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탈리아 하면 으레 옛 로마 제국과 베네치아, 피렌체 같은중세 도시국가를 떠올린다. 그래서 대다수 여행자들은 이탈리아반도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밀라노-베네치아-피렌체-로마-나폴리를다녀온다. 이는 1786년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가 선보였던 이탈리아기행 루트와도 비슷하다. 당시 30대 초반의 괴테는 "로마에 들어섰을때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탈리아에서 큰영감을 받았다. 괴테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이탈리아 여행코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크게 변함이 없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이한 이탈리아 여행자다. 나의 여행은 이런고전적인 이탈리아 여행 루트에서 한참 벗어났다.
로마-베네치아-나폴리 등을 대신해 내가 고른 도시는 볼로냐였다.
나는 2019년 이탈리아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레스토랑 인턴실습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나는 볼로냐와 시칠리아에 - P6

각각 한 달씩 있다가 귀국했다.
볼로냐와 시칠리아를 고른 데에는 학교에서 강의를 했던셰프들의 영향이 컸다. ICIF는 토리노가 주도인 이탈리아 북부피에몬테주에 있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피에몬테는 프랑스 문화와 이탈리아 문화의 교차점에 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런데 이 자부심 강한 피에몬테 사람들이 이탈리아 맛의 원조로 꼽는 도시가 바로볼로냐와 시칠리아다.
볼로냐가 자리한 에밀리아로마냐주는 이탈리아인들의골수라고 할 수 있는 치즈와 살루미 (햄)이 유명하다. 우리가 ‘샌드위치 햄‘으로 부르는 커다랗고 둥근 햄은 볼로냐에서 만든 모르타델라에서 시작되었다. 이 햄은 신성로마제국을 통해 스페인으로 전해졌고 남미로 퍼졌다. 이 햄뿐 아니라 이탈리아인의자존심으로 불리는 돼지 뒷다리로 만드는 생햄인 프로슈토의 집산지도 볼로냐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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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생 여정에서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최상의 장비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몽테뉴의 말입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하고메모해두었는데요, 여러분은 이 표현 어떠세요? 저는 접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어요. 온몸, 온 삶으로 동의합니다. 몸에 물이 필요하듯 삶에 책이 필요했어요. 매일매일 일상은 비슷한데 왜 매일매일 새삼스럽게 힘이 들까요.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으면 왜 또 발목을 잡는 문제들이 불쑥 등장하는지. 한 번씩 알수 없는 허무감에 시달리는데, 환절기 감기처럼 찾아오는 번뇌를 풀어가거나 잠시 도망치려고 할 때 책에 크게 의지했습니다. 제게 책은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고 마음을 잠잠하게 해주는, 현명하고 너그러운 존재죠. 멋진 책을 읽으면 몸에 통째로 저장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책을 빨리 떠나보내지 않고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이 저에겐 글쓰기입니다. - P225

당신을 보려고 애쓸수록
내 두 눈이
혼란스러워진다
지금 이 순간에조차
굶주린 아이처럼
당신 자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그들이 찾는 것은
당신 얼굴이 아니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건
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을
나 자신의
일부에 가깝게 만드는 것.


미국 시인 오드리 로드의 <치료Therapy>라는 시입니다. - P230

떤 느낌이 들었나요? 저는 "내가 만들고 싶은 건 / 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 당신을 나 자신의 일부에 가깝게 만드는 것."에서 가슴이 쿵 했거든요. 황지우 시인의 <나는 너다>라는 연작시도 생각이 났고요. 당신을 나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게 아니라 일부에 가깝게 만든다는 표현이 시적이어서 울림이컸어요. 완전한 합일이 아니라 하나됨을 위해 애쓰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요. 저 시구에서 "시"와 "당신"의 자리에 ‘글‘을넣어도 될 것 같아요.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글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글을
나 자신의
일부에 가깝게 만드는 것. - P231

그렇습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는 시간도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 느낌, 의견을 최대한 나에 가깝게 만드는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시를 읽는 게 도움이 되나요?" 이렇게묻는 분을 종종 만납니다. 아마 제가 쓴 책에 시가 많이 나와서 그런 듯해요. - P231

제 글쓰기는 시에서 매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에 좋은 영양제를 챙겨 먹듯이 글 쓰는 데 도움받으려고 시를 의도적으로 골라 읽은 건 아니고, 단지 좋아해서읽다보니 시가 글에 스민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가 글쓰기에 미친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증명하며 답하긴 어렵습니다만, 시에서 얻어온 것들을 하나씩 짚어볼게요.
시를 허겁지겁 폭식하듯 읽은 시기는 인생이 가장 괴로웠을 때였어요. 정신이 탁해지고 마음이 울렁이면 출구가 필요했고, 그때마다 시집을 폈어요. 시에는 어지러운 것들, 하찮은것들, 삐뚤어진 것들, 버려진 것들, 다친 것들의 이야기가 늘나와요. 읽노라면 내 안의 어둠이 환하게 드러났어요. 특히 저는 최승자 시인을 가장 좋아해요. 고통의 발산과 응축으로 단련된 그의 단단한 시어를 보며 고통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 P232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다음에 "생산했고/생산했고"
라는 식으로 생산했고"라는 시어가 3 행, 4행에 반복되죠. 생산했고/ ~생산했으며 "로 조사 한 개만 바꿔도 시의 느낌이 달라져요. 언어적 긴장이 덜해집니다. 여운이 덜 고여요. 조사 하나 바꾸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에서는 조사하나의 무게가 문장 하나의 무게와 다르지 않습니다. 피아노를칠 때 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처럼 글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조사가 만든 작은 뉘앙스 차이가 모여서 문장을 이루고 단락이되고 글이 되면서 자기만의 문체를 형성합니다. 문체의 최소 단위인 조사 하나, 단어 하나가 굉장히 낯설어지고 소중해지는 경 - P235

험을 시를 읽으며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시에서 언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어둠을 직시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시를 읽어보시라고요. 글 쓰는 사람은 문자와 단어에 민감할 때 더 정확한 단어, 속 깊은 단어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 읽기가 녹록지 않죠.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아요. 읽어도 그 뜻을 도통 모르겠다면서 말이죠. 최승자 시인의 시는 비교적 이해하기 나은 편이에요. 이번 글 도입부에 소개한 오드리 로드의 시집 <블랙 유니콘》도 글쓰기 수업 교재로 썼는데, 게시판에 질문이 올라왔어요. 도저히안 읽힌다고요. "시 근육이 없는 사람은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수능 시험 끝나고 시 한 편도 안 읽어봤어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요. 느낌도 안 와요." 이런 항의성 질문은 시수업마다 반복됩니다. 그래서 시 읽는 방법을 친절하게 답변해드렸어요. 그 답변을 공개합니다. 별건 아닙니다만. - P236

시 읽는 법
1번.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는 읽고서 넘어간다.
2번 ‘이러다가 한 편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도 넘어간다.
3번. 어쩌다 하나 얻어걸리는 시구가 있으면 밑줄을 긋는다.
4번. 맨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일독한 후 해제까지 읽는다.
5번. 다시 시집 한 앞으로 가서 그나마 읽을 만했던 시 위주로 골라서 소리 내어 읽는다.
6번. 세상에는 원래 이해 안 되는 말이 많다는 것, 내가 모르는 게않다는 엄정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7번. 또다시 시집을 편다.
8번. 1~7번을 체력과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반복한다. - P236

저도 시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한 번 읽고 나면 이게 무슨말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하죠.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시를 읽는 것 같아요. 글자는 알아도 맥락을 모르는 문장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에 대한 환기이죠. ‘왜내말을 못알아들어!‘라고 서로 아우성치는 인간 세상에 대한 축소판이 시집입니다.
시를 읽으면 언어에 대한 유희와 긴장과 겸손을 잃지 않게 되더라고요.
마음에 들어오는 시 한 편 얻기가 얼마나 어렵게요. 그렇지만 운명처럼 마주한 시 한 구절은 한 사람이 한 시절을 버티게도 해줍니다. 여러분도 어서 삶에 시를 들여서 언어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탐닉하시길 바랍니다. - P237

문체는 한 작가의 고유함, 즉 글 안에 들어 있는 세계관, 정서,
문제의식, 표현력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글쓴이의 이름을 가리고 글을 읽었는데 누가 썼는지 알겠으면그 작가는 고유한 문체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죠. 저에겐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 글이 그래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어도 선생님 글인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시대의 풍속화와 삶의 세목을 그려내는 대가죠. 박완서 선생님이 쓴 글은 소설이든 산문이든 흉내 낼 수 없는 단단함과 날카로움이 있어요. 전개 속도가 빠르면서, 생활과 체험의 무게가 실린 튼튼한 문장을 쓰는
‘사실주의 문체‘의 소유자입니다. - P238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종합해보면 문장의 밀도와 온도에관한 이야기 같아요. 그래서 생각한 저의 문체는, ‘두부체? 몰랑몰랑하고 맛있고 단백질 함량이 높고 몸에도 좋잖아요. 그런 글을 쓰고 싶었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문체를 갖겠다고 의식하지 않았는데, 글을 쓰면서 ‘정확하되 아름답게쓰자‘ ‘현실을 날카롭게 짚더라도 글에 칼날을 넣지 말자‘라는신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저격하는 글이나 과격하고신랄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힘들어요. 독자로서도 그런 글을잘 읽지 못하기에 쓰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글로 담아내요. 일하다가 죽는노동자의 문제를 파헤치고, 헌신과 희생을 요구당하고 자기몫의 삶을 빼앗긴 여성의 존재, 시민권을 얻지 못하는 존재,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계속 패배하 - P239

다른 작가의 문체도 살펴볼게요.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쓴 황정은 작가도 고유한 문체를 가진 대표적인 소설가입니다.
<백의 그림자>라는 소설은 작가만의 문체를 비롯해 주제 표현등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아서 글쓰기 수업 교재로 썼었고요.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읽었을 때, 이건 정말 황정은 작가만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았던 구절이 여러군데 있지만 한 단락만 여러분께 공유해볼게요. - P241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문장이 덤덤한데 기저에는 삶에 대한 뜨거움이 있어요. 문장에 쉼표를 많이 쓰고 행도 자주 바뀌어서 장시 같고요. 소설전반에 ‘간장 한 방울‘과 같이 굉장히 사소한 것들과 무의미에가까운 덧없는 존재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읽다보면 가 - P241

슴에 점점 파문이 인다고 할까요.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라고 쓴 문장때문입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애틋하게 느껴지고, 생에 대한사유를 자극합니다.


여러분도 고유한 문체를 갖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자신의 글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고민해보는 거예요. ‘웃기면 좋겠다.‘ ‘담백한 문장을 쓰고 싶다.‘ ‘서늘하면 좋겠다.‘ ‘독자가얻어갈 게 글에 꼭 있어야 한다.‘ 이런 지향점을 두고 글을 쓰다보면 자기만의 세계관과 정서, 읽는 호흡에 따라 고유한 문체가 생기지 않을까요. 문체는 남들이 가진, 좋아 보이는 걸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고유한 본질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글쓰기는 자기 탐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P242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나의 좋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경험, 지혜를 글로 엮으면서 내 것과 의미의 파장이 맞는 다른 이의 표현을 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곁들이는 일이 ‘인용‘이죠. 저는 인용구를 즐겨 씁니다.
인용구로 이루어진 책 《쓰기의 말들》도 냈고요.
인용구를 쓸 때 주의할 점은 ‘애매하면 뺀다‘입니다. 모자를떠올려보세요. 기껏 옷 잘 입고 안 어울리는 모자를 쓰면 스타일이 망가지잖아요. 글도 마찬가지죠. 글 전반에 맞춤한 인용구를 고르는 게 관건입니다. - P244

극단 작품개발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 강의 의뢰가오기도 했죠. 이처럼 인터뷰는 소통의 도구이자 타인의 삶의맥락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쓰입니다.


우선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인터뷰가 상대의 마음을 여는 일이고, 마음은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어요. 제가 인터뷰어로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인터뷰이로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는데요, 상대의 태도에 따라 제 자세도 달라져요. 상대가 최선을 다하면 저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진지하게 임하게 되더라고요. 안 하려던 이야기도 막 하고요. 또 제가인터뷰어로서 ‘이 인터뷰, 특별히 잘하고 싶다‘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임하면 처음엔 덤덤하던 인터뷰이의 눈빛도같이 깊어지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 P250

좋아하는 영화 《캐롤》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궁금한 것들이 있는데 당신에게 물어봐도 될지……" 테레즈 (루니 마라)가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말해요. 캐롤이 답하죠. "뭐든 물어봐줘요, 제발." 아, 저는 이 장면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아요. 당신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 바로 그 장면이요. 캐롤은 중산층으로 가족이나 지인과의 관계가 피상적인 인물이에요. 주변엔 그를 전시하려고만 할 뿐, 그의 내면까지 깊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니 테레즈가 자기의 존재를 궁금해하면서 말을 걸어올 때 캐롤이 얼마나 벅찼을까요. - P250

인터뷰도 ‘나는 너를 알고 싶어‘라는 프러포즈입니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일, 인터뷰할 때 저는 두 가지를 상기해요.
첫 번째,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뭐하러 인터뷰해요"라고말하는 인터뷰이가 더러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둘도없어요. 사람은 존재 자체로 귀합니다. 역사적으로 미천한 존재, 고귀한 존재를 나누는 신분 제도가 사회에 관습처럼 남아있을 뿐이죠. 지금도 권력이 있거나 업적을 이룬 인물의 서사만 주목하죠. 그런 무의식의 지배를 받아서 우리도 사회적 성취나 쓸모에 따라 자신을 평가해요. 그런데 ‘그냥 사는 사람‘은없어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다들 엄청난 자기 서사를 품고 있어요.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요.
인터뷰해보면 ‘한 사람이 저마다 우주‘라는 말을 수긍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든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나보세요. - P251

두 번째로 상기하고 내려놓지 않는 점은 ‘그렇게 훌륭한 인물‘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던 이진순 선생님은 6년 동안 122명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많이 물어본대요. 지금까지 만난사람 중에 누가 제일 훌륭하냐고요. 이진순 선생님은 이렇게답합니다.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인터뷰하는 사람은 그 한 방과 - P251

누추함이 버무려진 이야기를 발견하고 끌어내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모자란 구석과 빛나는 구석이 있는 복합적 존재라는 것, ‘그냥 사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없다는 것. 이러한 모순을 통합해내는 게 지성입니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질문이죠. 질문은 인터뷰의 꽃입니다. 사전 준비를 잘하는 건 기본인데요, 준비한 내용에만 의존한 채 이미 아는 사실을 확인만 하고 오는 인터뷰는 좋은 인터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좋은 인터뷰란, 그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인터뷰입니다.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시간이고, 그러려면 ‘열린 질문‘이 필요합니다. - P252

인터뷰에 대해 말하려면 책 한 권으로 풀어도 모자랄 것 같은데요. 제게 인터뷰란 ‘나를 흔들어놓는 대화‘입니다. 독서와경험으로 형성된 인식의 지반이 있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들은 타인의 말이 틈을 만들어내요. 균열과 혼란에서 다른 사유로 넘어가고,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계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인터뷰가 ‘인생 수업 심화반‘ 같다는 생각을 자주하죠. 인생 수업, 일대일 과외 같기도 하고요.
"우리는 경험을 가진 개인들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구성된주체들 20이라고 미국의 페미니즘 역사학자 조앤 스콧은 말했죠. 인터뷰이는 자기 경험과 생각을 말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이 됩니다. 인터뷰어도 타인의 삶을 경유하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삶의신비를 배우는 ‘인생 수업 심화반‘에 여러분도 등록하시길 바랍니다. - P256

제 하루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굴러가요. 아이들이 학령기일 땐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고 나서 바로 책상 앞에 앉았어요.
서너 시간 쓰다가 집중력도 떨어지고 허리도 아프고, 그러면그때부터 다른 일을 처리했습니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장도 보고, 이메일 답장도 하고요. 여러분도 글을 쓰고자 한다면 ‘글쓰기와 기타 등등‘으로 하루 또는 일주일 계획을 짜보세요. 초고를 쓰기 위해 통으로 최소한 네다섯 시간을 비워두는거죠. 퇴고는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써도 되거든요. 저의 경우, 빈 문서 상태에서 뭐라도 써야 하는 초고 작업에 가장 많은에너지가 들지, 써놓은 글을 고치는 퇴고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해요. 물론 퇴고하다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도 많지만요.
글을 붙들고 있다보면 시간이 뭉텅이로 흘러가잖아요.  - P258

들지현대인은 시간의 빈자이죠. 돈에 쪼들리듯 시간에 쪼들려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라는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22 이런 사회 구조에서 어떻게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앨리스 매티슨은 말합니다. "나는 운이 좋았지만 노력도열심히 했다. 이기적이었다. 나는 글 쓰는 시간을 사수하는 법을 배웠다. "23 여러분도 글쓰기를 우선으로 하여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일상을 재편해보세요. 그렇게 써나갈때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로 살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글쓰기가 알려줄 것입니다. - P261

그래서 매일 ‘무슨 일이 있어도‘ 글 쓰는 시간이나 ‘무슨 일이 있어도‘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진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쓰는 일보다 시급한 경우가 있으니까요. 대신 글 쓰는 날을 정했어요. 칼럼 마감일이 정해지면 일주일 전에 하루를 비워놓고, 귀엽고 도도한 방해꾼 고양이 무지를 피해서 아침부터 카페에 가서 글쓰기 활동에 진입합니다. 한 1, 2년 전부터는 주로 신체 배터리가 제일 짱짱한 아침에 쓰기 시작했어요. 밤이되면 하루치 피로가 몰려오고 눈이 침침해서 글쓰기에 집중할수 없더라고요. 30대에는 취재하고 와서 새벽 한두 시까지도거뜬히 글을 썼어요.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지만 과거의 저는그랬고, 지금의 저는 아침에 초고를 씁니다. 제게 글이 잘 써지는 시간대는 배고프지 않고, 체력이 비축되어 있고, 마감을 일주일 앞둔 아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P263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해요. 글 한 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요. 글 한 편을 잘쓰더라도 글 쓴답시고 하루가 엉망이 되면, 그게 또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무엇을 위한 글인가, 회의가 들고요. 잘 살려고쓰는 건데 쓰다가 잘 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저한테 ‘잘 사는 일‘은 하루를 잘 보내는 일입니다. ‘인생‘을잘 사는 건 어려운데 ‘하루‘를 잘 보내는 건 해볼 만하죠.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한 편을 초고라도 완성하고, 아이들 먹을 닭볶음탕이라도 한 냄비 가득 만들어놓고, 카페 가서 거품 곱게 내려진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책두어 시간 읽다가 산책하고, 저녁에 친구 만나서 생맥주 한잔하면서 수다 떨고, 잠들기 전 한 시간이라도 책상 앞에 앉아 오전에 쓴 원고를 퇴고한 날. 이런 날이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하루에요.  - P264

공감합니다. 저도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마냥 놀기만 하면불안해요. 써야 할 글이 있으면 편히 놀지 못하고, 글을 쓴 뒤놀아야 개운해요. 주말이나 연휴의 무질서가 싫고요. 하지만올리버 색스가 저렇게 일 중독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데는 집안의 누군가가 재생산 노동을 해주지 않았을까 짐작해보아요.
제 손으로 밥상을 차리고 옷을 빨아 입고 타인을 돌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사는 일에 쓰는 일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당장만 쓰는사람이 아니라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에너지를 안배하고 시간을 조율하는 지혜를 각자 삶에서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 P266

앞서 리베카 솔닛,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최승자 등 수많은 작가를 언급했는데요. 저는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작가를멘토로 삼아요. 그들의 말과 글에 영향을 받았고 닮고 싶어서몸살을 앓았죠. 그렇게 쓰다가 글이 쌓이니까, 언제부턴가 다른 작가가 아니라 과거의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마음, 그야말로 ‘글쓰기의 최전선‘에있다는 긴박함과 절실함으로 다졌던 다부진 각오, 무모한 결의, 순정한 마음을 여전히 잘 간직하는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일전에 어느 분이 《쓰기의 말들>에서 "글쓰기에는 충분한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이 인상깊어서 필사했다고 말했어요. 사실 뜨끔했어요. 저야말로 시간을 안배해놓지도 않고서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며 글 못 쓰는 핑계를 댈 때가 있거든요. 젊었을 때 한 말에만 책임지고 살아도 훌륭한 인간이 되겠구나 싶었죠. 특히 글에는 온갖 사려깊은 말과 훌륭한 생각을 쏟아내니까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내가 어떻게 써야 할지는 내 글에게 물어라." - P272

대작가들은 햇살이고 물이고 바람이에요. 이 햇살과 물과바람은 자기 삶에 뿌리내린 사람에게만 지속적인 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대작가의 말과 글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녹여내지 않으면 고유한 글을 써내기 어렵죠. 멘토로 삼은작가를 모방하는 글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는 있어도 언제까지흉내만 낼 수는 없어요. 한그루 나무처럼 자기만의 중심이 있어야 하니까 글쓰기에서 궁극의 멘토는 나 자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 P273

제가 정의 내린 작가란 ‘쓰는 사람‘입니다. 나만 보는 글을쓰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 공개로 어디에서든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 그래서 이번 글 도입부에 소개한 칼럼에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말했다.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수 있겠죠. ‘쓰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라고 답하겠습니다. 작가는 독자와의관계에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독자가 당장 내 눈앞에 있든,
내가 죽은 뒤 미래에 존재하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쓰는 행위에 비로소 의미가 발생하고 작가라는 이름에 피가 도는 것 같습니다. - P275

내가 내려는 책과 유사한 도서를 찾아 참고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끝까지 긴장을 내려놓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집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결국 쓰는 일은 체력 문제이고요.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란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인데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희귀한 기적을 제외하고, 책을 쓰는 것은 경제적으로 승산 없는 도박과도 같다" 고 말합니다. 맞아요. 고역이죠. 그런데 왜 썼을까요? 자신의 첫 에세이 《바닷바람을 맞으며》에서 "바다의 생명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깊은 확신에서 우러나 이 책을 썼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확신은 무엇인가요? 그에 대한 답변이 첫 책의 주제로 담길 것입니다. - P279

능감이 저를 글쓰기 앞으로 자꾸 데려다놓는 것 같습니다. 이재밌는 글쓰기를 저만 할 수 없어서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으로 여러분과 글쓰기 이야기를 열심히 나눠봅니다.
어서 이 혼란과 재미의 세계로 건너오세요. 마중 나가 있겠습니다. - P295

세월호 1주기 즈음인 2015년 4월에 글쓰기의 최전선》이 출간되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집필하는 1년 내내 슬픔을 등짐 지고썼던 기억이 난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마감하는 중에 이태원에서 젊은 목숨 158명이 무참히 스러져갔다. 이번에도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놀러 갔다가 죽은게 아니고, 노느라 정신이 팔린 자들 때문에 죽은 것"이라던 세월호 유가족의 말이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이 시대의 절망이고 비극이다.
대참사와 대참사 사이에서 책을 내자니 고개가 숙여진다.
글쓰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쓰는가, 거듭 되묻게되는 시절. 그런데 글쓰기가 아니면 또 어떻게 슬픔에 닿을 수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사회 구성원이 맡은 바 자기 일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참사가 발생하는지 두 눈으로 보았으므로 나는 정신 차리고 슬픔에 집중하는 것으로써 쓰는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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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키우다보면 질문이 생기고, 질문은 생각을 촉발하죠. 앞선 글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서 사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와 맞닿는 내용이겠네요. 일상에서 상식과 통념에 따라 ‘생각한다‘는 자각도 없이 익숙한 대로 느끼고 판단하며 살잖아요. 이렇게 시스템화된 사고의 회로에 중단이 일어날 때, 진짜 나의 생각이 시작됩니다. 그러려면 부단히 자각해야 하는것 같아요. 마치 그냥 앉아 있으면 허리랑 어깨가 굽기 쉬운데, 일상에서 ‘허리 펴기‘를 의식해서 자세를 잡아야 체형을 바로잡을 수 있듯이요. ‘생각 펴기‘ ‘생각 키우기‘를 의식적으로 해야 질문하는 몸을 만들 수 있겠죠.


제가 아는 질문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은 ‘낯선 환경에 놓여보기‘ 그리고 ‘이방인 되기‘예요. 일상에서 생각하고 질문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다르게 생각할 계기가 잘 없어요. 저는 일 때문에 낯선 환경에 종종 놓입니다. - P178

강연이나 취재 제안이 왔을 때 익숙한 일, 쉽게 할 수 있는일만 골라서 하면 편하겠지만 안주하기보다 낯설고도 의미 있는 주제를 다뤄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요. 학생들의 금연교육에 강연자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도 처음에는 자신이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가봤고요.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집필 제안이 왔을 때 한번 해보자고 결심한 이유도 ‘미등록 이주아동‘의 존재가 저한테 가장 먼 이웃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주아동, 이주노동자, 이주활동가의말을 들으면서 편견이 깨지고, 이주아동에 대한 제 생각을 만들어갈 수 있었죠. 책에 나온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한국에서25년을 산 인화 씨도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불편해야 생각한다고요. - P182

저는 ‘현장‘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삶이 발생하는 자리, 생생한 현실을 일깨우는 삶의 진실이 현장에 있습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낯선 이웃이나 현장을 찾아나설 때, 기존의 앎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그 혼돈의 토양에서 생각의 씨앗이 발아합니다. 여러분도 각자 찾아보세요. ‘나의 현장은 어 - P182

디인가‘ ‘내가 이방인이 되는 자리가 어디인가‘ ‘나의 가장 먼이웃은 누구인가‘ 하는 것들을요. 하지 않던 상상을 하고 현장을 기웃거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생각을 키우는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어딜 가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같은 장소도 얼마든지 낯선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 키우는 여성이 글쓰기에 좋은 환경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으면 익숙하던 일상이 날마다 한없이 낯설어지거든요. 나는 그대로인거 같은데 엄마가 되면 기존의 내가 사라지는 느낌도 드니까요. 한번은 유자녀 여성 학인이 이런 글을 썼어요. 엄마를 ‘워킹맘‘과 ‘전업맘‘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반대한다고요.  - P183

집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도 가사노동을 하기에 워킹맘이고,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도 집안일을 상당 부분 한다는 거죠. 또한 자신은 아이를 키우면서 본의아니게 직장을 관뒀는데, 전업맘이 되니 ‘집에서 노니까 좋겠다‘라는 말을 듣는대요. 전업맘과워킹맘은 엄마라는 존재를 소득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나눈, 즉 경제적 지표에 따른 구분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쓸모있는 존재는 소득이 있는 경제활동인구를 뜻하고요. ‘사람을나누는 기준이 왜 돈벌이가 됐는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글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찾은 좋은 글감이죠.


저는 의문이 들면 그 생각을 말로 많이 해보는 편이에요.  - P183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한 자기 고민을 누군가가 받아주고 그 생각에 살을 붙여주고 뒤집어서 안 보이는 면을 보여주기도 하죠. 질문이 만들어지고 발상의전환이 일어납니다.
모든 멋진 것은 협업의 산물이죠.
‘훌륭하게 생각하기‘라고 하면 부담스러운데 ‘다르게 생각하기‘라고 표현하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방인이되는 자리에 들어가보고, 마음에 걸리는 말을 붙잡아보고, 자기 생각을 말해보는 과정에서 다른 생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P185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평을 듣는 글을 고칠 방법이 없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방법이 있다고 답합니다. 방법이 없는일은 없는 거 같아요. 시간이 부족한 일은 있어도요.
처음으로 마음에 새긴 글쓰기 팁이 ‘멋진 글보다 쉬운 글을쓰라는 말이었어요. 처음에는 이 조언이 못마땅했죠. 쉬운 글은 시시하고 밋밋한데 왜 쉬운 글을 쓰라는 건지, 멋진 글을 지향해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무조건 멋지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쓰다보니까 쉬운 글을 쓰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멋진 글을 쓰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글이 추상적으로 써져요. 괜히 아는 척도 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철학 용어도 쓰고,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담지 않은 개념어도 골라 쓰고요. 물론 개념어나 관념어도 때론 필요하지만 과하면 글에 메시지가 아니라 허세만 남기도 해요. 쉬운 글을 쓰라는 건, 내가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하며 자아도취 하지 말고 독자 중심으로 독자가 알아듣도록 쓰라는 뜻입니다. "산문에서 모호하게 글을 쓰는 자는 대개 허세를 부리고 자기중심적인 자다. - P186

열린 마음과 공감하는 태도로 자기만의 목적을 넘어서 더 큰 목적을 달성하려고 글을 쓰는 자는 글이 명료할 수밖에 없다."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F. L. 루카스가 한 말입니다. - P187

동시에 글 쓰는 사람은 자기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여 구체적으로 써야 해요. 쉬운 듯 어려워요. 어떤상황을 세세하게 쓰려면 기억을 복기해 찬찬히 상황을 되짚어보고 무슨 사건을 쓸지 고민하고, 왜 좋고 나빴는지 감정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 과정에 상당한 노동이 들거든요. 힘도 들고 시간도 듭니다. 또 낱낱이 쓰려니 무언가 부끄럽고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뭉뚱그려서 추상적인 글을 쓰는 거예요. 어떤 사람의 글이 관념적이고 모호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게으름‘도 한몫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글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는 건 노동하지 않았다, 자기한테 집중하지 않았다, 감추고 싶은 게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호하고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저는 늘 자기 경험의 특정 상황에서 글쓰기의 발상을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삶의 한 장면이요.  - P188

추상적인 글쓰기를 피하는 방법 두 번째는 글을 쓸 때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 한 명을 상정해보는 겁니다. 친구한테드라마의 한 장면을 말해주듯이 글 속 인물의 행동과 감정의동선을 따라서 생생하게 써보세요.
세 번째는 글을 다 쓰고 나서 개념어, 관념어에 동그라미 쳐보세요. 그런 단어를 지우고 생활 언어로, 구체적인 동사로 바꿔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령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가끔쓴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나 다짐이 필요한 순간에만 쓰는편이다‘라는 문장을 보겠습니다. "가끔" "일" "계획" "다짐" 이런 단어가 모호해요. 계획하고 다짐한 일의 구체적 사실을 문장에 채워 넣어야죠. ‘나는 한 달 동안 글을 두 편 썼다. 필라테스 강사 자격 시험에 대비해 공부 계획을 짤 때랑 나에게 상처주는 친구를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다짐을 할 때였다.‘ 이렇게고치면 자기 상태를 더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만 했지 쓰지 않았다는 것, 언제 내가 글쓰기 앞에 서게 되는지를 인식하면 다음 문장도 찾아지겠죠. - P189

‘정확하게 쓰자‘ ‘간결하게 쓰자‘ ‘쉽게 쓰자‘ 세 가지 표현은 맥락이 비슷한 듯 다릅니다. "간결하고 쉬운 글이 좋은 글인가요?" 이 질문을 뒤집어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글이 나쁜 글인가요?"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간단하고 쉬운 글이라고 다 좋은 글이 아니고, 복잡하고 어렵다고 다 나쁜 글도 아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분법 구도에서는 좋은 질문이 안 나와요. 대답도 단순해져요. 세상일을 선악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듯이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우선 ‘쉽다‘ ‘어렵다‘라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겠죠.
쉽거나 어려운 글보단 내용이 빈약한 쉬운 글 혹은 얻어갈 내용 없이 어렵기만 한 글, 이런 글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 P191

저도 간결한 문장을 선호해서가끔 써요. 그런데 과하면 역효과가 생깁니다. 한문 투와 번역투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적절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같습니다. 독자와 소통하려는 마음보다 어휘력이나 지식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 글은 좋은 글이라고 보기어렵습니다. 쓰는 사람의 안중에 읽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독자는 다 느끼잖아요. 나쁜 글의 예를 들지는 않고 좋은 글의예를 들게요. 아서 프랭크가 《몸의 증언》에 쓴 글입니다. 

질병 그 자체는 예측가능성의 상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상의상실을 이야기한다. 요실금, 숨가쁨 혹은 건망증, 떨림과 발작, 그리고 아픈 몸으로 인한 다른 모든 "실패들."(…) 질병은 통제를 상실한 채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P192

토목만이 아니라 농사든 가사노동이든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관해 쓰면 좀 더 간결하고 쉬우면서 아름다운 글로 표현할수 있는 것 같아요.
글쓰기 책에서 말하는 ‘간단하고 쉽게 쓰라‘는 의미는 지식만 전시하는 글, 자아만 비대하고 독자의 자리가 없는 자아도취형 글을 쓰지 말라는 뜻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승객도 안 태우고 자기만 앞서가면 곤란합니다. 좋은 작가는 숙련된 기관사처럼 독자를 정확하고 안전하게 자신이 본 세계로 데려다줍니다. - P195

긴 글을 쓰고 싶다면 무르익지 않은 생각이라도 표현을 자제하기보단 SNS를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발상을 저장해두는용도로요. 글을 완성하면 블로그나 브런치같이 타인의 반응이비교적 즉각적이지 않은, 고요하고 안정적인 느낌의 플랫폼에공간을 마련해 쓰는 겁니다. 우선 얼마나 쓸지 분량을 정해보세요. ‘긴 글‘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저한테 긴 글은 A4용지에 서체 크기 10포인트를 기준으로 네 장 넘는 글이거든요.
한 장이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대략 10매이니, 원고지 30~50매 정도 분량으로 청탁이 오면 살짝 긴장하죠. 여러분도 길다고느끼는 글의 분량이 어느정도인지 헤아려보세요. - P197

처음에는 SNS에 쓰던 글의 두 배 분량을 써보겠다고 목표를세우고 그렇게 약 열 편, 스무 편 정도 글을 써보세요. 그 정도분량을 쓰는 일이 수월해지면 A4용지 한 장 반으로 분량을 또늘려보고요. 그 정도 분량이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15매 정도 됩니다. 제가 글쓰기 수업에서 내는 과제의 분량이죠. 처음글쓰기를 배우는 분에게 A4용지 한 장은 무언가를 온전히 말하기에 좀 짧고, 두 장은 길게 느껴져서 좀 부담되는 분량인 듯합니다. 한 장 반에서 두 장 사이 분량이 자기 생각 한 가지를잘 정돈해 표현해내기엔 무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쓰다보면 두 장 정도는 어느새 어려움 없이 쓰는 자신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그렇게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넘어가고 점차 써내는 분량이 늘겠죠. - P198

글의 길이와 질이 비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도 자기 한계를 조금씩 늘려가는 느낌으로 평소 쓰던 글보다 사고의 호흡이 깊은 글쓰기에 도전해보시라는 겁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된 좋은 글이 있어서 나누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발터벤야민의 <사유이미지>에 나오는 글이에요.


훌륭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말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기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걸어간다는 것이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그소망의 실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실현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즉 그 실현이 목표에 정확하게 합당한 실현이 되는지, 아니 - P199

면 탐욕스럽고 흐리멍덩하게 소망에 자신을 탕진하는지 길을 가고 있는 자의 훈련 여부에 달려 있다. 그가 자신을 절제하면서 불필요하거나 장황하거나 어슬렁거리는 동작들을 피하면 피할수록, 모든 신체의 자세는 자신에게 그만큼 더 족하게 되고, 그 신체를더욱더 적절하게 운용하게 된다. 열악한 작가는 착상이 많이 떠올라 그 착상들 속에서 기력을 탕진해버린다. 이것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열악한 달리기 선수가 사지를 맥 빠지게 움직이거나 지나치게 활발하게 움직이느라 기력을 탕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열악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냉철하게 말할 줄 모른다. 재기발랄하게 훈련받은 신체가 펼치는 연기를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사유에 부여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작가의재능이다. 훌륭한 작가는 결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을 말하지않는다. 그래서 그가 쓰는 글은 그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준다.  - P200

"글을 쓰다만 채로 두지 말고 한 편을 끝까지 완성해보세요."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하는 조언 중 하나입니다. 격식을 갖춘글 한 편 쓰기를 완수하는 체험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글의 현 상태와 능력치를 파악하는 거죠. ‘아, 내가 이 정도 쓰는구나‘ 하고요. 그런데 오래 붙들고 있어도 완성하지 못하는글이 있죠. 가까스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분량만 채웠을 뿐 내용은 엉성하기 짝이 없고요. 아무리 시간과 공을 들여도 완성되지 않는 글도 있습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글감에 대한 생각이 설익었기 때문입니다. 멸치 육수를 내는데 멸치가 서른 마리 있는 육수랑 세 마리 있는 육수를 비교해보면 농도가 다르겠죠. 세 마리밖에 없으면 오래 끓여도 육수가 밍밍합니다. 멸치가 서른마리 있으면 잠깐 끓여도 육수가 진하게 우러나고요. 진한 글을 쓰고 싶으면 생각의 멸치를 모아야 합니다.  - P201

2년 동안 나는 생각했던 만큼 자주 사람들을 만나지도 글을 쓰지도 못했다. 읽기만 했다. 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게 될까? 글쎄,
전쟁에 대한 또 한 권의 책이라……. 무엇 때문에? 전쟁은 사실, 크고 작은 전쟁들에서부터 널리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전쟁들까지, 이미 수천 번도 더 넘게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모두 남자들이 남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 - P202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을 왜 내야 하는지 자기 정리가 필요했다는 겁니다. 저 고민의 시간, 저 읽기의 시간을 통과했고 저 생각들을 차곡차곡 쌓아 발효했기 때문에 이렇게 묵직한 좋은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노하우나 훈련법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목표한 분량을 채워 써보는 것. 완성한 글에 세상사람들과 나눌 만한 ‘알맹이‘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 알맹이가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면 보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책을 더 읽을지, 자료를 더 찾을지, 취재를 해볼지 생각해보고 실행하는 것. 다시 써볼 것.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 P203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이게 최선이다‘라는 완성도에대한 자기 기준을 세우고 감각을 기르는 일입니다. 글쓰기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지도 않는 것 같아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고민하잖아요. 일전에 아는 시인 선배랑통화를 했는데, 그도 요즘 너무 괴롭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물었더니, 3년 동안 쓴 시를 엮어 시집을 내기로 했는데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계속 붙들고 있었대요. 고치고 다듬으며 계속 글을 매만진 거죠. 그런데 너무 고치고 다듬었는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대요. 소설과 다르게 시는 퇴고를 많이 하면 안 좋은데, 알면서도 이대로는 마음에 안 들고. 이 가을에너무 절망스럽다고 하소연을 했어요. 선배의 이야기가 이상하 - P203

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글 한 편이든, 책 한 권이든 ‘완전한 상태‘라고 느끼는 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글 완성‘이란 임무에서 너무 빨리 떠나지도 말고, 너무 늦도록 매달려 있지도 말아야 하는 것.
이게 전부 아닐까요.
《올드걸의 시집》은 2008년부터 블로그에 쓴 글들을 엮은책입니다. 블로그에 올리기 전에도, 올리고 나서도, 수정 버튼을 눌러서 거슬리는 단어나 문장을 고치기는 했지만 저 혼자만 보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현재 지면에 연재하는 글의 수준으로 공력을 들이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어설퍼도 자유로운 활력과 검열 없는 감성이 글에 담겨 있어요. 분량 제한도없어서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썼죠. 퇴고를 많이 안 했다고 해서 열 번 퇴고한 글보다 완성도가 무조건 떨어지는 것 같지도않아요. 그래서 헷갈려요. - P204

글쓰기는 이제 끝내야 하나 계속 써야 하나 영원히 헤매는일 같습니다. 저는 주로 기권하는 심정으로 글을 마쳐요. 이만하면 됐다는 확신보다는 더는 못 하겠다는 몸의 신호를 따르죠.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너무 아프거나, 똑같은 글을 너무여러 번 봐서 토가 나올 것 같을 때 "더는 못 고쳐."하면서 그냥 누워버립니다. 하하. 다른 일도 해야 하니까 더 이상 붙들고있을 수 없고요. 이렇게 물리적 한계 상황까지 끈질기게 내 글을 붙들어보는 것. 과연 완성한 것인지,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 - P204

답하는 이 외롭고 불확실한 과정을 견디는 것. 이것이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노하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블랙스완>에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완벽함은 집착만으로 안 돼. 놓을 줄도알아야 돼. 너를 가로막는 건 너 자신밖에 없어."
누군가의 표현대로 완벽함은 안 주시고 완벽주의만 주신 신을 원망하며 끝나지 않는 글쓰기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P205

자기 검열, 남들의 시선과 평가로 자신을 옭아매는 상태죠. 아마 글쓰기 최강의 방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쭉쭉 써내려가도 글을 완성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데, 자기 검열을 하면 망설임과 주저함이 더해지니까요. 특히 상실을 다루거나 자신의 취약함을 내보이는 글을 쓸 때 내 안의 검열관이 더 엄격하게 활동해요.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죠. 때로는 어떤 시선이나 평가가그릇된 사회 통념인 걸 알아도 자꾸 위축되고, 제아무리 내가옳다고 생각하는 걸 쓰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하며 써내길 망설이는 건 자연스러운 자기 보호라고생각해요. 그래도 자기 검열에 너무 오래 결박되어 있으면 생각이 시들고 글이 되지 못하겠죠. - P206

보통 성폭력 피해를 다루는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씻을 수없는 상처가 남았다‘라는 표현을 관용구처럼 쓰잖아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로 생긴 상처를 정말 씻을 수 없을까요? ‘씻을수 없는 상처‘라는 말 자체가 순결주의에 따른 낙인이죠. 사라져야 할 말입니다. 제가 《아버지의 사과 편지》의 해제를 썼는데요. 쓰면서도 그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의 기록이라서가 아니라 ‘기록할 수없는 상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이 책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여성들, 혹은 자신이 목소리를 가졌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여성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책이 있습니다. 한국 조직 문화의 고질적인 위계 폭력을 드러낸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 김지은씨가 쓴 《김지은입니다》가 그렇죠. 자기 검열이라는 두터운벽을 뚫고 힘 있게 써낸 ‘진실 말하기parrhesia‘의 좋은 교본이라고 생각합니다. - P208

사람은 변합니다. 노력하면 느리게라도 달라져요. 당장은자기 안에 있는 검열관의 눈치를 보느라 쓰지 못하지만 쓰고싶은 글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쓴 글로 주변을 채우세요. 젊은여성이 청소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기록한 김예지 작가의 책 - P208

<저 청소일 하는데요?>가 있어요. 청소노동을 낮추어 보는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직업을 부끄럽게 느낄 수도 있는데 자기검열을 덤덤하게 넘어선 작품이에요.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낳고 싶지 않다면 최지은 작가의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같은 책도 좋고요. 결혼을 안 했지만 아이를 원해서 아이둘을 입양한 백지선 작가가 쓴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라는 책도 있어요. 그런 비출산 경험자들의 글에서 언어를 수집하면 됩니다.
소위 ‘정상적인 삶‘에 대한 환영을 지운 자리에 저마다 자기삶의 지도를 그리도록 용기와 지침을 주는 책은 찾아보면 반드시 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이런 책을 꾸준히 읽어나간다면 자기 검열로 고민하던 여러분도 ‘아, 그냥 쓰면 되는구나‘
‘써도 별일 안 일어나는구나‘ ‘쓴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게 아니라 당당하고 멋있어 보이는구나‘라고 느낄 거예요. 서서히그런 언어에 물들 때 자기 안에 있는 검열관의 목소리가 힘을잃을 것입니다. - P209

독서 행위를 강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책에 손이 갈까요? 제 경우, 지금 제가 품고 있는 화두와 관련 있는 책에 끌리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 쓴 책에 관심이 가요. ‘무슨 책이냐‘보다 ‘누가 쓴 책이냐‘ 혹은 ‘누가 추천하는 책이냐‘를 더 중시해요. 책은 자기 주관과직관에 따라 집었을 때 실패 확률이 적을 것 같아요. 버지니아울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서에 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뿐이다. - P214

제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을다른 생각,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책이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해주고, 모호했던 감정을 선명하게 만들고,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책. 이해 안 되는 사람을 이해하는 단초를제공하는 책. 무력감이 들 때 하고 싶은 일을 안겨주는 책, 그래서 읽다보면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책. 베껴 쓰고 싶은 문장이 많아서 다급하게 노트와 펜을 찾게 하는 책. 궁극적으로 읽고 나면 나도 세상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도록 돕는 책.
이런 책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읽을 당시에 하는 고민에 따라 좋다고 느끼는 책도 달라지 - P214

는데요. 30대였던 제게 좋은 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예요. 요즘도 인생 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표지가 나달나달해진 저 책이 먼저 떠오릅니다. 문장이 아름답고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표현으로 일깨움을 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힘든 노동을 좋아하고, 신속하고 새롭고 낯선 것을 좋아하는 너희들 모두는 너희 자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들의 근면이란 것도 자신을 잊고자 하는 도피책이자 의지에 불과하다.  - P215

처음 이 문장 읽고 굉장히 놀랐어요.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일하는 ‘근면·성실‘이 좋은 덕목인 줄 알았는데 ‘열심히 일하는 건 너 자신을 잊기 위해서‘라는 일갈이 너무 맞는 말인 거예요. 일하느라 지쳐서 생각할 겨를이 없잖아요. 퇴근 후엔 맥주한 캔 따서 넷플릭스 보다가 자고 싶지, 내 문제만 해도 머리아픈데 남 일이나 사회문제에 신경 쓰고 싶지 않고요. 니체가이런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듯이 말해요. 니체의 또 다른책 《아침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노동은 극히 많은 신경의 힘을 소모하고, 성찰, 고민, 몽상, 걱정, 애정, 증오를 위해 쓰일 힘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항상 작은 목표를 겨냥하면서 수월하고 규칙적인 만족을 가져다 - P215

준다. 따라서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행해지는 사회는 보다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안전이 현재는 최고의 신성으로서 숭배되고 있다. 


고대 노동자와 달리 근대 노동자는 노동에 대한 ‘독특한 자기 위안‘이 있다고 니체가 말합니다. 노동이 자아실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아붕괴를 초래하고 건강을 해치기도 해요. 김밥집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 온종일 김밥을 말다보니 손목관절이 망가져서 다른 일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글 쓰는 노동도 허리와 손가락 관절을 망가뜨립니다.  - P216

니체가 물음을 제기합니다. ‘신체와 영혼을 변질시키는 활동으로써 노동이어떻게 가치를 획득하게 되었을까?‘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 윤리학이 성행하자 사회에선 근면·성실한 모습을 찬양하게 되었고 개개인의 충동을 효과적으로 길들이고 노예화하였다는겁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행해지는 고된 노동을 비판하며 이렇게 단언하죠. ‘노동은 경찰이다.‘
니체를 ‘망치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낡은 관념을 깨부수고 새로운 사상을 세운다는 의미에서요. 그 말이 딱 맞는 거예요. 니체는 ‘나‘와 세상을 둘러싼 장막을 걷어내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언어를 구사했죠. 자기 자신에 대한 의도적 무지와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일깨워주었고, 내가 행하는 노동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를 정신 차리고 따져보게 했거든요. - P216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책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어요.
"나는 이웃들의 삶 속에 존재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은 충분히 그런 역할이 가능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대상과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인식 체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면 다르게 살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책 쓰는 사람으로서 존재 해방에 기여하는 책을 쓰는 데 욕심이 나거든요. 대단한 프로젝트라기보단, 그저나를 해방시킨 언어들을 타인의 삶에 이식하려는 노동이 제게는 글쓰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 책을 읽고 삶이 달라졌다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리뷰를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글쓰기의 최전선》 추천사에 홍세화 선생님이 이런 표현을 - P218

썼어요.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 좋은 책을 읽거들랑 내게 들어온 가장 좋은 것들을세상에 풀어놓는다는 보시의 마음으로, 글로 써서 널리 나누시길 바랍니다. - P219

주변에 글 쓰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다독가예요.
읽기가 쓰기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독서 행위로인해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고 좋은 문장을 통과하게 된다는점에서 장기적으로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이 발아했을 때, 이미 사유의 줄기가 튼튼히 뿌리내리고 열매가 열린 책을 읽으면 힘을 얻기도 하죠. 나의 직관이나 느낌이 영 엉터리는 아니었음을 확인하면 안도감이 들어요. 반대로 나의 어떤 생각이 무지에 근거한 편견이었음을 알아채기도하고요. 이렇게 책은 생각의 토양에 햇살과 바람과 물을 공급해줍니다. 장대비와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자극도 주죠. 글쓰기에 필요한 양분을 제공해주는 책에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 P220

그랬더니 도수 맞는 안경을 낀 것처럼 세상이 더 선명해졌어요.
내가 놓여 있는 사회의 구조와 모순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걸 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썼습니다. 읽기가쓰기를 재촉한 거죠.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어요. 어떤 읽기는 읽는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없게만든다고요. 제 경험을 근거로 말씀드리면 ‘좋은 엄마란 뭘까‘
‘인간답게 산다는 건 뭘까‘ 이렇게 자기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찾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한 독서는 쓰기에 큰 도움이 됩니다. - P222

단, 이 책 저 책 여러 권을 읽기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보세요. 생각을 펼치고 다지는 읽기를 지나서 나만의 언어를고르고 만드는 읽기로 도약하기 위해서요. 물론 지적 쾌락을위한 독서는 끌리는 대로 폭넓게 읽어도 되지만 쓰는 사람으로서 관찰력, 사고력, 표현력을 기르고 싶다면 꼼꼼하게 읽어야 책을 내 것으로 만들겠죠. 저는 처음 집어든 책은 일단 그냥읽어요. 그러다보면 개중에 느낌이 강렬한 책이 있어요. ‘이 책좋다‘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첫 장으로 가요. 인상적인 단어나문장을 베껴 쓰면서 한 번 더 읽어봅니다. 그리고 필사한 내용만 따로 추려서 또 보고요. 그렇게 책 내용을 충분히 소화해내내 살과 피로 저장해둡니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 계속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으로요. - P222

제게도 재독 삼독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아요. 다시 읽고정리하려면 귀찮고 번거롭죠. 책은 매일 쏟아집니다. 날 봐달라는 신간 도서의 유혹도 물리쳐야 해요. 이미 읽은 책에 머물기보다 어서 새 책으로 달아나고 싶잖아요. 그럴 때면 저에게준엄하게 묻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책을 빨리, 많이 읽으려고안달이란 말인가.‘ 장안의 화제인 그 책을 나도 읽었다고 말하거나 1년에 100권 읽었다는 식으로 어디 가서 권수를 내세운들 순간의 기분에 그칠 뿐이죠. 과시하기엔 좋을지 몰라도 실속이 없어요. 고백하자면 저도 분명히 읽었는데 내용이 전혀기억 안 나는 책도 있고, 이미 산 책을 안 본 줄 알고 또 산 적도 있어요. 그런 어이없는 일을 하던 중에 아래 글귀를 만났습니다. - P223

속성을 바라기 때문에 옛것을 익힐 겨를이 없으며, 읽고 있는 글또한 세심히 살피고 익숙하게 할 겨를이 없습니다. 마음은 바쁘고언제나 급박하게 쫓기는 것과 같아서, 본디는 여러 가지 글을 널리읽고자 하되 소홀히 하고 잊어버려 나중에 가서는 한 번도 글을 읽지 않은 사람과 다름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요즘은 한 권 읽고 나면 한 권 정리하는 수고로운 절차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훈련이 힘들면 실전이 쉽다는 말이 있죠.
의미 없는 헛수고처럼 느껴지더라도 조급함을 내려놓고 거듭 - P223

Tv TORT blog읽고 정리하며 머릿속에 들어온 것들은 나만의 언어로 무르익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펼치고 지식과 지혜를 얻는 읽기에서나아가 자기 언어를 고르고 만드는 읽기 활동을 해보세요. 그런 뒤 나만의 독서 노트에 잘 정리해두는 거죠. 좋은 책이 주는언어와 사유를 한 단어도 흘리지 말고 살뜰히 챙기시길 바랍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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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자면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죠. 잘 쓸 수 있을까 하는생각이 먼저 올라와요. 근원적인 자기 의심이죠. 특히 내 글에남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룰 때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좀 더간절해집니다. 무척 조심스럽죠. 쓰기 전이나 쓰는 중에는 남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써도 될지, 쓴 뒤에는 잘 표현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괜찮아도 혹여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저도 타인이 등장하는 글을 늘 쓰기에 이런 고민의 과정을거칩니다. 특히 가족 이야기를 선뜻 쓰기 어려워요. 서로 이꼴저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속속들이 봐온 사이라서겠지요.
너무 모르는 것만큼 너무 아는 것도 쓰기의 걸림돌이 됩니다. - P157

분명 아빠가 원망스럽고 아빠를 돌봐야 하는 현실이 싫었지만 원망과 억울에 그친 글을 쓰면 아빠가 사회적으로 쓸모없고 짐짝 같은 존재로 사물화되잖아요. 이런 우려를 조기현작가는 이렇게 정리해요. "이 글을 통해 나만 통통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이 책을 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인물에 관한 글쓰기가 한 사람을 크게 성장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글쓰기도 성숙한다고 믿게 됐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힌트가되면 좋겠어요.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안 쓴다‘가 아니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조심스럽게 쓴다‘로 방향을 잡으시고요.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그려내시길 바랍니다. - P162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고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살면서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단어를쓸 때 타자에 대한 존중이 깃들어 있는지, 배제나 차별의 시선은 없는지, 살펴보고 쓸지 말지 판단해요. 좋은 언어는 적어도타인을 마음 상하게 하거나 재단하지 않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먼지 차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상에 스민 차별과 혐오의언어를 골라내기는 어렵지만 하나씩 배우면 되고, 헷갈리면책을 찾아보거나 주변에 물어봐서 지혜를 구하면 됩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웁니다. 그러니까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쓴 사람에게 정색하지 말고 상대가 무안하지않게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고, 자신의 말이나 글에 그런 표현 - P167

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반성하고 고쳐나가면 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 아닐까요. 우리가 이런 불편함과부끄러움을 터놓고 수용하는 대화가 가능할 때라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 P168

비유를 잘하는 법을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사실 글에서는서툰 비유보다 잘못된 비유가 문제입니다. 전자는 필자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후자는 타인에게 폭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비유는 글쓴이의 인권 의식을 드러냅니다.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이 있어요. 어떤 공무원분이 업무차 전화를 많이 걸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콜센터 직원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라고 썼어요. 애초에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텐데요, 맥락상 콜센터 업무를 단순노동으로 폄하하는 뉘앙스 - P170

가 있어요. 어떤 노동도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분이 들으면 불쾌할 수 있는 문장이죠.
또 제가 본 어떤 책에서는 화가 나서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의모습을 "중2처럼 굴었다"라는 비유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특정 집단을 타자화하고 낙인찍는 표현이죠. 중2도 여느 나이대처럼 난폭함도, 의젓함도, 발랄함도 있을 텐데요. 다른 비유를찾아 쓰거나 적절한 비유가 생각이 안 나면 안 써도 되죠. 그저
‘전화 거는 업무를 단순 반복하느라 지쳤다‘ ‘제멋대로 거칠게굴었다‘라고 사실만 명시해도 충분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에 해를 입힌 사람에게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을 막 썼단 말이에요. 이런 식의 표현에 대해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일찍이 1978년에 낸 책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앓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이 있다고 지적했죠. 특정 질병과 질병을 앓는 환자에 낙인찍는 은유에 반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질병은 징벌이 아니라 질병일 뿐이라는 것, 치료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님을 인지한다면 질병 관련 비유를 함부로 쓰지 않게되겠지요. - P171

처음엔 후루룩 초고를 쓰시고 퇴고할 때 검토해보세요. ‘다른 존재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단어나 비유가 있진 않은가?‘
성공적인 비유는 명철한 지성을 발휘해 "앎의 전달"에 기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습니다. 비유가 자기 감정을 자연물에 대입하여 표현하는 한낱 낭만적인 문학적 장식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글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일이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고유하고 매력적인나만의 비유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P172

‘관습적 사고에 저항하라.‘ ‘뒤집어서 생각하라.‘ 많은 글쓰기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서사고하는 힘이 창의력이고 상상력이죠. 저는 이런 표현이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무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죠. 그런데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 열렬히 공감하는 부분을 보면 관습이나 상식을 다른 관점에서 본 문장이더라고요. 자연스레 터득해갔죠. ‘아, 상식과 관습을 뒤집으라는 게 이런 거구나.‘ 손원평작가의 소설 《아몬드》에도 좋은사례가 나와요. - P173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게 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 P173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어떠세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는 표현이눈에 들어옵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통념과는 다른해석이죠. 이런 생각을 작가는 왜, 언제 하고 어떻게 문장으로풀어냈을지 참 궁금해요. 혼자 추측해봅니다. 아마 최초의 계기가 있었겠죠.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은 관용적 표현이니까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텐데 그날따라 유독 그 말이 이물스럽고 자기 몸에 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 P174

‘나는 왜 이 말이 거슬렸지?‘ 최초의 느낌을 붙잡고 의심하는 거죠. 5월에 대해서 남들이 정해놓은 대로가 아니라 직접본 것, 관찰한 것, 느낀 것을 종합해서 정확하게 써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보는 일은 스치는 말이나 현상을 붙들고 곰곰이 바라보고 기존 상식에 의문이 풀릴때까지 저항하며 생각하는 것이겠죠.
이 밖에 계절에 관한 낡고 오래된 비유가 많습니다. ‘가을은독서의 달이다‘처럼요. 그런데 이 표현을 현실에 대입해봅시다.
하늘 높고 바람 좋고 단풍으로 운치 있는 가을날,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나요? 가을은 산으로 공원으로 연일 최다 관광객이 - P174

몰리는 계절로 야외 활동에 최적이죠. 저는 가을이 되면 책이아니라 창밖에 눈길을 빼앗겨요. 자꾸 나가서 나그네처럼 거닐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이죠. 차라리 겨울이 독서에 맞춤한 계절 같아요. 밤도 길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시기라서상념도 많아지니까요. 저마다 ‘독서의 달‘은 다릅니다.
성탄절이면 흔히들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고 인사말도 건네잖아요. 그런데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인가 생각해보면요, 저한테 성탄절은 ‘새드 크리스마스‘로 각인돼 있어요. 사춘기 무렵에 아버지가 직장을 자주 옮겨서 집안 경제가불안정했어요. 연말이면 아버지가 그러셨죠. "올해 크리스마스는 새드 크리스마스다." 그 말이 그렇게 처량했어요. 남들은성탄절에 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 같고, 아버지가 무능한거 같아서 싫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평생을 돌이켜보면화려하고 행복한 성탄절보다 평범하거나 쓸쓸한 성탄절을 더많이 보낸 것 같아요. 성탄절뿐만 아니라 명절도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 불행한 날이 되곤 하잖아요.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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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퇴고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볼게요.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칼럼 <은유의 책편지>는 200자 원고지 12매 분량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어떤 소재를 다룰지 오며 가며 앉으나 서나자나깨나 글감 구상하는 시간을 다 빼고, 온전히 노트북 앞에앉아 원고 한 편을 완성하는 시간만 총 열 시간 정도 걸린다고가정해보겠습니다. 초고를 쓰는 데 한 서너 시간 걸리고, 퇴고하는 데 한 예닐곱 시간 걸리는 것 같아요. 초고와 퇴고의 비율이 4대 6 정도이죠. 처음엔 초고 작성에 시간을 더 들였어요.
그런데 글은 쓰기만 한다고 글이 아니라는 것, 글은 자꾸 고쳐야 글다워진다는 걸 인지하고는 퇴고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할애하게 되었습니다. - P142

《반사회적 가족》이라는 책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족의 폐단을 짚는 책이죠. 가족의문제로 크게 세 가지를 짚어냅니다. 계급 재생산이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는 점, 사적 영역이란 명분으로 개성과 인권을 억압한다는 점, 여성이 구조적으로 가사노동과 육아에 속박된다는 점. 저는 완전히 ‘밑줄 파티‘를 하면서 읽었거든요. 글쓰기수업을 하고 르포 작가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일이 많다보니 ‘가족이 모든 상처의 근원이구나‘ 하는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책을 보니까 가족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랐고요. 저도 지금까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이성애 가족 안에서 50여 년을 생활했지만 문득 가족 밖에서 - P142

가족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독립 (자취)을 계획하던 중이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으로 원고를 썼습니다. 노트북 앞에 딱 앉아서파일명을 ‘반사회적 가족‘이라고 저장한 문서 파일에 첫 문장을 썼죠. 글쓰기에서는 결핍만큼 과잉도 문제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많은 것도 문제거든요. 당시 제가그랬죠. 아니나 다를까, 쓰고 나서 읽어보니 글이 어수선한 거예요. 글의 메시지가 중구난방이었죠. 핵심 문장에 밑줄을 그어보았습니다. 한 줄만 잘 그으면 합격, 여러 군데 그으면 불합격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냉정하게 읽어보니 가족제도를 비판하는 글인지 가사노동의 부당함에 대한 글인지, 논점이 모호한 거예요.  - P143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도맡고 또 가족이 여성의 억압을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두 논점이맞물려 있지만, 엄연히 다른 주제거든요. 글이 가족제도의 반사회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야 하는데, 가사노동의 힘겨움이라는 옆길로 이야기가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가사노동에 대해 쓴 부분을 덜어냈죠.
퇴고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앞서 <곁길로 새지 않고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글을 쓰면서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놓치면 곤란합니다. 수시로 자문하며 하나의 주제로 논의를 수렴해나가야죠. 목동이 양몰이를 하듯이 - P143

글의 내용을 하나의 메시지로 모으는 게 좋습니다.


퇴고에서 두 번째로 챙길 것은 독자의 눈으로 글을 읽어보며 적절한 정보와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자기 이야기를 쓸 때 경험의 맥락, 상황, 역사 같은 배경 정보를 본인은 알기 때문에 상세히 쓰지 않거나 아예 안 쓰기도하는데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가령 제가 양육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볼게요. 저는 제 아이들의 나이를 알아요. 그런데 독자는 써주지 않으면 모른단말이에요(두 살, 열 살, 열일곱 살 양육에는 각각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 큰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면 안 돼요. 구체적인나이가 꼭 필요한 글에선 나이를 숫자로 표기해주고 아니면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됐다‘ 정도라도 써주고요. 어떤 표현이더 적절한지 계속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항상 제3자 입장에서 자기 글을 보는 것, 자기 객관화가 퇴고 단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 P144

정리하자면 저의 퇴고 과정에서 첫 번째로 주제 벼리기, 두번째로 적절한 정보 넣기를 한다면 마지막 단계는 제가 ‘실밥뜯기‘라고 명명한 과정을 거칩니다. 글을 말끔하게 만드는 거죠. 글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혔다 싶으면 이제 소리 내어 읽어봐요. 문장이 길어서 늘어진다 싶으면 단문으로 끊어줍니다. 문 - P144

장이 길게 이어지면 내용 파악이 안 되고 글을 계속 읽게 만드는 리듬이 안 생기거든요. 긴 문장이 있으면 좀 짧은 문장도 넣어주고요. 특정 단어가 너무 중복된다 싶으면 다른 단어로 바꿔주고요.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쓰는 부사가 다들 있죠.
그것도 적절히 덜어내고요. 부사 없이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문제가 없다면 부사를 적절히 빼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했는데도 글이 어째 재미가 없고 늘어진다 싶으면 단락을 뒤집어서 구성을 바꿔보기도 해요. 한 편의 글이 꼭 시간순일 필요는 없거든요. - P145

이렇게 글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고치고 다듬고 하다보면얄궂게도 글이 더 이상해지기도 해요. ‘퇴고의 함정‘인데요. 고칠수록 글이 더 이상해질 때 ‘퇴고 지옥‘에 갇혔다고 느낍니다.
글에서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야겠죠.퇴고의 끝은 정하기 나름이에요. 물론 어렵습니다. 이때, 오늘 쓴 글을 오늘바로 다 퇴고하기보다는 며칠 묵혔다가 다시 보는 것이 방법이에요. 밤에 쓴 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보면 낯간지럽듯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면 글의 문제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아무리 하루, 이틀 묵혀놨다가 봐도 내 눈에는 글의 문제가안 보이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마음에 안 들어……‘ 이럴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친구한테 제 글을 보여줍니다.
피드백을 받고 나서 글을 한 번 더 고치죠. - P145

퇴고의 중요성, 퇴고의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렸어요. 정답은 없고, 최선을 다하는지의 문제 같아요. 저는 수단과 방법을동원해서 체력이 닿는 데까지 써봐야 못 쓴 글 같아도 덜 부끄럽더라고요. 대충 쓴 게 아니라 내 딴에는 하는 데까지 해봤다는 것. 이것이 또 다음에 글 쓸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퇴고에 정진해보시길 바랍니다. 글쓰기가 내 최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요. - P146

제목을 잘 짓는 비결로 ‘조금 더 시간 들여서 조금 더 들여다보기‘를 말씀드릴게요. 글을 잘 쓰는 방법과 같아요. 학인들이 글쓰기 수업의 후기 제목을 <7차시 후기 > 정도로 많이들 씁니다. 글 쓰는 사람이니까 제목 짓는 작업에 좀 더 욕심을 내면 좋겠다고 학인들에게 말해요. 아무리 짧은 후기여도 다 쓰고 이 글의 핵심이 뭐지?‘ ‘무엇에 대한 내용이지?‘라는 식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훈련을 한 뒤에 효과적인 제목을 붙이는뒷심이 필요한 거예요. <7차시 후기>보다는 <합평의 중요성을배운 시간〉이라고 제목을 붙여봐도 좋고, 그날 수업에서 들은인상적인 말 "글쓰기는 용기다"를 직접 인용으로 활용해 제목을 뽑아봐도 좋고요. - P151

게시글을 열어보고 싶지 않을까요? 글에 담긴 내용을 말하면서 다는 말하지 않는 제목이 좋은 제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제목이 소박하고 담백한 표현인 건 좋지만 무성의하면 안돼요. 장황한 것보다는 간결해야 좋고요. 호기심을 유발해야하지만 격을 잃지 않아야죠.
제목을 짓는 것은 글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요리조리 점검하는 절차이면서 언어유희를 즐기고 언어의조탁 능력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느라고 지쳐서제목 지을 힘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10퍼센트의 에너지를 남겨서 좋은 제목을 짓는 데까지 꼭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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