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


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꽃 진 자리
어린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봄나무


저 나무가 수상하다

‘아름다운 그대가 있어
세상에 봄이 왔다‘
나는 이 글귀를
한겨울 광장에서 보았다

스멀스멀
고목 같은 내 몸이
싹을 틔울 모양이다

편지


‘기루다, 기루어하다‘라는 말이 있어요 ‘없어서 아쉽다‘ 라는 뜻이 담긴 말인데 ‘그리다, 그리워하다‘하고는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만해 선생이 즐겨 쓰던 말이기도 한데요 나는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이 단어가 자꾸 떠올라요지난 삼월 이래 생겨난 현상이지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이별 1


그대 떠나도
거기 있을 거야 나는

산이니까

이별 2


그대 보내고
우두커니 서 있네 나는

산이니까

신현정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의 시를 읽고 나서
나도 좀 착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남의 집 마당이라도 쓸어주고는 가야 할 텐데
풍뎅아
어린 시절
네 목을 비틀어서 미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행성이건 어느 위성이건 그들의 표면을 변형시키는 과정은여러 가지가 있다. 우주에서 들어오는 물체와의 충돌과 같이 외부 요인으로 인한 과정이 있고 지진과 같이 내부 요인에서 비롯되는 과정이있다. 화산 폭발과 같이 순간적이고 파국적인 사건이 있는가 하면, 바람에 날리는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표면을 깎아 내는 것과 같이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는 과정도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외부에서 오든, 내부에서 일어나든, 드물고 격렬한 사건이건, 흔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현상이건, 어느 과정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가 하는 질문에는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다. 달에서는 외부적인 변화와 파국적인 사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지구에서는 내부적인 변화와 느린과정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화성의 상황은 이 둘의 중간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 P191

이제 더 뜨거워진 표면 온도는 더 많은 양의 탄산염들을 이산화탄소로 기화시켜서 온실효과는 한층 더 효율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온실 효과의 폭주로 말미암아 지구의 표면 온도가 현재보다 무척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런 폭주 현상이 금성의 초기 역사에서 벌어졌던 것 같다. 지구보다 금성이 태양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현재 금성의 표면이 처한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재앙이 지구의 위치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현대 산업 문명의 주요 에너지원은 화석 연료이다. 우리는 나무, 석유, 석탄, 천연가스를 태우고 이 과정에서 폐기 기체, 주로 이산화탄소를대기 중에 내보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함량이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지구의 기온이 온실 효과로 인해 급격히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이 1도 내지 2도만 상승해도, 그것이 초래할 재앙은 자못 심각하다.  - P213

석탄, 석유, 휘발유를태울 때,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황산 기체도 대기 중으로 내보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금성에서처럼 지구의 성층권에도 아주 작은 액체 황산의 방울들로 이루어진 상당한 규모의 황산 안개 층이 형성된다. 우리의 주요 도시들은 유독 가스로 오염돼 있다. 인간이 무심코 행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장기간에 걸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상태에서 우리는 현재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정반대의 측면에서도 기후를 교란시켜 왔다. 수십만년 동안 인간은 숲을 태우고 나무를 베고 가축을 초원에 방목함으로써초원과 밀림을 지속적으로 파괴해 왔다. 화전 농업과 산업을 위한 열대림의 개간, 그리고 지나친 방목이 지구 도처에 만연하고 있다. 그러 - P213

나 숲은 초원보다 어둡고, 초원은 사막보다 어둡다. 결과적으로 지표에 흡수되는 햇빛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즉 토지의 사용양식이 변함에 따라 지구의 표면 온도가 낮아질 수 있다. 이러한 식의냉각은 극지방에 있는 만년설 지대의 넓이를 증가시킬 것이다. 만년설지대가 넓어지면 햇빛이 더 잘 반사되어 지구 밖으로 나간다. 그 결과로 지구의 표면 온도는 더욱 낮아질 것이다. 이것이 온실 효과의 또 다른 방향으로의 폭주이다. 급격하게 치솟는 반사도" 때문에 지구는 종국에 ‘백색 재앙‘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 P214

우리의 아름답고 푸른 행성 지구는 인류가 아는 유일한 삶의 보금자리이다. 금성은 너무 덥고 화성은 너무 춥지만 지구의 기후는 적당하다. 인류에게 지구야말로 낙원인 듯하다. 결국 우리는 이곳에서 진화해 왔다. 지구의 현재 기후 여건이 실은 불안정한 평형 상태일 가능성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들을 동원하여 지구의 연약한 환경을 더욱 교란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초래할 심각한 결과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다. 지구의 환경이지옥과 같은 금성의 현실이나, 빙하기에 놓여 있는 화성의 현재 상황으로 근접할 위험은 없는가? 이 질문에 당장 할 수 있는 답은 현재로서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뿐이다. 행성 지구의 전일적 기후학 그리고 비교 행성학적 연구는 아직 초보 단계에 있다. 이 분야 연구들에지원되는 예산의 규모 또한 아주 보잘것없다. 우리는 지구 기후의 장 - P214

기 변화에 대해서 참으로 무지하다. 인류는 자신의 무지를 망각한 채 대기를 오염시키고 숲을 제거함으로써 지표면의 반사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수백만 년 전 인류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지구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지구가 젊음의 격변기와 형성 초기의 격렬함에서부터 46억 년이나 되는 세월을 이미 보내고 중년기의 안정을 찾은 뒤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인류의 활동이 지구에 아주 새롭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지능과 기술이 기후와 같은 자연 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것이다. 이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무지와 자기만족의 만행을 계속 묵인할 것인가? 지구의 전체적 번영보다 단기적이고 국지적인 이득을 더 중요시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녀와 손자손녀를 위한 걱정과 함께, 미묘하고 복잡하게 작용하는 생명 유지의 전 지구적 메커니즘을 올바로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좀 더 긴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인가? 알고 보니 지구는 참으로 작고 참으로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좀 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 - P215

신들의 과수원들에서 그는 운하들을 감시한다.

-수메르 신화 에누마 엘리시』, 기원전 2500년경

우리의 지구가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를 돌면서 빛을 받는 한 행성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나머지 행성들에도 지구에서와 같이 가재도구뿐 아니라 거주민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을 때때로 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곳에서 자연이 제멋대로 벌여놓은 수많은 일들을 탐구해 봤자 헛수고나 마찬가지라고 언제나 뻔한 결론을 내리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얼마전,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다소 진지하게 생각해 본 끝에 그렇다고 해서 (그 옛날의) 위대한 분들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고 간주해서가 아니라, 그분들보다 훗날에 살게 되는 행운을 가졌을 뿐이라는 뜻에서 이 탐구가아주 실행 불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온갖 어려움을 무릅써야 하는 그런 성격의 일도 아니고,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추측은 해 볼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천상계의 발견, 1890년경 - P217

사람들이 눈의 기능을 크게 확장하여 지구와 같은 행성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우리 곁에 오고야 말 것이다. 
-크리스토퍼 랜, 그레샴 대학교에서 취임식
1657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틈


살얼음 낀 겨울 논바닥에
기러기 한 마리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은
하늘에
빈틈이 있기 때문이다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낮달


외다리 재두루미 한 마리
남은 한쪽 다리를 길게 쭉 뻗고
얼어붙은 하늘을 고요히
날고 있다

저수지 위에 뜬 겨울 낮달이
울음을 그치고 그 뒤를
고요히
따라가고 있다




가는 발목에 끈이 묶여
날지 못하는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에 가차없이 차이는
푸른 하늘조차 내려와 도와주지 않는
해가 지도록 오직
푸드덕푸드덕거리기만 하는
한 마리
저 땅 위의

수표교


물의 깊이를 재는 넌
내 눈물의 깊이는 재어보았니

눈금을 새긴 돌기둥을 데리고
수표교 하나
내 눈물 속에 평생 잠겨 있어도

난 아직 내 눈물의 깊이의
깊이는 재지 못했네

돌이 된 내 눈물의 무게도
재지 못했네

스테인드글라스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술 한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봄밤


지구여 봄밤이다
흔들리지 마라
꽃상여처럼 너울너울
길 가지 마라
새들이 꿈을 꾸며
잠들고 있다

지구여 봄밤이다
흐느끼지 마라
상주들도 상여꾼도
곡을 멈춰라
새들이 알을 낳고
잠들고 있다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의 사랑은 항상 공포로 얼어붙는다. 여자는 모든 것을 원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소녀는 훌륭한 정신(강한 열정과 자존심과 재주)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그런 포로를 좋아한다. 마치 재갈을 물어뜯고 땅을 발로 치는 말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더 많이 행사할수록더 큰 승리감을 느낀다. 여자의 의지가 무슨 소용인가? 그녀가 애써도 얻을 수 없고, 그러면 더는 사랑받지 못한다. 여자를 만들었을 때 신은 잔인했다. [39장] - P853

엘리엇의 모든 소설은 디나의 권리를 증명한다. 사이어스 비드처럼 책임감 없는 아버지는 온갖 이유로 물 때문에 죽을까 봐두려워한다. 궨덜린의 남편은 ‘말을 다루는 것처럼 항해도 쉽게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품고 바다로 나가지만, 그는 무엇 하나 잘해낼 수 없고 자신의 주제넘음 때문에 벌을 받는다.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에서 엘리엇이 설명했듯, ‘자연은 겉으로는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자신을•숨기는 교묘한 솜씨가 있어서 작디작은 인간들이 자연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비밀리에 그들의 자신만만한 예견을 반박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1부 5장] 네메시스처럼 여기에서 - P854

여자 주인공은 남자에게 분노하지 않고, 증오를 자신에게 되돌려 자신을 벌한다. 그리하여 자기 비하를 통해 자신이 계속 받드는 남자보다 도덕적우월성을 얻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분신과 구별된다. 이런 ‘체념의 천사‘들은 부분적으로 앞장에서 우리가 탐색했던 자기혐오를 보여주는 동시에 남성적 세계에서 여자가 처한 조건에 대한 엘리엇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엘리엇은 이 여성들을통해 마치 남성 사회의 불의가 어떻게 부패한 사회질서로 인해권리를 박탈당한 채 태어난 여자에게 특별한 힘과 미덕, 특히감정의 능력을 부여하는지 탐색하는 것 같다.
샬럿 브론테가 저항했던 모든 부정적 전형이 조지 엘리엇에의해 미덕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브론테는 여자가 지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저주하는 반면, 엘리엇 - P855

은 지적인 결핍이 초래할 무서운 결과는 인정하지만 이 결핍 덕분에 여자에게는 감정적인 삶이 더 풍부해진다고 암시한다. 브론테는 여자가 자기주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반면, 엘리엇은 남성적 경쟁이 아닌 서로 돕는 동지애에기초한 고유한 여성 문화의 미덕을 극화한다. 브론테가 여성의 감금이 불러일으키는 숨 막히는 구속의 느낌을 극화한다면, 엘리엇은 「미들마치」의 마지막에 인용한 던의 말마따나 자신의 사랑으로 ‘어디에든 작은 방‘을 만들 수 있는 여성의 창의성을 칭송한다. [83장] 브론테는 남자들이 소유한 권위 있는 자유를 부러워하는 반면, 엘리엇은 그 권위 때문에 사실상 남자들이 그들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진정성을 경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P856

『미들마치』에서 매우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하나는 터티어스리드게이트가 지역사회에 입문하기 전에 경험한 연애 에피소드다. 파리에서 전류 실험을 하던 어느 날 밤, 그는 개구리들과 토끼들을 남겨두고 극장에 갔다. 멜로드라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연인을 악당으로 오해해 칼로 찔러 죽이는 인물을 연기한 배우에게 매혹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장면을 자신의 (이 불운한 인물로 분한) 실제 남편과 함께 연기했는데, ‘아내는 남편을 진짜로 찔렀고, 남편은 죽음이 명한 바에 따라 쓰러졌다. [15장] 젊은 리드게이트는 이를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라 확신하고배우 마담 로리에게 청혼한다. 마담 로리는 처음에는 ‘정말 발이 미끄러졌다‘고 은밀하게 말한다.  - P857

이 남자들을 통해 엘리엇은 안정된 기원, 끝, 정체성의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는 이 남자들과 그들의 프로젝트 때문만이 아니라 확대해서 그녀 자신의 텍스트 때문이기도하다. 엘리엇은 양식에 대한 강박증과 그로 인한 강제에 관심을기울였다. 마치 이 모든 미들마치 사람들의 간절한 열망을 말하기라도 하는 양,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향수를 주제로 쓴 시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상실했다.‘ ‘글쓰기가 분명한 / 이 사물에접근할 수 있는 열쇠를!‘ 하고 외친다. ‘이 혼란, 이 광대함, 이흩어짐을 알아내고 결합시킬‘ 무엇인가가 틀림없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실하거나 숨겨진 열쇠를 찾는 이 탐색은 성과•없이 실패로 끝나버릴 운명이다. 다이앤 와코스키는 「태양」이라는 시에서 ‘어떤 새가 그 노래를 부르는가/키, 키‘라고 익살스럽게 묻는다. ‘열쇠들로 만들어진 한 마리의 새‘뿐이다.  - P874

사실상 엘리엇은 소설가 자신이 묘사한 궁극적 감금, 자아의감방 속에 갇힌 감금에서 탈출하면서 확장되는 여자 주인공 생애의 비전을 여자들 사이의 디나와 헤티, 루시와 매기, 에스더와 트랜섬 부인, 로몰라와 테사, 미라와 궨덜린 사이의) 호의적공감 행위와 매번 연결시킨다.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하는 「백설 공주」의 미친 여왕처럼 헤티와 트랜섬 부인, 테사, 궨덜린은 거울 앞에서 자신만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 창을통해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디나, 에스더, 로몰라, 미라는 창가에서 바느질하는 착한 여왕을 닮았다. 예를 들면 트랜섬 부인은거울에서 노파인 자신을 보지만, 에스더는 블라인드를 걷어올리고 ‘희미한 달빛이 있는 잿빛 하늘, 영원히 흐르고 있는 강줄기들, 나무들이 흔들리며 휘어지는 모습을 보기 좋아한다.‘ 그녀가 얻은 것은 ‘세상의 광대함‘에 대한 인식이다. [49장] - P885

많은 비평가들은 「미들마치가 사회를 서로 다르지만 서로 관련된 삶들로 짜인 직물로 묘사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이 마을의 역사는 도시적인 마을과 시골 교구 사이에 만들어진 ‘새로운 연결의 실‘이라는 측면으로 묘사된다. [11장] 반면시골 생활의 개인 관계들은 일종의 실로 꼬아 만든 듯한 창조물이 된다. 화자는 ‘이 대부분의 내면의 삶이란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갖고 있다고 믿는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의견들로 짠 천이 파멸의 위협을 받을 때까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하고 묻는다.[64장]46 다만 이보다 덜 명확한 것은 연결의실을 바느질하는 것이 여자들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의견의 천을 짜는 사람들도 여자들이라는 점이다. - P892

명상적이며 철학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동정적이고, 도덕적이며 과학적인 화자는 그녀 자신을 우리 문화의 일반적인 분류를 훌쩍 넘어 젠더 구분을 초월하는 존재로 제시한다. 엘리엇은 지식을 추구하고 ‘남자의 머리와 여자의 가슴을 결합시키는전통적으로 남성적인 임무를 여자의 방식으로 수행하면서, 젠더에 기초한 범주들을 부적절하게 만든다. 엘리엇의 목소리는서로 반대되는 관점을 공감하는 듯한 태도로 말하기 때문에, 그목소리는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쓸 때조차 일시적이고 잠정적이기 때문에, 이 화자는 믿을 만한 ‘우리‘, 즉 사람과 사물 사이의 복잡한 친족 관계뿐만 아니라 의미의 미확정성을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아의 한계와 문화의 정의를 뛰어넘어 획득한 이런 성취는 관습적인 역할을 강요당하는 여성 인물들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화자는 엉켜 있는실타래를 객관적으로 풀어내는 인물로 그녀/그 자신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애초에 그런 플롯을 짜놓은 사람은 작가다. - P895

남성의 권위는 글쓰기(캐저반의 열쇠, ‘글로 쓸 만한 일을 하고, 내가 한 일을 스스로 쓰겠다‘는 리드게이트의 결심 [45장], 페더스톤의 유언장, 브룩의 신문, 프레드의 차용증서들, 가스씨의 서명, 그리고 벌스트로드의 보증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미들마치에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여자인 가스 부인이 ‘자기 성에 가혹한 편‘이라는 것은 놀랍지않다. 가스 부인에 따르면 여성은 예속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스 부인은 딸 레티에게 오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레티는 이야기 속의 영웅 킨키나투스가 될 수없지만, 아들은 영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리 가스는 마침내 책을 한 권 쓰는데 그것은 프레드의 업적이 된다. 그가 ‘고대인들이 공부했던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다. [종장] 이는 농작물과 소 사료에 대한 프레드의 책이 메리의 책으로 간주되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럽다.  - P907

「진짜 유령 이야기」장에서 ‘하얀 수의를 입은 키가 큰 모습의 캐시는 오래된 저택을 활주하듯 돌아다니며 잠긴 문과 통로로 출입한다. 캐시는 자신의 고통을 참아내느라 쪼그라들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죽어버린 자아의 유령이며 리그리의 학대로 살해당한 자이다. 동시에 하얀 옷을 입은 이 흑인 여자는 스토가 묘사한 저항할 수 없는 가부장적 노예 경제에 의해노예화된 모든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를 보여준다. 리그리는 캐시의 ‘유령‘을 보고 자기 ‘어머니의 수의‘로 착각하는데, 그것은 옳다. 베일을 쓴 이 여자는 리그리 자신이 거부했던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권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죄를 짓고 병들어 죽어가는 리그리는 끝까지 그죽음의 천사를 잊을 수 없다. ‘그가 죽어갈 때, 그 침대맡에는단호하고 하얀 옷을 입은 냉혹한 형상이 ‘오라! 오라! 오라!‘고말하며 서 있었다.‘ 흰옷을 입은 이 여자, 흔적 없는 아내를 통해 스토도 조지 엘리엇의 파괴의 천사가 자아 분노와 체념의 엉킨 실을 조명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샬럿 브론테의 영혼이불러주고 자신은 그저 받아 적기만 했다는 스토의 주장도 진실임을 증언한다. - P913

당신 여자의 머리칼은, 나의 누이여, 온통 헝클어진 채,
고통 속에서 산발된 힘을 물에 띄우며,
당신 남자의 이름에 반박하는.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내가 쓴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검토해보니 […]16세기에는 위대한 재능을 타고난 여자라면 누구라도 틀림없이 미치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자신의 재능을 시를 통해 발현하고자 했던, 소질이 뛰어난 소녀가 너무 심한 방해와 좌절 앞에서[..] 건강을 잃고 미쳐버렸으리라고 확신하는 데는 심리학의 도움을받을 필요도 없다.
-버지니아 울프

영국에는 학식 있는 여자들이 많았다. [...] 그러나 여성 시인은 어디있는가? […] 나는 여자 조상을 찾아 온갖 곳을 뒤졌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만일 디킨슨 부인이 따뜻하고 다정했다면 [...] 에밀리 디킨슨은 아마 어린 시절에 그녀와 동일시해서 가정적이 되어 인습적 여자 역할을 택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교회의 신도로서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이었을 것이며, 결혼해 아이를 가졌을 것이다. 물론 창조의 잠재력은 여전히 있었겠지만, 그것을 그녀가 발견할 수 있었을까? 고통과 외로움으로 생기는 글쓰기의 동기를 도대체 어떤 동기가 대체할 수있었을까?
- 존 코디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 중반부에서 ‘여자 몸에 사로잡혀 엉켜 있는 시인의 가슴속 열기와 폭력성을 누가 가늠할 수있을까요?" 하고 역설한다. 울프는 상상 속 인물이지만 여성 시인의 전형인 ‘주디스 셰익스피어‘, 위대한 남성 시인의 뛰어난 ‘재능 있는 여동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울프는 자신의 오빠 윌(윌리엄 셰익스피어)처럼 주디스도 시인-극작가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도망쳤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울타리에 에워싸여 울고 있는 새도 그녀보다 더 음악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윌과 달리 주디스는, 극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유일한 미래는 섹슈얼리티의 착취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울프는우리에게 ‘연기하는 여자는 춤추는 개를 생각나게 한다‘고 말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배우-연출가 닉 그린을 상기시킨다. 분명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의 닉 그린은 (울프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된다) 기꺼이 주디스 셰익스피어를 성 - P918

적으로 이용하려 들었을 것이다. 울프는 닉 그린이 ‘그녀를 측은하게 여겼다‘고 건조하게 말한다. ‘디스는 자신이 [그의]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되었고 (‘여자의 몸에 사로잡혀 엉켜 있는시인의 가슴속 열기와 폭력성을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요?) 어느 겨울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녀는 지금은 버스 정류장이 된 엘리판트앤드캐슬 지역 외곽 어느 교차로에 묻혀 있습니다.‘ 문학적 유혹과 배반을 다룬 이 작은 소품에서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 문제에 대한 확장된 사색을 촉발시킨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똑같지는 않은 문제를 규정한다. 울프가 지적했듯, 그리고 우리의 연구를 통해 보아왔듯, 영국에는 (배럿 브라우닝의 말을 빌리자면 ‘많은 학식있는 여자들, 독자뿐만 아니라 학술 언어를 사용하는 저자들‘이 있다.‘ - P919

더 구체적으로 영국과 미국의 문학사가는 많은 뛰어난 여성 산문 작가들(에세이스트, 일기 저자, 저널리스트, 편지저자, 특히 소설가)의 업적을 기록했다. 사실상 애프라 벤을 시작으로 패니 버니, 앤 래드클리프, 마리아 에지워스, 제인 오스틴과 함께 성장해온 영국 소설은 상당 부분 여성의 발명품인 것처럼 보인다. 오스틴은 『노생거 사원』에서 이 지점을 확실하게 암시한다. 비록 울프는 ‘새커리와 디킨스와 발자크‘가 대표하는묵직한 남성 전통에서 여성이 배제된 현실을 애도하긴 했지만, 마치 그들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페미니스트 묵주의 구슬들인양 ‘자매 소설가들‘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배럿 브라우닝이 슬프게 질문했듯 ‘여성 시인은 어디 있는가‘, 주디스 셰 - P919

익스피어들은 어디 있는가? ‘여전히 거부되는 표현 수단은 시라고 울프 자신은 슬프게 말한다. 울프가 표현한 한 가지 희망은 주디스 셰익스피어를 대체한 상상의 현대 소설가 메리 카마이클을 두고 한 ‘100년 후에는 [...] 시인이 될 것‘이라는 말뿐이다.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쓴 해는 1928년이었다. 그때는 이미 많은 여성 시인들, 또는 적어도 시를 썼던 많은 여성이 있었다.
울프 자신은 앤 핀치와 마거릿 캐번디시의 생애를 추적했고, 브론테 자매들의 ‘야생적인 시‘를 찬양했으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이야기시 『오로라 리에는 어떤 산문과도 견줄 수없는 시적 덕목이 있음을 관찰했다. 나아가 울프는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복잡한 노래」에 대해 거의 경외심에 가까운 찬사를 보냈다.  - P920

그렇다면 울프는 왜 여성의 시가 본질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까? 왜 울프는 주디스 셰익스피어가 ‘사로잡혀 엉켜 있고 거부되며‘ 숨이 막혀 스스로 매장되거나 아직 태어나지않았다고 느끼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닉 그린에서 존 크로랜섬과 R. P. 블랙머에 이르는) 남성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배럿브라우닝, 로세티, 에밀리 디킨슨 (울프가 디킨슨의 시를 읽었기를 바라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같은 여자들의 시에 반응한방식을 매우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찾아나갈 수 있다.
1959년에 『에밀리 디킨슨 시선집』을 소개하면서 제임스 리•브스는 울프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여성이 쓴 시에 많은 남자 문인들이 보인 지배적인 태도를 ‘한 친구‘의 말을 인용하며 보여준다. ‘아주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 역시 문 - P920

학비평가인 친구는 여성 시인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울프가 ‘남성적‘이라고 칭한 관점에서 보면서정시의 본질 자체가 여성성의 본질이나 특성과 내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남성 우월주의자‘ 독자와 비평가도 같은 지적을 했다. 예를 들면 시인 시어도어 레트키는 그의 친구(가끔은 연인)인 루이스 보건의 작품을 호의적으로 논평하는 가운데, ‘여자가 쓴 시에 가장 자주 퍼부어지는 비난‘에 대해상세하게 말했다. 그는 객관적인 척하며 말하기 시작하지만 스스로 그런 비난을 퍼붓고 있다는 것이 이내 분명해진다. - P921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울프는 현대의 런던은 과학기술의매연과 가부장적 고함 소리와 함께 이 상상의 여성 시인이 묻혀 있는 냉혹한 교차로 위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런 이미지의 섬뜩한 잔인함을 강화시키려는 듯이 울프는 이렇게 덧붙인다. 역사를 읽거나 잡담을 나눌 때, 우리는 마녀와 마술을 부리는 현명한 여자에 대해 듣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는재능이 주는 고통 때문에 미쳐서 황무지에 머리를 부딪쳐 부수어버렸거나, 도로 근처에서 비참히 흐느끼는 [...] 억압된 시인을 [...] 추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문학적] 충동은 시에 대한 것‘이고 ‘노래의 우두머리는 여성 시인‘이었지만, 영국과 미국의 여성 문인들은 울프가 주디스 셰익스피어에게 부여했던 바로 그 광기가 두려웠기에 최근까지 일반적으로 시보다 - P925

는 소설 쓰기를 선호했다. 울프는 마거릿 캐번디시와 동시대인인 한 사람의 말을 인용했다. ‘이 불쌍한 여자가 약간 혼란에 빠졌음이 분명하다. 감히 책을, 그것도 운문으로 쓰려는 것만큼어리석은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설사 내가 2주 동안이나 잠을못 잤더라도 그런 생각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여성 소설가는 미친 여자의 분신이나 다른 악마적인 분신에 대•해 쓰면서 작가가 되는 일에 대한 불안을 피하거나 쫓아내는 반면, 여성 시인은 문자 그대로 미친 여자가 되거나 악마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고, 전통과 장르, 사회와 예술의 교차로에서 한없이 극적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다. - P926

우리는 모든 비평의 유파들이 부유하며 둘러싸고 있는 이 논징적 주제를 남김없이 규명하는 척해서는 안 되며, 소설 쓰기와시 쓰기 사이에는 많은 장르적 차이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와 같은 차이는 울프의 구별이 옳았고, 억압된 (혹은 억압되지 않은 여성 시인의 광기에 대한 그녀의 결론도 옳았음을 입증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소설 쓰기라는 직업이 대개 (블랙머에게는 실례지만) 빵 굽기나 뜨개질같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항상 상업적인 가치가 있었는데,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기능적이며 공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는 (바이런이나 스콧의 이야기시를 제외하고) 전통적으로 돈의 가치와 거리가 멀었다. 그 이유를 우리는 계속 살펴볼 것이다. 따라서 샬럿 브론테 - P926

가 보낸 시를 받고 로버트 사우디가 했던 다음과 같은 유명한답변은 의미심장하다. ‘문학이란 여자가 할 일이 될 수 없으며되어서도 안 됩니다.‘ 분명 이 계관시인은 증권거래소와 그럼스트리트(런던의 삼류 작가들의 거주 지구)라는 세속적인 의미가 아니라 예수가 ‘나는 나의 아버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던 그고결한 의미의 직업을 가리켰다. 한편 여성에게 문학이 장려되지는 않았음에도 절박한 상황 속에서 펜으로 먹고살아야 했던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재능이 덜한 여자들이 가정교사로 세상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이해되는19세기 현상이었다. 재능 있는 가난한 여자는 소설을 써서 사실상 자신은 물론 아마도 굶주리는 그녀의 가족 전부를 먹여 살려야 했을 것이다. - P927

울프가 보여주었듯 소설 쓰기는 단지 ‘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학적이기보다 상업적이고, 성스럽다기보다 실용적이기 때문에 여성의 직업으로 더 적절하다고 여겨졌다. 20세기까지 물질적 사회적 ‘리얼리티‘를 추종하는 장르였던 소설은귀족주의적 교육 대신에 있는 그대로 기록할 것을 빈번하게 요구한다. 반면 알렉산더 포프는 야심 있는 비평가와 (은연중에)시인에게 ‘옛 규칙을 정당하게 존경하는 것을 [...] 배우라. /자연을 본받는 것은 곧 옛 규칙을 본받는 것‘이라고 훈계하면서, ‘자연과 호메로스는 똑같다‘고 말한다. 불같은 우상 파괴주의자인 퍼시 비시 셸리도 묵묵히 따르는 것이 의무인 양 아이스킬로스와 다른 그리스 ‘대가‘들을 열심히 번역했다. 서구 사회가 정의한 대로 서정 시인은 미학적 모델이 있어야 하며, 어떤 의미에서 문학 형식에 걸맞은 심원한 언어를 말해야 한다. 그(또는그녀)는 자연과 사회의 현상을 단순히 기록하거나 묘사해서는 - P928

안 된다. 시에서 자연은 전통으로(즉 ‘옛 법칙‘의 교육으로) 매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울프가(그리고 밀턴의 딸들이)낙담하며 배웠듯 그리스 로마의 전통 고전(서구의 문학, 역사,
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플라톤적 본질)은 ‘남성의 학문 영역‘을 이룬다. 따라서 그 영역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여자들에게 언제나 닫혀 있었다. 울프는 언젠가 그리스어에 대한‘우리의‘ 무지 때문에 여자들은 ‘어떤 남학생 반에 들어가더라도 꼴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모든 주요 여성 시인 중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고전‘을 (병약함 때문에 격리되어 일상적 즐거움을 희생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셸리처럼 브라우닝도 아이스킬로스의 『포박된 프로메테우스』를 번역했고, 더 나아가 브라우닝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의 기독교적인 시인들에 대한 연구 성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고전학자로서 브라우닝의 능력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고전 작가‘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이그 당시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우리 시대에 와서는 거의 다 잊혔다는 것이다. - P929

앞서 살펴보았듯 시에 나타나는 직접적이고 자주 고백하는 ‘나‘는 여성으로 하여금 실제 삶의 불안이나 적대감을 재연하게 만들지만, 소설에서 여성은 정확하게 바로 그 불안이나 적대감을 피하거나 쫓아내기 때문이다. 언젠가 조이스 캐럴 오츠가 말했듯 소설이 일종의 구조화된 백일몽이라면, 서정시는 키츠의 말마따나 ‘아담의 꿈- 그가 깨어나 그 꿈이 진실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인의 ‘나‘가 ‘가정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위험한 분장의 강렬함때문에 자신의 은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의 주제를 스스로 재연하게 할 것이다. 던이 실제로 관 안에서 잠을잤듯이 에밀리 디킨슨도 실제로 20년 동안 흰옷만 입었고, 실비아 플라스와 앤 섹스턴은 스스로를 가스로 질식시켰다. 그와같은 은유의 강렬함 때문에 울프는 주디스 셰익스피어가 ‘여성의 몸에 사로잡혀 엉켜 있는 시인의 가슴속 열기와 폭력성을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요?) 『자기만의 방』의 중심에 있는 문학의 교차로에서 죽은 채 누워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많은여성 시인이 그녀의 불안한 정신을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 P932

디킨슨에게 아무도 아닌 존재의 문학적 결과는 사실상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 그것은 가끔 기이할 정도로 어린아이 같은 자아상부터 크기에 대한 고통스러우리만큼 왜곡된 감각, 영원히 괴롭히는 허기,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혼란까지 포괄한다. 더욱이 아무도 아닌 존재는 세속적인 결과를 가져왔기에 궁극적으로 이결과는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분명 아무도 아닌 존재는 시를 출판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 때문에, 디킨슨은 ‘출판이란 인간의 정신을 경매에 넘기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출판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중부정은 의미심장하다. 다중부정이 이시인 주위에 사회적 문법의 무시무시한 벽을 둘러친 듯 보이기때문이다. 1866년경 디킨슨이 자신의 여생을 그녀의 ‘가장 작은 방‘에서 자신과 바깥의 금단 세계 사이에 ‘문을 조금만 열어둔 채‘ 보내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 벽은 거의 완벽하게 밀폐되었다. - P943

그럼에도 디킨슨의 시를 썼던 고통스러운 아무도 아닌 존재와 휘트먼의 시를 썼던 ‘거칠고 뚱뚱하고 관능적인‘ 유명 인사 사이의 차이는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많은 비평가들은 디킨슨의 은둔이 그녀의 시에 유익했으므로 시인에게도 유익했을것이라고 말했다(우리가 인용했던 코디의 문단은 이 견해를 대표한다). 문학에서 ‘만일‘ 게임은 (만일 키츠가 더 오래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셰익스피어가 젊어서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디킨슨이 세상에 ‘더 잘 적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쓸모있는 것은 아니지만, 디킨슨의소외와 문학적 실패가 필연적으로 이로웠다는 결론은 얼마 후아무도 아닌 존재로서의 그녀 자신의 고된 즐거움이라기보다 오히려 일종의 합리화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디킨슨이 유별나게억압적인 환경에서 얼마나 빛나는 시를 썼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녀가 만일 휘트먼의 자유와 ‘남성적인‘ 확신을 가졌더라면 무엇을 했을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로세티가 자신의 예술적 자긍심을 사악한 ‘허영심‘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어떤 종류의 시를 썼을지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디킨슨은 자신이 아무도 아닌 존재인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다른 어떤 사람보다 주디스 셰익스피어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디킨슨이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만들었다면 그 인물은 바로 주디스 셰익스피어였을 것이다. - P946

20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이처럼 등을 두드리는 듯한 친밀성과 이 친밀성의 정신분석학적 호색성은 관행이 되었고, 이런 관행은 휠씬 더 널리 퍼졌기 때문에 여성 시인을 틀림없이 훨씬 더 우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에밀리 디킨슨은 어디에선가 ‘에밀리‘였고,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누군가에게 ‘브라우닝 부인‘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이 두 형식 모두 이름을 불리는사람이 이례적인 상황에 있음을 강조한다. 둘 다 여자임을 강조한다기보다 숙녀임을 말하자면 여성 시인의 사회적 의존성, 결혼의 결과로 얻게 된 지위나 상처받기 쉬운 ‘처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 P954

여성 작가의 이름 문제가 여전히 지속된다는 사실은 여자들이 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문제뿐만아니라, 그들이 어머니들로부터 물려받은 위험한 시를 보존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울프는 생명력있는 여성 전통의 부족함이 주디스 셰익스피어와 그녀의 시적후손들이 처한 핵심 문제라고 보았으며, 그것은 시인만큼 그렇게 심각한 어려움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정도는 여성 소설가에게도 문제였다. 한편 여자들은 가장 열렬하게 서로 업적을 인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디킨슨이 일생 동안 만났던 독자들 중에오로지 헬렌 헌트 잭슨만이 디킨슨을 완전히 지지했고, 은둔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너는 위대한 시인이야. 네가 살아 있는 날까지 소리 높여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이야‘ 하는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디킨슨 시의 사후 - P954

출판을 둘러싸고 어처구니없이 얽혀 일어난 음모(소송, 해적판,전기, 반전기)는 매우 상징적이다. 그 격렬한 ‘집안 전쟁‘은(리처드 시월이 쓴 두 권짜리 디킨슨 전기의 반 권 분량은 디킨슨의 시를 장악하기 위한 이들의 싸움에 할애되었다) 본질적으로 여자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투사들은 디킨슨 세대의 여자인 동생 비니와 올케 수가 아니라 후손들이었다. 즉 오스틴의 젊은 연인 마벨 루미스 토드, 그녀의 딸 밀리센트 토드 빙엄, 수 길버트 디킨슨의딸 마사 디킨슨 비앙키였다. 이들 사이의 적대감에 대한 시월의설명을 읽으면 놀라서 멍해질 것이다. 루스 밀러가 말했듯이, ‘이들 젊은 여자들이 그들의 어머니들을 위해 에밀리 디킨슨의시를 가지고 싸움을 계속할수록 더 절망적인 혼돈에 빠지는 상황은 참으로 이상하다. ‘ - P955

다른 어떤 혼돈만큼이나 그런 혼돈은
‘주디스 셰익스피어‘가 직면했고 또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징후로 보인다. 시를 교육하지 않은 곳에 시의 전통은 없으며, 전통이 없는 곳에는 보존을 위해 따라야 할 명확한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울프는 모든 지적인 젊은 여자들이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울프는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화신이 한 명 나타났을 때, 그 여자 후손들이 분열과 분노때문에 가부장적 사회가 늘 여자들 사이에 놓아두었던 것과 똑같은 낡은 칼로 서로를 내리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할 만큼 충분히 냉소적이지도 못했고 비탄에 잠기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 시인의 시체-작품은 피범벅이 되어 주목받지도 못한 채 교차로가 아니라 모퉁이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 P9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