히 음미했다. p228


현재 침대 옆 탁자에 있는 책들은?

두 권뿐이다.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서 나온 제임스볼드윈의 『에세이 모음집Collected Essays』과 『초기 장편 및 단편 소설들Early Novels and Stories』. 고등학교 때(1965년에 졸업했으니 오래전이다) 이후 최근까지 볼드윈은 읽지 않다가 요즘 쓰는 소설이 주로 1950년대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해서의무적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의무감은 금세 기쁨과 경외감,
감탄으로 바뀌었다. 볼드윈은 픽션과 논픽션양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이며 나는 그를 미국의 20세기 거장 반열에 올리고 싶다. 그의 대담함과 용기, 엄청난 감정의 폭(끓어오르는분노에서부터 섬세함의 극치를 이루는 다정함까지)뿐 아니라글 자체의 질, 끌로 정교하게 다듬은 듯한 우아한 문장들 때문이기도 하다. - P226

가장 최근에 읽은 위대한 작품은?

프랜 로스의 오레오Oreo』이다. 1974년 작은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이 소설은 거의, 어쩌면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2015년에 뉴디렉션스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다. 안타깝게도 로스가 쓴 유일한 소설이고, 더욱 안타까운 건 로스가 1985년에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신명 나는 작은 걸작이며, 내가 최근에 우연히 발견한 아주 유쾌하고, 웃기고, 지적인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이 독창적인 작품은 학구적인 산문체와 흑인 속어, 이디시어가 매우 효과적으로 섞인 경이로운 혼합 언어로 쓰였다. 이책을 읽으며 백 번은 폭소를 터뜨렸는데, 2백 페이지 조금 넘는 짧은 작품이니 평균 한 페이지 건너 한 번씩 박장대소한 꼴이다. - P227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서양의 잡초들Weeds of the West 』. 삽화가 풍부한 628페이지 분량의 안내서로 마흔 명의 잡초 전문가가 쓰고 서양 잡초 학회에서 펴냈다. 컬러 사진이 아주 화려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야생화의 이름들이다. 유럽전호Bur Chervil, 파리잡이개정향풀Spreading Dogbane, 해골잎돼지풀Skeletonleaf Bursage, 끄덕이는도깨비바늘NoddingBeggarsticks, 뻣뻣한매의수염Bristly Hawskbeard, 솜방망이Tansy Ragwort, 복된밀크시슬Blessed Milkthistle, 가난뱅이풀Poverty Sumpweed, 누운땅빈대Prostrate Spurge, 영원한완두콩 - P228

덩굴Everlasting Peavine, 원추버들Panicle Willowweed, 배찢는브롬Ripgut Brome. 수많은 풀이 실려 있고, 그 이름들을 혼자소리 내어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노라면 어김없이 기분이좋아진다. 미국 땅의 시들이다. - P229

가장 들려주고 싶은 뉴욕 이야기는?

나의 뉴욕 이야기는 아주 많다. 오랜 세월 뉴욕에서 살면서수십 가지 이야기가 생겨났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하나가 이민자를 향해 증오를 쏟아 내고 있으니, 여기서는 이민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주로 이용하는 브루클린 지역의 문구점 주인은 중국 출신이다.
조수는 멕시코 출신이고,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자는 자메이카에서 왔다. 몇 개월 전 어느 쌀쌀한 오후에 물건값을 치르려고 계산대 앞에 서 있는데 자메이카인 계산원이 내가 코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추운 날씨였으니까). 그는 못 본 척하거나콧물을 닦으라고 말해 주는 대신 클리넥스 통에서 휴지를 뽑더니 계산대 너머로 몸을 기울여 코를 닦아 주었다. 무척이나부드러운 손길이었고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허락도 없이 내 몸에 손을 댄 건 잘못된 행동이었을까?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보기드문 친절이었으므로,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브루클린 인민 공화국에서의 삶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 P229

이 책에 포함된 번역자의 목록이 보여 주듯 현대영미 시인들은 프랑스 시를 많이 번역했다. 유명한 몇 명만 나열해도 파운드, 윌리엄스, 엘리엇, 스티븐스, 베케트, 맥니스, 스펜더,
시버리, 블랙번, 블라이, 키넬, 레버토브, 머원, 라이트, 톰린슨,
윌버 등이다. 이들은 프랑스 시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시를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시를 쓰지 않았다면 현대 미국 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 선집은 프랑스 시에 관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영미 시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목적은 프랑스 시를 원어로 제공하면서 동시에 영미시인들이 번역한 시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선집은 우리 시사(史)의 한 장으로도 읽힐 수 있는 것이다. - P244

이 시선집은 아폴리네르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책에 포함된 시인 중 가장 일찍 태어난 사람도 아니고 의식적
‘인 현대어로 시를 쓴 최초의 시인도 아니지만, 20세기 초반의미학적 열망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아한 연애 서정시와 과감한 실험, 운문시, 자유시, <형태> 시 등 범위가 다양한 시들에서 그는 새로운 감수성을 표현했다. 과거의 시 형태에 많이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자동차, 비행기, 영화의 세계에자연스럽게 적응했다. 입체파 화가들의 적극적인 옹호자였던그의 주변에는 우수한 화가와 작가가 많이 모였는데, 이를테면자코브, 상드라르, 르베르디 등이 아폴리네르 서클의 핵심 구성원들이었다. 이 세 시인과 아폴리네르의 작품을 통칭하여 입체파라고 부른다. 시의 기법이나 어조 면에서 네 사람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만, 그래도 작품의 인식론적 기반이라는 관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녔다.  - P251

키스 월드롭은 이렇게 썼다.
<시는 통으로 된 한 개의 작품으로, 이미지나 플롯에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 이 주장은 다음의 전제를 포함한다. 1. 일상 언어는 논리에 의존한다. 2. 허구에서는 특정 단어가 다른단어를 뒤따를 필요가 없다. 3. 따라서 자유로운 선택, 즉 욕망이 창출한 구문을 상상할 수 있다. 『국가』는 이러한 상상력이발휘된 《서사시》이다. 이러한 논증을 펼치는 것은 (・・・………) 프로젝트를 아예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제시된 것은 일련의 감정이 아니다. (・・・・・・) 시는 아주 조심스럽게 창작된다. 안마리 알비아크는 합리성을 거부하지만 그래도 명백히 높은 지성을 발휘해 가며 시를 쓴다.> - P274

프랑스를 모르는 독자들에게 축자의 정확성보다는 시의 감각을 전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때문이다. 시의 효과는 단어에만 있지 않고 음악, 침묵, 형태로나타나는 단어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도 있다. 독자가 그러한총체적 체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원시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는 시인이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78

말라르메가 스물아홉 살이던 1871년 7월 16일, 둘째 아들.
아나톨이 태어났다. 말라르메 집안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당시 그는 아비뇽에서 파리로 근무지를 옮기는 협상을 진행하는 중이었데, 11월말에야 겨우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그의 가족은 모스쿠가 29번지에 정착했고 말라르매는 폭탄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말라르메 부인은 지독한 난산 끝에 아이를 낳았다. 아나톨은 생후 몇 달 동안 건강이 너무 안 좋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목요일에 그 애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말라르메 부인은 10월 7일 남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애의 조그만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 같았습니다. (…...) 나는 아주 슬프고낙담했습니다. 그 애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어요. 의사들도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하니 이제하느님의 뜻에 맡겨야지요. 그렇지만 이 자그마한 아이가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 너무나 슬픕니다.> - P279

다른 편지는 몽테스키우에게 보낸 것이다. 〈엄청난 주의 덕분에, (파리로 돌아온 이래) 모든 것이 잘되어 가고 있습니다.
(……) 우리 아이는 며칠 심하게 고통을 당하여 자그마한 몸의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침을 발작적으로 했고 (……) 하룻낮, 하룻밤 내내 온몸을 떨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끔찍한 바람을 끊임없이 맞고 선 사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밤을 꼬박 새웠고, 희망과 공포의 감정이 뒤범벅되어 밤새 안정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 나의 병든 아들은 침상에 누운 채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 사라져 버린 태양을 기억하는 하얀 꽃처럼.>이 두 통의 편지를 쓴 다음 말라르메는 그것들을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갔다. 아나톨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사망했다. - P286

서리시을 때의 느낌을 전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한편으로는조심스러웠다. 공책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나 개인적인이야기를 출판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시인 말라르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귀중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렇게 썼다. <여기 쓰인 문장들이 설사 한숨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바로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우리에게 귀중한 것이 된다. 공책들의 적나라함은(………) 그것들을 출판하는 일을 바람직하게 만든다. 그러한 특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데 유용하다. 말라르메의 그 유명한 침착성은 아주 활발한 감수성의 충동, 혹은 광기와 착란에 가까울 정도의 충동에 바탕을 둔 것이다. (……) 공책들이 보여 주는 구체적인 사례 덕분에 그 몰개성, 그 객관성이 실은 인생의 가장 주관적인 충동과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 P287

 말라르메는 대체로 이렇게 생각한 듯하다. 아나톨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은 나의 책임이다. 아들에게 생의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몸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앗아 갈수 없는, 나의 생각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아나톨을 글로 바꾸어 그 애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다. 문자로 아들을 부활시키고 싶다. 시로 묘비를 세우는 작업은 죽음의 존재를 말살할 것이다. 말라르메가 볼 때 죽음이란 죽어 가는 구체적 행위가 아니라 죽음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이었다. 아나톨은 너무 어려서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이 주제는 기록 전편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아직 죽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아직 살아 있고 말라르메가 죽을때에야 비로소 함께 죽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대적인 죽음, 즉하느님이 없는 죽음, 구제의 희망이 없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적어 놓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말라르메 미학의 은밀한 뜻을 드러낸다. 바로 예술을 종교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 P289

렘브란트가 죽어가는 아들 티투스를 그린 초상화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든다. 렘브란트가 어린 시절의 활발하고 씩씩한 티투스를 여러장의 그림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죽어 가는 티투스의초상화를 제대로 바라보기가 무척 힘들다. 스무 살이 미처 안된 티투스는 질병으로 너무 수척해져서 노인처럼 보일 지경이다. 렘브란트가 그 초상화를 그릴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죽어 가는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도 캔버스 위에 아들을 그리기 위해 손을 단단히 고정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렘브란트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힘을들였을지 상상해 보라.
자연스러운 이치로 보아 부모는 자식을 땅에 묻지 않는다.
자식의 죽음은 모든 부모에게 궁극적인 고통이다. 아무리 소박할지라도 우리가 인생에 기대할 수 있다고 여긴 모든 바람을산산조각 내는 잔인한 공격이다. 자식을 잃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벤 존슨은 말라르메가 부정(父情) 때문에 아들이 <그가 부러워할 만한 상태>에 이미 도달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탄식했다.  - P290

 책을 읽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한다. 페이지를 넘겨 다음 응모 글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 완전히 다른 환경, 완전히 다른세계관을 마주하게 된다. 다름은 이 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우아하고 세련된 글도 있지만 조잡하고 서툰 글도 많다. <문학>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 글은 소수이다. 문학적 기량이 부족한 저자들의 글을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만드는 요소는 다른 무엇,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이다.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폭소 한 번 터뜨리지 않고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독자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이 이야기들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나는 개인적 체험의전선에서 보내온 특보라고 부르고 싶다. 이야기들은 개별적인미국인들의 사적 세계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을 거듭 발견하게 된다. 개인의운명은 복잡한 방식으로 사회의 지배를 받는다.  - P326

 소피아는 언니 엘리자베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남편과헬텔(소피아가 장난스럽게 오무 씨라고 칭한)의 우정에 관해이렇게 썼다. <이 성장 중인 남자의 생각이 호손 씨의 위대하고다정하며 이해심 가득한 침묵에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게 나에겐 더없는 기쁨이지. (……) 그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데도 사람들이고해 신부를 대하듯 가장 깊은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게 놀라워> 멜빌은 호손과 그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근본적인전환을 이룬다. 그는 호손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흰 고래에 관한 이야기 (전통적인 형태의 먼 바다 모험 소설로 기획된)를 쓰고 있었지만, 그 작품은 호손의 영향 아래 깊이와 넓이를 더해갔고 지칠 줄 모르는 맹렬한 영감 속에서 가장 풍성한 미국 소설들 가운데 하나인 『모비 딕 Moby-Dick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그의 천재성에 대한 경탄의 표시로 이 책을 너새니얼 호손에게 헌정한다.> 호손은 레녹스에 머무는 동안 달리 이룬 게 없다 하여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빌의 뮤즈 역할을 해준 것이다. - P355

이제 우나는 충분히 지쳐서 장미와 금 빛깔의 황혼에 푹 잠겼다가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런아버지가 있고, 눈앞에 그런 풍경이 있으며,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니 우리가 그 아이에게 걸지 않을 희망이 무엇이 있겠어요?
일전에 그 아이와 줄리언이 아버지의 미소를 두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미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같은데 아마 그 사람은 태펀 씨였을 거예요. 우나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줄리언, 그래도 우리 아버지 미소만 한 건 없어!》줄리언이 대답했어요. 《아, 그럼, 아버지 미소만 한 건 없지!》》 우나가서른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고 여러 해가지난 1904년,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이 당시 유명 잡지였던 『아웃룩The Outlook에 추도문을 실었다. 거기에 우나가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그에게 한 말이 인용되어 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유쾌해질 수 있었어요. 마치 소년 같았죠.
세상에 아버지만큼 훌륭한 놀이 친구는 없었어요.> - P363

나는 나는 기억한다! Remember를 얼마나 여러 번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발견한 건 1975년 출간직후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35년 동안 몇 년에 한 번은 다시읽었으니 도합 일고여덟 번은 읽었을 것이다. 분량이 길지는않지만(초판이 138페이지밖에 안 된다) 놀랍게도 나는 조 브레이너드의 이 작은 걸작을 그토록 여러 번 읽었음에도 다시책을 펼칠 때마다 처음 만나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뇌리에 깊이 박혀 지워지지 않는 몇몇 구절을 제외하면 나는 기억한다』에 기록된 거의 모든 기억이 내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것이다. 장기간 기억에 담아 두기엔 내용이 너무 많다. 너무 많은 삶이 소용돌이치며 변하는 회고의 콜라주에 꽉 들어차 있어서 누구라도 전체를 다 기억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내가 다시 그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많은 부분을 기억한다 하여도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다. 나는 기억한다』는 늘 새롭고기이하며 놀라운 책으로 남아 있다. - P383

이상이 나는 기억한다』를 이루는 다양한 주제들이다. 이 책의 많은 미덕들 가운데 하나는, 육체적 삶의 상세한 감각들에강한 초점을 맞추고(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의 기분, <똑바로 설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빠르게 맴을 도는> 기분, 난생처음배 속에서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암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 1940년대와 1950년대, 1960년대 미국 풍경의 지극히평범하고 사소한 세부 사항들을 아름답게 기록한 동시에 특정한 남자 - 겸손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젊은 조 브레이너드-의 초상을 너무도 정확하고 거리낌 없는 화법으로 제시하여 우리 독자들이 그 초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보기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의 기억들은 끊임없이, 시간이나 장소의 제한 없이 잇따라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한순간 뉴욕에 있다가 다음 순간 털사나 보스턴에 있고, 20년전에 대한 회고가 지난주의 기억과 나란히 선다.  - P392

브레이너드의 책에 담기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것도 흥미롭다. 우리가 책상에 앉아 자신의 나는 기억한다』를쓴다면 대부분넣게될내용들 말이다. 브레이너드의 책에는형제자매와의 갈등, 잔혹 행위나 신체적 폭력, 분노의 폭발, 복수충동, 비통함이 없다. 지나가는 말로 케네디 암살 사건, <한국>(인용 부호를 붙여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선거 운동의 슬로건 <나는 아이젠하워를 좋아한다 I Like Ike>를 언급한 부분을 제외하면 정치적이거나 공적인 문제, 국가 행사에 관한 기억은 없다. 몬드리안, 피카소, 반 고흐는 언급하지만 브레이너드 자신이 시각 예술가로서 이룬 발전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으며, 보스턴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전부 읽었다는 말은 있지만 그가 소설의 열렬한 독자였음에도 그 외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관한 기억은 없다. 슬픔도, 분노도 없고 눈물도 거의 없다. 감정적 고통이나 심오한 내적 혼란을 암시하는 내용은 하나뿐이다 - P393

오늘 아침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내가 맨 처음한 일은 살만 루슈디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루슈디를 생각한 지도 벌써 4년 반이 되어 갑니다. 이제 그것은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습니다. 펜을 들고 글을 쓰기시작하기 전에 바다 건너편에 있는 동료 소설가를 생각하는것입니다. 나는 그가 또다시 24시간 동안 살아남기를 기도합니다. 영국의 보호자들이 그를 죽이려 드는 자들 - 벌써 그의번역자를 한 사람 죽였고 또 다른 번역자에게 상처를 입힌 자들의 눈을 피해 그를 꽁꽁 숨겨 놓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기도가 더는 필요 없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살만 루슈디가 나처럼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길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 P409

우리는 그것을 좋아할 필요도 없고 그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시될 권리를 옹호하고 나서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이건 검열이나 예술적 자유에 관한 논쟁이 아닙니다. 공적기금의 사용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예술가들에게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브루클린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작품들이 불쾌감을준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전시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물관 운용 기금을 대는 시 정부는 불쾌한 예술을 홍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P422

열네 살 된 딸아이가 오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는 난생처음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 혼자서,
딸아이는 오늘 밤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현재 뉴욕에는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으며, 아내와 나는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사는 친구들에게 딸아이를 재워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딸아이가 세계 무역 센터 지하를 지나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쌍둥이 빌딩이 폭삭 주저앉았다.
우리 집 꼭대기 층에서 보면 연기가 도시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늘은 바람이 브루클린 쪽으로 불어와서 화재현장의 냄새들이 집의 모든 방으로 들어왔다. 화염에 휩싸인플라스틱, 전선, 건축자재, 시체들의 고약한 냄새, 코를 찌르는그 악취, - P430

내 머리를 잘라주는 이발사가 고통스러운 얼굴로빈이발소 앞에 서 있어서걸음을 멈추고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말이 몇 시간 전에옆 골동품점 주인이 사위와 통화했는데 사위가 세계 무역 센터107층사무실에 갇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통화가 끝나고 한시간도 안 되어 그 건물은 무너졌다.
나는 온종일 텔레비전 화면 속 끔찍한 영상들을 지켜보고 창밖의 연기를 내다보면서, 세계 무역 센터 완공 직후인1974년 8월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건넜던 내 친구, 고공 줄타기예술가 필리프 프티를 생각했다. 지상 460미터 높이의 줄 위에서 춤추는 작은 남자, 그 아름다움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 바로 그곳이 죽음의 장소로 변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생각하니 섬뜩하다.
우리 모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그 가능성을 이야기해 왔지만, 막상 비 - P431

극이 터지고 보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끔찍하다.
미국 땅에서 마지막으로 외국인의 공격이 벌어진 때는 1812년이었다. 오늘 발생한 사건은 전례가 없으며 이 공격의 결과는분명 끔찍할 것이다. 더 많은 폭력, 더 많은 죽음, 그리고 더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마침내 21세기가 시작되었다.

2001년 9월 11일 - P432

작년 9월 세계 무역 센터에 가해진 잔인무도한 공격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하는 건 온당한 일이다. 뉴요커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폭격을 맞은 건 우리 시였다. 우리는 3천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증스러운 광신주의를 이해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한편, 그날 우리가 겪은 경험을 가족적 비극으로 받아들였다. 대부분이 깊은 애도 상태에 빠져 몇 날, 몇달을 집단적 슬픔에 사로잡힌 채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만큼 우리 모두와 밀접한 사건이었으며, 뉴요커중에 그 공격으로 친구나 친척을 잃지 않은 사람을 직접, 혹은한 다리 건너서라도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 수를 계산해 보면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희생자 3천 명에 그들의 직계 가족, 확대 가족, 친구들, 이웃들, 직장 동료들을 더하면 갑자기 수백만이라는 숫자로 불어나는 것이다. - P437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릅니다. 만일 그걸 안다면아마도 그 일을 할 욕구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할 수있는 말은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그 욕구를 느끼기 시작했다는것이 전부이지만, 그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글쓰기, 특히 이야기하기 수단으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곳에서 일어난 적이 없는 상상 속 이야기들 말입니다. 확실히 그건 이상한삶입니다. 몇 시간, 몇 날, 몇 해를 홀로 방에 틀어박혀 펜을 들고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종이 위에 글을 적으려고 분투하는 삶이니까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걸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입니다. 그래야만 하니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 P447

다시 말해, 예술은 무용합니다. 적어도 배관공이나 의사나 철도 엔지니어가 하는 일에 비하면 말입니다. 하지만 무용함은 나쁜 것일까요? 실용적 목적이 결여됐다고 해서 책이나 그림, 현악 사중주는 단순한 시간 낭비일 뿐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의 가치가 바로 무용함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행위는 우리를 이 행성에 거주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차별화하는 동시에근본적으로 우리를 인간으로 정의해 줍니다. 그저 최대한 잘해내는 것 외엔 아무 목적도 없이, 그 행위의 순수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뛰어난 피아니스트 댄서가되는 데 요구되는 노력을, 그 장시간의 연습과 훈련을 생각해 - P448

보십시오. 지극히도, 그리고 장엄하게도 무용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그 모든 고통과 노력, 그 모든 희생을 바치는 것이지요.
그러나 소설은 여타의 예술과 조금은 다른 영역에 존재합니다. 소설의 매개체는 언어이며, 언어는 우리가 타인들과 공유하는 것, 우리 모두의 공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하기를 배우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향한 갈망을 키워 갑니다. 어린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잠들기 전 듣는 이야기를 얼마나열렬히 즐겼는지 알 테지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둑어둑한 방에서 곁에 앉아 동화책을 읽어 주던 순간을 말입니다. 자녀를둔 사람은 동화책을 읽어 줄 때 넋을 잃고 듣는 아이의 눈빛을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우리의 갈망은 왜 이토록 강렬한 것일까요? 동화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경우가 많으며 참수, 식인, 기괴한 변신, 사악한 마법 따위의 요소가 등장합니다. 그런 소재들이 어린아이에겐 너무 충격적이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제공하는 체험은 아이가 완벽히 안전하게 보호받는 환경에서 자신의공포들과 마음의 고통들을 대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이이야기의 마법입니다. 이야기는 우리를 지옥 밑바닥까지 끌고내려갈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무해합니다. - P449

그렇지만 저는 소설의 현 상태, 그리고 미래를 낙관적으로봅니다. 책에 관련해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늘 언제나 독자는 오직 한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소설은특별한 힘을 지니며, 제 견해로는, 그래서 소설이라는 형식은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동등하게 기여한 협업의 결과물이며, 낯선 두 사람이 지극히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저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고 영원히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할 사람들과 평생대화를 나눠 왔으며, 앞으로도, 숨이 멎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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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상은 내 머릿속에 있다. 내 몸은 세상에 있다.

2세상은 내 생각이다. 나는 세상이다. 세상은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은 세상이다. 나의 세상과 당신의 세상은 같지 않다.

3인간 세상 외에는 세상이 없다. (여기서 인간 세상은 보이고, 느껴지고, 들리고, 생각되고, 상상될 수 있는 모든 걸 의미한다.)

4세상에 객관적 존재는 없다. 존재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은 필연적으로 제 - P11

한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은 한계를 지니며 어딘가에서 멈춘다. 하지만 내게 세상이 멈추는 지점에서 반드시 당신에게도세상이 멈추는 건 아니다.

5예술 이론은(그런 게 가능하다면) 인간의 지각 이론과 분리될 수 없다.

6하지만 우리의 지각만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 (우리가그 지각들을 표현하는 수단)도 제한적이다.

7언어는 경험이 아니다.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이다.

8그렇다면 언어의 경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세상을 주었다가 빼앗아 간다. 단숨에

9인간의 타락은 죄나 위반, 부도덕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가 경험을 정복하는 것의 문제다. 즉, 세상이 말 속으로 떨 - P12

어지는 것, 눈에서 입으로 내려가는 체험의 문제다. 그 거리는8센티미터쯤 된다.

10눈은 유동적인 세상을 본다. 말은 그 흐름을 붙잡고 고정하려는 시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바꾸기를 고집한다. 그래서 시가 쓰이고 일상의 삶이 말로 표현된다. 그것은보편적 절망을 방지하는 그리고 야기하기도 하는믿음이다.

11예술은 <인간의 기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크리스토퍼 말로). 거울에 비치는 상(像)은 적절하다ㅡ 그리고 깨지기 쉽다.
거울을 박살 내어 그 조각들을 재배열해 보라. 결과는 여전히무언가의 반영일 것이다. 어떤 조합이라도 가능하고 조각들을원하는 개수만큼 빼도 된다. 단 한가지 필요조건은 적어도 파편 하나는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햄릿 Hamlet』에서자연을 거울에 비추는 것은* 크리스토퍼 말로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든 것들은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자연 자체는 그렇지 않대도 말이다. (세상이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 - P13

서건(고대건 현대건, 고전주의 낭만주의건) 예술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인간의 흉내이다.)

12말에 대한 믿음을 나는 고전주의라 부른다. 말에 대한 의심은 낭만주의라 부른다. 고전주의자는 미래를 믿는다. 낭만주의자는 자신이 실망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욕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는 세상이 말로 표현될 수 없으며 말의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3언어에서 멀어진 기분을 느끼는 건 자신의 몸을 잃는 것과같다. 말이 당신을 저버리면 당신은 무의 상(像)에 녹아든다.
사라져 버린다.

1967년 - P14

내가 볼 때 중요한 것은굶주림을 방치하는 문화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소위 문화라는 것으로부터 굶주림의 힘과동일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아이디어를이끌어 내는 것이다.
- 앙토냉 아르토


한 젊은이가 도시로 온다. 이름도 집도 직장도 없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도시로 왔다. 그는 글을 쓴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죽기 일보직전까지 굶주린다.
그 도시는 크리스티아나(현재의 오슬로)이고 때는 1890년이다. 젊은이는 거리를 헤맨다. 도시는 굶주림의 미로이고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매일 똑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는 지역 신문사에 보내려고 청탁받지 않은 글들을 쓴다.  - P17

소설 『굶주림』에는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 예술의 성격에관해 뭔가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다. 그것은 예술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의 생활과 구분이 되지 않는 예술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서전적 과도함의 예술이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예술이란 예술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직접적 표출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예술이란 굶주림의예술, 혹은 결핍·필연. 욕망의 예술인 것이다. 이 예술 속에서확실함은 의심스러움으로 바뀌고 형태는 과정에 밀려난다. 이제 임의로 질서를 부여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만큼 어떤 명료성을 획득하려는 의무는 더 강해진다. 그것은 세상에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 질문을 직접살아 본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사뮈엘 베케트는 말했다. - P30

장편소설 「하늘의 푸른빛 Le Bleu du ciel』의 서문에서 조르주바타유는 실험을 목적으로 집필된 책과 간절한 욕구에 의해집필된 책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바타유는 말한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교란을 일으키는 힘이며 <공포와 전율 속에서 마주친 현존으로서 인생의 진실과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문학은 연속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일련의 일탈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소중하게여기게 될 책은 통상 집필 당시의 문학 사상에 역행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바타유는 모든 위대한 작품의 집필동기 혹은 하나의 불꽃에 대해 <분노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 불꽃은 의지를 발동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고 언제나 문학 바깥의 원천에서 온다. 그는 말한다. <저자가 꼭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없이 쓴 책을 우리가 어떻게 오래 붙잡고 있겠는가?> 자의식적인 실험은 문학적 규약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싶다는 간절한 소망에서 나온다.  - P34

초기 아방가르드 운동 중 하나인 다다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비록 단명했지만(1916년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야간 행사로 시작되어 1922년 트리스탄 차라의 희곡 「가스가 들어찬 마음Le Coeur à gaz」에 대한 격렬한 항의로 사실상 끝나 버렸다) 그 정신은 저 멀리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로부터 50년 이상이 흐른 지금도 철철이 다다에 관한 책이나 전시회가 기획된다. 우리가 다다가 제기한 문제들을 추적하는 데는 학술적 관심 이상의 이유가 있다. 다다의 질문이 곧 우리의 질문인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과 행동, 행동으로서의 예술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다다에 시선을 돌려 하나의 원천 혹은 사례를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는 다다라는 운동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한편 그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P45

존 애시버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친밀하게 말을 걸어오는 시인이다. 우리는 그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인식하고 그의 언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언어이다. 하지만 그처럼우리의 확실성을 사정없이 허물어 버리고, 또 그처럼 풍성하게우리 의식의 애매모호한 지역을 탐구하는 시인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방심했다가 균형을 잃고 놀라게 된다. 어조의 단조로움과 친밀함에 유혹당하기 때문에 일탈감은 그만큼 더 혼란스럽다. 평범한 사물이 기이한 사물로 바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해 보였던 것이 갑자기 의심스러운 무엇으로 돌변해 버린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나 어떤 것도 예전과 같지 않다. - P54

그의 시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목적과 방식의 일관성이다. 애초부터 로라 라이딩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알았으며, 자신의 시를 독립된 서정시가 아니라 거대한 시적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 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바람이 아니다.
집 없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우리를 유혹하는변덕스러운 기분이 아니다.
우리는 더 잘 분간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낯선 자들을
우리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굳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 바람의 이유The Why of the Wind 중에서

이 시는 라이딩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담화의 추상적 차원, - P61

파울첼란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고 프랑스에살면서 독일어로 시를 썼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희생자였고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으며 쉰이 되기 전에 자살했다. 첼란은추방의 시인이었고 자신이 쓴 시의 언어에서조차 국외자였다.
그의 생애는 고통의 전형적 사례였고 20세기 중반 유럽에서 벌어진 일탈과 파괴의 표상이었다. 그의 시는 도전적일 정도로 특이하고 언제나 절대적으로 그의 것이었다. 독일에서 그는 릴케와 트라클의 동급으로 여겨지고 횔덜린의 형이상학적 서정성을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다른 곳에서도 그의 작품은 높이 평가되는데, 조지 스타이너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첼란은1945년 이후 유럽의 주요 시인 중 한사람이다. 하지만 첼란은아주 읽기 어려운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조밀하면서도 불투명하다. 그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특히 후기 시는 너무나 격언적이어서 여러 번 거푸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주 지적이고 현기증 나는 언어의 힘을 구사하는 첼란 시 - P83

는 페이지 위에서 폭발적인 힘으로 튀어 오르고, 따라서 그의시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아주 인상적인 경험으로 그 만남을기억하게 된다. 가령 홉킨스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끼는 기이하면서도 흥분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 P84

따라서 시는 이미 알려진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글쓰기 행위는 첼란에게 있어개인적 모험을 요구한다. 첼란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정립하고 이 세상에 우뚝 서기 위해 시를 썼다고 할수 있다. 바로 이런 절박한 필요의 느낌이 독자들에게 강하게호소한다. 첼란 시는 문학적 유물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 P90

반 고흐를 논한 1946년의 논문에서 마이어 샤피로는 리얼리즘의 개념을 진술했는데, 그것은 첼란 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나는 오늘날 통용되는 좁은 의미의 리얼리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이란 결국 외부적 리얼리티를 강력한욕망이나 욕구의 대상, 인간이 소유하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태도이다. 이 때문에 리얼리티는 예술의 필연적 터전이 된다> 이어 마이어 교수는 <나는 가능한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두렵습니다>라는 고흐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같이 주장한다. <개개의 대상을 축소하는 원근법에 대항하면서 고흐는 대상을 실물보다 더 크게 만든다. 물감을 두껍게 사용하는 것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사물의 이미지에 유형의물성을 포함하고, 사물 못지않게 단단하고 구체적인 것을 캔버스 위에 창조하려는 광기 어린 노력의 일환이다.>인생관과 예술관이 고흐와 비슷한 첼란은, 고흐가 물감을사용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작품은그 정신이 비슷한 바가 많다. 반 고흐의 화필이나 첼란의 문장 - P90

은 구상화를 지향하지 않았다. 그들이 볼 때 <객관적> 세계는그들 자신의 지각과 깊이 연계되어 있었다. 리얼리티에 침투하려는 노력 없이 리얼리티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예술을 계속해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고 작업해 나가고자했던 태도는 이런 욕망과 관련이 있다. 반 고흐가 그린 대상이<리얼리티처럼 리얼한 구체성을 획득한 것과 마찬가지로, 첼란의 시어도 사물의 조밀성을 지녔다. 첼란은 시어에 실체성을부여했고, 그리하여 시어가 단순히 거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이 세상, 혹은 그의 세상의 일부가 되게 했다. - P91

회흑색 황무지 저 너머에
실낱 같은 햇살.
나무 높이의
생각은 빛의 음조를 터트리고
인류를 넘어선 곳에 - P96

아직 부를만한
노래가 있나니.

이러한 시들에서 첼란은 목표를 아주 높게 설정했고, 그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넘어서야 했다. 정체성에 매달리기 위해 허공 속으로 삶을 밀어 넣어야 했다. 처음부터 재앙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투쟁이었다. 시가 영혼을구제하거나 세상을 회복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시는단지 주어진 것을 확인할 뿐이니까. 결국 첼란의 절망은 너무커져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리하여 세상은 첼란에게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므로 더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당신은 나의 죽음.
모든 것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당신을 붙들 수 있으리라.

1975년 - P97

앨런 맨델봄은 번역 시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웅가레티의 <나>는 멀리 나아간다기보다 장중하고 느릿느릿하며집중적이다. 그의 동경은 드라마가 된다. 《나》가 절망의 무작위적 중심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묶인 신체이기 때문이다. 그<나>는 단단하고 뻣뻣하고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소망하기보다 의지를 발동하고, 몽상하기보다 《발굴》한다.>웅가레티의 후기 시들은 약속된 땅이라는 단 하나의 이미지안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것은 『아이네이스Aeneis(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와 성경에 나오는 약속의 땅이다. 로마와 사막을위한 약속의 땅이다. 「칸초네 Canzone」, 「디도의 심리 상태를묘사하는 코러스Cori descrittividi stati d‘animo di Didone」,
「팔리누루스를 위한 송가Recitativo di Palinuro」, 「약속된 땅을위한 최후의 코러스Ultimi cori per la Terra Promessa」 같은 주요시는 그의 모든 전작을 언급하면서 그것들에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베르길리우스의 무대를 시에 가져왔다는 것은 시력(詩歷) 말기에 귀향했다는 뜻이다. 사막은 젊은시절의 풍경을 되살려 놓았지만 또다시 그를 최후의 영원한추방 속으로 밀어붙인다.

우리는 마음속에 남은 초창기의
이미지를 품은 채 사막을 건넌다. - P106

살아 있는 사람이 약속된 땅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1952년과 1960년 사이에 쓰인 「최후의 코러스」는 「노인의공책// Taccuino del Vecchio』에 수록되었다. 이 시는 웅가레티 시의 본질적 주제들을 다시 천명한다. 웅가레티의 우주는 그대로남아 있고 그는 초기 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언어로 죽음을 준비한다. 그의 진짜 죽음, 그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최후의 죽음.

솔개는 그 푸른 발톱으로 나를 잡는다.
태양의 정점에 올라가
나를 사막 위로 떨어트려
갈까마귀의 밥으로 준다.
나 이제 더는 어깨에 진흙을 묻히지 않으리.
불은 내가 깨끗하다는 것을 알리라.
꺽꺽거리는 부리들
자칼의 냄새나는 아가리.
이어 그는 모래밭을 지팡이로
헤집어 가며 찾으리라. 그 베두인족은
희고도 흰 뼈를
가리키리라.

1976년 - P107

에드몽 자베스는 1912년 부유한 이집트 유대인의 아들로태어나 프랑스어를 쓰는 카이로 동네에서 성장했다. 젊은 시절막스 자코브 폴 엘뤼아르, 르네 샤르와 교류했고 1940년대와1950년대에 자그마한 시집을 여러 권 발간했는데, 거기 실린시들은 나중에 나는 나의 집을 짓는다 Je batis ma demeure』에다시 수록되었다. 그 시점에 이르러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확고해졌지만 프랑스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널리 알려지지는않았다.
1956년 수에즈 위기는 자베스의 생활과 작품 활동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세르체제에 의해 추방되어 프랑스 정착하게 된 그는, 집과 재산을 모두 빼앗긴 채 난생처음 유대인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자신이유대인이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사실로서 삶의 우연한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고통받게 되었고 그리하여 타자가 되었다. 이 갑작스러운 추방의감각이 그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이상학이 되었다.
어려운 시절이 뒤따라왔다. 자베스는 파리에 직장을 잡았고그의 글은 대부분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집필되었다. 파리에아리마 출판사에서 그의 시집이 - P109

나왔다. 그 시집은 앞으로 다가올 것들의 선언이라기보다 새로운 파리 생활과 흘러가버린 과거 사이의 경계 짓기였다. 자베스는 탈무드와 카발라 등 유대 텍스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독서가 유대교 신앙으로의 복귀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유대의 역사 및 사상과 자신의 연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베스를 감동케 한 것은 토라라는 1차 텍스트보다 디아스포라에서 집필된 저술과 랍비의 주석이었다. 자베스는 이런 책들에서 유대인의 강한 힘을 발견했고 그 힘이 생존의 양식을 제공했음을 알아보았다. 추방과 메시아의 강림 사이에 놓인 긴시간 동안 하느님의 사람들은 성경의 사람들이 되었다. 자베스는성경이 고국의 의미와 무게를 감당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 P110

 마지막으로 자베스의 책은 19세기말에 시작된, 지속적인 프랑스 시적 전통의 일환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베스는 이 전통을 유대의 담론과 결합하려 한다.
그는 이 작업을 강한 확신 속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둘의 결합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음의 서』는 자베스가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대부분이 기독교신자인 이 세상에서 모든 시인은 유대인이다.> 바로 이런 정신이 자베스 작품의정중앙에 놓인 핵이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온다. 자베스가 볼 때, 먼저 글쓰기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는 대학살에 관해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언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려면 작가는 자신을 의심의 유배지, 불확실성의 사막으로 추방해야 한다. 사실상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부재의 시학을 창조하는것이다.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말을 들을 수는 있고 그들의 목소리는 <책>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1976년
- P117

우리는 조금씩 카프카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그는 현대 작가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접근하기가 까다로우며 생애와예술은 자주 오해받아 왔다. 그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친구 막스 브로트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카프카라는 이름은 1924년 그의 사망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브로트는 미발표 유고를 사후에 모두 불태워 달라는 카프카의 부탁을 무시해버렸다. 카프카 작품은 등장 자체가 미스터리와 모호함에 둘러싸여 있다. 왜 그의 장편소설들은 미완성인가? 그 탁월함과 독창성에도 왜 저자는 소설들을 파기하라고 했을까? 카프카에게는 일정한 이미지가 있었다. 몸을 움츠리는 관료,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피해자, 일종의 그림자 인간 대중의 마음속에서 그는 『변신 DieVerwandlung』의 그레고르 잠자가 되었다. - P118

톡 놀라운 사람입카프카는 엄청난 모순을 내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친구와친지들에게 그는 놀라운 재치와 매력을 가진 사람, 아주 관대한 사람, 멋지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사람, 백절불굴의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들이 카프카에 관해 써놓은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의 희생정신, 순수함과 성실함, 잊어버릴수 없는 인품 등에 강한 인상을 받게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만 한 사람은 없었다.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Gespräche mitKafkas에서 그는 성인으로 묘사되기까지 했다. 반면에 일기Tagebricher 속의 카프카는 자기 자신과 대결하는 사람, 자기회의로 괴로워하는 사람, 거의 병적일 정도로 자신의 단점을의식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카프카는 결혼, 가정, 공동체, 글쓰기의 욕구(그 때문에 약혼은 두 번이나 파국을 맞이했다) 사이에서 분열되었고, 가정과 위압적인 아버지의 숨 막히는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기 향상의 노력(정원 가꾸기, 채식주의, 목수 일, 히브리어 공부 등)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써놓은 글을 깊이 확신하지 못했다(발행인, 평론가, 친구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 - P119

작가의 편지를 읽는 것은 때때로 난처한 일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영역에 침범해 들어간다는 느낌, 일반인을 의식하지 않고 쓴 글을 엿본다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독자로서의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주는 대목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는 일차적인 목적이 그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경우 편지는기본 연구 자료이다. 일기의 내면적 싸움과 전기의 객관적 이야기 중간쯤에 해당하는 그의 편지들은 카프카와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게 해주고, 카프카라는 위인의 맥락 속으로 침투해들어가는 수단을 제공한다. 여기서 하나의 결론이 자연스럽게도출된다. 카프카는 타고난 작가였고 엉성한 문장을 쓴다거나자신을 서투르게 표현하는 일 따위는 아예 못하는 사람이었다. - P120

브로트는 카프카의 편지를 제일 많이 받은 친구였고, 우정을 나눈 20년 동안 카프카는 브로트에게 영혼을 드러내 보였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들은 서한집에 실린 다른 편지들보다도 내밀하면서도 개인적이고 문학적인 문제, 그리고 카프카의일상생활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을 특히 많이 다룬다. 또 카프카가 말년에 옮겨 다닌 여러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곳들의 분위기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 편지들을 읽노라면 두사람의 깊은 우정, 끈끈한 신뢰, 강한 유대에 감탄하게 된다. 그것들만으로도 하나의 놀라운 책이 될 법하다. 그밖에 다른 편지들도 있다. 카프카가 책의 발행인인 쿠르트 볼프에게 보낸편지에는 겸손한 내용이 가득하다. 자신의 작품을 하도 낮추어말해서 그런 단편소설을 발간해 주는 볼프가 마치 특혜를 베푼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카프카는 정서 장애를 겪는 어린소녀 민제 아이스너와도 편지를 교환했는데, 그 소녀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격려해 주고, 또 자상한 조언도 하면서 어려운청소년기를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었다.  - P122

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관점에서 카프카를 관찰할 수 있고 또다양한 사람과 교제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개성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지켜볼 수 있고, 인간 카프카와 대면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카프카 읽기는 영구히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여덟 페이지는 <대화 쪽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임종의 병상에 누워있던 카프카가 도라 디아만트와 로베르트 클롭슈토크에게 휘갈겨 쓴 짧은 글들이다. 두 친구는카프카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고 카프카는 그들을 자신의<작은 가족>이라고 불렀다. 카프카는 후두 결핵을 앓았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식사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행위였기때문에 병이 말기로 진행되는 동안 그는 거의 굶어 죽다시피했다. 이 짧은 쪽지들은 카프카가 쓴 모든 글 중에서 가장 슬픈내용을 담고 있다. 카프카는 꽃으로 둘러싸인 병상에 누워서두 친구의 시중을 받는다. 단편소설 「단식 예술가의 교정을보면서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P123

그저 물을 한 사발 크게 마실 수 있다면. (…) 작약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직접 보살펴 주고 싶어. ・・……) 라일락을양지로 옮겨 놔 줘. (…………) 어쩌면 앞으로 일주일은 더 버틸수 있을 거야. (……) 뉘앙스란 묘한 거야. (…) 내가 당신들 얼굴에 기침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 (………) 내가 당신들 - P123

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이건 미친 짓이야. (・・・・・…) 공포,
공포, 공포 (·····…) 주된 이야깃거리가 없다면 대화의 주제는없는 거야. (……) 문제는 말이야, 내가 물을 단 한 컵도 마시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좋은 일이지만. (………) 저거 멋지지 않아? 저라일락 죽어가면서도 물을 마시고 계속 들이켜네. (……) 잠시 당신들 손을내 이마에 얹어 나를 격려해 줘.

마침내 의사가 그를 살펴보고 나갔다.

그래, 도우러 온 사람이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시 가네.

그는 마흔한 살이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득 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는 나이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죽음은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 준다.

1977년 - P124

1.
찰스 레즈니코프는 눈의 시인이다. 그의 작품의 문턱을 넘는 건 물질의 선사(先史)를 꿰뚫어 보는 것이며, 아직 언어가창조되지 않은 세계에 노출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시에서 보기는 늘 말하기에 선행한다. 그의 시적 표현은 눈의소산이며,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의 비정하고 해독되지 않은암호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라는 행위는 현실의질서 정연한 배열이라기보다 현실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사물들과 그 이름들 사이에 자리하는 과정이다. 시인이 그 조용한 중간 지대에 서서 주의 깊게 응시함으로써 사물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보이고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처음 태어난 인간인 동시에 마지막 인간이다. 아담이며 만대의 끝, 바벨탑을 세운 자들의 무언의 후예다. 왜냐하면 그는 눈으로부터 말하는 법을 배워서 입으로 보는 습성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 P125

요점은, 요점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전통적 의미에서는말이다. 이 시들은 보편적 진리를 주입하거나 기교로 독자를감동시키거나 체험의 모호성을 끌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시들의 목적은, 한마디로 명료함이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의명료함. 그러나 이 시들이 불안하리만큼 검소하다고 해서 이들이 지닌 야망의 대담함을 보지 못해선 안 된다. 지극히 짧은이 시들도 레즈니코프 시학의 요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레즈니코프 시학은 글쓰기 이론인 동시에 시적 순간의 윤리학이며, 그 메시지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시는 단순한 말들의 구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그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언가를 위한 것이다.  - P127

메서는 좀처럼 어디든 스케치북 없이는 가지 않는다. 그는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격정적으로 달려들어 빠른 손놀림으로 붓을 휘두른다. 순간순간 화판에서 눈을 들어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곁눈질하면서. 그러므로 메서와 함께 앉아식사를 할 때에는 언제나 그의 화판 앞에서 당신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난 7~8년 동안 우리는 내가 그 점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만큼 여러 번 그런 과정을 거쳤다.
나는 그가 처음 찾아왔을 때 그에게 타자기를 가리켰던 것은 기억하지만 그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인가 이틀 뒤에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날 오후 나는 집에 없었지만 그는 아내에게 타자기를 한 번 더 살펴보러 1층에 있는- 내 방으로 내려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내 타자기가 그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부터는 그가 어떤 식으로든 타자기를 설득해 영혼을 드러내도록 했다고까지 믿게 되었다. - P203

그 뒤로도 샘은 몇 번을 더 찾아왔고 찾아올 때마다 새로 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는 홀린 듯내 타자기에 빠져들었고 조금씩 그 생명없는 물체를 개성과품격을 지닌 존재로 바꾸었다. 그 타자기는 이제 나름대로의기분과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울적한 분노와 열광적인 기쁨을표현하며, 금속으로 된 회색 몸체 안에 갇혀 있는 심장이 뛰는소리까지도 들리는 지경이다.
‘나는 그 모든 일로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림들은 훌륭하게 완성되었고 나는 내 타자기가 그처럼 가치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그와 동시에 메서는 나로 하여금 내 오랜 동반자를 다른 식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지금도 나는 적응 과정에 있다. 그러나 내가이 그림들 중 하나(우리 집 거실 벽에 두 점이 걸려 있다)를 볼때면 내 타자기를 물체로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물체가 인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 P204

오래되어 낡고 시대에 뒤처진 고물, 기억으로부터 빠르게사라져 가는 시대의 유물인 이 타자기는 내게서 떠난 적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 지낸 9천4백 일을 돌이켜 보는 동안에도, 이높은 지금 내 앞에 앉아서 오래되고 귀에 익은 음악을 토닥토닥 내보낸다. 주말 동안 우리는 코네티컷에 와 있다. 여름이다.
그리고 창문 밖의 아침은 따갑고 푸르고 아름답다. 지금 타자기는 주방 식탁 위에 있고 내 손은 그 타자기에 놓여 있다. 한글자 한 글자씩, 나는 그 타자기가 이런 단어들을 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00년 7월 2일 - P205

「뉴욕New York』 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

<뉴욕>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센트럴 파크 남쪽의 콜럼버스 서클 모퉁이에 있는우리 할아버지네 60층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풍경이다.
창문은 열려 있고, 나는 손에 1페니짜리 동전을 쥐고 창가에서서, 동전이 도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려고 그것을 창밖으로내던지려 하고 있다. 그때 나는 기껏해야 네 살이나 다섯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막 손가락을 펴려는 순간,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안 돼! 그 동전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머리 속으로 곧장 뚫고 들어갈 거야!」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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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을 만나려면 영도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러나 건너지못했다. 경찰의 막강한 저지로, 남포동 비프광장에 머물 수밖에없었던 희망버스 소풍 모임은 거기서 밤을 새웠다. 노숙을 했다.
준비해온 침낭과 담요를 길바닥에 착착 깔고 누워 잠이 들었다.
잠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 세 명의 시인‘이 조용히 천막을 쳤다. 광목천에 크레용으로 ‘문학천막‘이라고 쓴 간판을 내걸었다. 안에는 촛불 두 개, 집에서 싸 들고 온 책 몇십 권그리고 공책 몇 권과 볼펜 몇 자루, 누군가 군중을 벗어나 조용히 있고 싶다면, 누군가 이 소풍길에서 느낀 소회를 어딘가 풀어놓고 싶다면 여기에 있어보라는 뜻에서였다. 작고 허름한 둥지속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문학은 그런 거다. 소풍간의 대오에서 불현듯 내가 왜 여기에있지? 저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기 위해 잠시 대오를 이탈하는 - P111

일. 혼자만의 방에서 정연해지지 못하는 생각들을 기록해보는일, 잠들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문학천막 속에 들어가서 오래 앉아 있다가 나왔다. 바깥에서 셋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새벽을보냈다. 사람마다 여기에 온 이유가 다 다르겠지? 라든가, 모두가다 내몰린 자들이겠지, 김진숙처럼. 그럼 네 이유는 뭐야? 우리는 대화를 천천히 이어갔다.
내 이유는 시간마다 변했다. 맨 처음 이유는 약속 때문이었다. - P112

3차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집결하던 밤에, 트위터로 중계되던 시시각각의 위험한 상황을 내 방 컴퓨터 앞에서 겪었다. 너무 애가 타서 현장에 있는 친구와 통화도 했다. 혼자 앉아 상황을 전해 듣는 게 현장에 있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불편했다. 그 마음을 트위터에 적었다. 현장에 있던 어떤 분이 나의 한마디에 힘이난다며 실시간 답글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희망버스를 꼭 타보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였다. 5차희망버스엔 꼭 함께하겠다고 말했더니, 심보선은 문학천막을 제안했다. 배낭 속에 간식 대신 책 열권을, 공책과 볼펜을, 광목천과 크레파스를 챙겨 넣었다. 무슨 일이든 함께하면 신이 나는 친 - P112

구 덕분에 두 번째 이유가 보태졌다.
비프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영도 다리 진입을 다시 시도하기위해 우리는 행진을 했다. 경찰이 강경하게 길을 막고 물대포를쏘아댔다. 우리는 뒤로 돌아 다급히 뛰었다. 내가 도망치는 사이에, 맨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기 시작했다. 도망치며 친구를 챙기려고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그 순간, 사람들의 표정을보았다. 모두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래를부르고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치며 흥겹던 얼굴들. 삽시간에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나는 이 두려움의 얼굴이 우리의본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공포와 두려움, 이게 우리 삶의 진짜얼굴임을 그때 나는 보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공포와 두려움을나눈 사이가 되고 말았다. 각자의 두려움을 서로 보여준 사이가되었다. 그런 사이끼리는 맨 처음 이유가 다를지라도, 같은 희망을 공유하게 된다. 그 희망은 희망을 희망할 권리였다.
- P113

지금 여기, 우리가 하필 같이 있을 때, 우리가 같이 있는 이유가 만들어진다. 이유는 변한다. 세밀해지고 증식된다. 절망과 두려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밥처럼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로 희망이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 희망을 싣고 달리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아니었다. 달리다 보면 희망이 실리기때문에 희망버스였다. 김진숙을 못 보고 돌아왔지만 소풍은 좋았다. 하나의 이유가 너무 많은 이유를 만나고 돌아왔다. 빈 도시락을 들고 갔다가 꽉 찬 도시락을 챙겨 들고 돌아온 소풍이었다. - P115

한밤중에, 등불조차 켜지 않은 채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노늘쪽배 위에 누워 별자리를 바라보며, 창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우주만물의 역사에 대해 가만히 혼자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의 뼈에 연보라색 불이 켜집니다. 밤하늘을 날던 반딧불이들은 그가 거대한 동족인 줄 착각합니다. 그는 손가락을 길게 뻗어밤하늘의 별 하나에 갖다 됩니다. 별 하나가 그렇게 이 지구 위의한 사람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그는 밤하늘의 별에게 말합니다. 바로 여기에 있을게. 그는 수천 년 전부터그렇게 누워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시대의 미라, 시인입니다. - P122

내 시에 눈물이라는 시어가 많아졌다. 그게 타자의 눈물이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타인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나는울음을 듣는다. 누군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나는 나의 무용합을 직시한다. 그 눈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방면한다. 위로하지 못한다. 아니, 위로의 무능함에 나 또한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시를 쓴다. 이것도 다행한 일이다. 눈물을 기록하다 보니 눈물을 오해 없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눈물은 목적이 따로 있었고, 어떤 눈물은 맹목이었다. 어떤 눈물은 가뭄에쏟아진 소나기였고, 어떤 눈물은 골절되어 살갗 바깥으로 삐져나온 뼈였다. 그렇게 눈물의 맛을, 눈물의 너머를 감지하는 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눈물겨운 사연을 털어놓곤 했다. 흘리는 건 눈물이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손짓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누군가를 찾는. - P125

 발화한다는 것. 그 발화를 입증하고 실천한다는 것. 그빤한 거짓말에도 절실함은 절절하다. 그 거짓말과 절실함의 모순과 균열 속에서 인간은 속절없이 명멸한다. 시인이라면, 말의 본질과 발화된 말 사이에서 더더욱 처참하게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를 접착하는 불가능함을 순진하게 욕망한다. 그 불가능한 접착을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욕망하는 자, 그자가 바로 시인이다. 사람의 말로 사람의 일을 기록해야 하는 시는, 그러므로 불가능성을 향해서 간다. 불가능한 줄 알고도 간다. 개의치 않는다.
그 불가능성이 시의 토양이고, 불구의 자리에서 영원히 서성이는자, 그자가 시인이다. - P128

가장 안락한 자리는 언제나 당신들의 눈물 자리였다. 가지 끝에매달린 것들을 눈물이라고 생각할지 이슬이라고 생각할지는 순전한 내 몫이었다. 눈물을 매단 가지를 나는 뼈라고 생각했다. 뼈를 손짓이라고 여겼다.


나는 계속 덧나기만 했어요. 덧난 자리마다 부끄러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또다른 길들로 무수히 갈라졌어요. 갈라져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제 가느다란 가지들로 남아 나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가 없어요. 내 산책은 당신을 붙잡을 수 없어요. 다만 이렇게, 흔들리기 위해 이렇게 오래 흩어졌던 거예요. 내 생의 이렇게많은, 다른 가지들을 만들었던 거예요. 당신이 손짓하는 것이 보였어요.

이수명, 「생의 다른 가지」에서 - P129

그해 여름에, 그해 겨울에, 나는 혼자서 혹은 누군가와 함께길을 걸었고 무언가를 주웠다. 사소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물로 가져와 간직하며 지냈다. 어떤 것은 추억을 직조해주었고어떤 것은 계속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음 아픈 것들은 내내 마음을 아프게만 했다. 내가 그 사물과 만난 것은 너무나 사소한 일이지만 사소한 일들은 마음 아픈 일일수록 운명처럼 커다래진다. 주워 온 사소한 사물들을 내가 간직하는 것은 추억이소중해서가 아니라, 사소함이 이토록 커져간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 P144

인간은 고통에 관한 한 무력하다. 나쁜 말은 육체에 새겨진 통점을 아주 쉽게 건드리고 상승작용을 한다. 육체에 내장된통점은 나쁜 말에 순발력 있게 반응한다. 인간이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을 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의 숙주가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잊기보다는 익숙해지기. 고통의 숙주가 되어간다는 것은, 통증의 수위만큼을 인내심으로 제방을 쌓아두는 행위이다. 인내심이라는 제방은 한꺼번에무너져버리거나 혹은 서서히 균열이 간다. 결국 인내심은 거짓말의 또 다른 얼굴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 사랑 가득했던 과거완료형의 말들이 오히려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거짓말과 같아지는 순간. - P164

쉽게 전화를 걸고 쉽게 전화를 받고, 쉽게 한숨을 섞고 쉽게걱정을 하고, 쉽게 위로를 하고 쉽게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오래된 벗처럼, 나는 쉬운 얼굴이 되었으면 한다. 쉽게 읽히는 글처럼쉬운 얼굴이 되었으면 한다. 바라보는 것에도, 듣는 것에도, 입술을 떼는 것에도, 헤아림도 없고 헷갈림도 없고 헤맴도 없었으면한다. 쉽게 불러내어 만날 수 있는 벗처럼 쉽게 드는 잠처럼.
행복 같은 게 저 멀리 있는 듯하여 부지런히 그쪽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피로함. 저쪽으로 달려가다 매번 넘어져버리는 삶.
넘어져, 흰 셔츠호주머니에 고이 넣어둔 버찌, 양손 가득 소중하게 들고 있던 토마토가 뭉개져버리는 이번 가을은 호주머니가비어 있었으면 한다. 양손 모두 허전한 채로 비어 있었으면 한다.
달려갈 곳도 없이 그냥 텅 비었으면 한다. - P171

히말라야에 갔을 때였다. 지금보다 세상이 좀 더 녹록해 보이던 때였다. 세상에는 일말의 가능성이 새벽녘 희미한 빛처럼 푸르게 존재했고, 내 영혼에도 그 정도의 푸름이 있던 때였다. 길고긴 밤엔 할 일이 없어 지루할 테니 두꺼운 책을 들고 가라는 누군가의 충고를 듣고서, 쉼브르스카의 시집을 배낭에 넣어 갔다. 밤마다 몇 편씩 읽었다. 몇 편 읽으면 스르르 잠이 왔다. 지루해서였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나는 결핍감을 느꼈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매혹적인 시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멋이 있지 않았다. 말맛의 쾌락도 잘 모르는 고지식하고 답답한 한 시인의 목소리가 잔소리하는 교감 선생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배어 있었다. - P173

쉼브르스카의 시집에도 성공하지 못한 히말라야 원정에 대한기록이라는 시가 있었다. 모닥불을 앞에 두고 나는 이 시를 친구에게 읽어주었다. 히말라야 원정에 실패했기 때문에 쓰인 시덕분에, 무언가에 실패했기 때문에 태어난 지상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낭을 끌러 시집을 책꽂이에 다시 꽂고, 나는 쉼브르스카를 잊었다. - P174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일기에 이런 문장을 적게 됐다. 사실은모든 시에는 가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나는 시의 진실됨에대해 비관하는 사람에 속한다. 시의 미묘한 나약함에 대해서 어떤 때는 눈물겹고 어떤 때는 지겹고 어떤 때는 그게 진짜 가능성같지만, 사실은 대체로 그게 참 치욕스럽다. 그 치욕이 내 발가락에서 발아하여 허벅지를 타고 허리를 감고 가슴을 스쳐 목덜미즈음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할 때에, 위의 문장을 무심고 적었다. 적어두고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펼쳐보았다.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있다 ‘사실상 모든 시에는」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어느 날은 새벽 네시에 10cm의 〈새벽 네시〉라는 노래를 들으며, 새벽 네시의 가능성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었다. 새벽 네시는 하루가 얼마가 남았는지를 생각할 수 없는 곤란한 시간이지만, 하루가 시작되려면얼마나 남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설레는 시간이다. 하루 24시간중에 그나마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미묘한 시간인 것이다. 얼마나 남았는지와 일말의 가능성, 이것 역시도 쉼브르스카 시 [선택의 가능성]에서 본 문장이었다. - P175

의 가능성」에서다시, 쉼보르스카를 읽었다. 오후 네 시쯤 책상에 앉아서 읽기시작하여 새벽 네 시까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단숨에 읽었다. 연필을 들고 얼마나 많은 밑줄을 그었는지 모른다. 페이지 귀퉁이를 얼마나 많이 접었는지 모른다. 그 히말라야에서 나는 대체 쉼보르스카의 무엇을 읽은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름다운이미지와 매혹적인 시어에 대한 결핍감을 왜 느꼈는지,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루한 논문에서나 나올 법한 어떤 단어들이, 아버지의 입술을 통해서나 들었을 법한 고루한 단어들이 내가 좋아하던 시들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무미건조한 플롯들이 페이지마다 소신에 찬 어조 위에 얹어져 있었다. 처음 느꼈던 결핍감은 그 결핍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야 마는 소신으로 다가왔다. - P176

나의 육체에도 푸른 빛이 점등되고 있었다. 물속에 풀려나가는 푸른 잉크 한 방울처럼, 푸른 멍 하나가 온몸에 번져갔다. 나는 푸른 멍이 든, 불길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내내 말했듯이,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보다
더 절박한 질문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에서 - P178

우리는 알고 있다. 봄날에 내렸던 어이없는 폭설도 극렬한 투쟁임을, 아스팔트 균열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잡풀도 투쟁하는중임을 엉뚱한 행동, 기괴한 상상력, 불편한 공간, 까칠한 성격등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우울하고 슬프며, 서럽고 괴로워 흐물대는 우리의 실상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이 기괴한 모습을지닌 텍스트, 이 우울한 모습으로 무장된 사람을 극구 옹호하는 것도 우리에겐 투쟁의 일부다. 여기엔 싸우고 이겨서 쟁취해낼 거란 의지 따위는 없다. 낙오를 각오한다는 의지 또한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다는 천성과 이렇게 해야만 내가 조금은 행복해진다는 진심이 있을 뿐이다. 내팽개쳐진,
인간의 천성과 인간의 진심을 사모하기 위해 삶을 낭비해도 괜찮다는, 투쟁이 있을 뿐이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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