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자면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죠. 잘 쓸 수 있을까 하는생각이 먼저 올라와요. 근원적인 자기 의심이죠. 특히 내 글에남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룰 때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좀 더간절해집니다. 무척 조심스럽죠. 쓰기 전이나 쓰는 중에는 남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써도 될지, 쓴 뒤에는 잘 표현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괜찮아도 혹여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저도 타인이 등장하는 글을 늘 쓰기에 이런 고민의 과정을거칩니다. 특히 가족 이야기를 선뜻 쓰기 어려워요. 서로 이꼴저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속속들이 봐온 사이라서겠지요.
너무 모르는 것만큼 너무 아는 것도 쓰기의 걸림돌이 됩니다. - P157

분명 아빠가 원망스럽고 아빠를 돌봐야 하는 현실이 싫었지만 원망과 억울에 그친 글을 쓰면 아빠가 사회적으로 쓸모없고 짐짝 같은 존재로 사물화되잖아요. 이런 우려를 조기현작가는 이렇게 정리해요. "이 글을 통해 나만 통통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이 책을 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인물에 관한 글쓰기가 한 사람을 크게 성장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글쓰기도 성숙한다고 믿게 됐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힌트가되면 좋겠어요.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안 쓴다‘가 아니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조심스럽게 쓴다‘로 방향을 잡으시고요.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그려내시길 바랍니다. - P162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고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살면서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단어를쓸 때 타자에 대한 존중이 깃들어 있는지, 배제나 차별의 시선은 없는지, 살펴보고 쓸지 말지 판단해요. 좋은 언어는 적어도타인을 마음 상하게 하거나 재단하지 않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먼지 차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상에 스민 차별과 혐오의언어를 골라내기는 어렵지만 하나씩 배우면 되고, 헷갈리면책을 찾아보거나 주변에 물어봐서 지혜를 구하면 됩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웁니다. 그러니까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쓴 사람에게 정색하지 말고 상대가 무안하지않게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고, 자신의 말이나 글에 그런 표현 - P167

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반성하고 고쳐나가면 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 아닐까요. 우리가 이런 불편함과부끄러움을 터놓고 수용하는 대화가 가능할 때라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 P168

비유를 잘하는 법을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사실 글에서는서툰 비유보다 잘못된 비유가 문제입니다. 전자는 필자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후자는 타인에게 폭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비유는 글쓴이의 인권 의식을 드러냅니다.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이 있어요. 어떤 공무원분이 업무차 전화를 많이 걸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콜센터 직원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라고 썼어요. 애초에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텐데요, 맥락상 콜센터 업무를 단순노동으로 폄하하는 뉘앙스 - P170

가 있어요. 어떤 노동도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분이 들으면 불쾌할 수 있는 문장이죠.
또 제가 본 어떤 책에서는 화가 나서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의모습을 "중2처럼 굴었다"라는 비유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특정 집단을 타자화하고 낙인찍는 표현이죠. 중2도 여느 나이대처럼 난폭함도, 의젓함도, 발랄함도 있을 텐데요. 다른 비유를찾아 쓰거나 적절한 비유가 생각이 안 나면 안 써도 되죠. 그저
‘전화 거는 업무를 단순 반복하느라 지쳤다‘ ‘제멋대로 거칠게굴었다‘라고 사실만 명시해도 충분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에 해를 입힌 사람에게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을 막 썼단 말이에요. 이런 식의 표현에 대해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일찍이 1978년에 낸 책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앓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이 있다고 지적했죠. 특정 질병과 질병을 앓는 환자에 낙인찍는 은유에 반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질병은 징벌이 아니라 질병일 뿐이라는 것, 치료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님을 인지한다면 질병 관련 비유를 함부로 쓰지 않게되겠지요. - P171

처음엔 후루룩 초고를 쓰시고 퇴고할 때 검토해보세요. ‘다른 존재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단어나 비유가 있진 않은가?‘
성공적인 비유는 명철한 지성을 발휘해 "앎의 전달"에 기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습니다. 비유가 자기 감정을 자연물에 대입하여 표현하는 한낱 낭만적인 문학적 장식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글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일이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고유하고 매력적인나만의 비유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P172

‘관습적 사고에 저항하라.‘ ‘뒤집어서 생각하라.‘ 많은 글쓰기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서사고하는 힘이 창의력이고 상상력이죠. 저는 이런 표현이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무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죠. 그런데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 열렬히 공감하는 부분을 보면 관습이나 상식을 다른 관점에서 본 문장이더라고요. 자연스레 터득해갔죠. ‘아, 상식과 관습을 뒤집으라는 게 이런 거구나.‘ 손원평작가의 소설 《아몬드》에도 좋은사례가 나와요. - P173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게 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 P173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어떠세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는 표현이눈에 들어옵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통념과는 다른해석이죠. 이런 생각을 작가는 왜, 언제 하고 어떻게 문장으로풀어냈을지 참 궁금해요. 혼자 추측해봅니다. 아마 최초의 계기가 있었겠죠.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은 관용적 표현이니까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텐데 그날따라 유독 그 말이 이물스럽고 자기 몸에 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 P174

‘나는 왜 이 말이 거슬렸지?‘ 최초의 느낌을 붙잡고 의심하는 거죠. 5월에 대해서 남들이 정해놓은 대로가 아니라 직접본 것, 관찰한 것, 느낀 것을 종합해서 정확하게 써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보는 일은 스치는 말이나 현상을 붙들고 곰곰이 바라보고 기존 상식에 의문이 풀릴때까지 저항하며 생각하는 것이겠죠.
이 밖에 계절에 관한 낡고 오래된 비유가 많습니다. ‘가을은독서의 달이다‘처럼요. 그런데 이 표현을 현실에 대입해봅시다.
하늘 높고 바람 좋고 단풍으로 운치 있는 가을날,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나요? 가을은 산으로 공원으로 연일 최다 관광객이 - P174

몰리는 계절로 야외 활동에 최적이죠. 저는 가을이 되면 책이아니라 창밖에 눈길을 빼앗겨요. 자꾸 나가서 나그네처럼 거닐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이죠. 차라리 겨울이 독서에 맞춤한 계절 같아요. 밤도 길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시기라서상념도 많아지니까요. 저마다 ‘독서의 달‘은 다릅니다.
성탄절이면 흔히들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고 인사말도 건네잖아요. 그런데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인가 생각해보면요, 저한테 성탄절은 ‘새드 크리스마스‘로 각인돼 있어요. 사춘기 무렵에 아버지가 직장을 자주 옮겨서 집안 경제가불안정했어요. 연말이면 아버지가 그러셨죠. "올해 크리스마스는 새드 크리스마스다." 그 말이 그렇게 처량했어요. 남들은성탄절에 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 같고, 아버지가 무능한거 같아서 싫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평생을 돌이켜보면화려하고 행복한 성탄절보다 평범하거나 쓸쓸한 성탄절을 더많이 보낸 것 같아요. 성탄절뿐만 아니라 명절도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 불행한 날이 되곤 하잖아요.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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