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상은 내 머릿속에 있다. 내 몸은 세상에 있다.
2세상은 내 생각이다. 나는 세상이다. 세상은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은 세상이다. 나의 세상과 당신의 세상은 같지 않다.
3인간 세상 외에는 세상이 없다. (여기서 인간 세상은 보이고, 느껴지고, 들리고, 생각되고, 상상될 수 있는 모든 걸 의미한다.)
4세상에 객관적 존재는 없다. 존재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은 필연적으로 제 - P11
한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은 한계를 지니며 어딘가에서 멈춘다. 하지만 내게 세상이 멈추는 지점에서 반드시 당신에게도세상이 멈추는 건 아니다.
5예술 이론은(그런 게 가능하다면) 인간의 지각 이론과 분리될 수 없다.
6하지만 우리의 지각만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 (우리가그 지각들을 표현하는 수단)도 제한적이다.
7언어는 경험이 아니다.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이다.
8그렇다면 언어의 경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세상을 주었다가 빼앗아 간다. 단숨에
9인간의 타락은 죄나 위반, 부도덕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가 경험을 정복하는 것의 문제다. 즉, 세상이 말 속으로 떨 - P12
어지는 것, 눈에서 입으로 내려가는 체험의 문제다. 그 거리는8센티미터쯤 된다.
10눈은 유동적인 세상을 본다. 말은 그 흐름을 붙잡고 고정하려는 시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바꾸기를 고집한다. 그래서 시가 쓰이고 일상의 삶이 말로 표현된다. 그것은보편적 절망을 방지하는 그리고 야기하기도 하는믿음이다.
11예술은 <인간의 기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크리스토퍼 말로). 거울에 비치는 상(像)은 적절하다ㅡ 그리고 깨지기 쉽다. 거울을 박살 내어 그 조각들을 재배열해 보라. 결과는 여전히무언가의 반영일 것이다. 어떤 조합이라도 가능하고 조각들을원하는 개수만큼 빼도 된다. 단 한가지 필요조건은 적어도 파편 하나는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햄릿 Hamlet』에서자연을 거울에 비추는 것은* 크리스토퍼 말로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든 것들은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자연 자체는 그렇지 않대도 말이다. (세상이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 - P13
서건(고대건 현대건, 고전주의 낭만주의건) 예술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인간의 흉내이다.)
12말에 대한 믿음을 나는 고전주의라 부른다. 말에 대한 의심은 낭만주의라 부른다. 고전주의자는 미래를 믿는다. 낭만주의자는 자신이 실망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욕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는 세상이 말로 표현될 수 없으며 말의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3언어에서 멀어진 기분을 느끼는 건 자신의 몸을 잃는 것과같다. 말이 당신을 저버리면 당신은 무의 상(像)에 녹아든다. 사라져 버린다.
1967년 - P14
내가 볼 때 중요한 것은굶주림을 방치하는 문화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소위 문화라는 것으로부터 굶주림의 힘과동일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아이디어를이끌어 내는 것이다. - 앙토냉 아르토
한 젊은이가 도시로 온다. 이름도 집도 직장도 없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도시로 왔다. 그는 글을 쓴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죽기 일보직전까지 굶주린다. 그 도시는 크리스티아나(현재의 오슬로)이고 때는 1890년이다. 젊은이는 거리를 헤맨다. 도시는 굶주림의 미로이고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매일 똑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는 지역 신문사에 보내려고 청탁받지 않은 글들을 쓴다. - P17
소설 『굶주림』에는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 예술의 성격에관해 뭔가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다. 그것은 예술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의 생활과 구분이 되지 않는 예술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서전적 과도함의 예술이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예술이란 예술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직접적 표출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예술이란 굶주림의예술, 혹은 결핍·필연. 욕망의 예술인 것이다. 이 예술 속에서확실함은 의심스러움으로 바뀌고 형태는 과정에 밀려난다. 이제 임의로 질서를 부여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만큼 어떤 명료성을 획득하려는 의무는 더 강해진다. 그것은 세상에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 질문을 직접살아 본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사뮈엘 베케트는 말했다. - P30
장편소설 「하늘의 푸른빛 Le Bleu du ciel』의 서문에서 조르주바타유는 실험을 목적으로 집필된 책과 간절한 욕구에 의해집필된 책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바타유는 말한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교란을 일으키는 힘이며 <공포와 전율 속에서 마주친 현존으로서 인생의 진실과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문학은 연속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일련의 일탈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소중하게여기게 될 책은 통상 집필 당시의 문학 사상에 역행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바타유는 모든 위대한 작품의 집필동기 혹은 하나의 불꽃에 대해 <분노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 불꽃은 의지를 발동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고 언제나 문학 바깥의 원천에서 온다. 그는 말한다. <저자가 꼭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없이 쓴 책을 우리가 어떻게 오래 붙잡고 있겠는가?> 자의식적인 실험은 문학적 규약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싶다는 간절한 소망에서 나온다. - P34
초기 아방가르드 운동 중 하나인 다다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비록 단명했지만(1916년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야간 행사로 시작되어 1922년 트리스탄 차라의 희곡 「가스가 들어찬 마음Le Coeur à gaz」에 대한 격렬한 항의로 사실상 끝나 버렸다) 그 정신은 저 멀리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로부터 50년 이상이 흐른 지금도 철철이 다다에 관한 책이나 전시회가 기획된다. 우리가 다다가 제기한 문제들을 추적하는 데는 학술적 관심 이상의 이유가 있다. 다다의 질문이 곧 우리의 질문인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과 행동, 행동으로서의 예술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다다에 시선을 돌려 하나의 원천 혹은 사례를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는 다다라는 운동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한편 그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P45
존 애시버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친밀하게 말을 걸어오는 시인이다. 우리는 그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인식하고 그의 언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언어이다. 하지만 그처럼우리의 확실성을 사정없이 허물어 버리고, 또 그처럼 풍성하게우리 의식의 애매모호한 지역을 탐구하는 시인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방심했다가 균형을 잃고 놀라게 된다. 어조의 단조로움과 친밀함에 유혹당하기 때문에 일탈감은 그만큼 더 혼란스럽다. 평범한 사물이 기이한 사물로 바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해 보였던 것이 갑자기 의심스러운 무엇으로 돌변해 버린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나 어떤 것도 예전과 같지 않다. - P54
그의 시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목적과 방식의 일관성이다. 애초부터 로라 라이딩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알았으며, 자신의 시를 독립된 서정시가 아니라 거대한 시적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 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바람이 아니다. 집 없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우리를 유혹하는변덕스러운 기분이 아니다. 우리는 더 잘 분간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낯선 자들을 우리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굳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 바람의 이유The Why of the Wind 중에서
이 시는 라이딩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담화의 추상적 차원, - P61
파울첼란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고 프랑스에살면서 독일어로 시를 썼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희생자였고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으며 쉰이 되기 전에 자살했다. 첼란은추방의 시인이었고 자신이 쓴 시의 언어에서조차 국외자였다. 그의 생애는 고통의 전형적 사례였고 20세기 중반 유럽에서 벌어진 일탈과 파괴의 표상이었다. 그의 시는 도전적일 정도로 특이하고 언제나 절대적으로 그의 것이었다. 독일에서 그는 릴케와 트라클의 동급으로 여겨지고 횔덜린의 형이상학적 서정성을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다른 곳에서도 그의 작품은 높이 평가되는데, 조지 스타이너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첼란은1945년 이후 유럽의 주요 시인 중 한사람이다. 하지만 첼란은아주 읽기 어려운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조밀하면서도 불투명하다. 그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특히 후기 시는 너무나 격언적이어서 여러 번 거푸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주 지적이고 현기증 나는 언어의 힘을 구사하는 첼란 시 - P83
는 페이지 위에서 폭발적인 힘으로 튀어 오르고, 따라서 그의시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아주 인상적인 경험으로 그 만남을기억하게 된다. 가령 홉킨스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끼는 기이하면서도 흥분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 P84
따라서 시는 이미 알려진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글쓰기 행위는 첼란에게 있어개인적 모험을 요구한다. 첼란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정립하고 이 세상에 우뚝 서기 위해 시를 썼다고 할수 있다. 바로 이런 절박한 필요의 느낌이 독자들에게 강하게호소한다. 첼란 시는 문학적 유물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 P90
반 고흐를 논한 1946년의 논문에서 마이어 샤피로는 리얼리즘의 개념을 진술했는데, 그것은 첼란 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나는 오늘날 통용되는 좁은 의미의 리얼리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이란 결국 외부적 리얼리티를 강력한욕망이나 욕구의 대상, 인간이 소유하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태도이다. 이 때문에 리얼리티는 예술의 필연적 터전이 된다> 이어 마이어 교수는 <나는 가능한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두렵습니다>라는 고흐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같이 주장한다. <개개의 대상을 축소하는 원근법에 대항하면서 고흐는 대상을 실물보다 더 크게 만든다. 물감을 두껍게 사용하는 것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사물의 이미지에 유형의물성을 포함하고, 사물 못지않게 단단하고 구체적인 것을 캔버스 위에 창조하려는 광기 어린 노력의 일환이다.>인생관과 예술관이 고흐와 비슷한 첼란은, 고흐가 물감을사용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작품은그 정신이 비슷한 바가 많다. 반 고흐의 화필이나 첼란의 문장 - P90
은 구상화를 지향하지 않았다. 그들이 볼 때 <객관적> 세계는그들 자신의 지각과 깊이 연계되어 있었다. 리얼리티에 침투하려는 노력 없이 리얼리티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예술을 계속해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고 작업해 나가고자했던 태도는 이런 욕망과 관련이 있다. 반 고흐가 그린 대상이<리얼리티처럼 리얼한 구체성을 획득한 것과 마찬가지로, 첼란의 시어도 사물의 조밀성을 지녔다. 첼란은 시어에 실체성을부여했고, 그리하여 시어가 단순히 거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이 세상, 혹은 그의 세상의 일부가 되게 했다. - P91
회흑색 황무지 저 너머에 실낱 같은 햇살. 나무 높이의 생각은 빛의 음조를 터트리고 인류를 넘어선 곳에 - P96
아직 부를만한 노래가 있나니.
이러한 시들에서 첼란은 목표를 아주 높게 설정했고, 그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넘어서야 했다. 정체성에 매달리기 위해 허공 속으로 삶을 밀어 넣어야 했다. 처음부터 재앙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투쟁이었다. 시가 영혼을구제하거나 세상을 회복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시는단지 주어진 것을 확인할 뿐이니까. 결국 첼란의 절망은 너무커져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리하여 세상은 첼란에게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므로 더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당신은 나의 죽음. 모든 것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당신을 붙들 수 있으리라.
1975년 - P97
앨런 맨델봄은 번역 시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웅가레티의 <나>는 멀리 나아간다기보다 장중하고 느릿느릿하며집중적이다. 그의 동경은 드라마가 된다. 《나》가 절망의 무작위적 중심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묶인 신체이기 때문이다. 그<나>는 단단하고 뻣뻣하고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소망하기보다 의지를 발동하고, 몽상하기보다 《발굴》한다.>웅가레티의 후기 시들은 약속된 땅이라는 단 하나의 이미지안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것은 『아이네이스Aeneis(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와 성경에 나오는 약속의 땅이다. 로마와 사막을위한 약속의 땅이다. 「칸초네 Canzone」, 「디도의 심리 상태를묘사하는 코러스Cori descrittividi stati d‘animo di Didone」, 「팔리누루스를 위한 송가Recitativo di Palinuro」, 「약속된 땅을위한 최후의 코러스Ultimi cori per la Terra Promessa」 같은 주요시는 그의 모든 전작을 언급하면서 그것들에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베르길리우스의 무대를 시에 가져왔다는 것은 시력(詩歷) 말기에 귀향했다는 뜻이다. 사막은 젊은시절의 풍경을 되살려 놓았지만 또다시 그를 최후의 영원한추방 속으로 밀어붙인다.
우리는 마음속에 남은 초창기의 이미지를 품은 채 사막을 건넌다. - P106
살아 있는 사람이 약속된 땅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1952년과 1960년 사이에 쓰인 「최후의 코러스」는 「노인의공책// Taccuino del Vecchio』에 수록되었다. 이 시는 웅가레티 시의 본질적 주제들을 다시 천명한다. 웅가레티의 우주는 그대로남아 있고 그는 초기 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언어로 죽음을 준비한다. 그의 진짜 죽음, 그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최후의 죽음.
솔개는 그 푸른 발톱으로 나를 잡는다. 태양의 정점에 올라가 나를 사막 위로 떨어트려 갈까마귀의 밥으로 준다. 나 이제 더는 어깨에 진흙을 묻히지 않으리. 불은 내가 깨끗하다는 것을 알리라. 꺽꺽거리는 부리들 자칼의 냄새나는 아가리. 이어 그는 모래밭을 지팡이로 헤집어 가며 찾으리라. 그 베두인족은 희고도 흰 뼈를 가리키리라.
1976년 - P107
에드몽 자베스는 1912년 부유한 이집트 유대인의 아들로태어나 프랑스어를 쓰는 카이로 동네에서 성장했다. 젊은 시절막스 자코브 폴 엘뤼아르, 르네 샤르와 교류했고 1940년대와1950년대에 자그마한 시집을 여러 권 발간했는데, 거기 실린시들은 나중에 나는 나의 집을 짓는다 Je batis ma demeure』에다시 수록되었다. 그 시점에 이르러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확고해졌지만 프랑스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널리 알려지지는않았다. 1956년 수에즈 위기는 자베스의 생활과 작품 활동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세르체제에 의해 추방되어 프랑스 정착하게 된 그는, 집과 재산을 모두 빼앗긴 채 난생처음 유대인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자신이유대인이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사실로서 삶의 우연한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고통받게 되었고 그리하여 타자가 되었다. 이 갑작스러운 추방의감각이 그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이상학이 되었다. 어려운 시절이 뒤따라왔다. 자베스는 파리에 직장을 잡았고그의 글은 대부분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집필되었다. 파리에아리마 출판사에서 그의 시집이 - P109
나왔다. 그 시집은 앞으로 다가올 것들의 선언이라기보다 새로운 파리 생활과 흘러가버린 과거 사이의 경계 짓기였다. 자베스는 탈무드와 카발라 등 유대 텍스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독서가 유대교 신앙으로의 복귀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유대의 역사 및 사상과 자신의 연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베스를 감동케 한 것은 토라라는 1차 텍스트보다 디아스포라에서 집필된 저술과 랍비의 주석이었다. 자베스는 이런 책들에서 유대인의 강한 힘을 발견했고 그 힘이 생존의 양식을 제공했음을 알아보았다. 추방과 메시아의 강림 사이에 놓인 긴시간 동안 하느님의 사람들은 성경의 사람들이 되었다. 자베스는성경이 고국의 의미와 무게를 감당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 P110
마지막으로 자베스의 책은 19세기말에 시작된, 지속적인 프랑스 시적 전통의 일환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베스는 이 전통을 유대의 담론과 결합하려 한다. 그는 이 작업을 강한 확신 속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둘의 결합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음의 서』는 자베스가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대부분이 기독교신자인 이 세상에서 모든 시인은 유대인이다.> 바로 이런 정신이 자베스 작품의정중앙에 놓인 핵이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온다. 자베스가 볼 때, 먼저 글쓰기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는 대학살에 관해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언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려면 작가는 자신을 의심의 유배지, 불확실성의 사막으로 추방해야 한다. 사실상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부재의 시학을 창조하는것이다.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말을 들을 수는 있고 그들의 목소리는 <책>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1976년 - P117
우리는 조금씩 카프카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그는 현대 작가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접근하기가 까다로우며 생애와예술은 자주 오해받아 왔다. 그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친구 막스 브로트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카프카라는 이름은 1924년 그의 사망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브로트는 미발표 유고를 사후에 모두 불태워 달라는 카프카의 부탁을 무시해버렸다. 카프카 작품은 등장 자체가 미스터리와 모호함에 둘러싸여 있다. 왜 그의 장편소설들은 미완성인가? 그 탁월함과 독창성에도 왜 저자는 소설들을 파기하라고 했을까? 카프카에게는 일정한 이미지가 있었다. 몸을 움츠리는 관료,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피해자, 일종의 그림자 인간 대중의 마음속에서 그는 『변신 DieVerwandlung』의 그레고르 잠자가 되었다. - P118
톡 놀라운 사람입카프카는 엄청난 모순을 내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친구와친지들에게 그는 놀라운 재치와 매력을 가진 사람, 아주 관대한 사람, 멋지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사람, 백절불굴의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들이 카프카에 관해 써놓은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의 희생정신, 순수함과 성실함, 잊어버릴수 없는 인품 등에 강한 인상을 받게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만 한 사람은 없었다.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Gespräche mitKafkas에서 그는 성인으로 묘사되기까지 했다. 반면에 일기Tagebricher 속의 카프카는 자기 자신과 대결하는 사람, 자기회의로 괴로워하는 사람, 거의 병적일 정도로 자신의 단점을의식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카프카는 결혼, 가정, 공동체, 글쓰기의 욕구(그 때문에 약혼은 두 번이나 파국을 맞이했다) 사이에서 분열되었고, 가정과 위압적인 아버지의 숨 막히는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기 향상의 노력(정원 가꾸기, 채식주의, 목수 일, 히브리어 공부 등)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써놓은 글을 깊이 확신하지 못했다(발행인, 평론가, 친구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 - P119
작가의 편지를 읽는 것은 때때로 난처한 일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영역에 침범해 들어간다는 느낌, 일반인을 의식하지 않고 쓴 글을 엿본다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독자로서의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주는 대목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는 일차적인 목적이 그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경우 편지는기본 연구 자료이다. 일기의 내면적 싸움과 전기의 객관적 이야기 중간쯤에 해당하는 그의 편지들은 카프카와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게 해주고, 카프카라는 위인의 맥락 속으로 침투해들어가는 수단을 제공한다. 여기서 하나의 결론이 자연스럽게도출된다. 카프카는 타고난 작가였고 엉성한 문장을 쓴다거나자신을 서투르게 표현하는 일 따위는 아예 못하는 사람이었다. - P120
브로트는 카프카의 편지를 제일 많이 받은 친구였고, 우정을 나눈 20년 동안 카프카는 브로트에게 영혼을 드러내 보였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들은 서한집에 실린 다른 편지들보다도 내밀하면서도 개인적이고 문학적인 문제, 그리고 카프카의일상생활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을 특히 많이 다룬다. 또 카프카가 말년에 옮겨 다닌 여러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곳들의 분위기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 편지들을 읽노라면 두사람의 깊은 우정, 끈끈한 신뢰, 강한 유대에 감탄하게 된다. 그것들만으로도 하나의 놀라운 책이 될 법하다. 그밖에 다른 편지들도 있다. 카프카가 책의 발행인인 쿠르트 볼프에게 보낸편지에는 겸손한 내용이 가득하다. 자신의 작품을 하도 낮추어말해서 그런 단편소설을 발간해 주는 볼프가 마치 특혜를 베푼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카프카는 정서 장애를 겪는 어린소녀 민제 아이스너와도 편지를 교환했는데, 그 소녀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격려해 주고, 또 자상한 조언도 하면서 어려운청소년기를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었다. - P122
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관점에서 카프카를 관찰할 수 있고 또다양한 사람과 교제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개성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지켜볼 수 있고, 인간 카프카와 대면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카프카 읽기는 영구히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여덟 페이지는 <대화 쪽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임종의 병상에 누워있던 카프카가 도라 디아만트와 로베르트 클롭슈토크에게 휘갈겨 쓴 짧은 글들이다. 두 친구는카프카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고 카프카는 그들을 자신의<작은 가족>이라고 불렀다. 카프카는 후두 결핵을 앓았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식사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행위였기때문에 병이 말기로 진행되는 동안 그는 거의 굶어 죽다시피했다. 이 짧은 쪽지들은 카프카가 쓴 모든 글 중에서 가장 슬픈내용을 담고 있다. 카프카는 꽃으로 둘러싸인 병상에 누워서두 친구의 시중을 받는다. 단편소설 「단식 예술가의 교정을보면서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P123
그저 물을 한 사발 크게 마실 수 있다면. (…) 작약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직접 보살펴 주고 싶어. ・・……) 라일락을양지로 옮겨 놔 줘. (…………) 어쩌면 앞으로 일주일은 더 버틸수 있을 거야. (……) 뉘앙스란 묘한 거야. (…) 내가 당신들 얼굴에 기침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 (………) 내가 당신들 - P123
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이건 미친 짓이야. (・・・・・…) 공포, 공포, 공포 (·····…) 주된 이야깃거리가 없다면 대화의 주제는없는 거야. (……) 문제는 말이야, 내가 물을 단 한 컵도 마시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좋은 일이지만. (………) 저거 멋지지 않아? 저라일락 죽어가면서도 물을 마시고 계속 들이켜네. (……) 잠시 당신들 손을내 이마에 얹어 나를 격려해 줘.
마침내 의사가 그를 살펴보고 나갔다.
그래, 도우러 온 사람이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시 가네.
그는 마흔한 살이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득 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는 나이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죽음은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 준다.
1977년 - P124
1. 찰스 레즈니코프는 눈의 시인이다. 그의 작품의 문턱을 넘는 건 물질의 선사(先史)를 꿰뚫어 보는 것이며, 아직 언어가창조되지 않은 세계에 노출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시에서 보기는 늘 말하기에 선행한다. 그의 시적 표현은 눈의소산이며,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의 비정하고 해독되지 않은암호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라는 행위는 현실의질서 정연한 배열이라기보다 현실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사물들과 그 이름들 사이에 자리하는 과정이다. 시인이 그 조용한 중간 지대에 서서 주의 깊게 응시함으로써 사물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보이고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처음 태어난 인간인 동시에 마지막 인간이다. 아담이며 만대의 끝, 바벨탑을 세운 자들의 무언의 후예다. 왜냐하면 그는 눈으로부터 말하는 법을 배워서 입으로 보는 습성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 P125
요점은, 요점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전통적 의미에서는말이다. 이 시들은 보편적 진리를 주입하거나 기교로 독자를감동시키거나 체험의 모호성을 끌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시들의 목적은, 한마디로 명료함이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의명료함. 그러나 이 시들이 불안하리만큼 검소하다고 해서 이들이 지닌 야망의 대담함을 보지 못해선 안 된다. 지극히 짧은이 시들도 레즈니코프 시학의 요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레즈니코프 시학은 글쓰기 이론인 동시에 시적 순간의 윤리학이며, 그 메시지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시는 단순한 말들의 구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그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언가를 위한 것이다. - P127
메서는 좀처럼 어디든 스케치북 없이는 가지 않는다. 그는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격정적으로 달려들어 빠른 손놀림으로 붓을 휘두른다. 순간순간 화판에서 눈을 들어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곁눈질하면서. 그러므로 메서와 함께 앉아식사를 할 때에는 언제나 그의 화판 앞에서 당신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난 7~8년 동안 우리는 내가 그 점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만큼 여러 번 그런 과정을 거쳤다. 나는 그가 처음 찾아왔을 때 그에게 타자기를 가리켰던 것은 기억하지만 그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인가 이틀 뒤에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날 오후 나는 집에 없었지만 그는 아내에게 타자기를 한 번 더 살펴보러 1층에 있는- 내 방으로 내려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내 타자기가 그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부터는 그가 어떤 식으로든 타자기를 설득해 영혼을 드러내도록 했다고까지 믿게 되었다. - P203
그 뒤로도 샘은 몇 번을 더 찾아왔고 찾아올 때마다 새로 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는 홀린 듯내 타자기에 빠져들었고 조금씩 그 생명없는 물체를 개성과품격을 지닌 존재로 바꾸었다. 그 타자기는 이제 나름대로의기분과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울적한 분노와 열광적인 기쁨을표현하며, 금속으로 된 회색 몸체 안에 갇혀 있는 심장이 뛰는소리까지도 들리는 지경이다. ‘나는 그 모든 일로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림들은 훌륭하게 완성되었고 나는 내 타자기가 그처럼 가치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그와 동시에 메서는 나로 하여금 내 오랜 동반자를 다른 식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지금도 나는 적응 과정에 있다. 그러나 내가이 그림들 중 하나(우리 집 거실 벽에 두 점이 걸려 있다)를 볼때면 내 타자기를 물체로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물체가 인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 P204
오래되어 낡고 시대에 뒤처진 고물, 기억으로부터 빠르게사라져 가는 시대의 유물인 이 타자기는 내게서 떠난 적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 지낸 9천4백 일을 돌이켜 보는 동안에도, 이높은 지금 내 앞에 앉아서 오래되고 귀에 익은 음악을 토닥토닥 내보낸다. 주말 동안 우리는 코네티컷에 와 있다. 여름이다. 그리고 창문 밖의 아침은 따갑고 푸르고 아름답다. 지금 타자기는 주방 식탁 위에 있고 내 손은 그 타자기에 놓여 있다. 한글자 한 글자씩, 나는 그 타자기가 이런 단어들을 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00년 7월 2일 - P205
「뉴욕New York』 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
<뉴욕>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센트럴 파크 남쪽의 콜럼버스 서클 모퉁이에 있는우리 할아버지네 60층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풍경이다. 창문은 열려 있고, 나는 손에 1페니짜리 동전을 쥐고 창가에서서, 동전이 도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려고 그것을 창밖으로내던지려 하고 있다. 그때 나는 기껏해야 네 살이나 다섯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막 손가락을 펴려는 순간,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안 돼! 그 동전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머리 속으로 곧장 뚫고 들어갈 거야!」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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