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퇴고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볼게요.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칼럼 <은유의 책편지>는 200자 원고지 12매 분량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어떤 소재를 다룰지 오며 가며 앉으나 서나자나깨나 글감 구상하는 시간을 다 빼고, 온전히 노트북 앞에앉아 원고 한 편을 완성하는 시간만 총 열 시간 정도 걸린다고가정해보겠습니다. 초고를 쓰는 데 한 서너 시간 걸리고, 퇴고하는 데 한 예닐곱 시간 걸리는 것 같아요. 초고와 퇴고의 비율이 4대 6 정도이죠. 처음엔 초고 작성에 시간을 더 들였어요.
그런데 글은 쓰기만 한다고 글이 아니라는 것, 글은 자꾸 고쳐야 글다워진다는 걸 인지하고는 퇴고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할애하게 되었습니다. - P142

《반사회적 가족》이라는 책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족의 폐단을 짚는 책이죠. 가족의문제로 크게 세 가지를 짚어냅니다. 계급 재생산이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는 점, 사적 영역이란 명분으로 개성과 인권을 억압한다는 점, 여성이 구조적으로 가사노동과 육아에 속박된다는 점. 저는 완전히 ‘밑줄 파티‘를 하면서 읽었거든요. 글쓰기수업을 하고 르포 작가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일이 많다보니 ‘가족이 모든 상처의 근원이구나‘ 하는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책을 보니까 가족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랐고요. 저도 지금까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이성애 가족 안에서 50여 년을 생활했지만 문득 가족 밖에서 - P142

가족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독립 (자취)을 계획하던 중이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으로 원고를 썼습니다. 노트북 앞에 딱 앉아서파일명을 ‘반사회적 가족‘이라고 저장한 문서 파일에 첫 문장을 썼죠. 글쓰기에서는 결핍만큼 과잉도 문제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많은 것도 문제거든요. 당시 제가그랬죠. 아니나 다를까, 쓰고 나서 읽어보니 글이 어수선한 거예요. 글의 메시지가 중구난방이었죠. 핵심 문장에 밑줄을 그어보았습니다. 한 줄만 잘 그으면 합격, 여러 군데 그으면 불합격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냉정하게 읽어보니 가족제도를 비판하는 글인지 가사노동의 부당함에 대한 글인지, 논점이 모호한 거예요.  - P143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도맡고 또 가족이 여성의 억압을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두 논점이맞물려 있지만, 엄연히 다른 주제거든요. 글이 가족제도의 반사회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야 하는데, 가사노동의 힘겨움이라는 옆길로 이야기가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가사노동에 대해 쓴 부분을 덜어냈죠.
퇴고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앞서 <곁길로 새지 않고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글을 쓰면서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놓치면 곤란합니다. 수시로 자문하며 하나의 주제로 논의를 수렴해나가야죠. 목동이 양몰이를 하듯이 - P143

글의 내용을 하나의 메시지로 모으는 게 좋습니다.


퇴고에서 두 번째로 챙길 것은 독자의 눈으로 글을 읽어보며 적절한 정보와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자기 이야기를 쓸 때 경험의 맥락, 상황, 역사 같은 배경 정보를 본인은 알기 때문에 상세히 쓰지 않거나 아예 안 쓰기도하는데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가령 제가 양육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볼게요. 저는 제 아이들의 나이를 알아요. 그런데 독자는 써주지 않으면 모른단말이에요(두 살, 열 살, 열일곱 살 양육에는 각각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 큰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면 안 돼요. 구체적인나이가 꼭 필요한 글에선 나이를 숫자로 표기해주고 아니면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됐다‘ 정도라도 써주고요. 어떤 표현이더 적절한지 계속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항상 제3자 입장에서 자기 글을 보는 것, 자기 객관화가 퇴고 단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 P144

정리하자면 저의 퇴고 과정에서 첫 번째로 주제 벼리기, 두번째로 적절한 정보 넣기를 한다면 마지막 단계는 제가 ‘실밥뜯기‘라고 명명한 과정을 거칩니다. 글을 말끔하게 만드는 거죠. 글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혔다 싶으면 이제 소리 내어 읽어봐요. 문장이 길어서 늘어진다 싶으면 단문으로 끊어줍니다. 문 - P144

장이 길게 이어지면 내용 파악이 안 되고 글을 계속 읽게 만드는 리듬이 안 생기거든요. 긴 문장이 있으면 좀 짧은 문장도 넣어주고요. 특정 단어가 너무 중복된다 싶으면 다른 단어로 바꿔주고요.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쓰는 부사가 다들 있죠.
그것도 적절히 덜어내고요. 부사 없이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문제가 없다면 부사를 적절히 빼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했는데도 글이 어째 재미가 없고 늘어진다 싶으면 단락을 뒤집어서 구성을 바꿔보기도 해요. 한 편의 글이 꼭 시간순일 필요는 없거든요. - P145

이렇게 글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고치고 다듬고 하다보면얄궂게도 글이 더 이상해지기도 해요. ‘퇴고의 함정‘인데요. 고칠수록 글이 더 이상해질 때 ‘퇴고 지옥‘에 갇혔다고 느낍니다.
글에서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야겠죠.퇴고의 끝은 정하기 나름이에요. 물론 어렵습니다. 이때, 오늘 쓴 글을 오늘바로 다 퇴고하기보다는 며칠 묵혔다가 다시 보는 것이 방법이에요. 밤에 쓴 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보면 낯간지럽듯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면 글의 문제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아무리 하루, 이틀 묵혀놨다가 봐도 내 눈에는 글의 문제가안 보이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마음에 안 들어……‘ 이럴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친구한테 제 글을 보여줍니다.
피드백을 받고 나서 글을 한 번 더 고치죠. - P145

퇴고의 중요성, 퇴고의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렸어요. 정답은 없고, 최선을 다하는지의 문제 같아요. 저는 수단과 방법을동원해서 체력이 닿는 데까지 써봐야 못 쓴 글 같아도 덜 부끄럽더라고요. 대충 쓴 게 아니라 내 딴에는 하는 데까지 해봤다는 것. 이것이 또 다음에 글 쓸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퇴고에 정진해보시길 바랍니다. 글쓰기가 내 최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요. - P146

제목을 잘 짓는 비결로 ‘조금 더 시간 들여서 조금 더 들여다보기‘를 말씀드릴게요. 글을 잘 쓰는 방법과 같아요. 학인들이 글쓰기 수업의 후기 제목을 <7차시 후기 > 정도로 많이들 씁니다. 글 쓰는 사람이니까 제목 짓는 작업에 좀 더 욕심을 내면 좋겠다고 학인들에게 말해요. 아무리 짧은 후기여도 다 쓰고 이 글의 핵심이 뭐지?‘ ‘무엇에 대한 내용이지?‘라는 식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훈련을 한 뒤에 효과적인 제목을 붙이는뒷심이 필요한 거예요. <7차시 후기>보다는 <합평의 중요성을배운 시간〉이라고 제목을 붙여봐도 좋고, 그날 수업에서 들은인상적인 말 "글쓰기는 용기다"를 직접 인용으로 활용해 제목을 뽑아봐도 좋고요. - P151

게시글을 열어보고 싶지 않을까요? 글에 담긴 내용을 말하면서 다는 말하지 않는 제목이 좋은 제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제목이 소박하고 담백한 표현인 건 좋지만 무성의하면 안돼요. 장황한 것보다는 간결해야 좋고요. 호기심을 유발해야하지만 격을 잃지 않아야죠.
제목을 짓는 것은 글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요리조리 점검하는 절차이면서 언어유희를 즐기고 언어의조탁 능력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느라고 지쳐서제목 지을 힘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10퍼센트의 에너지를 남겨서 좋은 제목을 짓는 데까지 꼭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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